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121화 (1,115/1,132)

< -- 1121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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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바와 하페즈 마구스가 올라오고 있답니다.”

경비병의 보고에 카나르는 지휘소 입구의 보안카메라 화면을 보았다. 경보병대를 맡고 있는 샤마시 교단의 하페즈 마구스와 좌군에서 7만의 중장보병을 지휘하던 가르시바가 퉁퉁 부은 얼굴로 막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부터 이 방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해 발설하는 자는 내 손에 즉결처형당할 것이다. 너희 소속 가문에 입방정 찧는 새끼들도 마찬가지다.”

카나르의 협박에 지휘소 무장들 사이에 차가운 침묵과 공포가 번졌다.

카나르가 더러운 철퇴를 허리춤에 차며 차갑게 물었다.

“네코 마구스는?”

“뺨의 관통상이 심해 응급수술을 받는 중이라 시간이 걸릴 것 같답니다.”

“생긴 대로 노네.”

카나르가 얼굴을 찡그렸다. 네코의 상처는 의지만 있다면 지혈만 하고 전장에 다시 나와도 될 정도지만 잘생긴 얼굴이 망가진다며 본인이 길길이 날뛰는 통에 의무관들도 하는 수 없이 응급수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바실리에게 당장 전해라. 직접.”

카나르는 그나마 성한 왼손으로 더듬더듬 쪽지를 적어 전령에게 내밀었다. 그의 둘째아들 바실리 플라칼은 좌군에서 네코의 부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쪽지를 받아들고 서둘러 나서던 전령은 문으로 막 들어서는 두 마구스들에 얼른 길을 비켜주었다.

“지금 전투가 한창인데 일선 지휘관을 둘이나 불러들이는 법이 어딨소!”

가르시바가 들어오자마자 버럭 화부터 냈다.

“예비대로 쓸 병력이 필요하면 그냥 달라고나 하던지!”

전황이 나빠지면서 신경이 곤두선 가르시바의 목소리 톤이 유독 높았다. 카나르가 그에게 부탁한 건 좌군 보병대의 예비대로 있던 2만을 ‘직접’ 데리고 사령부에 와 달라는 것이었다. 근위대가 주축이던 우군은 아예 박살이 났고, 황실군 보병대와 맞서는 중군은 그냥저냥 현상유지만 하는 상황에서 서부군, 황실 기병대와 맞서고 있는 좌군은 그나마 전황이 가장 나은 쪽이었다.

“우군이 무너지고 있으면 좌군을 몰아붙여 끝장을 낼 생각을 해야지 그나마 잘 나가고 있는 쪽의 예비대를 빼는 게 어딨소?”

회군령에 단단히 뿔이 난 가르시바가 카나르에게 계속 짜증을 냈다. 카나르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참모들은 내심 이 성마른 마구스를 저지하고픈 맘이었지만 마구스에게 카나르의 비위를 맞춰주라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나르는 굳은 얼굴로 가르시바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기선 지시에 따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카나르는 땅딸막한 가르시바의 바로 코앞에 닿을 듯 가까이 서서는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의 위협적인 시선에 가르시바는 위축되기는 고사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찼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날 협박이라도 하겠다고?”

“아뇨.”

카나르가 가르시바를 내려다보며 딱 잘라 대답했다. 입가를 씰룩거리며 카나르를 올려보던 가르시바의 표정이 어느 순간, 파랗게 굳어버렸다. 그는 자신이 카나르와 입씨름을 하는 새, 등 뒤로 몰래 다가와 비수를 꺼내든 플라칼 가 근위병을 휙 돌아보았다.

“그냥 죽여버리려 합니다.”

가르시바가 코앞에 있는 카나르의 손목을 붙들고 저항하려 했지만 그보다는 등 뒤의 근위병이 귀 밑을 칼로 내려찍는 쪽이 한 발 빨랐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자에게 기습을 당한 가르시바는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뒤로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감히 사신(死神)을……”

가르시바의 독기 서린 눈동자가 카나르의 광기로 뒤덮인 얼굴을 똑바로 향했다. 카나르의 팔뚝을 움켜쥐고 있던 가르시바의 손에서 힘이 빠져 스르르 미끄러지더니 바닥에 철퍼덕 쓰러지며 고개가 뒤로 툭 떨어졌다. 현역 마구스 중 가장 나이와 경륜이 길었던 원로 마구스의 어처구니없는 최후였다.

“흐, 흐익.”

이 뜻밖의 사건에 놀란 건 죽은 당사자뿐만이 아니었다. 카나르의 수하와 참모들도 놀라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고, 가르시바와 하페즈를 따라온 헤네티들이 급히 비상을 전하려 했지만 이미 지휘소 구석에 숨어있던 플라칼 가 가디언들이 순식간에 튀어나와 그들의 목을 베고 눈 깜짝할 새 제압했다.

“이, 씨.”

마지막 순간 가르시바와 눈이 마주쳤던 카나르가 그에게 잡혔던 왼쪽 손목을 보며 이를 갈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손자국이 마치 물감으로 그린 듯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폐……하, 이건……지금…….”

플라칼 가 참모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는 가르시바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가르시바 옆에 남은 하페즈는 이미 가디언에게 머리를 채여 목이 뒤로 꺾인 채 자신의 목에 들어온 칼날을 보고 있었다. 그가 켜려 했던 할룩스는 바닥에 떨어져 짓밟힌 채 박살이 나 있었다.

“자칭 죽음의 현신도 뒈졌어. 이젠 네 차례야.”

카나르가 하페즈의 턱을 덥석 붙들었다.

“빛과 정의의 현신? 풋, 웃기고 자빠졌네.”

카나르의 눈짓에 하페즈를 붙들고 있던 가디언이 그의 목에 댄 칼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하페즈의 목에 상처가 난 순간, 사령실 안에 일순간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한 빛이 번졌다.

“우앗!!”

놀란 사람들이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났고, 하페즈의 머리채를 쥐고 있던 가디언도 목을 채 절반밖에 베지 못한 채 몸을 움츠렸다. 빛은 눈을 감았어도 눈꺼풀을 뚫고 들어올 만큼 강력했다.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채 넘어지고 바닥을 굴렀다. 하페즈를 뺀 지휘소의 모든 사람들이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비켜!”

하페즈는 바로 뒤에 있던 가디언의 갈비뼈 사이를 팔꿈치로 힘껏 후려치고 문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목에서 솟는 피 때문에 두세 발짝만 내디딘 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쓰러져 거의 숨이 끊겨가던 헤네티 하나가 하페즈를 뒤쫓으려는 가디언의 발목을 덥석 끌어안았다.

“달아나십시오!”

지휘소 밖에서 몰려드는 경비병들의 기척을 느낀 하페즈는 벽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곳엔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이 보였다.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이곳에서 목이 베어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것보다 더 나빠질 건 없어보였다. 그는 눈이 먼 가디언이 그의 기는 소리를 듣고 쫓아오기 전에 함교 밖으로 다짜고짜 몸을 던졌다.

“우윽!”

함교 창에서 빠져나온 하페즈는 바로 밑의 돌출물에 한 번 부딪치고는 공중을 빙 돌아 한참을 떨어져 가파른 경사가 진 선체 외벽에 쿵 소리를 내고 부딪쳤다. 그는 미처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수직보다 조금 나은 경사를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악.”

상갑판까지 미끄러진 하페즈는 멈춰보려 했지만 중갑옷 때문에 잘 되지 않았다. 몸에 걸친 중갑옷의 표면은 너무 미끄러웠고, 군용 스페이스 수송선의 외부는 유선형 곡선에 변변한 난간도, 평평한 자리도 거의 없었다. 그는 곡면의 상갑판을 다시 미끄러져 수송선의 아찔한 모퉁이까지 밀려갔다.

“아익!”

그는 갑판 모퉁이에 돌출된 센서를 가까스로 잡았지만 몸에서 힘이 조금씩 빠져가고 있었다. 억지로 고개를 들고 보니 높은 곳의 함교에서 그가 미끄러진 곳을 따라 핏줄기가 죽 이어져 있었다.

“왜,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페즈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마구스가 된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고, 그가 죽으면 샤마시 마구스 가문도 끝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몸 안에 깃든 빛의 화신이 이번에는 별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손의 힘이 점점 빠져갔고, 발밑으로는 바닥까지 거의 7, 8층 높이의 허공이었다.

버둥대며 오른쪽을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칼데아군의 보급품 상자가 가득 쌓인 곳이 보였다. 이대로 손을 놓치고 수직으로 맨바닥에 떨어지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선택이라도 해야 했다.

“이익!”

그는 손을 놓고 발로 외벽을 온 힘껏 차 오른쪽으로 몸을 던졌다. 짧은 무중력 상태에 그의 심장이 확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뒤이어 귀청을 찢는 파열음이 등과 어깨, 다리를 후려쳤고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파편 조각이 눈앞을 마구 맴돌았다. 미끄럽던 중갑옷이 이번엔 그를 지켜주었지만 완벽한 건 아니었다. 보급품 상자 몇 개를 박살내고 떨어진 하페즈는 다리가 뒤틀리는 느낌에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ㅤㅎㅜㅂ!!!”

몸이 바닥에 닿아 한 번 튕기는 끔찍한 충격에 그는 눈을 감았다. 온몸이 찌릿하며 축 늘어진 그의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봉지들과 옆에 있던 다른 상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는 무너진 보급품 더미에 산 채로 파묻히고 말았다.

“으, 으으윽.”

하페즈가 억지로 눈을 떴지만 눈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빛이 스며드는 것도 같았지만 헤치고 나갈 수는 없었다. 한쪽 어깨가 부서진 듯했고 다리에도 감각이 없었다.

‘잠들면 안 돼, 제발.’

하페즈는 어떡해서든 의식을 유지하려 했지만 많은 피를 흘리고 이미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그는 보급품 더미의 무덤에 파묻힌 채 조금씩 정신을 잃어갔다.

“이, 씨.”

하페즈가 창으로 날아난 직후, 경비병과 옆의 참모실에 있던 이렌느 경, 참모와 비서들이 지휘소에 들어왔지만 그곳엔 이미 적은 없었다. 죽은 가르시바와 헤네티들은 피를 쏟으며 바닥에 흩어져 있고, 황제 카나르를 포함한 지휘부 장교들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신음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한 빛에 노출된 시력은 쉽사리 회복되지 못했다.

카나르는 막 뛰어 들어온 참모들에게 씩씩거리며 외쳤다.

“사령부를 옮긴다. 사령부 병력과 지금껏 집결시킨 보병대를 모으면 총 4만은 될 거다. 전원을 사령선과 004, 011호 수송선에 태워라.”

“퇴각하시려고요?”

이렌느가 당혹스런 얼굴로 물었지만 카나르는 손끝을 제플린 산 정상 쪽으로 향했다.

“철성으로 갈 거요. 이제 충분히 착륙할 만큼 날씨가 좋아지지 않았소? 병사들도 그대가 박살났을 때보다는 고산에 더 적응했을 테고.”

“예에? 거긴 교단에게…….”

이렌느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가르시바의 시체를 의식하며 바로 입을 다물었다. 카나르 황제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는 이제 말하나마나였다. 자신이 참패를 당했던 그곳을 쳐다보는 이렌느의 입가에도 카나르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음산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탁월한 타이밍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이렌느가 히죽거리며 카나르의 정신 나간 결정에 힘을 보탰다. 그는 카나르보다 앞서서 고함을 질렀다.

“당장 태워! 최대한 빨리 출발한다!”

“포병대는 어떡할까요? 모두 방열한 상태라 대형 포대를 분해하고 포탄까지 옮기려면 1시간 이상 걸려야 합니다.”

참모의 조언에 카나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크고 무거운 포대는 해체해서 싣는 것도, 내려서 부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됐다. 이 정도 숫자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으니 바로 옮길 수 있는 소형 발리스타만 있는 대로 싣고 대형 포대는 나중에 실어와라. 적들이 눈치채지 않게 쳐야 하니 보병부터 간다. 시간이 없다.”

카나르의 명령이 떨어지면서 후방으로 끌어다놓은 예비 보병대 4만이 허겁지겁 3척의 대형 수송선에 탑승을 개시했다. 카나르가 의지했던 바에자―혹은 ‘8번’이든 아니든―가 죽은 상황에서 그에겐 이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들 헤즈가 죽은 것을 빼면 최소한 철성의 전황은 그가 원했던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교단군과 황실은 철성 앞에서 사생결단을 하며 싸우고 있고, 양쪽 모두의 피해가 막심해 보였다. 지금은 기진맥진해진 황제와 대신관을 둘 다 제거하고 궁지에 몰린 이곳의 전투까지 되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다른 놈은 몰라도 베흔 그놈은 황제만 죽으면 뒤도 안 보고 내 쪽으로 말을 갈아탈 걸. 그럼 여기도 결판 나는 거지.’

카나르는 전황 지도를 눈으로 확인하려 했지만 방금 전의 밝은 빛에 망막이 상했는지 눈이 자꾸 부시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카나르뿐만이 아니고 사령실에 함께 있었던 무장과 병사들 모두가 여전히 눈을 붙들고 쩔쩔 매는 중이었다.

“이익.”

왼손으로 눈을 짚으려던 그는 팔뚝의 욱신거리며 쑤시는 통증에 움찔했다. 죽기 직전, 가르시바가 움켜쥐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카나르의 흐려진 눈으로도 시커멓게 멍이 든 손목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뒈지려면 깨끗하게나 뒈질 것이지.”

카나르가 오른팔의 아픔을 견디며 씩씩거렸다. 상태가 어떤지 만져보고 싶지만 사에나가 쏜 마우저에 거의 절반이 잘려나간 오른팔을 프레임에 고정해놓고 있어 방법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양팔을 다 못 쓰는 꼴이 된 셈이었다.

때마침, 조금 전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겼던 마누엘이 사령실의 다른 통신망을 통해 다시 연락을 해 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후방에 병력을 모으고 있는 건지 말은 해 줘야 우리도 대응을 할 것 아닙니까!”

얼굴이 붉어진 마누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평소라면 그런가보다 넘어갔을 무던하고 단순한 사내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똘똘한 딸 클리멘트가 옆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교단에서 철성에 지원군을 요청했소.”

카나르가 딱 잡아뗐다. 애당초 교단과 사이가 서먹했던 이렌느와는 이제 죽이 딱 맞게 되었지만 교단과 친분이 각별한 마누엘을 데려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딸과 상의하는 듯 싶던 마누엘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 제 딸 클리멘트를 그리 보내겠습니다.”

“됐소, 여긴 편성이 끝났으니 그쪽이나 제대로 사수하고 있으시오.”

“하지만…….”

카나르는 마누엘 부녀가 뭐라 하건 말건 다시 통신을 일방적으로 끊었다.

“다 실었으면 출발해! 약발이 약해질 시간이 되었으니 아침에 준 양의 2배를 다시 먹여라.”

황제의 상식 밖의 지시에 군수참모가 기겁을 했다.

“폐하, 여기서 또 주면 심장마비나 발작으로 쓰러지는 자들이 나올지 모릅니다. 적당하면 용기를 돋우지만 과도하면 도리어 통제불능이 됩니다.”

“닥치고 먹여! 수천 수만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약한 놈 한둘이 뒈지는 게 문제냐!”

카나르가 소리를 질렀다. 손짓이라도 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양 팔을 다 못 쓰게 되어 고함을 지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칼데아 연합군의 두뇌인 사령선과 보병을 가득 실은 3척의 대형 수송선이 이륙을 하는 모습에 아직까지 일선에서 싸우던 장병들이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들이었다. 사령부 참모들은 혹시나 버려진 것이 아닌지 혼란스러워하는 각 부대 장병들에게 앵무새처럼 같은 연락을 송출했다.

- 사령부는 교단군을 지원하기 위해 산 위의 철성으로 올라간다. -

일단 이륙한 4척의 수송선은 황실군의 방공망을 피해 분지의 동쪽을 크게 빙 돌아 제플린 산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끄응.”

가슴 떨리는 순간이지만 카나르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가르시바에 잡혀 멍이 들었던 왼팔이 마우저에 살이 찢겨나간 오른팔보다 이상하게 더 아팠다. 눈을 못 보게 된 참모들은 이미 의무실로 실려 갔지만 총 사령관인 황제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그는 아랫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뒤로 돌아서서 왼쪽 손목을 턱으로라도 어색하게 주물러 보려 했다.

“아악.”

팔뚝에 무언가가 닿은 순간, 그는 신음을 내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팔이 쑤시는 정도가 아니고 안에서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는 거의 까무러칠 뻔했다.

“폐하?”

비명을 듣고 달려온 이렌느는 카나르의 검게 변한 팔뚝을 보고는 경악을 했다.

“맙소사, 의사를 불러야겠습니다!”

황제의 부상에 놀라 모여든 참모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가르시바에게 잡혔던 자리는 아예 시커멓게 되었고, 손등부터 팔꿈치 아래까지도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제기랄, 뒈지려면 곱게나 갈 것이지.”

카나르는 사령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가르시바의 시체를 보며 이를 갈았다. 잠시 후, 부름을 받은 군의관이 바로 달려와 상처를 자세히 보려 했다.

“으읍.”

군의관이 코를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상처 주변은 그 잠깐 새 천연두라도 걸린 것처럼 콩알만 한 혹이 온통 뒤덮었고, 시체 썩는 것 같은 악취까지 풍겼다.

“뭔가에 감염되신 것 같습니다. 일단 항생제 처방은 해 드리겠지만 제대로 진단을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감염이 몇 분 만에 이렇게 돼!”

카나르가 버럭 화를 내며 군의관을 거칠게 떠밀려 했지만 고통 때문에 팔을 채 들지도 못하고 자지러지며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이렌느가 함교의 창밖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검은 철성이 가까워집니다!”

“됐다, 전투 끝나거든 이따가 봐.”

카나르는 군의관을 걷어차고는 엉거주춤 상석에 다가가 앉았다. 팔의 고통 때문에 죽을 것 같지만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이깟 감염 따위에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제플린 산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철성 앞의 전황은 끔찍한 소모전이었다. 3천으로 시작했던 코런덤들은 정원에서의 교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황실군의 무차별 포격에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 있었고, 부단장 슈라는 포탄 파편에 배를 맞고 후송된 후였다.

원래 2천이었던 친위군 크바르나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고, 페다이는 마우저에 맞아 한쪽 팔을 잃었고, 카토도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옆구리가 터진 망치 마르텔로도 내장을 쏟으며 철성 안으로 실려 갔다. 후송을 거부한 세하는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참호에서 머리만 내놓고 석궁을 쏘아대는 중이었다.

포병대도 전방에 배치했던 남부 발리스타를 다 태워버리고 물러나 이젠 마지막 보루인 철성의 계단 바로 위에서 20문 남짓의 아나콘다로 가까스로 저항하는 중이었다.

“퇴각! 3차 방어선을 사수한다!”

정원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퇴각한 네피의 부대 1백여 명이 계단과 화단을 허겁지겁 뛰어올라와 철성 출입문 바로 앞에 만들어진 참호 안에 우르르 몸을 던졌다. 이제 1천 남짓 남은 크바르나들은 최후의 방어선인 계단과 화단 위에 몸을 숨기고 미리 준비해놓은 석궁 카트리지와 방패, 칼을 챙겼다.

“수송선은 못 건지는 거냐!”

철성의 정원을 모두 빼앗기면서 막막해진 페로가 네피와 함께 제일 끄트머리에 달려오는 수송선 조종사 베네루스에게 고함을 질렀다.  크바르나가 산으로 올라오는 데 쓴 소형 수송선들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교단군 포병대에서 쏜 자폭셔틀에 엔진을 얻어맞고 골짜기 아래에 추락해버렸다. 추락하는 수송선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베네루스와 승무원들은 허겁지겁 철성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안됩니다! 함선은 못 구합니다!”

가파른 계단을 뛰어올라오던 베네루스가 적이 쏜 포탄 파편에 발이 미끄러지며 계단 앞에서 벌렁 엎어졌다. 먼 옛날, 카히나가 코메트들을 상대로 마지막 저항을 펼쳤던 계단은 거의 100척 가까운 길이에 경사도 가파른데다가 오랜 세월로 닳고 닳아 이젠 계단이라기보다는 물결 모양 램프처럼 보였다. 덕분에 위에서 보기는 불안하고, 밑에서 올라가기도 역시 아찔했다.

계단 위에서 포병대를 지휘하던 페로가 넘어진 베네루스를 확 잡아당겼다.

“이런 염병할!”

페로는 분지와 동쪽 언덕 아래에서 무럭무럭 오르고 있는 거대한 연기를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태워버릴 바엔 저렇게 떨어뜨리는 것도 나쁠 것 없잖소.”

코리온이 참호 구석에 쭈그려 앉아 파이프를 조이며 태연히 대답했다. 하지만 페로의 격분은 단순히 소형 수송선 몇 척을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니미럴! 병사들 기분이 더러워지니까 그렇지!”

애당초 방공능력을 갖춘 적군의 코앞에서 무사히 달아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자신들을 태우고 온 수송선이 눈앞에서 추락하며 완전히 퇴로가 막히는 모습을 본 크바르나들의 당혹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 산 아래에서의 전장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근위대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며 대반전을 이루어냈지만 분지의 분위기는 그곳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 당장 자신들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크바르나들에게 다른 전장의 상황은 중요치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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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르는 슬슬 미쳐가고 있고, 카렐은 이제 전장에의 재등장(?)을 준비중입니다. ㅎㅎㅎ

그리고 샤마시 마구스는....살짝 찌질이 기가 있었던 살름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빛의 마구스다운(?) 모습을 보였고요. ㅎㅎㅎ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슬퍼요~~~( ̄∇ ̄)ブ~~★

엔딩본인 3부 7/8/9권의 전자책은 예스24와 알라딘, 리디북스와 교보, 올레e북 같은 제휴서점들에서도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종이책은 부족한 1부의 1,2권을 재인쇄해서 전권판매가 재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공지한 대로, 다른 권 재고분을 소진하기 위한 수준에서만 구멍난 권을 소량 인쇄하고, 그 후엔 개인지 종이책은 판매 중단 예정입니다. ^^

예스24에 올리는 콜로니-사르코시스트도 오늘이 11회 업데이트되는 날입니다. 큰 반전(?)이 있는 회이기도 하고요. (저녁에 올려야 하는게 제 설정 실수로 아침에 업데이트되어버렸네요;;;) 아직 무료니 잠깐 들러 인삿말이나 추천이라도 남겨주고 가시면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ㅎㅎㅎ

http://estory.yes24.com/author/eserial?serialno=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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