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20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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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는 잠시 고요가 흘렀다. 3만의 근위대에서 온전히 살아남은 건 바에자의 경고에 뒤처져 전진하지 않고 있던 2개 연대 5천뿐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충격에 빠진 채 얼어붙은 듯 서서 눈앞의 참상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근위대는 끝장이었다.
“세상에…….”
불꽃에 내던져진 2만 5천의 근위대원들의 적어도 3분의 1은 불에 타 즉사했고, 나머지는 온몸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채 흙에 파묻혀 신음하고 있었다. 갑옷은 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대부분은 열기를 버티지 못한 스코프가 깨지면서 눈을 잃었고, 갑주가 얇은 손과 관절이 불에 타 움직일 수도 없었다. 주변이 온통 시커먼 검댕, 혹은 회색빛 재로 뒤덮였다.
거대한 집단 화장장이 되어버린 전장 한쪽의 포격 구덩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얼굴과 몸통 한쪽, 양쪽 무릎 아래가 온통 불에 타버린 루토는 등에 덮고 있던 방패를 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방패는 불에 완전히 타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화상이 심해 더 이상 싸울 수도,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참담한 몰골이었다.
“이럴 수가 없어.”
루토의 가슴 밑에 깔려 목숨을 부지한 바에자가 끓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한쪽 손과 뺨을 덴 것을 빼면 그럭저럭 몸은 온전했다. 주변에 흩어진 수많은 시체와 죽어가는 병사들에 비하면 멀쩡하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몸을 든 루토는 가슴 밑에 깔려 있는 바에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평소 같았다면 괜찮냐고 먼저 물었을 루토의 시선이 어딘지 차갑다는 것을 바에자가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루토는 그의 목에 걸려 있던 마구스 팔찌를 확 끌러냈다.
“뭐 하는 짓이…….”
이번엔 바에자의 분노가 통하지 않았다. 루토는 뜯어낸 마구스 팔찌를 바에자의 손목에 끼우고는 손목의 바늘까지 꽉 조였다. 바에자가 비명을 지르며 화상으로 붉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루토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흐읍!”
화상 위를 맞은 지독한 고통에 루토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물러났다. 루토는 자신이 목숨을 바쳐 불 속에서 구해낸 여자에게 다친 뺨을 맞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저, 정말입니까?”
루토의 시선은 바에자의 손등에 멎었다. 바에자의 마구스팔찌는 아무 빛을 내지 않은 채 탁한 빛깔 그대로였다. 그 광경을 본 루토의 입술 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눈물 범벅이 된 그는 거친 숨을 씩씩거리며 교단 바에자에게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방패로 가리지 못한 무릎 아래가 모조리 불에 타 살점이 떨어지고 너덜거렸지만 저 여자와 함께 있고 싶은 맘은 더 이상 없었다.
“가지 마!”
교단 바에자가 악을 쓰며 루토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는 고개를 거칠게 저으며 계속 엉금엉금 기어 뒤로 물러났다.
“가지 말라고! 명령이다!”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던 바에자는 마우저를 번쩍 뽑아들고 루토를 겨누었다. 자신을 겨눈 마우저 끝을 본 루토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목숨을 바쳐 ‘저 바에자’를 지켰지만 그에겐 이제 피할 기운도 없었다.
“씨발, 내 꺼가 안 될 거면 뒈져!”
저주의 욕을 퍼부으며 방아쇠를 당기려던 바에자가 멈칫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바에자가 그를 마우저로 겨누고 있었다. 바에자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또 다른, 자신이 황궁 지하에서 쓰러뜨렸던 바에자를 흘겨보았다. 바에자의 곁은 타크마가 호위하고 있고, 그 뒤로는 1만의 사나운 에키트 족과 황실군 가디언들이 쓰러진 근위대를 향해 전진해오고 있었다.
“날 쏘면 루토도 죽어.”
교단 바에자, 아니 [8번]이 씩씩거렸다.
“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겠지?”
루토를 인질로 붙든 8번의 입술 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미안하지만 내 인생을 먼저 도둑질하려 했던 건 너야.”
“안다.”
말 위의 바에자는 미동도 없이 그를 겨누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수록 8번에겐 죽음만 가까워질 뿐이었다. 바에자가 눈동자를 딱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우린 서로에게 도둑놈이었지.”
“저 남자를 살리고 싶으면 당장 물러나!”
8번이 다시 악을 썼지만 바에자는 대답도, 움직임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기력해진 루토는 8번의 마우저 끝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 힘없이 눈을 감고 울먹였다.
“제 죄의 대가입니다. 현신이시여, 저 여자를 그냥 쏘십시오.”
자신을 쏘라고 하는 루토를 보며 망연자실해진 8번이 돌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바에자 넌 내가 이렇게 할 줄도 이미 알고 있지?”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8번은 마우저 끝을 바에자 쪽으로 휙 돌렸다. 놀란 타크마의 피하라는 고함이 울린 순간, 바에자의 마우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표적을 향해 날아가 꽂혔다. 8번의 이마에 꽂힌 마우저 탄은 그대로 머리를 관통해 뒷목으로 펑 뚫고나왔다. 8번은 방아쇠 한 번 당겨보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땅바닥에 축 늘어졌다.
“혀, 현신님?”
8번의 어처구니없는 선택에 가장 놀란 건 루토였다. 8번은 루토를 차마 쏘지 못한 채 사실상 자살한 셈이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말에서 내린 바에자가 검게 탄 대지에 얼굴을 묻은 쌍둥이를 보며 비로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바에자의 중얼거림에 루토는 결국 참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타크마가 죽은 8번의 손목에서 팔찌를 빼내어 바에자의 손목에 끼워주었다. 진짜 주인의 피를 느낀 팔찌가 비로소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타크마는 팔찌를 되찾은 바에자가 죽은 8번에게 어떻게 화풀이를 하는지 지켜보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 도리어 그의 시체 위에 덮어주었다.
“내 직접 장례를 치러 줄 테니 잘 거두라 일러라.”
말에 오른 바에자는 후방에서 얼어붙어 있는 1연대와 7연대에게 다가가 자신의 팔찌를 번쩍 들어보였다.
“무기를 내려놓고 죽거나 다친 동료들을 거두어라.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으면 황실군은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내 너희를 위해 황상에게 약속을 받아놓았으나 결국 절반밖에 못 살리게 되었구나.”
더 이상 공격을 지속할 의지도, 명분도 잃은 근위대는 하나 둘 무기를 내려놓으며 마지막 저항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역할이 끝나버린 그들은 칼 대신 들것과 구급함을 들고 불벼락을 맞고 흩어져 있는 동료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제 북부군의 차례다!!!”
말에 올라탄 바에자는 지금까지 칼데아군 보병대를 동쪽으로 유인하며 근위대를 끌어들일 길을 터 준 북부군 쪽으로 말을 몰았다. 이제야말로 민병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무패의 명장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일 때였다. 타크마가 그의 뒤를 따르며 걱정스레 물었다.
“북부군은 원래 여기서 칼데아군 보병대를 묶어두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내가 그 정도로 만족할 줄 알았느냐?”
바에자의 입가에 특유의 고집과 자존심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기겁을 한 타크마가 북부군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북부군은 칼데아군에 비해 객관적으로 질도 떨어지고…….”
“못난 목수가 연장을 탓하지!”
바에자는 말에 더 속도를 붙여 경호기병들을 앞장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후방의 정예보병대를 앞으로 돌려라! 기병대는 양 측면을 돌아서 치고 놈들을 묶어놓아!”
근위대가 무너지는 모습에 한껏 사기가 오른 7만의 북부군은 남부 3제후 헬리노스가 이끄는 7만의 칼데아 보병대에 일제히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거창!”
북부보병대의 후미에서 숨죽이고 있던 베테랑 보병대가 비로소 장창을 뽑아 하늘로 쳐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방에서 도끼와 방패로 에키트 보병대와 어려운 접근전을 벌이던 신참 부대원들이 후미의 선배들에게 길을 내주며 일제히 썰물처럼 빠졌다.
“전진! 전진!”
하임달 전투와 33년 전 제위전쟁의 참전용사들이 주축이 된 후방의 2만 보병대는 그때와 전혀 다름없는 함성으로 땅을 울리며 창끝을 칼데아군의 가슴에 겨누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 강철보다 견고한 남부의 진영을 깰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었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달려가던 바에자가 그들 모두에게 통신을 열고 딱 한 마디를 전했다.
“너희 바로 남쪽 평원이 오르마즈 경이 전사한 바로 그곳이다.”
이 한 마디의 위력은 막강했다. 북부보병대의 눈에서 일제히 살기가 솟으며 함성이 2배는 커졌다. 앞줄로 나선 베테랑들이나, 뒷줄로 물러나 있던 신참들 가릴 것 없이 다리에 힘을 주어 칼데아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밀어붙여! 밀어붙여!!”
1선으로 나선 장창보병대는 거의 한에 맺힌 함성으로 땅을 울리며 칼데아군을 들이받았다. 분노가 얹힌 이들의 돌격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 도끼를 들고 싸우던 만만한 신참 병사들에 익숙해 있던 칼데아군 보병대는 괴성으로 땅을 울리며 전진해 온 베테랑 보병들의 힘에, 아니 분노에 1열, 2열이 우르르 무너지며 대오가 크게 출렁거렸다.
“오르마즈 님의 땅을 찾아라!”
북부 지휘관과 사관들이 일제히 오르마즈의 이름을 연호하며 칼데아군을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그 사이, 이들의 옆, 조금 전 근위대가 돌파를 시도했던 바로 그곳으로는 이번엔 1만의 에키트 보병대가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칼데아군의 심장이 있는 그들의 후방으로 일제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염병할! 이번엔 우리 차례냐?”
다 이긴 줄 알았던 전투가 근위대의 붕괴로 갑자기 기울면서, 북부를 상대하는 헬리노스 호지 경은 이미 파랗게 질려있었다. 그의 어머니 카산드라가 오르마즈에게 최악의 치욕을 당했던 바로 그곳이 이번에는 그의 무덤이 될 판이었다.
“제후님! 우리 편이 완전히 토막 났습니다!”
“알고 있으니까 닥쳐.”
참모의 천박한 호들갑에 헬리노스가 대뜸 이를 드러냈다. 하지만 표현만 천박할 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보병대는 밀리기 시작했고, 1만의 가디언과 야만족들이 바로 자신의 옆을 지나 사령부로 돌격하고 있는데도 이미 근위대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의 7만 보병대는 퇴로까지 막혀 괴멸될 판이었다.
“폐하! 계십니까!”
다급해진 헬리노스는 사령부에 있을 카나르를 찾았다. 반대편 좌익의 전투에서 사에나의 저격에 큰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던 카나르가 지금쯤 제정신을 찾았을지 궁금했다.
“폐하! 여기는 지금 상황이…….”
“버티시오.”
헬리노스의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카나르의 차가운 대답이 되돌아왔다. 일가족과 장남까지 잃은 그의 말투가 너무도 사무적이어서 헬리노스는 순간 오싹함까지도 느꼈다.
카나르가 거듭 명령했다.
“무조건 버티라 했소. 마지막 한 명 남을 때까지 버티시오.”
“무슨 수라도 있으신 겁니까? 지금 적 가디언부대와 에키트 보병대가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헬리노스가 용기를 내어 물었지만 그에게서는 전력달리기라도 하고 온 듯 씩씩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올 뿐 친절한 설명 따위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당연히 있소.”
카나르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 한 마디가 전부였다. 뒤이어 칼데아군의 모든 장병들에게 황제의 이름으로 같은 전문이 하달되었다.
- 전군에 현 위치를 사수할 것을 명한다. 이유 여하 막론하고 단 한 치라도 물러나는 자는 지휘관이 책임지고 목을 벨 것이며, 퇴각을 명하는 지휘관도 즉결 처형한다. -
“이게 뭐야.”
칼데아군의 각 지휘관들은 생전 받아 본 일이 없는 생소한 지시에 당황했다. 이런 명령이 퇴각 시 마지막 사수하는 부대에 내려지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전군에 이런 황당한 명령이 내려지는 일은 처음이었다.
- 동료와 지휘관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적의 손에 죽어라. -
1만의 가디언군단을 이끄는 베흔은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적군 제일의 골칫거리였던 근위대 3만이 이제 무너졌고, 황실군 최강의 보병대인 에키트 보병대와 친위군의 가디언군단 1만은 칼데아군의 사령부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진군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저항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똥파리 같은 놈들만 없으면!”
베흔은 앞에서 어물쩍 길을 막아서는 칼데아군 경보병의 방패와 허리를 단칼에 두 동강내며 버럭 짜증을 냈다. 카나르 황제가 있는 적 사령부까지는 이제 겨우 10스타디아 남짓 남았고, 기분 같아서는 당장 뛰어가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적이 예비대로 두었던 5만의 경보병들과 기마 코런덤 1천의 연합부대는 생각 외로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코런덤들만 아니었어도 가디언들 앞에서 경보병들 따위는 그냥 짓밟고 돌파했을 테지만 말을 타고 잊을만하면 튀어나와 위협을 가하는 코런덤들 때문에 이미 30분 가까이 붙들려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약에 취한 경보병들도 평상시의 시민군 장병들처럼 만만하지는 않았다.
“서쪽의 상황은 어떠냐! 에이, 씨발, 거기가 지지부진하니까 이 모양이잖아! 거기서 기병대가 와 줘야 이놈들을 확실히 잡지!”
베흔은 잘 풀리다가 막혀버린 전황을 은근슬쩍 다른 부대 탓으로 돌리며 화를 냈다. 베흔은 부담스러운 비빈들이나 릴라크 대신 애꿎은 달리에게 전황을 따졌다. 난처해진 달리가 더듬더듬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즈 장군이 중상을 입었고 베아트릭스 황빈께서도 팔이 부러진 와중에도 분전하고 계십니다.”
“뭐가 그 꼴이야.”
베흔이 다시 짜증을 냈다. 명목상 네페티가 사령관으로 있는 동쪽의 전황은 무장들의 무덤이라고 해도 될 만큼 양쪽 모두의 숱한 무장들의 피를 집어삼키며 치열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첫 지휘관이던 카나르와 베아트릭스는 시작부터 부상을 입어 실려 갔고, 두 번째로 지휘를 맡았던 네코와 하지즈 장군까지 모두 실려 간 상황이었다. 무장들이 그 정도니 장병들 역시 엎치락뒤치락 확실한 돌파도, 패전도 없이 치열한 대결만 전개되고 있었다.
“릴라크 대장군님이 슈로 기사단과 낙타병단을 맡았고 베아트릭스 황빈께서 부러진 팔로 경기병대를 맡아 적 기병대를 제압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난전 중이라 쉽게 결판이 날 분위기는 아닙니다.”
“보병대는?”
“서부보병대하고 남부야 원래 앙숙 아닙니까.”
남부 출신인 달리가 멋쩍게 웃는 모습에 베흔이 이를 드러냈다.
그때, 무언가를 본 달리가 당혹스런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어, 어, 저기…….”
“저기가 뭐?”
“남부보병대 7만 중에서 한 2만 정도가 자기네 사령부 쪽으로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
“뭐어? 여기로 온다고? 보병이 2만이나!”
안 그래도 적 사령부를 공략하는 데 애를 먹고 있던 베흔이 기겁을 했다. 적이 동쪽에 가 있는 보병대를 빼내어 사령부를 강화하려 드는 듯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지금 자신들을 막고 있는 경보병대 후미에서도 예비대 1만 정도가 자신들의 사령선 쪽으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마누엘이 맡고 있는 중군 보병대에서도 1만 정도가 사령선으로 물러나고 있는 듯했다. 전황이 분명 칼데아군에 불리해졌지만 애당초 숫자가 워낙 많으니 그만큼 예비대도 많은 덕분에 눈 깜짝할 새 4만 가까운 병력을 사령부 부근에 집결시킬 수 있었다.
“이런 염병할! 대체 얼마나 죽어야 포기하는 거야!”
베흔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적은 갑자기 일선에서 잘 싸우고 있던 온전한 병력을 4만이나 후방으로 빼내 지휘소가 있는 사령선 부근에 모아들이고 있었다.
“카나르 그 인간이 이렇게 겁이 많은 자였나? 나라면 차라리 반대편 동쪽을 최대한 몰아붙여서 장군멍군을 만들 텐데?”
베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적이 곤경에 처한 건 맞지만 동맹군에서 최정예부대를 동원한 이 회심의 돌격을 경보병대와 코런덤 기병들이 일단은 차단한 상태였다. 그가 아는 백전노장 카나르라면 여기서 어정쩡하게 시간끌기를 하느니 그나마 온전한 다른 부대들로 공세를 가할 사람이었다.
“저놈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나?”
베흔의 표정이 불안이 번졌다. 이 순간에도 카나르가 있는 적 사령선 부근에는 적의 보병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 베흔의 고개가 천천히 등 뒤의 제플린 산으로 움직였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
“여봐요, 대체 무슨 속셈입니까? 설마 혼자 도망가려는 건 아니겠죠?”
카나르 황제의 예비대 집결령에 제일 먼저 반발한 건 중군을 이끌고 있던 마누엘과 클리멘트 부녀였다. 카나르는 아직 온전히 적과 교전하고 있는 보병대에서 예비대를 박박 긁어모아 사령선 부근으로 모아들이는 중이었다. 일선에 나가 있는 마누엘 부녀가 그의 의도를 의심하며 발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도망치는 것이면 저승으로 쫓아와 내 목을 치시오.”
카나르는 이 한 마디와 함께 마누엘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탁 끊어버렸다.
“괜찮……으십니까?”
카나르의 측근들은 팔과 목에 보호대를 감고 사령선 지휘소에 와 있는 황제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좌군의 전장에서 사에나에게 저격을 당해 팔에 중상을 입고 사령선으로 돌아온 카나르는 무언가 이상해 보였다. 차라리 아들을 살려내라고 미쳐 날뛰기라도 한다면 누군가 말리거나 마누엘 같은 다른 지휘관에게 지휘권을 넘길 이유라도 되겠지만 그는 ‘지나치리만큼’ 차가운 표정을 하고는 입으로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바로 몇십 분 전, 좌군의 전장에서 황제답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고 저격까지 당하고 돌아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좀 이상하시지 않아?”
카나르의 측근들이 슬쩍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와 오래 있은 측근들도 자신들의 황제가 지금 제정신이긴 한 건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불안에 떨고 있었다. 분명한 건 상황이 극단적으로 변하면서, 그가 ‘무언가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아들 헤즈의 죽음 소식에 이상을 잃고 날뛰던 그는 바에자가 근위대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는 소식까지 받은 이후, 갑자기 돌변해 정말로 이상해 보였다.
물론 그들은 바에자와 공모한 카나르 부자의 음모가 밝혀지는 것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제 카나르가 원하는 건 황금탑의 황금과 그곳에 있는 통제소 정도일 뿐 먼지뿐인 죽은 행성 하임달이 아니었다.
“폐하, 적 가디언부대와 에키트 보병대가 사령부에 가까워집니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합니다.”
초조해진 지휘부 장교들이 카나르를 재촉했다. 철성에서 쏜 화염으로 근위대가 싸움 한 번 못 치른 채로 무너지면서, 이번엔 그 자리로 적의 카운터펀치가 들어오고 있었다. 5만의 경보병대와 1천의 코런덤 기병들이 사령부 앞에 서둘러 방어선을 쳤지만 그저 시간끌기용일 뿐, 적을 막는 건 분명 불가능했다.
“저대로는 길어야 한두 시간밖에 못 막습니다. 다른 해결책을 내야…….”
“마구스들은 왔느냐?”
카나르는 참모들의 물음은 들은 척 만 척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그는 조금 전, 바에자의 근위대가 무너진 직후, 그는 전장에서 칼데아군을 지휘 중인 3명의 마구스, 가르시바, 하페즈, 네코에게 ‘특별한 부탁’이 있으니 이곳으로 꼭 직접 와 달라며 전령을 보내놓은 상태였다.
“철성의 전투는 어찌 되어 가느냐?”
“교단 병력이 놈들을 철성 안으로 거의 몰아넣었다는 연락입니다.”
참모가 제플린 산 정상의 지도를 보이며 대답했다. 엉망으로 꼬여가는 이곳과는 달리 철성의 전투는 교단에 유리하게 풀리고 있는 듯했다.
“카렐 그놈은?”
“교단 측 정보에 따르면 아직 철성 안에 있는 것 같답니다.”
카렐이 철성에 있다는 말에 카나르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뜬금없는 웃음에 아랫사람들은 더 불안해졌다. 전황을 보아도, 카나르에게 개인적으로 벌어진 일을 보아도, 지금은 그가 웃을 때가 절대 아니었다. 겉보기는 너무도 침착한 그가 ‘정말 이상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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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현신(?)에게 저리 사랑을 받는 루토는 참 복많은(?) 남자일지도요 ㅎㅎㅎ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지 마세요~~~( ̄∇ ̄)ブ~~★
아참, 엔딩본인 3부 7/8/9권의 전자책은 유페이퍼에서는 승인신청이 끝나 판매되고 있고요, 다른 서점에도 이미 전송되어 검수중에 있습니다. 올레e북은 웬일로 번개승인이 나서;;; 어제부터 벌써 팔리고 있네요.
예스24에 올리는 콜로니-사르코시스트도 조금 전 9회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오늘 12시까지는 무료니 너무 늦지 않게 보시고요, (뭐 내일 이후에 유료로 보시면 더 감사(?)하지만 아무 때든 보시고 흔적 남겨주시면 제겐 힘이 됩니다..;;; 하하;;)
http://estory.yes24.com/author/eserial?serialno=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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