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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1122화 (1,116/1,132)

< -- 1122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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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거 보고 있지 말고 당장 싸우기나 해!”

페로는 불타는 수송선에서 나는 연기를 멍하니 보고 있던 분견대원의 등짝을 칼집으로 후려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씨발! 코밑에 적군이 있는데 포병대는 손가락만 빨고 있냐!”

페로가 고함을 질렀지만 아나콘다 사수들은 곤란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거리가 너무 가깝고 각도가 져 화단 위의 아나콘다로서는 바로 밑에 웅크린 코런덤들을 겨눌 수가 없었다. 코런덤들의 머리 위로 강화석궁 볼트를 계속 쏟아 부었지만 포병대의 포격도 겪어내고 돌파한 코런덤들에게는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여기 무기가 있는 건 이 정도 물러나는 건 미리 염두에 뒀었다는 뜻이겠지? 다음 수는 뭐요?”

네피가 이 와중에도 낄낄거리며 옆에 있는 과묵한 아샤드 경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샤드가 어처구니없다는 눈길로 네피를 쏘아보던 그때, 그들의 귀에 계단 아래에 집결한 적 지휘관들이 경쟁적으로 외치는 고함이 들려왔다.

“돌격 준비!”

“아직은 ‘준비’네, 뭐.”

여전히 낙천적인 네피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철성 앞의 먼 고원에서부터 바로 앞의 정원에까지 수 스타디아에 걸쳐 피아의 시체 수백 구가 뒤덮여 저들의 필사의 돌격과 친위군의 결사적인 저항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정원까지 크바르나들을 조여 온 사카가 칼을 번쩍 쳐들었다.

“철성 위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모래구덩이가 있을지 모르니 바로 계단이나 화단으로 뛰어오른다! 올라가면 끝난다! 돌격!”

“에이, 씨발, 저놈들은 쉬지도 않아!”

네피가 욕을 퍼부으며 모래주머니 뒤에 목을 움츠렸다. 1천이 넘는 코런덤들이 악 소리를 지르며 이제 마지막 남은 보루인 검은 철성의 계단과 경사진 화단 위로 돌격해 올라왔다.

이번에 돌격해 온 코런덤들은 이전 1차 전투 당시 세닉 가 보병대의 실수를 반복할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수백 세닉 가 보병들을 집어삼켜 생매장시켰던 정원 바로 밑의 모래더미를 엄청난 도약능력으로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그리고는 거의 45도 가까이 경사가 진 화단과 계단에 우르르 달라붙었다. 이곳은 수비하는 친위군에는 마지막 보루였다.

“응사하지 마라.”

코리온의 침착한 한 마디에 놀란 크바르나들이 석궁을 당기지 않고 기다렸다. 코런덤들은 계속 화단과 계단에 뛰어들었고, 선두에 달려들었던 자들은 눈 깜짝할 새 화단 꼭대기의 친위군 참호 바로 앞까지 쇄도해 들어왔다. 왜 쏘지 말라는 건지 모르는 친위군들의 속이 막 터지려는 순간, 취익 하는 날카로운 소음이 나더니 화단의 흙이 공중으로 확 치솟아 올라갔다.

“우와우!”

참호 밖으로 막 나가려 했던 네피가 손뼉을 쳤다. 어찌된 건지는 몰라도 화단 전체가  윗부분의 흙과 밑에 깔린 자갈, 그 위에 서 있던 코런덤의 몸뚱이까지 뒤엉켜 말 그대로 폭발해 공중으로 치솟았다.

“앗, 뜨거!”

얼굴에 어마어마한 열기를 느낀 네피가 기겁을 하며 다시 참호 안으로 몸을 숨겼다. 화단 밑에서 폭발한 건 철성을 돌리던 주 동력인 고열의 열수와 수증기였다. 지하의 고압에서 상상하기 힘든 온도로 데워진 뜨거운 물과 수증기가 먼 옛날 화단에 물을 주던 파이프를 통해 폭발하면서 화단 위가 삽시간에 거대한 찜통이 되었다.

“우악!”

사카처럼 몸이 날랜 몇몇은 화단 밑으로 몸을 날렸지만 대다수는 열기를 미처 피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열수를 몸에 뒤집어쓰고 말았다. 이들도 포격 파편이나 잠깐의 불꽃을 피하기 위한 가벼운 갑옷을 입기는 했지만 갑옷 틈새까지 파고드는 수증기와 열수는 치명적이었다.

“물러나! 물러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코런덤들이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화단 밑으로 굴렀고, 아예 관절이 눌어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 최악의 상황에 처한 병사들은 동료나 신의 이름을 찾으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화단 위는 사람의 살 익는 냄새와 비명이 난무하는 끔찍한 살육의 장이 되어버렸다.

“피해를 확인해!”

생각 외의 큰 피해에 당황한 사카가 일단 진격을 포기하고 부하들에게 재정비를 명했다. 언뜻 보아도 화단 위로 올라갔던 5백여 중 절반이 죽거나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자신의 마우저가 한쪽이 눌어붙어 먹통이 되어있었다. 무게를 덜기 위해 열에 약한 합성수지를 쓴 탓이었다.

“망할!”

사카가 참호 위로 고개를 내밀고 보니 코리온이 화단 위 언덕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쪽의 피해를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 저놈이야!”

사카는 그제야 호드르 산 지열발전소의 전투에서 마우저가 열수에 녹았던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그 자리에서 그 광경을 목격했던 것이 코리온이었다. 마우저를 주무기로 무장한 코런덤들을 노리고 일부러 이런 끔찍한 함정을 파 놓은 것이 분명했다. 거의 이긴 것으로 알고 생각했던 코런덤들로서는 부상을 입은 것보다 주 무기를 잃는 것이 더 큰 치명타였다. 화단 위 친위군 쪽에서 지르는 환호성이 이 아래까지 들려왔다.

“너무 많이 당한 것 같습니다! 잠시 전열을 정비하는 게 낫겠습니다!”

부장의 제안에 사카도 일단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숫자에서 훨씬 우세였지만 이번 치명타로 압도적이던 상황은 끝장이 났다. 밀고 당기는 혈전은 또다시 무게중심이 중앙으로 옮겨갔고, 교단과 황실 모두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철성 앞은 열기에 익어가는 끔찍한 시체밭으로 수놓아졌다.

“적 방공부대를 무너뜨렸으니 우리가 절반은 이긴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카를 따라온 부장이 익어가는 시체를 올려보며 이를 갈고 있는 사카를 위로하듯 말했다. 피해는 컸지만 철성 주변에 방공부대를 깔아 적에게 더 이상의 지원군이 오기 어렵게 만들었으니 분명 적에겐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재정비 후 공격한다! 마우저가 온전한 전사는 지원조로, 마우저가 손상된 전사는 방패와 칼로 돌격조로 재편성한다! 빨리! 빨리!”

그 와중에도 머리 위 화단에서 쏟아 붓는 볼트는 그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위력은 마우저만큼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급소에 맞으면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때, 그는 남동쪽 하늘에서 다가오는 4척의 수송선에 화들짝 놀랐다. 황실군에 지원군이 오는 줄로 알고 방공부대에 대응을 명하려 했던 그는 ―같은 편으로 알고 있는― 칼데아군의 문장에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원군?”

사카는 어리둥절해졌다. 지금 전황이 약간 힘들어지기는 했지만 지원이 필요한 만큼은 아니었다.

이디나는 여전히 제플린 산 고원 남쪽 귀퉁이의 유리벽 뒤에서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산증으로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빼면 아랫사람들이 걱정했던 아주 안 좋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쩌다 유독 멀리 날아온 몇 발의 아나콘다 포탄이 유리상자 가까운 곳에 떨어져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에 놀라 후방의 수송선으로 피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일 맘은 없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꼼짝도 않고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이디나는 칼데아군의 느닷없는 접근을 보고받고는 어리둥절해졌다. 후방에서 전투를 벌이던 근위대가 사실상 전멸당한 건 그도 들어 알고 있었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칼데아군이 아직 건재하니 이곳에서 승전을 거두고 황제를 죽이면 충분히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바에자 그년 때문에 일이 꼬이더니 다 이상하게 되네.”

그가 후회하고 있는 건 바에자를 처음 의심했을 때 쳐내거나 묵인하거나 어느 쪽이든 행동을 확실히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황제 편에 붙어 이쪽에 치명타를 입힌 이전 바에자의 괘씸한 소행을 용서할 마음도 없었고, 필요하다면 지금 있는 복제가 진짜 행세를 하는 것을 기꺼이 눈 감아 줄 용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때가 늦어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다.

이디나가 옆에 있는 쿠마르에게 물었다.

“칼데아 녀석들이 왜 오는 거냐?”

“모르겠습니다. 자기네 말로는 이곳 전투를 빨리 끝내주었으면 하는 맘에 지원군을 보냈다고 합니다.”

지원군이라는 말에 이디나의 눈꼬리가 살짝 사나워졌다.

“누가 지원군 보내달랬나! 제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지!”

“오지 말라고 전하겠습니다.”

당황한 쿠마르가 얼른 할룩스를 꺼내들었다.

문득 불안해진 이디나는 망원경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3척의 대형 수송선과 칼데아군 사령선, 그 옆을 따라오는 대여섯 대의 소형 셔틀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가만……, 저놈들 설마…….”

그때, 옆에서 칼데아군 지휘소와 입씨름을 벌이던 쿠마르가 신경이 곤두선 얼굴로 대신관을 돌아보았다.

“저어, 저쪽에선 명령을 받았으니 무조건 착륙한다고 우기는데요?”

“못 오게 해!”

이디나의 찢어지는 고함이 유리벽 주변을 쩌렁 울렸다.

“예, 에?”

대신관의 격분에 놀라 주저앉았던 쿠마르가 허겁지겁 방공부대를 불러냈지만 그 사이 이미 칼데아군 수송선은 이디나의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한편이라고 생각한 교단군 방공부대는 그들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도 우두커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자폭셔틀이나 자기 와이어를 켜 볼 시간조차 없었다.

“이런, 배신이냐?”

이디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송선 옆을 따라오던 셔틀 5대 중 한 대가 이디나가 있는 유리벽 바로 앞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다리가 굳어버린 이디나는 자리에 멍하니 서서 꼼짝도 못 했다.

“대신관님!”

유리벽 바로 옆에 배치되어 있던 교단군의 아나콘다 지휘관이 순간적으로 셔틀을 향해 머리를 돌리고 발리스타를 날렸다. 원래 이런 용도의 무기는 아니었지만 이 순간 셔틀을 쏘아 떨어뜨릴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우앗!”

눈앞의 엄청난 불꽃에 이디나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쿠마르가 몸을 날려 그의 머리와 등 뒤를 얼른 감쌌다. 아나콘다에서 날아간 몸통만한 발리스타에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셔틀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사방으로 파편을 날렸다. 교단군 후방의 지원부대와 후송되어 부상을 치료받던 병사들의 머리 위로 그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쿠마르가 이디나를 몸으로 감싼 채 악을 썼다. 이디나가 있는 유리벽에 파편이 부딪치는 소리가 쾅쾅 울리며 그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하지만 불운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날아든 셔틀이 이디나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교단군 수송선의 함교를 향해 날아들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던 이디나가 고개를 저었다.

“또 배신이라니.”

이디나는 솟구치려는 눈물을 기를 쓰고 참아냈다. 그는 아버지 손에 제련소 옥상에 끌려갔던 그날 이후 최악의 절망감에 떨고 있었다. 민병대 강경파와 손잡은 테번에게 갑작스런 배신을 당해 죽음 직전까지 갔었던 아버지가 문득 생각이 났다. 교단의 몰락이 시작된 건 분열이었지만, 결국 완전히 무너졌던 건 남부에 배신을 당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아버지.”

이디나의 입에서 잠시 잊고 있던 이 이름이 새어나왔다. 그는 아버지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지 문득 생각해 보았다.

“고개 숙이십시오!”

쿠마르가 재차 이디나의 머리를 몸으로 감쌌다. 칼데아군의 셔틀은 멀쩡히 정박해 있던 교단군의 병력수송선 함교에 정확히 충돌하며 어마어마한 불꽃과 굉음을 남겼다. 불타는 함교에서 다시 2차 폭발이 나며 파편과 먼지가 사방으로 날려 시야를 가로막았다. 교단군의 수송선 3척 모두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이디나 일행은 물론 코런덤과 헤네티 부대 모두 고원 위에 꼼짝없이 고립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 수송선을 못 쓰게 된 거야?”

이디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변을 보니 그의 수송선은 물론이고 철성 부근에 있던 친위군 수송선에까지 칼데아의 셔틀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교활한 카나르 황제는 이디나와 교단군, 심지어 철성에 있는 친위군의 퇴로까지 단숨에 끊어버린 셈이었다. 친위군의 방공망이 살아있었다면 저들을 적으로 여기고 미리 저지했겠지만 이미 그들의 방공망은 무너진 후였다. 코런덤들이 힘들여 돌격해서 친위군의 방공망을 깨 놓은 것이 이젠 자살행위가 된 꼴이었다.

“적 수송선이 착륙 못 하게 해!”

교단군에게 칼데아군은 이제 황실군과 마찬가지로 ‘적’이었다. 부상을 입고 후방에 실려 와 있던 코런덤 부단장 슈라가 파편을 맞아 다친 배를 움켜쥐고 엉거주춤 일어나 아나콘다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파편으로 내장이 나올 만큼 배가 찢겼지만 이젠 몸 전부가 찢긴다 해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쏴! 아무 거나 죄다 쏴!”

자폭셔틀을 날리기는 이미 때가 늦었고, 지시를 받은 아나콘다 사수들이 친위군을 향하고 있던 포구를 하늘로 돌리고 마구 쏘아대기 시작했다. 수송선은 워낙 덩치가 커 둔한 발리스타로도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덩치 때문에 피해를 입히기 어렵다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젠장! 좀 떨어져!”

교단군 아나콘다 사수들이 악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날린 발리스타 포탄이 칼데아의 수송선 바닥과 측면에 펑펑 구멍을 내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지만 수송선은 선체가 손상된 채로 아랑곳없이 덩치로 밀어붙여 이미 교단군이 장악하고 있던 후방에 쿵 하고 착륙해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이들, 아니 이들을 지휘하는 카나르 황제는 다시 이곳을 떠날 맘이 없었다.

“위대한 현신께선 무사하시냐!”

슈라가 배를 움켜쥔 채 이디나가 있는 유리상자 쪽으로 뛰었다. 이디나가 있는 유리상자에서 채 2스타디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칼데아군의 사령선과 수송선들이 내려앉고 있었다. 수송선 바닥판이 열리더니 중무장한 칼데아군 보병들이 새카맣게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까지도 철성을 공략하는 후방 거점이었던 곳이 어어 하는 새 칼데아군의 기습을 받는 최전선이 되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슈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칼데아군이 우리를 배신했다! 배신자 놈들에게 속지 말고 물러나서 위대한 현신 주변을 지켜! 흩어져있지 마라!”

보급품을 보내기 위해, 혹은 부상병을 돌보기 위해 후방에 머물던 교단군들이 허겁지겁 이디나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퇴로는 막혔지만 조금이라도 더 저항하려면 한 곳에 모이는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현신을 지켜! 여기로 모이라고! 놈들은 고산에 약하다! 저항하면 물리칠 수 있다고!”

부상병까지 합쳐 거의 1천 명 가까운 군인들이 앞 다투어 이디나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이디나의 유리상자와 아나콘다 포대를 중앙에 두고 보급품 상자와 잡동사니를 허겁지겁 주변에 쌓았다. 슈라가 유리 상자를 주먹으로 쾅쾅 두들기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대신관님! 나오지 말고 안에 계십시오! 저희가 끝까지 사수하겠습니다!”

얼떨결에 유리상자 안에 갇혀버린 이디나는 사방에서 새카맣게 몰려드는 칼데아군에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는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심장을 지녔지만 애당초 군인이 아닌 그에게 이런 상황 자체는 너무도 낯설었다. 1천의 충성스런 헤네티들이 그의 유리상자를 에워싸고 방어선을 짰지만 고원을 새카맣게 뒤덮고 몰려드는 4만의 보병대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였다.

멀리, 칼데아 제국 카나르 황제의 깃발과 플라칼 가, 세닉 가, 호지 가의 깃발이 보였다. 델루지 가는 불러들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슈라가 얼른 주변을 확인하고는 대신관에게 알렸다.

“동쪽에서 카나르 그자가 오는 것 같고, 서쪽에선 이렌느 년의 깃발이 보입니다.”

“지킬 수 있느냐?”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하던 슈라도 대신관의 이번 물음에만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거의 승리를 거머쥐었던 입장에서 눈 깜짝할 새 압도적인 적에게 포위되어버린 이 얼떨떨한 역전이 아직 이디나에게는, 슈라에게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저들이 이 고산에 적응이 덜 되어있다 해도 10대 1의 싸움은 분명 버거웠다.

슈라에게서는 한참 후에야 어렵사리 대답이 돌아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디나는 자신의 팔찌를 보았다. 팔찌는 여전히 빛을 내며 대신관으로서 그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이 빛을 볼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는 교단 전체의 멸망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었다.

“당장 마누엘 경이 누구 편인지부터 파악해라.”

이디나가 여전히 자신을 감싸고 있는 쿠마르를 밀치고 일어나며 가슴을 넓게 펴 보였다. 자신을 지키겠다며 용기를 내고 있는 1천여의 전사들 앞에서 엎드린 추한 꼴을 보일 맘은 없었다.

“마누엘 경이 저 편을 든 게 아니라면 저들을 쫓아낼 수 있다.”

이디나는 이 상황에서도 일단은 가능성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마누엘 역시 제후인 이상, 칼데아의 황제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얼마나 자신의 편을 들어줄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가 마치 가능한 것처럼 말한 건 그저 부하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였다.

적정을 살피던 슈라가 긴장된 목소리로 보고했다.

“카나르가 3만을 이끌고 철성으로 향하고 있고, 이렌느는 1만으로 우리 주변을 포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와 황제 양쪽이 모두 약해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이디나는 철성 쪽으로 진군하고 있는 플라칼 가 근위부대와 그 뒤를 따라가는 3만여의 보병대를 노려보았다. 지금껏 철성을 죽어라 공격했던 코런덤들이 이제 철성과 칼데아군 사이에 꼼짝없이 끼어버린 꼴이었다.

“대체 누가 저들을 막는단 말이냐?”

이디나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3개 세력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누가 누구와 싸우게 된 건지도 애매해진 상황이었다. 그것부터 확실히 해야 했다.

이디나는 자기도 모르게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출정 직전, 마지막으로 썼던 할룩스가 여전히 그 안에 들어있었다. 그는 할룩스를 꺼내들고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 어느새 유리 상자 주변을 포위한 1만의 세닉 가 보병대에서 큰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디나는 떨리는 손길로 할룩스를 켰다. 이젠 이 길밖에 없었다.

철성이 교단군에 함락 직전까지 몰린 그 순간에도, 카렐은 여전히 황금탑 안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산 아래 분지에서, 그리고 바로 철성 앞 고원에서 전해지는 전문들을 계속 살피며 전황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그는 근위대의 사실상 전멸 소식에 혼자 손뼉을 쳤고, 베흔의 가디언부대와 베레트라의 에키트 보병대가 적 사령부를 향해 돌격중이라는 말에 크게 기뻐했지만 정작 앞마당의 소식에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 교단군이 화단 아래까지 와 있습니다. -

할룩스로 들어온 전문을 본 그는 터빈의 제어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에스더와 어린 남매를 돌아보았다.

“내가 살아서 깨어난 것만으로는 가족을 지키지 못하겠구나.”

둔해진 한쪽 팔로 자신의 칼을 뽑아 확인하려 했던 카렐은 문득 바닥을 보았다. 그곳에는 야투의 말라비틀어진 팔이 그 와중에도 꽉 붙들고 있던 ‘카히나의 검고 긴 기계’가 보였다.

수백 년 전, 코메트의 토벌대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바로 그 기계 위엔 [기관총]이라는 이름이 찍혀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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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와서 드디어 카렐이 신무기를 맞이합니다. ㅎㅎㅎ

*** 현재 노블레스 연재중인 2, 3부 출판본은 7월 1일부로 프리미엄으로 이전 예정이니 노블에서 보시는 분들께선 참고 바랍니다. (아무래도 노블 분위기나 독자층이....제 글과는 많이 안 맞아서요;;;) ***

노블 이용권을 끊은 분들께 불이익이 없도록 2주 후에 이전하려 합니다. 프리미엄은 영구적으로 보실 수 있으니 제 글만 보시는 분들께는 더 이득이기도 하고요. 노블처럼 기간제 정액제를 원하시는 분들께선 교보문고의 SAM쪽을 이용하시면 될 듯합니다.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슬퍼요~~~( ̄∇ ̄)ブ~~★

예스24에 올리는 콜로니-사르코시스트도 오늘이 업데이트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거기도 첫 번째 큰 전투씬이네요 ㅋㅋㅋ (오늘 자정까지는 무료입니다;;; 거기도 추천과 인삿말 남겨주시면 감사하고요)

어쩌면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는(?) 두 분께서 양쪽에서 (그것도 두 분 다 무거운 총을 들고) 퍽이나 바쁘십니다. ^^;;

http://estory.yes24.com/author/eserial?serialno=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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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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