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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1130화 (1,124/1,132)

< -- 1130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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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데아 제국의 새 장태자 바실리 플라칼은 자신이 탔던 수송선이 다행히 동쪽 산의 넓은 공지에 추락한 덕분에 가문의 구조 셔틀을 타고 분지의 기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싣고 갔던 3만의 기병들은 움직이기도 힘든 골짜기나 춥고 가파른 산지, 심지어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북벽 아래에 온통 흩어져 추락해버려 싸움은 고사하고 외부의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가 분지로 돌아왔을 때, 이곳의 상황 역시 절망적이었다. 황실군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사수하라’는 지시를 받은 보병들은 점점 밀려나 이젠 숙영지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반면 황제가 고원의 방공포대를 장악하면서 수송선을 보낼 수 있게 된 황실군들은 황제가 있는 제플린 산으로 올려 보낼 수송선에 이미 병력을 싣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 카나르가 자살공격 직전 보낸 전문이 굳이 아니어도, 그는 이미 패색을 직감하고 있었다.

바실리는 [이제 네가 새 황제다]라는 전문을 구겨 주먹 안에 움켜쥐고 마지막 남은 3척의 수송선 중 한 척으로 향했다. 그는 단 몇 시간 만에 가문 둘째아들에서 장태자로, 그리고 이젠 황제가 되었고 아직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20만이 넘는 병력이 그의 양 어깨에 걸려있었다.

“비엔으로 돌아간다.”

바실리는 수송선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뒤따르던 참모들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수송선이 3척밖에 없습니다. 보급품을 모두 포기하고 보병만 꽉꽉 채워도 5만에서 6만이 한계입니다.”

“가만, 저 선단은 뭐냐?”

바실리는 그가 이곳에서 전투를 치를 때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5척 남짓의 구형 민간 수송선들이 전장 바로 양옆에 착륙해 있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고원에 올라가려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동안에 새로 착륙한 듯했다.

“알아봤더니 델루지 가에서 자기네 추가 보급품을 실은 중형 수송선이라고 합니다. 마누엘 그놈이 보급품을 버리고라도 퇴각에 대비하려고 일단 착륙시킨 모양입니다.”

“그 새끼, 운도 좋네.”

바실리가 이를 갈았다.

“우리도 본가에 연락해서 민간 수송선을 무제한으로 징발해서 이리로 보내라고 하면 되겠네! 오늘 저녁까지만 버티라고 해. 델루지 가도 그때까지는 못 간다고 전해.”

“저녁까지요?”

참모들이 당혹스런 얼굴로 서로 마주보았다. 지금껏 전열을 지켜 온 보병들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고, 저녁까지는 고사하고 한두 시간이나 버티면 다행이었다.

“우리 가문의 정예병 부대부터 지금 있는 수송선에 태워라. 남은 부대들은 능력껏 구조 수송선이 올 때까지 버티라고 하고. 신규군단은 가장 후순위다.”

바실리는 이미 부분부분 무너지고 있는 전장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가디언군단과 에키트 보병대의 돌격으로 경보병대와 사역병 부대가 전멸하면서 사령선이 있던 자리는 이미 완전히 적의 손에 들어간 후였다. 그곳엔 황실 가디언 군단과 에키트 보병대가 진격해 남겨진 보급품과 자료들을 노획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야전부대라고 좋을 리 없었다. 첫 기병전이 벌어졌던 좌군은 슈로 기사단과 슬레이프니르, 서부군이 3만밖에 남지 않은 보병대를 포위한 채 항복을 종용하고 있고, 북부군과 마주했던 우군은 가디언군단과의 사이에 끼어 전멸당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나마 온전했던 마누엘의 중군 보병대는 자리를 지키라는 카나르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양쪽 날개가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가려는지 계속 뒷걸음질 쳐 이젠 이전 숙영지 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적 사령선이 이륙합니다. 제플린 산으로 가려나봅니다.”

참모 하나가 북쪽을 가리켰다. 황실군 후방에 있던 황제 전용함 겸 황실 사령선인 [1번함]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며 북쪽의 제플린 산 고원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저쪽은 잊어버려.”

바실리는 한숨과 함께 그쪽에서 시선을 끊고 사령선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전장의 사지에서 운 좋게 빠져나온 플라칼 가 부대들이 마지막 남은 3척의 수송선 주변에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바실리는 새로운 사령선이 될 6번함에 성큼 올랐다.

“우리는 인구도 많고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 일단 이 수렁만 빠져나가면 황제도 우릴 어찌하지 못해.”

바실리가 수행원들을 이끌고 막 수송선에 올라탄 순간, 난데없이 해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근위병과 참모들만 몇 탔을 뿐, 뒤따라오던 근위병은 물론이고 함께 데려갈 플라칼 가 보병들도 전혀 타지 못한 상태였다.

“뭐 하는 짓이냐! 당장 문 열지 못해!!!”

당황한 근위병들이 승무원들을 찾으며 마구 소리를 질렀지만 수송선의 해치는 그대로 쿵 소리를 내고 잠겨버렸다. 바실리는 그제야 해치 잠금장치를 잡고 서 있는 델루지 가 근위병들을 볼 수 있었다. 해치 바로 앞에는 입가에 잔뜩 힘을 준 마누엘과 딸 클리멘트가 거의 1백여 명의 델루지 가 근위병들을 거느린 채 팔짱을 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바실리를 더 당황하게 한 건 이동의자에 앉아 그를 쳐다보고 있는 하페즈 마구스였다.

“이젠 혼자 도망가시려고요?”

마누엘이 팔짱을 낀 채 빈정거렸다. 델루지 가 근위병들이 그의 뒤에서 수송선에 들어가는 통로를 딱 막고 있었다. 바실리는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도망이 아니고 일시 전황이 안 좋아져 퇴각하려는 것뿐이요.”

바실리는 황제답게 가슴을 펴고 최대한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관록으로 똘똘 뭉친 눈앞의 무장은 이 젊은이의 황제 행세에 픽 하고 비웃음만 보였을 뿐이었다.

“오호, 황제시라 이거죠?

바실리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상대를 황제라는 지위로 위협할지, 일단은 협조를 요청할지 복잡한 계산이 오갔다. 하지만 가문의 주요 부대들을 고원의 전장에서 모두 잃은 상태에서 함부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닌 듯 보였다.

“그쪽 가문이나 우리나 낭패를 겪게 되었으니 일단 고향으로 돌아가 미래를 도모하는 게 나을 듯 싶소. 비엔의 잠재력은 충분하고, 적 황제도 죽었으니 충분히 만회가…….”

“우리 황제도 죽었지요.”

클리멘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의 무례한 말투에 바실리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걱정 마시오. 내 그분의 적장자로서…….”

말을 이으려던 바실리는 하페즈의 의자를 잡고 있는 여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망토로 차림새를 대충 가리고 있지만 날카로운 눈매, 옷깃 사이로 보이는 보안국의 빳빳한 옷깃과 버튼이 눈에 딱 들어왔다.

사에나가 악마처럼 웃으며 바실리에게 슬쩍 송곳니를 드러냈다.

“끝내시오.”

구질구질한 말싸움도, 시간을 끄는 논쟁도 없었다. 델루지 가 근위병들은 수송선 해치에 꼼짝없이 고립되어 있는 십여 명의 바실리 일행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플라칼 가 근위병들은 주군을 막아선 채 잠시 저항을 시도했지만 애당초 싸움다운 싸움이 될 상황이 아니었다. 바실리의 근위병과 참모들은 눈 깜짝할 새 목에, 가슴에 칼을 맞고 그대로 시체가 되어 수송선 바닥에 뻗었다.

“이이익.”

줄줄이 쓰러지는 부하들을 보며 공포에 질린 바실리가 해치 출구까지 도망가서는 잠긴 문을 마구 두들겼다.

“이봐! 이봐! 도와줘!”

바실리는 자신을 못 따라 들어온 근위병들이 밖에서 무슨 수라도 내어주기를 바라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는 손에서 피가 나도록 문을 두들겼지만 단단한 문은 그의 앞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

“어딜 도망가!”

바실리의 뒤를 쫓아온 델루지 가 근위병들은 부하들을 애타게 찾던 칼데아 제국의 장태자, 아니 황제의 등에 사방에서 경쟁적으로 칼과 창을 꽂아 넣었다.

“아아악…….”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난 칼데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실리 플라칼은 꽉 세운 손톱으로 잠긴 문짝을 긁으며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짝을 따라 그의 손가락 자국이 바닥까지 길게 남았다.

“이런 걸 찾아와라.”

하페즈가 자신의 손목을 내보였다. 지시를 받은 근위부대 장교는 바실리 일행의 짐에서 죽은 네코의 마구스 팔찌를 찾아내 가져왔다. 장교에게서 팔찌를 받아들려 했던 마누엘이 하페즈의 눈치를 힐끔 보았다.

“수고했다.”

마누엘 대신, 사에나가 장교의 손에서 팔찌를 냉큼 가져갔다. 마누엘이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공격 중단한다는 약속은 지키기요?”

“글쎄요.”

사에나가 확답을 미룬 채 말꼬리를 흐렸다.

한동안 잠겼던 6번함의 해치 문이 다시 열렸을 때, 바깥 풍경은 바실리가 이 함에 탔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가 함에 타기 직전 가리켰던 5척의 낡은 수송선에서 거의 3만의 동부기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마지막 저항을 하던 칼데아군의 숨통을 갈가리 찢어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버티고 버티던 칼데아군 보병들도 이젠 완전히 박살이 나 무참히 학살당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견고한 이들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황제가 마지막까지 숨겨놓았던 비장의 수였다.

그때, 사에나의 할룩스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남부 놈들이 다시는 딴생각을 못 하게 완전히 짓밟아버려라!”

기병대를 직접 이끌고 있는 동부최고제후 다히르와 우렁찬 고함이 사에나의 할룩스를 통해 마누엘과 클리멘트의 귀에까지 고스란히 들어왔다.

“이런.”

사에나는 실수로 켜 놓았던 척 얼른 할룩스의 스피커를 껐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마누엘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협조했으니 이젠 약속대로 공격 중단하라고요!”

“그보다 내 앞에서 무조건 항복 명령을 내리기로 하지 않았소?”

마누엘이 그제야 절반 울먹이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할룩스를 켰다.

“델루지 가 전원에게 알린다. 무기를 버리고 모든 저항을 중단하라. 다시 말한다. …….”

마누엘이 할룩스를 떨구고 눈물과 섞인 한숨을 몇 번이나 거듭 내쉬었다. 저 기병들이 아니었다면 그 역시 본토로 돌아가 재기하려는 마지막 희망을 품었겠지만 최고제후 다히르가 직접 데리고 온 3만의 최정예 동부기병대는 막 퇴각을 준비하는 칼데아군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이런 의지마저 확 꺾어버렸다. 다히르는 아버지 샤자한이 291년에 저질렀던 큰 실수를 이번에는 반복하지 않았다.

“항상 그쪽에서 산통을 깼지 그분께서 약속을 어긴 일이 있으셨소?”

사에나는 마누엘에게 다시 한 손을 쓰윽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손짓은 절대 아니었다. 입가를 씰룩거리던 마누엘은 허리춤에 장식품으로 걸고 있던 트라카 마구스의 팔찌를 마지못해 풀어 그의 손에 건네주었다.

두 개의 팔찌까지 챙긴 사에나는 비로소 할룩스를 켜고 다히르에게 전문을 보냈다.

- 델루지 가가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사살하지 마십시오. -

할 일을 다 끝낸 사에나는 함께 온 보안국 요원들에게 하페즈의 병상을 가리켰다.

“발렌틴이 지난번 놀아 준 예쁜 누나를 찾고 있으니 가서 우리 진영에 가서 케스난과 말벗이라도 해 주시오. 하페즈 현신.”

사에나의 손목에서 빛나고 있는 에아의 팔찌를 본 하페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곳 분지의 연합군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마구스였다.

해치에서 내려섰을 때, 그들의 앞에는 조금 전까지 와글거리며 모여 있던 플라칼 가 근위병들 대신 바에자 마구스가 작달막하고 단단한 체구의 곱슬머리 청년과 함께 근위대 1연대를 거느리고 서 있었다.

한편 멀리 전장에서는 [교전 중단]을 알리는 칼데아군의 낮은 나팔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황실군에게 포위당해 이미 몰살당하고 있던 칼데아군들은 차라리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무기를 내려놓고 동료들의 시체 옆에 엎드렸다.

“카렐 대제 만세!”

먼 옛날, 오르마즈의 전사를 알리는 폭죽이 올랐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이번엔 북부군들이 제일 먼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눈부신 은빛 폭죽을 공중으로 쏘아 올랐다. 뒤이어 황실군에서, 서부군에서 질세라 폭죽을 하늘로 계속 올렸다. 시커먼 구름이 가득 뒤덮은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각각의 지역을 상징하는 불꽃이 펑펑 터지며 제국의 재통일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사에나는 하페즈의 의자를 밀고 수송선에서 내려섰다. 사에나와 하페즈, 바에자 3명의 마구스들이 수송선 앞에서 마주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상위교단 마구스인 사에나는 이들 앞에서 가슴을 펴고 사뭇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산 위에선 힐러 대장이 가르시바 현신의 시신과 팔찌를 찾았다고 하는군.”

사에나의 말에 바에자 옆에 있던 청년이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스루바라 교단의 새 마구스가 될 그도 전통에 따라 얼른 눈물자국을 지웠다.

“네코 현신의 아들을 품고 있는 바유 9신관에게는 내 방금 전담 의사와 헤네티 경호원을 붙였소. 바유 교단도 핏줄이 끊기지는 않게 됐소.”

바에자가 입가를 씰룩거리며 산 위를 올려보았다.

“문제는 대신관이군.”

4명의 마구스 모두의 시선은 폭죽으로 환하게 밝아진 회색빛 찌뿌듯한 하늘 너머 제플린 산 정상을 향했다.

위아래가 뒤집힌 채 포탄구멍에 비스듬히 기울어 처박힌 트라이크 밑에서 작은 손 하나가 조심조심 삐져나왔다. 손은 주변을 이리저리 더듬더니 모래땅에 구멍을 파려는 듯 바닥을 몇 번 긁었다. 하지만 채 손바닥만큼도 파기 전에 모래구덩이 한쪽이 무너지며 트라이크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트라이크의 차축에서 찌익 하며 찌그러드는 소리가 나자 손은 얼른 움직임을 멈추었다.

뒤집힌 밑에서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 바로 위에는 바닥의 트라이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육중한 함선의 동체 조각이 얹혀있었다. 땅을 파려 하던 손은 다시 트라이크 밑으로 사라졌다. 주변에는 짙은 연기가 가득했고, 트라이크 밑에서는 콜록거리는 재채기 소리가 몇 번이나 났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시오.”

카렐이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뜨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는 주저앉으려는 트라이크의 한쪽 구석을 두 다리와 오른팔, 허리힘으로 받친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가 기를 쓰며 받치고 있는 좁은 공간에는 이디나가 누워 있었다. 카렐은 뒤집어진 트라이크의 핸들이 이디나의 불룩한 배를 누르지 않게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디나는 너무도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 조각조각으로 남아있는 마지막 순간의 기억을 짜맞춰 보았다. 사령선의 파편과 불꽃이 덮치기 직전, 카렐은 안 되겠다는 말과 함께 이전 전투에 난 포탄구멍으로 이 거대한 트라이크를 몰고 가 급정거를 밟았다. 트라이크는 움푹한 포탄구멍에 머리를 처박았고, 카렐은 이디나를 안고 그 밑의 공간에 재빨리 파고들었다.

“누군가……올 때까지……가만히 있는 게 낫소.”

카렐이 꽉 악문 이 사이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카렐의 예측은 정확했지만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만 되어주지 않았다. 옆에서 날아든 육중한 파편에 트라이크가 밀려 옆으로 반 바퀴를 굴러 뒤집어졌고, 파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차축이 우그러지며 그 바로 밑에 있던 이디나를 깔아뭉개기 직전이 되었다. 카렐이 날카로운 부품에 어깨를 찍히는 것을 감수하고 위에서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디나는 배와 가슴이 눌려 뱃속의 아기와 함께 끔찍한 최후를 맞았을 터였다.

“누군가 R이나 X가 날 찾아낼 거요…….”

기운이 빠진 카렐이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중간중간 몇 번이나 할룩스가 울렸지만 트라이크를 받치고 있어야 하는 그도, 좁은 공간에 낀 이디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카렐의 어깨와 허리가 점점 눌리며 숨이 가빠지는 것을 본 이디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카렐은 지금 세 사람분의 목숨을 버티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짙은 연기를 견디다 못한 카렐이 기침을 터뜨리면서 그의 팔과 허리에서 힘이 확 풀렸다. 무게를 버티지 못한 그의 몸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이디나의 배를 덮쳤다.

“우읍!”

배가 맞닿으며 놀란 이디나가 비명을 질렀지만 카렐이 재빨리 몸에 다시 힘을 주어 이디나의 불룩한 배에, 아니 자신의 딸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가까스로 공간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는 건 분명했다.

배와 가슴이 눌리며 제대로 숨을 못 쉬게 된 이디나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차라리 한 번에 눌려죽는 게 나아요.”

반쯤 공황상태가 된 이디나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천천히, 조금씩 눌려죽을 것이라는 공포는 그 누구보다 대담했던 그의 이성까지 극단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디나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버티고 있는 카렐의 오른팔을 꽉 잡았다.

“조금만, 조금만 힘을 내 주던지, 아니면 차라리 놓아버려요.”

무어라 말하려던 이디나는 배와 가슴이 눌리며 제대로 숨을 못 쉬게 되자 고통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당황한 카렐은 이에서 빠득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팔과 허리에 힘을 주어 차축을 아주 조금 들어올렸다.

“이이이익!”

그의 다친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팔과 옆구리를 타고 피가 주르르 흘렀다. 수술로 이미 많은 피를 잃었던 카렐은 점점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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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딱 한 편 남았습니다. ㅎㅎㅎ 다음주 금요일이면 대단원이네요. 마구스들은 둘만 빼고 물갈이(?)가 되었고요, 이젠 두 대신관만 남았습니다. ㅎㅎㅎ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슬퍼요~~~( ̄∇ ̄)ブ~~★

옆동네 콜로니는 오늘 주인공 일행이 배 위에서 제대로 한 판 붙는 날이고요. 대충 계산해 보니 지금까지 연재분량이 이미 책 한 권을 넘어갔더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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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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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프리미엄에도 출판본이 올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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