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81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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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에서의 큰 승전을 보고받은 검은 철성에서는 잠시 기쁨의 환호성이 올랐지만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곳에서 아무리 큰 승전을 거둔들, 어차피 궁극적인 승부가 갈릴 곳은 바로 이곳 하임달이었다.
산 서쪽의 동굴에서 서둘러 돌아와 베흔과 사에나에게서 몇 가지 보고를 들은 카렐은 돌연 불같이 화를 내며 그들에게 호통을 치고는 씩씩대며 철성의 옥상에 허겁지겁 뛰어 올라갔다.
“어, 왜 저렇게 심각하셔?”
늦잠을 자느라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한 네피가 데데한 얼굴로 나타나 카토를 쿡 찔렀다. 카토가 계단을 쿵쿵대며 올라가는 황제를 올려보며 근심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주페 태자께서 모는 불릿하고 남부인지 칼데아인지 무신 연합군하고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하실 것 같대요.”
“그럼 좋은 거 아냐? 원래는 더 늦게 도착할 예정이었잖아?”
“그런데 태자께서……, 아니 총리께서 태자 통해서 갑자기 무슨 제안을 하셨나봐요. 황상께서 안 된다면서 얼굴이 확 붉어지셨어요.”
“무슨 제안이길래?”
네피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몰라요, ‘애들을 전쟁에 끌어들이지 말랬잖아!’라고 무섭게 호통 치시는 것만 들었어요.
“주페……아니, 태자가 여기 오는 것 누가 몰랐나? 주페 태자야 이미 클 만큼 컸잖아? 그쯤이면 옛날엔 장가도…….”
“마리안 옹주 이야기도 나오던데요?”
“무, 무어?”
새파랗게 질린 네피의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
“그 주먹만 한 꼬맹이가 뭘 어쩐다고!!!”
“몰라요, 어린애를 왜 데려왔냐고 펄펄 뛰시는 것 같았어요.”
손녀 이야기에 카렐보다 얼굴이 더 붉어진 네피가 헐레벌떡 황제를 쫓아 계단을 쿵쾅거리며 뛰어올라갔다. 옥상엔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숨이 넘어가게 계단을 달려 쫓아온 네피가 옥상 문을 확 열었다.
“망할 놈! 피는 못 속인다고!”
송화기를 내려치듯 확 끊어버리던 카렐은 네피가 나타나는 기척에 얼른 목소리를 낮추었다. 당황한 네피가 얼른 물었다.
“지금 나 보고 한 얘기야?”
“아냐.”
카렐이 짜증스런 얼굴로 손을 저었다. 마리안 이야기가 나왔다는 말에 흥분한 네피가 다급히 물었다.
“근데 애들이 뭘 어쩐다는 소리야?”
카렐은 대답을 생략한 채 먼 하늘을 올려보았다. 시간상으로는 낮이지만 여전히 검은 먼지가 폭풍을 타고 휘몰아치고 있는 하늘은 해의 흔적도 보이지 않을 만큼 탁했다.
“아이들이 오고 있어.”
“설마 마리안도 오고 있다는 건 아니지?”
카렐은 살짝 눈을 굴려 네피를 돌아보았다. 그 의미를 눈치챈 네피가 경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꼬맹이가 여길 대체 왜!!!”
“황상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부조종석에 앉아 통신을 전달한 크바르나 여단장 아샤드 경이 걱정스레 말했다. 하임달의 결전 당시 오르마즈와 이곳에 왔었던 그는 ‘친위군을 통틀어 이곳에 관해 그나마 가장 잘 안다.’며 페로를 설득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조종석에 앉은 주페는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불릿의 속도를 늦추었다. 불릿은 기체가 감당할 수 있는 거의 한계까지 내는 중이고, 이미 몇 군데에선 과열 신호가 보이고 있었다. 황제령에서 출발해 하루 반이 걸려야 정상인 거리를 하루에 주파하느라 기체가 혹사당한 탓이었다.
주페의 분투로 수리 일정을 8일로 앞당겼던 것처럼, 날아오는 속도도 코리온을 능가하는 폭주 수준이었다. 셔틀 면허가 있는 아샤드에게서 중간 중간 도움을 받아야 하긴 했지만 그는 ‘무면허치고는’ 그럭저럭 탈 없이 이곳까지 불릿을 몰아 올 수 있었다.
“진노하시리라 예상은 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주페가 담담하게 대답하며 스캐너를 살폈다. 하임달 9번이 있는 행성계에 이미 접어들었지만 아직 워프루트의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이젠 엔진 무리해서 돌리지 않아도 행성 끼고 가속해 돌면서 슬링샷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속도가 조금씩 낮아지면서 다행히 과열램프가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주페는 오는 내내 셔틀 터진다고 난리를 친 승객들에게 머쓱하게 말했다.
“저게 너무 무거워서 그랬어요.”
주페는 캐빈에 실린 큰 꾸러미에 슬쩍 책임을 돌렸다. 그가 이곳으로 오던 도중, 며칠 전 이 길을 출발했던 친위군 수송선을 중간에 만나 건네받은 것이었다. 듣기로는 황제에게 가져갈 중요한 철성 부품이라는 것 같았다. 시라즈 여단과 크바르나가 탄 친위군 수송선은 이들보다 하루가 늦은 내일 오후쯤에나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실 이번 수송선에는 시라즈 여단만 탈 예정이었지만 황제가 기존 시라즈 여단과, 아샤드가 황실에 바친 크바르나 여단을 통합해 [크바르나 군단]으로 재편할 것이라 발표하면서 이번 작전을 시작으로 두 부대는 함께 움직일 예정이었다.
그리고 황제령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삼각루트의 완공, 즉 황실 주력군의 출동은 그로부터 또 하루 가까이 더 지나야 했다.
“아직 다들 괜찮죠?”
주페의 물음에 탑승객들 중 딱 한 명, 다룬만 빼고는 괜찮다며 손가락으로 O자를 그려보였다. 먼저 출발했던 은색 불릿처럼 내장 인테리어를 모조리 뜯어낸 캐빈에는 페로가 보낸 다룬, 페다이와 헨지 3명의 특등급 가디언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우리가 문제가 아닐 것 같은데요.”
페다이가 뒤를 돌아보며 히죽거렸다. 이곳에 싸움꾼만 탄 건 아니었다. 뒤쪽엔 지질과 토목 엔지니어 자격으로 부득불 올라탄 귀인 에스더와 2명의 플랜트 엔지니어들이 앉아있었다. 원래는 그레이오팔인 밀리타가 자리를 예약했었지만 양대 원정의 긴급 예산편성 문제로 재무부가 바쁘게 돌아가면서 막판에 에스더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도 삼각루트가 열리는 대로 원정군과 함께 이곳에 올 참이었다.
그리고 탑승객 중 ‘가장 미니사이즈’인 마리안은 제일 덩치가 큰 다룬을 붙들고 한 시간째 가위바위보 놀이로 연신 꿀밤을 작열하고 있었다.
“그만 좀 하면 안 돼요?”
줄줄이 지기만 한 다룬은 빨개진 이마를 어루만지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마리안은 이 덩치의 이마에 능청맞게 약 발라주는 시늉을 했다. 탑승객들 모두를 최소한 한 번 이상 녹다운시킨 마리안은 이 덩치 크고 단순한 제물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꼬마 소녀의 이마에 아프게 꿀밤을 때릴 만큼 모질지 못했다는 게 다룬의 죄라면 죄였다.
“히이, 세 판만 더요.”
마리안이 다룬의 큰 손을 억지로 잡아당겼다.
마리안이 이 행렬에 따라온 건 순전히 페로, 그리고 스스로의 별난 능력 때문이었다. 어떡해서든 마리안에게 점수를 따고 싶었던 페로는 며칠 전, 이 꼬마와 다른 황자들을 데리고 황궁 지하에 있는 카타콤베를 구경시켜 주었다. ‘이곳도 황상의 전적지’라는 말에 기분이 붕 뜬 마리안은 랜턴도 없이 굴 안을 후다닥 뛰어다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R과 X를 동시에 물려받은 마리안이 다른 황자들에 비해 신체조건이, 특히나 감각이 유별나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그레이오팔도 아닌 꼬마가 가디언까지도 장님이 되어버리는 지하에서 그렇게 신이 나 뛰어다니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거기가 다 보이냐?’는 오빠 주페의 물음에 마리안의 대답은 간단했다.
- 벽에서 소리가 들려. -
“마리안, 너 가만히 안 있으면 밖에 못 나가게 할 거다.”
오빠의 꾸중에 마리안이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없으면 거기서 아무 것도 못 보면서.”
마리안의 큰소리에 주페의 말문이 막혔다. 동생이 검은 재 속에서 무얼 어떻게 느끼는지는 천재 오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시광선과 소리를 모조리 흡수하는 검은 재가 한편으로 그레이오팔만 보는 청색의 빛을 내듯이, 특정 주파수의 소리도 반사하는 것으로 대충 짐작만 할 뿐이었다.
“너도 보는 건 아니잖아. 황상이나 황태후께서나 보시지.”
주페가 놀렸지만 동생은 여전히 당당했다. 그때 일로 ‘자신의 가치’를 눈치챈 똘똘한 꼬마는 페로와 오빠에게 자기도 고향행성으로 데려가 달라며 징징대며 매달렸다. 물론 둘 다 처음엔 펄쩍 뛰었지만 나중엔 마하까지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한패거리가 되어 조르는 통에 마지못해 ‘나중에 올 원정군 본대에서 꼼짝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고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너 여기 데려온 것만도 황상께 얼마나 혼날 일인지 알기나 해?”
“내가 손에 호오 해 드리면 그분도 안 아프셔.”
동생의 능청에 주페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엔 반대했던 주페도 생각해 보니 지난 호드르 산에서도 마리안은 어른 군인들이 거의 장님이 된 상황에서 그들의 눈과 귀, 심지어 코 역할까지 하며 달아나던 황실 일행이 무사히 달아날 수 있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아이는 그때 일을 연신 자랑하며 자기야말로 고향행성을 제일 먼저 밟게 해 주기로 황제에게서 약속을 받았다고 큰소리까지 치는 통에 결국 페로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덕분에 카렐의 격분을 자아내기는 했지만.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군더더기 하나가 더 늘어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동생 마리안을 데려가라며 뜬금없이 한패가 되었던 마하의 속셈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황제령을 출발할 무렵 이상하게 기체가 무거운 것을 직감한 주페는 혹시 ‘불청객’이 있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그랬듯, ‘개코’ 마리안에게 확인을 부탁했고, 마리안은 셔틀 여기저기를 뒤져보고는 아무도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확인까지 해 주었다.
그런데 마하-마리안 자매의 나름 그럴싸했던 공모는 갑옷 보관함의 땀 쩔은 냄새를 견디다 못한 깔끔쟁이 마하가 5시간 만에 제 손으로 백기를 들고 나오면서 어처구니없이 종지부를 찍었다. 이미 하임달 5번을 지나 달리기 시작했던 마당에 난감해진 주페는 중간에 만난 시라즈 여단, 아니 크바르나 군단의 수송선에 마하를 억지로 떼어놓고 올 수밖에 없었다. 마하는 황상이 보고 싶다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 수송선도 하루쯤 늦게 이곳에 올 참이니 자매의 공모가 아무 성과가 없던 건 아니었다.
“마리안, 이번엔 굉장히 예쁜 행성 끼고 돈다.”
“정말?”
궁지에 몰린 다룬을 구해 준 건 주페의 이 한 마디였다. ‘예쁜 행성’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마리안은 마지막으로 이긴 판을 별 성의 없는 꿀밤 한 대로 대충 마무리하고는 가장 큰 창이 있는 조종석으로 후다닥 뛰어와 아샤드 경의 무릎에 기어올랐다. 애교 따위엔 절대 녹을 것 같지 않은 꽉 막히고 엄한 인상의 헤네티 아샤드 경이지만 마리안 앞에서는 차마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우와아.”
마리안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겹겹의 고리를 달고 있는 큰 가스행성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거 내꺼 할래! 오빠 탐내지 마.”
마리안은 예쁜 고리를 보며 아샤드 경의 무릎 위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황상한테 마하 언니가 탐내기 전에 나한테 달라고 할 거야. 언니는 아까 그 시퍼러둥둥한 행성 줄래.”
“응, 예쁜 거 네가 가져.”
주페가 흐뭇하게 웃으며 동생이 행성을 잘 볼 수 있게 셔틀의 방향을 꺾었다. 셔틀은 행성의 중력권을 타고 주변을 빙 돌며 엔진을 쓰지 않고 셔틀에 살짝 가속을 붙였다.
“어?”
잠시 후, 스캐너에서 깜박거리며 나타나기 시작한 형상이 그의 주의를 빼앗아갔다. 주페는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동생에게 부조종석 뒤의 보조석을 가리켰다.
“마리안, 저기 가서 벨트 매고 앉아있어.”
아샤드 경은 벽을 쾅쾅 두들겨 캐빈에 있는 일행에게 상황을 알렸다. 지금까지 왁자지껄하던 가디언과 엔지니어들은 일제히 벽에 달린 벨트에 몸을 맸다. 중량을 줄이려 의자니 가구니 다 뜯어낸 상태라 내부는 휑했지만 황제에게 전달할 중요한 화물 상자가 중간의 명당자리에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다룬도 헐레벌떡 다가와 조종석 뒤에서 마리안을 꼭 껴안고 자리를 잡았다.
황자들에게도, 귀인 에스더에게도 특별석 따위는 없었다. 에스더는 이름도 계급장도 없는 친위군 군복 차림으로 올랐고, 오는 내내 엔지니어들과 함께 먹고, 불편을 감내하며 단 한 번도 불평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종을 하는 주페나 군인들의 결정에 쓸데없이 참견 따위도 하지 않고 거의 입을 열지도 않았다.
“가속합니다.”
거대한 가스행성 주변을 돌던 불릿이 직선궤도에 접어들며 그 탄력을 받아 속도가 붙었다. 동시에 완충장치도 부실한 내부에 엄청난 중력가속도가 밀려들었다. 가디언들까지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이 바싹 움츠러들었지만 마리안만은 그 와중에도 깔깔대며 ‘오빠, 속도 더 내.’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에스더는 두 눈을 꼭 감고 목을 꽉 움츠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스캐너에 보이는 점의 개수는 하나 둘씩 계속 늘어났다. 화면에 나타나는 콜사인은 남부의 군용수송선, 그리고 민수용 수송선이 난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분명한 남부연합군, 아니 자칭 칼데아군의 원정대였다. 주페가 일부러 시간을 맞춰 도착한 이유였다.
“꽉 잡으십시오.”
주페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지만 지금 하려는 미친 짓은 그런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 벌일 짓은 황제령을 출발한 직후, 페로에게서 적의 선단 구성에 관한 ‘몇 가지 기밀사항’을 전해들은 주페가 즉석에서 생각해 낸 황당무계한 안이었다. 페로도 처음엔 할 말을 잃을 정도였지만 거듭 생각해 보니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물론, 주페가 얼마나 미쳤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일이겠지만.
불릿은 조금씩 진동을 높이며 칼데아군의 선단에 정면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조종간과 스로틀을 쥔 주페의 손에 힘이 바싹 들어갔다. 열흘 남짓 전, 이곳에 먼저 도착했던 아버지 코리온이 교단의 기지를 휩쓸며 긴장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칼데아군은 10시간이 넘는 삼각루트 워프 끝에 하임달에 도착했지만 기쁨에 넘친 개선장군이 되기엔 지도부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웠다. 어어 하는 새 종가를 도둑맞은 델루지 가는 말할 것도 없고, 반란군 1개 군단과 황실군이 종가 코앞에 진을 치고 앉은 플라칼 가도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플라칼 가 종장 카나르 공, 아니 자칭 카나르 황제는 종장 대리 안드레이 경이 보낸 부실한 보고서와 씨름 끝에 분통을 터뜨리며 당장 보고서를 다시 올리라며 윽박질러놓은 후였다. 본토의 해방 노예들과 보수적인 농민, 노예주인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까지는 알겠지만 그 뒤는 횡설수설이 너무 많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상륙한 다음엔 송풍로부터 확보해서 황금탑을 점령하고 탈라스, 수베르로 직결되는 워프루트를 연다. 그럼 황제령이 즉시 사정권이야. 감히 비엔에 들어와 앉은 잡놈들은 당장은 좋아하고 있겠지만 그걸 아는 순간엔 놀라서 오줌을 지리겠지.”
선두에 출발한 플라칼 가 기병대의 수송선을 선두로, 100여 척의 칼데아군 선단이 한 척, 두 척 차례대로 워프루트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카나르와 지휘부가 탄 사령선에도 워프루트를 빠져나가는 짧은 진동이 엄습했다.
“워프 완료입니다.”
함장의 목소리가 방송으로 울려 퍼지자 지휘부의 장교들이 지르는 환호성과 아래 선창에 있는 일반 장병들의 함성, 박수소리가 거대한 수송선을 요란하게 울렸다. 수많은 남부 선단이 계속 합류하면서 어느새 주변을 새카맣게 뒤덮었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교단의 불릿 한 대가 칼데아군의 사령선에 도킹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제 ‘폐하’라고 불러야 하겠죠?”
착륙을 안내할 도선사를 불릿에 태우고 온 야투 박사가 능청맞게 웃으며 함교에 있던 카나르 ‘황제’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나저나 착륙이 얼마나 험악하길래 도선사까지 필요한 거냐?”
입가를 씰룩거리는 카나르에게 야투 박사가 멀리 보이는 한 누런 행성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고향행성입니다.”
고향행성을 처음 눈으로 본 카나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꼴이 뭐가 저래?”
푸르고 아름다운 비엔의 모습에만 익숙했던 그에겐 ‘비엔과 황제령을 능가하는 훌륭한 거주행성’이라는 말이 선뜻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망원경을 눈에 대고 보니 얼룩덜룩한 누런빛 사이사이로 맑고 푸른색이 감도는 구역이 섬처럼 군데군데 널려있고, 반대로 시커먼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곳도 점점이 보였다.
“지금 보시기에 왼쪽이 북극입니다. 막 아침이 된 북극 부근에 시커먼 검은 빛이 보이시죠?”
“그래. 굉장히 크군.”
“거기가 황금탑이 있는 제플린 산입니다.”
카나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새삼 그곳을 다시 살폈다. 대체로 누런 주변과는 달리 그곳엔 마치 거대한 태풍이 덮친 지역처럼 거대한 구름이 뱀의 똬리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만 그 구름의 색깔이 흰색이 아니고 낯선 검은 빛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저 태풍의 핵에 있는 게 바로 황금탑이고요.”
“설마 저기에 착륙한다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함장이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눈을 가져갔다. 누가 보아도 저곳은 정상적으로 착륙할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도선사가 왔지요. 다른 선단은 우리가 간 코스 그대로 따라오라고 해야 할 겁니다. 벗어나면 큰일 납니다.”
키를 잡은 항해사가 자리를 내주었다. 넓은 거리를 두고 흩어져있던 100여척의 선단이 앞장서는 사령선을 따라 길게 정렬하면서 선단 사이에 잠시 혼란이 벌어졌다. 주로 병력 위주로 실은 군용 수송선은 선두에, 지원인력과 보급품을 주로 실은 민간 수송선들은 후미에 바글바글 모였다.
군용 수송선은 대충 정리가 되었지만 문제는 강제 징발된 민간 수송선이었다. 그들은 ‘일렬로 진입해야 한다’는 연락에 어떡해서든 앞자리를 차지하려 그 상황에서 아귀다툼을 벌였다. 후미에 있는 것이 위험하기도 할뿐더러, 빨리 착륙할수록 짐을 내리는 순위도 빨라질 테니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 쓸데없이 묶여있지 않고 본토로 돌아가 다른 일 한 건이라도 더 하려는 속셈이었다.
매번 전쟁 때마다 징발된 민간 수송선들은 자칫 ‘줄을 잘못 섰다가는’ 몇 날, 혹은 그 이상을 전장에 잡혀 막대한 손해를 입거나, 운이 없으면 아예 배를 잃는 일까지 비일비재했다. 이번에도 몇 척의 수송선들이 요란을 떨며 앞자리를 차지하려 다른 선단 사이를 파고들면서 60여척이 선단 전체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들 중 20여 척은 케스난이 지원해 준 밀수 선박이었고, 이들이 앞자리를 차지하려 제일 심하게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뒤처진 징발 수송선들을 무시한 채 앞장서 나아가던 사령선의 스캐너에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잡힌 건 지휘부 사람들이 대기권과 중력을 슬슬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처음엔 ‘지나가는 소행성이려니’하고 대충 무시하려 했던 사령선 승무원들은 생각 외로 빠른 접근속도에 당황해 목소리를 높였다.
“저게 뭐죠? 우리 편입니까?”
사령선 승무원들, 칼데아군 정보장교들이 차례로 스캐너를 확인했지만 ‘매우 작고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는 것 외엔 알 수가 없었다. 셔틀이나 수송선이라면 콜사인을 보내야 했지만 그것도 없었다.
“저 정도 속도면 셔틀도 아닌데…….”
사령선 함장이 말꼬리를 흐렸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거리에 있는 그 비행체는 이 선단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스페이스에서 상대 선박을 육안으로 확인한다는 건 바로 코앞에 왔을 때, 말 그대로 충돌해서 끝장이 나기 직전까지는 불가능했다.
“저거……저거 어디로 달라붙는 거야!”
함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비행체가 날아들고 있는 방향엔 선두를 잡기 위해 뒤엉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60여 척의 지원 선단이 있었다.
“모두 흩어지라고 해!”
사령선 함장의 고함이 쩌렁 하고 함교를 울렸다. 하지만 워프루트 출구에 몰려 있는 크고 둔한 화물선들은 쉽사리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거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엄청나게 작고 빠른 무언가가 선단 사이를 휘익 하고 파고들었다.
“이런!”
함장과 지휘부 사람들의 비명이 동시에 함교를 뒤집어엎었지만 다행히 그 ‘괴물체’는 선단과 충돌하지는 않고 그대로 중간을 관통해 지나갔다. 그 모습에 선장이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너무 성급한 짓이었다. 중앙을 관통하는 셔틀에 놀란 수송선들이 급히 방향을 틀면서 조금 전 새치기를 하려 다른 선박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파고들었던 가장 큰 수송선 한 척이 옆에 있던 다른 수송선의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그 수송선이 케스난이 이번 선단에 지원해 준 낡은 대형 화물선이라는 것까지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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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도 전적을 보면 주페를 보면서 피는 못 속인다고 화낼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ㅋㅋㅋ 아무래도 카렐 딸들은 남자 여럿(?) 잡을 듯합니다.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밉고요~~~( ̄∇ ̄)ブ~~★
3부 5,6권 전자책이 개인사정으로 좀 늦어지고 있네요;;;
지난 공지에 빠졌었는데, 전자책은 서점 외에 올레e북이나 T스토어같은 통신사 컨텐츠샵으로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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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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