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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3화 (3/297)

# 3

현질 전사

-1권 3화

정대식은 눈을 질끈 감고 말풍선 모양의 창을 터치했다.

그러자 그 말풍선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우미를 구입하시겠습니까?>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그 말에 반문을 던지고 말았다.

"도, 도우미라고?"

<금액은 100만 원입니다.>

"100만 원!"

도우미가 뭔지는 몰라도 비쌌다.

돈 100만 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정대식의 한 달 생활비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

덥석 지불하기에는 적잖이 부담스러운 금액인 셈이다.

정대식은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거, 100만 원 정도면 투자를 할 만한 것 같았다.

설령 사기라 하더라도 100만 원 정도는 눈 딱 감고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짐꾼으로 벌어들이는 한 달 수입이 400~500만 원 정도니까 한 일주일 공쳤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계산으로 정대식은 소리쳤다.

"좋아, 구매!"

그러기가 무섭게 표시되는 잔액이 줄어들었다.

100만 원이 차감되어 6,550만 원가량이 남았다.

'자동 결제냐!'

이런 게 신을 통해 얻은 능력이라면 참으로 황당한 노릇이다.

여전히 사기가 아닌가 의심쩍은 기분으로 정대식은 말풍선이 구체화되는 걸 지켜봤다.

그게 마치 홀로그램처럼 창밖으로 튀어나왔다.

2D가 3D가 되었다고나 할까.

영상처럼 반투명하기는 했다.

그게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정대식에게 말을 걸어왔다.

<재물과 탐욕, 그리고 대가의 신 데모크리토스 님의 각성자, 정대식 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도우미 엔트로피입니다.>

"......만나서 반갑다고 해야 되나?"

<앞으로 쾌적한 사냥을 할 수 있도록 정대식 님을 최선을 다해서 도와 드릴 것입니다.>

"어, 그래."

게임의 튜토리얼이라도 보는 것 같아서 정대식은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공의 말풍선, 엔트로피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돈을 버십시오, 그리고 돈을 쓰십시오, 그러면 강해질 것입니다.>

데모크리 어쩌구 하는 신이 한 말과 한 치 다름없는 소리였다.

정대식은 미간을 찌푸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 돈을 벌라는 거 말인데. 돈이라면 이미 벌고 있거든?"

정대식의 질문이 어디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인지, 엔트로피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본인이 하던 말을 계속했다.

<현재 정대식 님의 기본 능력 성향은 강화계, 마력 수치는 10입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능력치 화면을 불러내 주십시오.>

"능력치 화면?"

정대식은 질문을 던진 건데 그게 입력어와 같았나 보다.

눈앞에 비어 있던 화면이 휙 바뀌며 무언가가 보였다.

흡사, 게임의 상태창과 같은 화면이었다.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표시되고 옆에 각 상태 수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능력 성향 : 강화계

근력 : 21

마력 : 10

체력 : 25

오감 : 14

민첩 : 18

행운 : 16

'게임 시스템과 거의 같잖아? 날 캐릭터 삼은 모양인데. 흐음, 다른 건 몰라도 체력 수치가 높군. 그동안 노가다를 많이 해서 그런가?'

정대식은 수치로 표시되는 자신의 상태를 신기해하며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엔트로피가 설명을 계속했다.

<모든 화면은 육성으로 불러낼 수 있습니다. 문의 사항 역시 제게 육성으로 질문하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그거 참 편리하네."

<현재, 정대식 님이 볼 수 있는 항목은 능력치, 기술, 아공간, 상점입니다. 추가로 결제하시면 다른 항목들도 오픈이 가능합니다.>

추가 결제라는 말에 정대식은 뒷말은 무시했다.

대신 자신이 열어 볼 수 있다는 항목에 관심을 가졌다.

"아공간은 뭐야?"

다른 단어들에 비해 다소 낯설게 들리는 항목에 대해 묻자, 엔트로피가 장담한 대로 거기에 대해 설명했다.

<물건을 저장할 수 있는 개인 공간이며, 정대식 님은 현재 한 변이 1미터인 정사각형 육방면체의 공간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아하, 인벤토리 같은 건가 보지? 그건 어떻게 불러내?"

<육성으로 불러내실 수 있습니다.>

어지간한 건 다 육성으로 가능한 모양이라, 정대식은 시험 삼아 목소리를 냈다.

"아공간 열기."

팟!

갑자기 눈앞에 공간이 열리며, 어떤 검은 구멍 같은 게 나타났다.

그게 한 변이 1미터라는 정육방면체 모양의 공간인가 보았다.

한 변이 1미터 정도라면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셈이었다.

지금 상태로는 딱히 거기에 넣을 만한 게 있지도 않았으므로 충분해 보였다.

"아공간 닫기."

팟!

다시 공간이 닫히고 검은 구멍이 사라졌다.

"허허, 이거 신기하잖아!"

정대식은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이 놀라워 계속 아공간을 열고 닫았다.

그러고 있노라니 기분 탓일까.

말풍선에 불과한 엔트로피가 자신을 한심스레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헛기침을 흠흠, 하고 괜히 혼잣말을 했다.

"......그럼 어디 여기에 물건이라도 넣어볼까?"

정대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손에 잡히는 대로 배달 요리 홍보 책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아공간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책자가 감쪽같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대식은 약간 당혹해하며 엔트로피에게 물었다.

"이거 다시 꺼낼 땐 어떡해야 해?"

엔트로피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원하시는 물건의 이름을 외치면 됩니다."

"배달 책자!"

꼭 물건의 이름이 정확하지 않아도 되나 보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불렀는데 검은 구멍 밖으로 누가 토해 내듯 그게 튀어나왔다.

정대식은 혹시나 싶어서 이것저것, 되는 대로 물건을 집어넣고 불러내기를 반복해 보았다.

'흠, 아이스크림 껍데기는 굳이 상표를 붙이지 않고 아이스크림 껍데기라 말해도 튀어나오네. 쓰레기라고 해도 튀어나오고 말이야. 하지만 쓰레기라고 할 경우 다른 휴지나 라면 봉지도 같이 튀어나온다. 좋아, 대강 어떻게 쓰는 건지 감은 잡았어.'

불러내는 물건이 특정한 경우 가급적 정확한 명칭을 부르는 게 좋다.

뭉뚱그려 말을 하면 같은 분류에 속하는 다른 물건들도 함께 튀어나왔다.

여러 가지의 물건을 동시에 불러낼 경우에는 그렇게 대분류로 부르면 되는 것 같았다.

'좋아, 이건 대강 사용법을 익혔고...... 다른 건 뭐가 있나?'

정대식은 내친 김에 다른 기능들도 살펴보기로 했다.

'내가 열어 볼 수 있는 게 능력치, 아공간, 그리고 기술과 상점이라 그랬지?'

엔트로피가 했던 말을 되새겨 보고 정대식은 입을 열었다.

"기술 보기."

그러자 눈앞의 화면이 또 바뀌었다.

기술 창이라 여겨지는 화면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걸 본 정대식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에게? 내가 가진 기술이 고작 이거 하나란 말이야?'

정대식의 기술 창에 있는 목록은 딱 하나.

다름 아닌 '강화'였다.

'그러고 보니 내 계열인지 속성인지가 강화계라 그랬지.'

그 단어를 골몰해 보던 정대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강화 기술이라 치면, 무엇이든 강화를 할 수 있는 건가?'

만일 그렇다면 겨우 한 가지라 해도 제법 쓸 만한지도 모른다.

정대식은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잠자코 대기하는 중인 엔트로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봐, 이거 내가 가진 기술 말인데?"

<정대식 님은 현재 강화 기술 한 가지를 보유하고 계십니다.>

"그 강화라는 거, 어디에 써도 해당이 되는 건가? 그러니까 내 말은...... 물건이나 그런데 쓸 수 있냐는 말이야."

<물건에 사용할 경우, 그 용도에 따라 내구력, 절삭력, 타격력 등등이 증가합니다. 신체에 직접 사용할 경우 근력, 체력, 방어력 등이 증가합니다.>

"사람 몸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도 제법 효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신체가 강해진다는 거니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테다.

'하지만 내가 강화계라고 강화 스킬 달랑 하나만 있는 건 좀 그렇잖아. 다른 각성자들은 여러 가지 능력을 갖고 있는 거 같던데. 다른 스킬을 획득하는 방법은 없나?'

정대식은 곧장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난 강화 말고 다른 스킬은 없는 거야?"

<현재로선 보시다시피 그렇습니다.>

"다른 스킬을 얻는 방법은 없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가장 빠른 길은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입니다.>

"스킬도 돈을 주고 살 수가 있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돈을 쓰십시오, 그럼 능력을 얻을 것입니다.>

했던 말을 재차 반복하는 엔트로피를 보자, 뒤늦은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게 그 말이었어?"

정대식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일반적으로 각성자들은 몬스터와 싸우거나 수련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동안은 내가 각성자가 아니어서 상세히 모르는 걸 수도 있겠지만, 돈을 주고 능력을 산다는 소리는 난생 처음 들어 봐.'

신의 공간에서 들었던 신의 목소리.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 데모크리토스.

그는 돈을 바치라고 했다.

그리하면 힘을 얻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인즉, 돈을 써서 능력을 사라는 말이었나 보다.

'이건 어찌 보면 현질이잖아? ......그럼 내가 가진 능력이 바로 현질이라는 말인가?'

자신이 갖게 된 초능력의 정체.

그것에 대해 고민하던 정대식은 생각이 길어지는 걸 느꼈다.

'모르겠다. 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일단은 그 상점이라는 것부터 열어 보기로 했다.

"상점."

다시금 화면이 바뀌어 상점이 나타났다.

상점은 별게 없었다.

모양새는 게임의 아이템 숍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목록이 몇 개가 안 됐다.

그걸 보며 정대식은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빈약하네. 상점에서 파는 건 이게 다야?"

그러자 엔트로피가 답했다.

<더 많은 목록을 원하신다면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상점도 업그레이드를 해?"

<그렇습니다. 추가 결제를 내면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추가 결제 이야기는 됐어."

정대식은 툭하면 추가 타령이라고 손을 홰홰 내저었다.

그리고는 그나마 있는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현재 내가 살 수 있는 건 상태와 기술, 이 두 가지다.'

각기 구역이 나뉘어져 있었으므로, 정대식은 먼저 상태 탭을 열어 보았다.

'흠, 손으로 건드리는 식으로도 조작이 가능하구나.'

게임창이랑 비슷해 보여서 그런지 말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여는 게 더 편한 구석도 있었다.

'보자. 근력, 마력, 체력, 오감, 민첩, 행운이라...... 상태창에 있는 항목이 다 나뉘어 있네.'

시험 삼아 근력 탭을 눌러 보니 열리지가 않았다.

'이거 왜 안 돼?'

정대식이 소용없는 짓을 하고 있자 엔트로피가 말했다.

<현재 구매할 수 있는 능력치가 없습니다.>

"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추가 결제를 하시면 업그레이드가.......>

"아냐아냐, 됐어."

정대식은 돈을 안 내면 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닌가 의심하며 이번엔 기술 탭을 열어 보았다.

기술 탭은 다시 여러 계열로 나뉘었는데, 덕분에 그 계열이라는 게 무엇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각각 강화계, 구현계, 변화계, 방출계, 조작계, 소환계, 정신계였다.

'총 일곱 가지 계열이 있는 거군. 이렇게 보니까 강화계가 제일 후진 거 같잖아.'

괜한 불만을 느끼며 정대식은 강화계를 선택해 보았다.

자신이 강화계인 이상, 다른 계열을 선택해 봤자 구입할 수 있는 게 없으리란 건 뻔했다.

그러자 강화계 탭이 열리며 몇 가지 목록이 나타났다.

'그나마 이건 종류가 몇 가지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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