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127화 (1,121/1,132)

< -- 1127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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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제 장태자다.”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카나르가 시커먼 각질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손으로 바실리를 가리켰다.

“이 아비가 이미 다 이겨놓았으니 네가 빨리 기병대를 데리고 와서 마무리만 해라.”

“……알겠습니다. 곧 올라가겠습니다.”

바실리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마냥 급히 통신을 끊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그 끔찍한 분위기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통신이 끊긴 뒤에도 그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아버지의 지금 모습은 그가 아는 상식과 경험 밖이었다. 병에 걸린 것도, 다친 것도 아니었다.

우두커니 서 있던 바실리는 할룩스가 다시 깜박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할룩스를 켜자 조금 전 그와 연결했던 사령실의 비서관과 참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사령실에서 몰래 빠져나온 듯 목소리를 죽이고 입을 열었다.

“이렇게 몰래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장태자 전하.”

그들은 ‘장태자 전하’라는 말에 특별히 힘을 주어 말했다.

“내게 할 말들이 있는 모양이구나.”

바실리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물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참모들 중 선임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황상께선……많이 고통스러워하십니다. 방금 전까지도 바닥을 구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실리는 이들의 의도를 대충 예상하면서도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런데 몸만 온전치 못하신 게 아니십니다. 아까 보셨다시피……고통을 느끼실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까지 마구 때려죽이고 계십니다. 저희도 도저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필 이때, 안에서 ‘방금 나간 새끼들 뭐냐’라며 카나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니 갑자기 또 찢어지는 비명이 뒤이어졌다. 다급해진 참모가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님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장태자께서 결단을…….”

안에서 들려오는 카나르의 비명과 울부짖음이 점점 커지면서 참모의 목소리가 공포에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바실리는 할룩스를 쥔 채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본 아버지의 끔찍한 모습과 그 충격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고통 없이 해결해라. 뒤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바실리는 그대로 통신을 끊어버렸다.

다음 황제가 될 장태자의 사실상 묵인 약속을 받은 참모들은 악취를 견디며 다시 지휘소로 되돌아갔다.

“악!! 뜨거워!!! 뜨겁다고! 물! 물 가져와!”

참모들이 사령실로 돌아왔을 때, 카나르 황제는 고통을 참다못해 바닥에서 미친 듯 뒹굴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몸이 얼어붙으니 불을 피우라며 날뛰는 그에게 망토를 덮어주려던 경호대장이 목이 뒤틀려 죽은 후였다. 그 몸싸움 와중에 손가락 3개가 떨어져나갔고, 그는 없어진 손가락에 격노해 애꿎은 참모 또 한 명을 철퇴로 때려죽였다. 이젠 참모들 모두 멀찍이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물 가져오라고!”

카나르는 자기 살점을 쥐어뜯고,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뽑아 내던졌다. 살점이 뜯긴 자리에서는 붉은 피가 아니고 검은 석유 같은 끈적한 점액이 줄줄 흘러나와 바로 각질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몇 분을 날뛰던 카나르는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비로소 가라앉았다. 그는 바닥을 구르는 동안 자신의 한쪽 귀가 완전히 떨어져나갔음을 깨달았다. 카나르는 자신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한 참모들을 노려보며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감히 황제의 말을 씹었어!!! 죄다…….”

때맞춰 눈짓을 주고받은 3명의 참모와 2명의 경호사관이 일제히 칼을 빼들고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폐하를 위해서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참모들이 황제의 팔다리를 힘껏 잡아 비틀자 경호사관이 칼을 번쩍 들어 카나르의 목을 온 힘껏 찔렀다.

“어엇.”

칼을 내리찍었던 사관이 멈칫하며 물러났다. 그의 칼은 카나르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각질에 막혀 그대로 옆으로 미끄러져버렸다. 당황한 사관은 다시 가슴을 찔렀지만 역시 튕겨나오고 말았다. 참모들이 바락바락 악을 썼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찌르지 않고!!!”

사관은 하는 수 없이 각질이 없는 그의 팔을 힘껏 찔렀지만 급소가 아니다보니 밖에 있던 다른 소대 소속의 경비병들이 뛰어들어올 시간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새로 들어온 경비병들은 감히 황제를 시해하려 하는 참모들과 경비사관들에게 달려들어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 썩을 놈들! 감히!”

왼팔이 절반 잘린 카나르는 바닥에서 미친 듯 뒹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지만 잘린 상처에서 다시 검은 진물이 나와 각질을 만들고 금세 상처를 감싸버렸다. 더 이상 피도 흐르지 않았다.

“이 새끼들 끌어내서 산 채로 찢어죽여버려! 썅! 가만히 있던 놈들도 다 죽여버려!”

카나르를 죽이려던 자들이 경비병들에게 질질 끌려 나가고, 방에 있던 다른 자들까지 모두 나가버린 후, 카나르는 지휘소에 결국 혼자 남겨졌다. 잘린 팔은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이번엔 갑자기 몸의 다른 곳을 갈가리 찢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아아아악!”

아픔을 견디다 못한 그는 자신이 때려죽인 시체들 사이에서 발버둥치며 울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 전 자신을 죽여주려 했던 자들이 차라리 충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죽음으로 이 고통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제발, 제발 누가 날 좀 죽여 줘…….”

바실리와의 연락을 끊은 3제후 헬리노스가 막 기병들을 데리고 수송선에서 내렸을 때, 전황은 그가 막 도착해 바실리에게 큰소리를 쳤을 때와는 정반대로 달라져 있었다. 검은 철성을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 쳐들어갔던 보병들은 안에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도망쳐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헬리노스는 고산에 올라와 상태가 나빠진 말들 중 그나마 성한 것을 집어타고 서둘러 보병대 쪽으로 달려갔다.

“저 새끼들 근위보병들이 맞냐!”

헬리노스는 적 앞에서 대오까지 무너뜨린 채 동료들의 등을 짓밟고 도망쳐오는 보병들의 모습에 기가 막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자세히 보니 그들 중 몇몇은 품에 금덩이를 안고 동료들을 마구 밀어내며 도망쳐오고 있었다.

“염병할! 철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금덩이 든 놈들은 뭐고?”

이제 막 올라와 아직 이곳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헬리노스가 철성 공격을 지휘한 군단장에게 다급히 물었다.

“지금 파악 중입니다! 안에서 갑작스레 지휘체계가 무너져서 저도 어찌된 일인지…….”

군단장은 차마 설명을 못 했지만 금덩이와 지금 상황을 연관한 헬리노스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저, 개새끼들! 금덩이 갖고 나오는 놈들은 이유 불문하고 다 죽여 버려!”

철성 앞으로 말을 몰아가던 그는 칼데아 보병들을 다 토해낸 철성 입구에서 이번엔 친위군 가디언군단의 검은 제복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모습에 기겁을 하고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헬리노스의 할룩스로 그제야 보병대 지휘관의 숨 넘어갈 듯한 보고가 전해졌다.

“철성 안에서 적어도 1만은 당한 것 같습니다. 가디언들이 수천이나 나오고 있답니다! 분지에서 육로로 올라온 것 같습니다!”

아찔해진 헬리노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디언이 수천이라면 이미 대오가 무너진 보병대 4만, 아니 철성에서 죽은 1만을 빼면 3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 중 1만의 세닉 가 보병대는 이디나 대신관이 있는 유리상자를 치는 데 매달려있으니 사실상 2만의 보병으로 가디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많은 가디언을 상대할 수 있는 시민병은 잘 훈련된 중장기병밖에 없었다.

헬리노스는 바실리와의 할룩스를 열었다. 칼데아군의 마지막 희망이 바실리가 데려올 3만의 중장기병대에 걸려있었다.

“다 때려 치고 기병대 데리고 최대한 빨리 올라와!!!”

황제의 황금세례와 3천의 가디언으로 철성 안에서 칼데아 보병대를 쫓아낸 베흔은 최소한 고원에서는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했지만 성급한 착각이었다. 그가 철성을 나온 순간, 분지에 있는 사에나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기병 3만 정도가 그리로 올라가고 있는 듯합니다.”

말투는 아무 톤이 없었지만 사에나가 아니고 자이납이었다면 귀에 꽂은 수신기가 찢어질 정도로 호들갑을 떨고도 남았을 내용이었다.

“그쪽에서 그것도 못 막았나!!! 여긴 지금 방공망이 박살나서 손도 못 쓰는데 기병을 3만이나 놓치면 어쩌라고!”

베흔은 야전 무장도 아닌 애꿎은 사에나에게 버럭 화를 냈지만 본전도 못 찾고 말았다.

“여기 남아있는 적이 아직 우리보다 5할은 많다는 걸 잊으신 건 아니죠? 가디언 3천을 안 데려갔다면 지금쯤 적 선단을 다 재로 만들어 이륙도 못 했겠죠.”

“허, 그랬다면 지금쯤 보안국장 이름으로 황제 시체 반환협상을 하고 있을걸.”

사에나에게 목소리를 높이던 베흔은 뒤에서 다가오는 육중하고 둔한 걸음에 지레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황제가 시체로 가득한 철성 회랑을 가로질러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할룩스로 황제의 모습을 확인한 사에나가 즉시 코트자락을 휙 넘기며 자리에 무릎을 대고 꿇어앉았다.

“쾌차하신 모습을 뵈어 기쁩니다.”

“그대 입에서 그런 말을 듣다니. 축하는 여기서 끝내고 하던 말이나 계속해라.”

“이쪽은 릴라크 경이 해결할 것 같으니 그쪽으로 가고 있는 기병 3만만 해결되면 될 것 같습니다.”

“말은 쉽다!”

베흔이 옆에서 다시 버럭 화를 냈다. 카렐이 베흔을 밀어내며 다시 물었다.

“대체 몇 척이 오는 거냐?”

“10척 남짓 됩니다. 남부가 올 때 썼던 수송선들 절반이 착륙할 때 크게 손상된 데다가 마스터 케스난이 교단에 빌려주었던 선단을 더 이상 못 쓰게 되어 놈들에겐 더 이상 동원할 수송선이 없습니다. 덕분에 카나르 그자가 분지의 병력을 고원으로 한 번에 못 옮기고 있습니다.”

“알았다.”

황제의 대답은 이 한 마디가 전부였다. 정확히는 더 이상 대화로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 전장에서는 3천의 가디언들이 사기가 떨어진 2만의 칼데아 보병들을 몰아붙이는 중이지만 이젠 저 보병들을 때려잡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방공포대 다룰 줄 아는 사람!”

“방공포대가 어디 있다고?”

네피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친위군의 방공포대는 퇴각하며 모두 태워버린 후였다.

카렐은 대답 대신, 교단군이 대신관 이디나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저항을 벌이고 있는 남쪽의 유리상자 부근을 가리켰다. 대신관 주변을 지키던 2개의 교단 방공포대가 적들 사이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칼데아군에 워낙 순식간에 기습을 당해 소각도, 퇴각도 못 한 탓이었다.

카렐은 유리상자를 가리키며 다시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시간 없다! 우리 방공포대 요원들은 다 죽었냐!”

카렐의 물음에 조종사 베네루스가 고개를 저었다.

“한 팀은 적의 포격에 맞아 죽거나 중상을 입었고, 한 팀은 포대를 폐기하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원 전사했습니다.”

카렐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일반 포대는 여러 번 보면 대충 따라 할 수나 있지만 자폭셔틀과 자기와이어를 다루는 방공포대는 특수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아니면 애당초 다룰 수 없는 기계였다. 게다가 지금 저곳으로 간다는 건 사실상 결사대라는 의미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다리를 다친 통에 페로의 등에 업혀 황제를 따라 나온 코리온이 제일 먼저 나섰다. 카렐의 눈가에 주저하는 빛이 스쳤지만 이젠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서 아직 몸이 온전한 가디언 지휘관은 베흔과 네피, 다룬과 힐러뿐이었다. 세네피스의 병실을 지키다 쓰러진 아샤드 경은 사경을 헤매고 있고, 카토와 페다이, 헨지는 크고 작은 부상 하나씩을 떠안고 겨우 움직이고 있는 정도였다.

실탄을 들고 카렐 곁을 따라다니던 자이납은 탄을 다 써버린 이후 어디로 농땡이를 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힐러는 다른 가디언들과 함께 적 보병들을 몰아붙이고 베흔, 네피, 다룬은 각각 100명씩 줄 테니 유리상자까지 길을 내라. 이번 돌격이 마지막이 되게 해라.”

카렐은 그 세 명의 특등급들에게 남쪽으로 손끝을 향해보였다. 황제 카렐을 빼면 명실상부 제국 최강의 그 셋은 서로를 의식하며 즉시 무기를 뽑아들었다.

“적 기병을 실은 수송선이 올라오기 전에 방공포대를 점령해!”

네피가 제일 먼저 도끼를 쳐들고 뛰쳐나갔다. 다룬이 질세라 쫓아나가고, 이런 쪽에서는 항상 늦는 베흔은 이번에도 눈치를 보며 뒤에서 따라 나갔다. 그리고 각각 그들을 따를 3백의 결사대 가디언들이 그 뒤를 쫓아 유리상자 쪽으로 돌진했다.

“친위군들이 교단군 쪽으로 가려 한다!”

친위군의 돌격을 깨달은 칼데아군도 결사적이었다. 칼데아 보병들이 돌격해오는 가디언들의 앞을 막아섰지만 철성에서 밀려나면서 사기가 떨어지고, 마약기운까지 떨어지면서 집중력을 잃은 보병대의 방벽은 그리 탄탄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내 손녀가 여기서 정원사가 된댔거든!”

네피가 얼굴만한 큰 도끼를 사방으로 휘둘러 선봉에서 구멍을 내고, 뒤따라오는 가디언들이 그 주변의 적병들을 우르르 무너뜨렸다.

3명의 특등급들을 앞세운 3백의 가디언 결사대는 칼데아 보병대의 중앙에 쐐기를 박아넣듯 깊숙한 구멍을 내며 꽂혔다. 우르르 무너지는 칼데아군의 대오를 보아서는 당장이라도 유리상자와 그 뒤의 방공포대에 도착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쓰러진 놈들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무조건 전진해!”

괴물이 되어버린 카나르를 대신해 고원의 전투를 맡게 된 헬리노스는 분지에서 출발한 10척의 수송선이 도착하기만 손가락 깨물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제후님! 병사들의 약기운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약을 더 지급해! 도리가 없다.”

“약을 이미 두 번이나 먹여서 또 주는 건 효과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닥치고 처먹여! 안 주면 어떡할 거야!”

초조해진 헬리노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약에 의존해 단시간에 광기에 사로잡혔던 병사들은 일단 약기운이 빠지면 그만큼 눈 깜짝할 새 우울해지고 겁쟁이로 전락하곤 했다. 기병대가 빨리 도착해 이곳의 가디언들을 맡아주지 않으면 마약에 의존해 근근이 싸우고 있는 3만의 보병대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적군 역시 이쪽의 기병이 도착하면 끝장인 만큼 더 절박하게 움직이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적 가디언 3백 정도가 교단군 쪽으로 돌격해옵니다! 결사대 같습니다!”

“친위군이 교단군으로?”

일선의 보고를 들은 헬리노스는 세닉 가가 유리상자를 공격하고 있는 고원 남쪽을 휙 돌아보았다. 유리상자는 이미 여러 발의 소형 발리스타 포격과 파편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고 기울어 안에 있는 대신관이 살아있기나 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멍청한 이렌느 년, 대체 몇 시간째 저러고 있는 거야?”

헬리노스는 여전히 상황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이렌느에게 욕을 퍼부었지만 정말로 그를 탓하기보다는 성치도 못한 2천의 전사밖에 남지 않은 채로 죽을 기세로 버티고 있는 교단군을 차마 칭찬할 수 없어서였다. 사카와 슈라가 이끄는 2천의 교단군이 고원 한쪽에서 마치 오점처럼 남아 한 시간이 넘게 버티면서 칼데아군이 카렐 황제 쪽으로 모든 전력을 집중하지 못하고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 3명의 특등급들이 이끄는 3백의 황실 가디언들은 집중력을 잃은 칼데아군 보병대 사이를 순식간에 돌파해 교단군 쪽으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가만, 저게 뭐지?”

그때, 교단군과 세닉 가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유리상자 부근에 온전한 교단군의 방공포대가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딱 들어왔다.

“맙소사, 저게 왜 아직 남아있어!!!”

그제야 카렐의 가디언 결사대 속셈을 눈치챈 헬리노스는 이곳에 선발대로 함께 온 1천의 선발대 기병들에게 서둘러 진격나팔을 불게 했다.

“적 결사대를 막아! 세닉 가에 저 빌어먹을 방공포대 당장 파기하라고 하고!!!”

헬리노스의 명령을 받은 1천의 중장기병대는 막 보병대를 돌파해 남쪽으로 돌진해오는 가디언들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격! 가디언들이 방공포대로 못 가게 해!”

중장기병대도 산소가 희박해 말의 기운이 빠져 저지대에서처럼 맹렬히 돌격할 수는 없지만 육중한 체중과 파괴력으로는 분명 보통의 보병대보다는 강했다. 중장기병들은 가디언들 선두에서 막 보병대를 돌파해 나온 파란 팔찌의 도끼잡이 가디언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이 잡것들은 또 뭐야!”

네피는 적군의 제일 앞에서 돌격해 온 기병의 말 목과 허벅지를 향해 도끼를 온 힘껏 휘둘렀다. 특등급 가디언의 힘을 실은 일격을 당한 말이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풀썩 쓰러졌지만 뒤따라 달려든 3기의 기병들이 짧은 승리를 거둔 네피를 동시에 덮쳤다.

“뭐 이리 많아!”

사방에서 꽂히는 중장기병들의 돌격창에 기겁을 하며 도끼를 휘둘렀던 네피는 결국 마지막 하나를 잘라내지 못한 채 창에 받혀 데굴데굴 밀려가 흙바닥을 굴렀다.

“에이, 씨발!”

네피는 큰 부상을 입지 않은 채로 벌떡 일어섰지만 전진이 막힌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어렵지 않게 보병대를 돌파한 3백의 결사대는 헬리노스가 이끄는 중장기병대에 전진이 막혀 더 이상 방공포대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 사이, 인화물질을 챙겨든 세닉 가 보병들이 비어있던 방공포대로 달려가고 있었다. 헬리노스가 그들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부하들을 재촉했다.

“5분만 버텨! 세닉 가가 저걸 부술 동안이라도 시간을 벌어주란 말이다!”

벌떡 일어난 네피는 도끼를 휘둘러 다시 기병 둘을 쓰러뜨렸지만 적은 그 와중에도 계속 몰려와 앞을 가로막았다. 뒤쫓아 온 다룬이 그의 옆에 합류해 함께 나아갔지만 역시나 기병들은 그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씨발! 베흔 그 새끼는 어디 있어! 사에나 그 여자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답답해진 네피가 도끼를 휘둘러 기병을 쓰러뜨리며 악을 썼다. 그때, 이들의 등 뒤에서 베흔 대신, 부르릉 하는 낮고 육중한 엔진음이 들려왔다.

“엇.”

“비켜요!!!”

자이납의 찢어지는 목소리에 뒤이어 웬 생전 처음 보는 쇳덩이가 부름거리는 엔진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또 뭐야?”

네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페로가 산을 올라올 때 타고 온 육중한 트라이크에 칼데아군이 버린 전차 장갑 파편을 덕지덕지 붙인 ‘급조 전차’가 포탄구멍으로 곰보가 되어 있는 땅을 뛰어넘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상대가 가디언이나 보병뿐이라는 생각에 전차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던 칼데아군 기병들은 이 난데없는 흉물의 등장에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해! 일단 피해!”

거의 사람 키만 한 바퀴 3개를 단 구형 엔진은 전장에 온통 깔린 전자기무기에도 아랑곳없이 시커먼 배기가스와 흙먼지를 내뿜으며 계속 달렸다. 철성에서 주운 크고 작은 철판을 운전석과 엔진룸 사방에 테이프로 대충 붙인 트라이크는 어설픈 모양새의 거북이 같았지만 당장 몇 초간 적을 놀라게 하기는 충분했다.

“따라붙어!!!”

자이납의 괴물 트라이크에 놀란 기병들이 잠시 흩어진 사이, 그 뒤를 바싹 따라온 베흔의 가디언 1백이 기병들 사이를 삽시간에 갈랐다. 눈앞의 교단군 방공포대에는 기름통을 든 세닉 가 보병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서둘러! 세닉 가 놈들이 포대에 불 붙이기 전에!”

막 돌파하는 가디언들의 후미에서 또 다른 괴물 트라이크를 타고 쫓아온 카렐이 전방의 방공포대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를 뒤따라온 세 번째 트라이크에서 페로의 욕설이 터져나왔다.

“세닉 가 저 씹탱이 같은 놈들! 도움이 안 돼!!!”

페로는 뒤에 앉힌 코리온 들으라는 듯 더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어어 하는 새 돌파를 허용한 칼데아 기병대 쪽에서 총 공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3백의 가디언들은 어느새 선봉이 된 자이납의 트라이크 뒤로 우르르 따라붙어 다시 방공포대로 돌진했다. 옆을 보고 말고 할 시간 따위는 이제 없었다. 낙오는 곧 죽음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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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자이납이 훔친 금값(?) 을 잠시라도 하고 있고요 ㅎㅎㅎ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슬퍼요~~~( ̄∇ ̄)ブ~~★

프리미엄에 광속으로 올리고 있는 출판본은 부록인 외전 고려해도 연재본보다 먼저 엔딩을 낼 것 같네요. ㅎㅎ

옆동네 예스24의 e연재에 올리고 있는 콜로니-사르코시스트도 오늘 30회 연재가 올랐습니다. (http://estory.yes24.com/author/eserial?serialno=114 ) 카렐과 어쩌면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는(??) 시나의 첫 욕실과 베드씬(??)이 나옵니다. (뭐;; 욕실과 침대가 나오니 베드씬은 베드씬이죠....도망;;)

어쨌든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폭발할 마라케시를 향해 전반부가 꾸역꾸역 잘 달리는 중입니다.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전자책(eBook) 서비스 : 유페이퍼, 예스24,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알라딘, 인터파크, T스토어, 올레eBook, 리디북스

조아라 프리미엄에도 출판본이 올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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