< -- 1078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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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글라이더가 종가의 에너지장벽을 넘어오고 있을 때까지도, 회의실의 테나스와 슈라, 하디와 알리야는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있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밤하늘을 점점이 뒤덮은 행글라이더를 창문을 통해 내다본 순간에야 비로소 위험을 깨달았다.
“맙소사,
허를 찔린 것을 깨달은 슈라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는 같은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입다 고함을 질렀다.
“빨리 여길 나가요! 중요한 서류 챙겨서 일단 종가에서 떠나십시오!”
“무슨 소리야? 우리 종가에 병력이 얼마인데!”
아직 상황을 정확히 파악 못 한 하디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지만 슈라는 그의 가방에 서류를 다짜고짜 쑤셔넣으며 그를 거칠게 떠밀었다.
“병력이 백만이어도 여기가 난장판이 되면 다 소용이 없으니 일단 피하라는 말입니다! 윗사람들이 없어야 군인들이 맘 놓고 싸우지요!!!”
회의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책상 위에 흩어져 있던 중요한 서류들을 허겁지겁 추슬러 가방에 되는대로 쑤셔 넣었다. 깊은 생각 따위를 할 겨를은 없었다. 그 와중에 눈 깜짝할 새 종가에 접근한 행글라이더 무리는 앞뒷마당에, 종가 양옆의 숲과 마당에 우르르 착륙했다.
창밖을 내다본 슈라가 하디의 팔을 덥석 붙들고 물었다.
“마당으로는 못 나갑니다! 다른 통로 없습니까? 저희 헤네티들이 호위하겠습니다.”
“선착장으로 가는 지하 통로가 있으니 그리로 가자.”
중요한 서류만 챙겨든 남부, 아니 비엔 수비군의 지휘부는 3층의 회의실을 버려두고 헐레벌떡 밖으로 나섰다. 강을 이용한 수상 선박은 원시적이긴 해도 스캐너도 속일 수 있고, 자기 와이어나 장애파 장치에도 움직일 수 있다보니 셔틀도 띄울 수 없을 만큼 다급한 순간에 가장 확실한 탈출 수단이었다.
“염병할! 경비병들은 다 어딨어!”
텅텅 비어있는 복도의 풍경에 하디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이 회의실에서 고작 벽 십여 개 너머의 경비병 숙소에서는 세데스와 경비병들의 피 튀기는 싸움이 막 시작된 순간이지만 아직 보고를 받지 못해 그 사실은 알지도 못했다. 이 복도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경비병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모습에 더 겁에 질린 이들은 허겁지겁 계단으로 달려가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시간, 경비병 무기고에 꼼짝없이 갇혀있던 세데스는 여전히 뒤에서 밀어붙이는 경비병들의 괴력을 이겨내며 더듬더듬 할룩스를 빼들었다.
“야, 이 새끼들아! 동쪽 5번 계단 타고 끝까지 내려가면 선착장으로 가는 지하 통로가 있어! 거기부터 누가 좀 가서 막아!”
말을 하느라 잠시 허리의 힘이 풀리면서, 그의 다리가 앞으로 주르륵 밀렸다. 우세를 잡은 문 반대편의 경비병들이 악 소리를 지르며 힘을 합쳐 세데스와 가디언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으이이이익!”
힘에서 밀린 세데스가 결국 중심을 잃고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뒤이어 그를 안쪽으로 밀어붙이던 경비병들도 앞으로 우르르 무너져 숙소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이런!!!”
세데스와 가디언은 자신들이 깨고 들어온 창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밑에 아무리 적이 우글거린다 해도 이 좁은 공간에 갇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들이 깨진 창문에 거의 다다른 순간, 이번엔 창 바깥쪽 아래에서 사다리가 쑥 올라오더니 한 경비병이 머리를 쑥 내밀었다. 밑에 있던 경비병들이 무기고의 동료들을 돕기 위해 사다리를 걸고 올라온 게 분명했다.
“이크!!!”
세데스는 아차 싶었지만 이제와 멈출 수는 없었다. 깨진 창을 박차고 오른 그는 막 고개를 내민 경비병의 머리를 한 발로 힘껏 걷어차고는 뒤로 넘어가는 사다리를 잡고 3층 허공으로 그대로 붕 날아올랐다.
“어, 엄마아!”
세데스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와 가디언은 공중에 큰 호를 그리며 넘어가는 사다리를 끌어안은 채 3층 창문에서 종가 뒤뜰 화단으로 그대로 내리꽂혔다. 사다리 아래쪽에 매달려 있던 경비병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밑에서 사다리를 붙들고 있던 병사들도 둘의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사다리에 깔려 나뒹굴었다.
“아아악!”
사다리를 끌어안은 채 장미덩굴에 떨어진 세데스가 비명을 질렀다. 가시투성이 덩굴 덕분에 완충은 되었지만 종가 사람들에게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투구를 안 쓴 덕분에 얼굴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아우! 씨발!”
세데스가 몸서리를 치며 얼굴에 엉겨 붙은 장미 가시를 허겁지겁 떼어냈다. 함께 떨어진 가디언도 이전처럼 전포만 입었더라면 온몸이 엉망이 되었겠지만 새 황제 이후 지급받은 가벼운 경갑주 덕분에 큰 상처는 입지 않고 덩굴에서 엉금엉금 기어서 빠져나와 세데스를 끌어냈다. 어쨌든 덕분에 죽음의 위협에서 빠져나온 건 사실이었다. 둘은 사다리에 깔려 나동그라진 십여 명의 경비병들을 뒤로 하고 일단 본채 옆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113대대의 가디언 200여명의 종가 구석구석에 들어오면서 앞뜰과 뒤뜰에도, 본채 양옆의 숲에서도 이미 경비병과 가디언들의 격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집안은 사방이 아수라장이고, 속도가 관건이었다. 지금쯤 대기권 밖에서 행성 에너지장벽 위성을 부수고 있을 황실 공격군이 그 임무가 끝나는대로 이곳 종가로 바로 상륙할 수 있도록 이곳의 에너지장벽과 항공 방어망을 미리 와해시켜 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임무가 또 있었다.
세데스는 다시 할룩스를 빼들고 방금 내린 명령을 재차 반복했다.
“동쪽 선착장으로 가는 지하 비밀통로를 차단하라니까! 종가에 있는 지휘부가 못 도망가게 해!!!”
세데스가 악을 썼지만 문제는 함께 들어온 가디언 113대대에서 문제의 지하통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출발 전, 세데스가 중대장에게 손으로 대충 그려 준 쪽지 지도를 가지고 여전히 종가 안을 헤매고 있었다. 세데스가 길안내로 붙여 준 시민 병사들은 한편으로는 발 빠른 가디언들의 바쁜 걸음을 잡는 걸림돌 역할도 하고 있었다.
세데스는 그제야 이대로 나갔다가는 종가에서 도망치는 지휘부를 막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하게 투입된 113대대가 델루지 종가 내부 사정에 어두운 결과였다.
“젠장! 1층 동쪽 홀로 내려와!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는 함께 온 가디언과 함께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도, 그를 발견하고 달려드는 경비병들도 뿌리치고 그는 종가 동쪽 홀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 다행히 몇 명의 가디언이 합류하면서 사정도 조금 나아졌다. 그는 이미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뒤쪽 종가 현관 대신 창문을 부수고 주방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밤 시간이지만 비상대기 중인 군인들을 위해 야식을 준비하던 요리사와 하인, 노예들은 난데없는 혼란에 주방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뛰어드는 덩치 큰 무사의 모습에 파랗게 질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움직이지 마! 난 종장 세데스다! 죽이러 온 것 아니니까 가만히들 있어!”
익숙한 세데스의 목소리에 주방 종사원들은 자리에 멈춰서며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군인도, 딱히 예민한 정보를 다루는 중요 직책이 아니다보니 이전 그가 종장으로 있었을 때 익숙했던 얼굴들이 그대로 보였다.
“조, 종장님 얼굴이 어쩌다…….”
테번 때부터 있어 온 늙은 주방장이 더듬거리며 처음으로 그를 ‘종장님’이라 불러주었다. 감격한 세데스는 그를 한 번 와락 안아주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너희들 날 좀 도와줘야겠다! 나중에 크게 보답할 거다! 노예들은 면천해 주마!”
군인들은 아니지만 당장 급한 세데스는 일단 이들이라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이들은 종가 내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온 가디언들에게 경력 많은 주방 노예와 요리사들을 하나씩 길안내로 붙여주었다.
“너흰 1분대와 함께 서쪽에 있는 통제실로 가서 제너레이터를 끊고! 너흰 지하 1층에 있는 문서보관실로 가서 기밀문서를 빼돌리지 못하게 차단해! 빨리! 빨리!”
세데스의 기지로 내부 길안내를 얻은 가디언들은 그제야 제대로 된 목표를 향해 번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첫 침투와는 달리 중간에 허비한 몇 분간의 황금 같은 시간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내심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주방 노예들을 거느린 세데스는 선착장과 이어진 지하통로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방 노예들이 ‘면천’이라는 말과 함께 그를 따르는 모습에 종가의 다른 노예들까지 앞뒤 볼 것 없이 세데스의 일행에 속속 합류했다.
“늦으면 안 되는데!”
그의 할룩스로는 본채의 앞뒤를 맡은 1중대와 2중대가 임무를 거의 마무리해간다는 기쁜 소식이 들어오고 있었다. 적의 의표를 찌른 기습 공격 덕분에 외곽의 적 대병력이 본격적인 반격을 해 올 때까지 최소한 몇십 분, 잘 하면 그 이상의 시간은 번 셈이었다. 하지만 아직 대기권 밖에 있는 황실 주력군이 그 안에 들어와 주지 않는다면 세데스와 가디언들은 잠깐의 승전을 뒤에 남겨놓은 채 모두 죽은 목숨이 될 터였다.
노예를 거느린 세데스가 동쪽 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먼저 도착한 113대대의 가디언 20여 명이 [지하 통로]가 어딘지 몰라 쪽지를 들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지하 통로는 2개다! 내가 북쪽 통로를 맡을 테니 너흰 다른 통로를 따라가!”
세데스는 이번에 데려온 주방 노예를 그들에게 길안내로 붙여주었다. 부실한 약도를 가지고 헤매고 있던 가디언들은 그제야 노예를 쫓아 제대로 통로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종가 지하를 거미줄처럼 잇고 있는 지하 탈출로는 워낙 진입로가 많기는 하지만 결국 2개의 통로로 모아져 동쪽에 있는 선착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 선착장엔 만일을 대비해 24시간 최정예의 경비 병력과 배 서너 척이 항상 세워져 있었다.
세데스는 4명의 가디언, 두셋의 노예들과 함께 계단을 뛰어내려가 지하통로로 이어진 문을 꽝 걷어차고 들어섰다. 세데스는 이미 무언가 바닥을 쓸고 지나간 것을 발견했다.
“젠장! 이미 도망갔잖아!”
세데스는 서둘러 그 뒤를 쫓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거미줄과 석판으로 마무리된 지하 통로는 사람 두 명 남짓 지나가면 어깨가 닿을 만큼 좁았고 군데군데 허름한 나무문이나 버려진 항아리 조각, 나무상자 파편 같은 쓰레기들이 널려있어 더 조심스러웠다. 키 큰 가디언들은 행여 꼭대기에 머리가 닿을세라 조심조심하며 통로를 달렸다. 그때, 남쪽 통로로 보낸 팀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들어왔다.
- 서류와 보석함을 가지고 도망치던 근위장교 무리를 따라잡았습니다. 워낙 많아 저희만으로는 부족하니 지원을 요청합니다. -
세데스는 그제야 자신이 지휘부를 제대로 쫓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2개의 통로는 [하나는 중요한 사람이, 하나는 중요한 서류와 물자가] 빠져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뒤뜰의 다른 분대에 지원 요청 메시지를 전송한 그는 걸음에 훨씬 속도를 붙여 통로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 앞쪽에서 사람들을 독려하는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좀 가요! 가디언들이라 언제 따라붙을지…….”
그 목소리의 남자도 이쪽의 추격을 눈치챘는지 돌연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세데스도 얼른 발소리를 낮추고 손에 칼을 빼들었다.
- X 같습니다. 놈들이 앞뒤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
113대대의 분대장 가디언이 세데스를 일단 저지하고는 마우저를 막는 방패를 앞세우고 직접 앞으로 나섰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대가 X라면 세데스로서는 상대하기 버거웠다. 그때, 통로를 막는 나무문을 발견한 가디언이 칼을 단단히 쥐고 문을 힘껏 걷어차 열었다. 하지만 문 너머엔 아무도 없었다.
“숨어 봤자지!”
가디언은 열린 문 안쪽 좁은 틈에 혹여 적이 없는지 확인하려 칼로 푹 찔렀다. 칼날은 그대로 문을 박살내며 반대편까지 푹 꿰뚫었다. 누군가 잔머리를 써서 그곳에 숨었다면 그대로 끝장이 났을 터였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움?”
적을 찾지 못한 가디언이 움찔한 순간, 가디언의 머리 위를 웬 시커먼 형체가 덮쳤다. 가디언도 순간적으로 칼을 쳐들었지만 뒤이어 찢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아아악!”
문틀 위의 놀랄 만큼 좁은 틈에 바싹 웅크리고 있다가 순식간에 덮친 건 슈라였다. 그의 짤막한 검이 분대장 가디언의 한쪽 팔을 단숨에 잘라내고 몸통까지 쫙 갈랐다. 그리고는 쓰러진 가디언을 그대로 짓밟고 뛰어넘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세데스를 향해 칼을 올려쳤다.
“으익!”
놀란 세데스가 뒷걸음치며 가까스로 그자의 칼끝을 피했다. 세데스가 앞장을 섰다면 일격에 그대로 즉사했을 상황이었다. 뒤따라오던 다른 친위군 가디언이 세데스 앞으로 나서려 해도 하필 그 위치에서 쓰레기로 통로가 너무 좁아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허! 이년 제대로 걸렸구나!”
슈라는 뒷걸음치며 물러나는 세데스를 바로 알아보고는 기세를 올리며 다시 칼을 휘둘렀다. 세데스가 칼을 들어 슈라의 칼을 막았지만 힘에서 밀리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외침을 신호로 모퉁이 너머에 매복해 있던 2명의 코런덤 헤네티들까지 우르르 몰려나왔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세데스의 뒤에 있던 가디언이 넘어진 세데스를 뛰어넘어 슈라와 혼자 맞섰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가디언은 슈라가 세데스를 노리는 새 선제기습을 하려 했지만 상대는 바로 표적을 바꿔 막 바닥을 디디려는 가디언의 갈비뼈 아래를 순식간에 찔렀다. 가디언조차 쉽게 막을 수 없었던, 말 그대로 번개 같은 기습이었다.
“으읍!”
가디언은 칼 한 번 제대로 맞대어보지 못한 채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가디언을 순식간에 제압한 슈라의 다음 표적은 역시 넘어져 있는 세데스였다. 양쪽의 X 숫자가 순식간에 3대 2가 되어 세데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진 상황이었다.
“우리가 돌아오지 말랬지!”
세데스의 코앞으로 슈라의 칼이 내리꽂혔다. 순간 죽었다 생각한 세데스의 사지가 빳빳하게 굳어버렸지만 뜻밖에 이 무서운 적의 칼은 그의 얼굴 위를 스친 채 그대로 딱 멎어버렸다. 세데스의 얼굴과 가슴을 가리는 흉갑을 따라 긴 혈선이 그려져 피가 번졌지만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다.
“어엉?”
눈이 휘둥그레진 세데스는 자신의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슈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누가 던진 건지는 몰라도, 그의 공포에 질린 두 눈 사이에 짧은 투척단검이 꽂혀 있었다. 순간, 이자가 코런덤이라는 것을 떠올린 세데스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조심해!”
세데스는 갈비뼈를 찔린 채 자신의 앞에 주저앉아 있는 가디언의 옷깃을 움켜쥐고 혼비백산해 뒤로 물러났다. 세데스는 다시 문 뒤로 물러나야 했고, 치명상을 입은 슈라의 몸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며 좁은 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여기, 여기…….”
그때, 슈라의 첫 공격 때 팔이 잘린 채 치명상을 입고 문 건너에 쓰러져 있던 분대장 가디언이 끙끙대며 몸을 비틀어 불타는 시체 위에 마우저 차단용 방패를 휙 덮었다.
“거, 건너오십시오…….”
쓰러진 가디언이 피와 내장을 쏟으며 신음을 토했지만 슈라의 몸이 내뿜는 무서운 열기에 세데스는 바로 넘어가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게다가 불타는 슈라 건너편에선 2명의 헤네티들이 칼을 빼들며 막아서고 있었다.
“어엇.”
세데스를 따라온 친위군 가디언들이 주저하는 새, 그들 후미에 있던 웬 작고 시커먼 그림자가 이 덩치들이 꽉 채우고 있는 좁은 복도 틈새를 후다닥 뛰어 지나와서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세데스의 머리 위를 날 듯이 휙 넘어갔다.
“이놈 뭐야!!!”
세데스가 기억하기로, 저자는 일행을 따라온 노예 중 하나였다. 그 뒤에 벌어진 상황은 세데스는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뭐야, 저놈은…….”
세데스의 머리 위를 휙 지나간 마른 체구의 남자는 순식간에 방패를 밟고 넘어가서는 그 건너편의 2명의 중무장한 헤네티들을 향해 한 뼘 남짓 짤막한 단검 하나를 들고 서슴없이 돌격했다.
“어딜 지나가려고!!!”
상대를 얕보고 칼을 내질렀던 코런덤의 목젖이 단 한 번에 찢겨 날아갔고, 그 뒤에서 공격하던 또 한 명은 그 작은 사내의 태클에 걸려 공중으로 붕 솟아올랐다. 헤네티를 번쩍 들어 올린 그 마른 사내는 마치 책을 접듯 멀쩡한 헤네티의 허리를 ‘뒤로 접어’ 머리부터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일격에 머리가 깨지고 허리가 꺾인 헤네티는 몸에 불 한 번 붙여 볼 새도 없이 그대로 숨이 끊기고 말았다.
“빨리, 빨리 넘어가!”
상황이 정확히 어찌된 건지는 모르지만, 세데스는 부상을 입은 가디언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허겁지겁 일어났다. 그리고는 방금 지나간 괴물 같은 노예를 따라 불이 더 커지기 전에 일단 방패를 밟고 슈라의 불타는 시체 위를 후다닥 뛰어 건넜다. 그를 따라온 가디언 일행들도 허겁지겁 불의 장벽을 건넜다.
“휴우.”
그제야 비로소 안정을 찾은 세데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가디언 슈라다. 좀비군단 사령관이니 아무리 재생된다 해도 적응할 때까지는 최소한 몇 시간은 부대에 혼란이 올 거다. 본대 공격에 큰 힘이 될 거다.”
세데스의 입가에 비로소 엷은 웃음이 번졌다. 이 좁은 길목에서 혼자 2명의 가디언을 쓰러뜨리고 세데스의 목숨까지 거의 빼앗을 뻔했던 무시무시한 헤네티 전사 슈라가 불덩이가 되어 타들어가고 있었다. 거리가 제법 되는데도 그 열기가 얼굴을 붉게 물들일 정도였다.
“대체 누가 이 괴물들을 잡은 거냐?”
세데스의 시선은 방금 전 그 ‘노예’를 향했다. 그의 시선을 받은 노예가 짧은 머리를 감싸고 있던 더러운 작업 모자를 벗어던지고는 칼에 묻은 피를 무표정하게 툭 털어냈다.
“너희 때문에 내 계획이 다 어그러졌어. 회의실을 덮치기 직전이었는데.”
툭 튀어나온 광대뼈, 바싹 여윈 얼굴 위로 있는지 없는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흐릿한 눈동자가 보였다. 흙과 기름때가 군데군데 묻은 그의 옷깃 사이로 쩍 갈라진 흉근과 선명한 승모근이 보였다.
“내 표적은 죽이나마나한 이 따위 좀비들이 아니었는데.”
“맙소사. 너……데이?”
세데스는 몇 달 전, 남극성당에서 자신을 보기 좋게 골탕 먹이고 세네피스를 빼내어 ‘아라무트 영감’에게로 데려갔던 그 피다이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세데스에게, 그리고 황제에게 때 아닌 정글 탐험을 하게 만든 밉살머리스런―물론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바로 그 놈이었다.
“여기까지 쫓아왔냐?”
“내 누굴 쫓든 말든, 당신은 당신네 일이나 하시오.”
피다이 수장 ‘데이’는 얼떨떨해진 세데스를 놔둔 채 남부 일행이 간 방향으로 혼자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아라무트에서 감히 분란을 일으킨 자들을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 반드시 응징한다는 암살교단의 불문율은 여전히 유효했다. 당시 카히나 성을 침공했던 자들 중 서부 5제후 사이르 경은 그 날 당일 이미 토막시체가 되었고, 바에자의 복제도 같은 날 산 채로 목이 썰려 죽었고, 슈라는 이렇게 죽었으니 이제 그의 표적은 테나스 하나만 남아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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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못 한 순간에 반짝 재출연입니다. 어쩌면 저 친구가 카렐 바로 다음의 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ㅎㅎㅎ 한 번 물리면 밤잠 자기 힘들 겁니다.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지 말고요~~~( ̄∇ ̄)ブ~~★
아참, 3부 3,4권이 대형 서점들에서도 판매 개시되었네요.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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