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현질 전사
-1권 5화
* * *
각성자 관리청으로 들어갔을 때 정대식은 조금은 긴장했다.
행여 자신의 각성이 사실이 아닐까 봐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신의 공간에서 만난 신이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말을 한데다, 자신이 타고난 능력도 보통의 각성자와는 괴리가 있어 혹시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각성 검증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간단했다.
꼭 구슬처럼 생긴 물건에 손을 얹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 그 장치가 마력을 감지해 내어 각성자 여부를 판단해 냈다.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검증이 끝나고, 정대식은 간단한 서류 몇 장을 작성하는 것으로 등록을 끝마쳤다.
각성자 등록을 하고 나서, 다른 층으로 이동해 헌터 자격증을 발급받았다.
헌터 자격증은 일종의 던전 출입증으로, 각성자 등록과는 달리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잡을 사람만 발급받으면 되는 거였다.
정대식은 주민등록증과 흡사하게 생긴 헌터 자격증을 지갑에 꽂아 넣고 각성자 관리청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인근의 무기 상가로 향했다.
종로 한쪽 거리를 잠식한 무기 상가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오로지 각성자들만이 들고 나는 곳이라 그런지 인근의 다른 상가에 비해서 조용해 보였다.
그 상가들 사이를 걷고 있자니 이목이 집중되는 것 같았다.
상가 주인들이 하나같이 팔짱을 끼고 정대식을 바라보며 눈으로 말했다.
'초짜로구먼.'
'초보야.'
'오늘 등록했어.'
'어수룩해.'
기분 탓인지 하나같이 자신을 등쳐 먹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정대식은 상가 주인들의 호객 행위를 일관성 있게 무시하고 걸었다.
"뭐 찾으세요?"
"여기 딜러들 쓰기 좋은 무기 있어요!"
"싸게 해 줄 테니 한번 구경해 보세요!"
"더 가 봤자 별거 없어요."
그렇게 무기 상가를 한 바퀴 휙 돌고 나서, 왔던 길을 머쓱하게 되돌아가다가 정대식은 가장 눈에 띄는 상가 안으로 쑥 들어갔다.
총이 일제히 진열되어 있는 곳이었다.
정대식이 쭈뼛거리며 눈으로 진열대를 쳐다보자, 나이 지긋해 뵈는 주인이 나와서 말을 걸었다.
"찾으시는 거 있습니까?"
"......원딜 무기를 구하는데요?"
그는 정대식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말했다.
"보통 사냥이 처음이면 이런 모델을 많이 쓰죠. 성능도 무난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주인은 몇 가지 무기를 진열대에서 꺼내 늘어놓았다.
권총 두 종류와 자동 소총 하나, 장총 하나를 보여 주며 설명했다.
"뭐, 알고 있겠지만 이건 다 마력총이라 총알이 따로 필요 없어요. 특수 총알을 끼우는 모델이 있긴 한데 그건 가격이 비싸고, 굳이 그런 모델까지는 안 써도 될 겁니다. 여기 있는 게 가장 기본적인 거예요."
보아하니 눈에 익은 모양새가 정대식이 인터넷으로 알아본 모델들인 것 같았다.
"권총 종류는 크기도 작고 가벼운데다 마력도 적게 잡아먹어서 쓰기 좋죠. 대신 위력이 좀 딸리는 감이 있긴 하지만, 슬라임이나 마못 정도는 무난하게 잡을 겁니다."
"제일 많이 팔리는 건 뭐죠?"
"아무래도 자동 소총이죠. 마력을 순식간에 잡아먹는다는 단점이 있긴 한데, 원딜한테는 이거만 한 무기가 없어요."
"그래요?"
"원딜이 권총 좀 깔짝거리고 쏴 봤자 별로 티가 안 나거든요. 이 정도는 갈겨 줘야 아, 저 원딜이 활약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솔직히 원딜이 까닥 잘못하면 업혀 간다는 인상 주기 딱 좋잖아요? 그러니 솔플 할 거 아니면 자동 소총이 나아요."
"장총은요?"
"파워는 이게 최고긴 한데, 몇 발 못 쏴요. 초보면 한 몇 발 쏘기가 무섭게 마력 다 닳아 버리니까."
"자동 소총보다 이게 더 그런가 보죠?"
"쏠 수 있는 횟수를 따지면 아무래도 그렇죠. 게다가 가격도 비싸고."
"장총이 많이 비쌉니까?"
"자동 소총 두 배 가격이에요. 제일 기본 옵션으로 사도 4천만 원은 하거든."
"그럼 자동 소총 가격이......."
"기본이 2천, 옵션에 따라서 좀 더 붙죠. 보통은 자동 소총에 보조 무기로 권총 하나 사 가요. 권총은 가격이 아주 다양하니까. 제일 싼 건 300부터 해요."
정대식은 고민했다.
자동 소총을 사기로 거의 마음을 정하고 왔기에, 그건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권총을 살지 말지, 그 여부가 갈등되었다.
가격이 싸다고 하니 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력량도 충분치 않은데 무기만 잔뜩 사 봤자 뭐 하나 싶었다.
그럴 바에야 하나를 사도 제대로 사자 싶어서 자동 소총을 좀 좋은 걸로 사려고 했다.
"그럼 자동 소총에 붙는 옵션은 뭐가 있습니까?"
"보통 옵션 하나 당 500쯤 한다고 보면 됩니다. 예산으로 얼마쯤 생각하고 계신데?"
"......3천 정도."
정대식은 강조해 말했다.
"아무리 많이 써도 3천까지. 그 이상은 무립니다."
그러자 주인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2천짜리 기본에 절감기 하나, 증폭기 하나 붙임 딱 되겠네. 에누리 없이 3천으로 해 드릴게요."
주인이 하는 말을 듣고 정대식은 흥정을 시작했다.
"3천이 제 전 재산입니다. 그거 다 쓰고 나면 10원 땡전 한 푼 없다고요. 그런데 에누리가 안 된다고요?"
"원래 무기 가격이 다 정찰제라 내 맘대로 깎아 주고 그렇게 못해요. 대신 이것저것 좀 챙겨 드리죠. 지혈 포션 한 다섯 개 끼워 드리면 되죠?"
"현찰로 일시 지불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덤 없이 100만 원 빼 주세요. 그래야지 장비를 좀 살 거 아녜요. 3천만 원 그거 다 쓰고 나면 추리닝 바람으로 던전 가게 생겼다고요."
"이 사람이 뭘 모르네. 말씀드렸잖아요? 네고는 안 됩니다. 대신 스크롤 추가로 드릴게요."
정대식은 한참 동안 주인이랑 입씨름을 했다.
거의 30분을 죽는 소리를 해 가며 떠들어 댄 결과.
지혈 포션 다섯 개에 해독 포션 다섯 개.
거기다 폭발 스크롤 세 개, 배낭 하나와 나이프 하나를 추가로 받았다.
그걸 챙겨 주며 주인이 혀를 쯧쯧, 찼다.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날강도로구먼. 내가 원래 이렇게 뜯기는 사람이 아닌데."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시죠. 종종 이용할 테니까."
"꼭 그래야 합니다! 엄청 챙겨 드렸으니까. 자, 여기 명함 있어요.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미리 주문도 됩니다."
정대식은 그가 내미는 명함을 챙겨 넣었다.
사실 그가 서비스를 과하게 준 건 맞았다.
대부분은 받아 봤자 포션에 스크롤 정도까지였다.
나이프까지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이게 다 흥정을 잘한 덕분이지.'
정대식은 애초에 네고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게 되었으면 자금이 3천만 원이라는 걸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2,500부터 시작해 가격을 깎았겠지만, 정찰제이므로 최대한 덤을 많이 받는 방향으로 말을 했고, 그게 주효했다.
정대식이 누구냐.
이른바 흥정의 달인!
그는 태어나서 제값으로 물건을 사 본 적이 없었다.
백화점에서도 가격을 깎는 사람이 정대식이었다.
남들 보기엔 궁상맞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고아로 없이 살아온 그가 생존해 온 방식이었다.
어쨌든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덤을 받았으므로 정대식은 성심성의껏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3천만 원을 즉시 그의 계좌로 이체해 주었다.
'이걸로 예금해 두었던 6천 중에 절반이 날아갔다.'
줄어든 금액을 보자 적잖이 속이 쓰렸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투자.'
정대식은 심호흡으로 쓰린 맘을 달래고 무기 상점을 나왔다.
그리고 무기 상가를 빠져나가기 전에 구입한 무기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사격장에 들렀다.
거기서 새로 산 무기를 한번 테스트해 볼 요량이었다.
'마력총 같은 걸 쏴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실전에 돌입하기 전에 연습을 좀 해 봐야지.'
정대식은 1시간 사용료를 지불하고 라인에 과녁을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구입한 총을 꺼내 과녁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마력이 쑥 딸려 나가는 느낌이 들며 총구에서 뭔가가 발사됐다.
그게 과녁을 맞히는 걸 보고 정대식은 감탄했다.
'이게 마력탄이라는 거구나!'
던전 안의 몬스터들에게는 일반적인 무기의 효과가 미미했다.
마력을 주입한 무기만이 주효한 관계로, 이런 총 같은 경우에는 총알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총알 대신 마력을 장전해 쓰는 것이다.
'마력을 주입해 총을 쏘는 덴 문제가 없는데, 무기가 싸구려라서 그런가. 명중률도 신통찮고 위력도 별로야.'
명중률은 사실상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그로 관리가 중요해지는 시점에서는 명중률이 영향을 미치겠지만, 썰자팟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상관없었다.
몬스터들은 대부분 덩치가 커서 좀 빗맞혀도 괜찮았다.
문제는 공격력이다.
무기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곳이라 과녁 위쪽에 공격력이 표시되고 있었다.
'내가 쏜 마력탄의 공격력이 고작 200...... 내 마력이 10밖에 안 되어서 그런가?'
500만 원이나 더 주고 증폭기를 붙였는데도 200이었다.
아무래도 마력 수치가 낮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입맛을 쩝 다셨다.
'이래 가지고선 무슨 무기를 써도 공격력이 형편없겠군. 모르긴 몰라도 마력이 닳는 것도 빠르겠지. 무기를 제대로 쓰려면 일단 마력 수치가 높아야 할 것 같은데.'
머리를 한 바퀴 굴린 그는 상점 생각을 떠올렸다.
'돈을 주고 능력치 포인트를 살 수 있긴 해...... 문제는 그게 되게 비싸더란 말이지.'
정대식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러다 혹시나 싶어서 엔트로피를 불러내 보았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눈앞에 나타난 말풍선을 보고 그는 질문을 던졌다.
"그, 추가 금액을 내면 상점이 업그레이드된다 그랬지? 그럼 내가 살 수 있는 종류가 더 늘어나는 거 맞아?"
<그렇습니다.>
"능력치도 살 수 있게 되나?"
<그렇습니다.>
"마력도? 1포인트 올리는 데 얼마야?"
<그건 추가 금액을 내고 업그레이드를 하시면.......>
"알겠어, 그놈의 추가 금액...... 그건 얼만데?"
<1단계 업그레이드는 100만 원입니다.>
방금 3천만 원짜리 무기를 사서 그런가.
100만 원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100만 원이면 할 만하네? 좋아, 일단 업그레이드 좀 해 봐."
<상점을 1단계 업그레이드합니다.>
눈앞에 창이 나타나며 상점 표시가 바뀌었다.
상점 옆에 Lv1이라는 글자가 떠오르며 그의 잔액이 100만 원 사라졌다.
<상점이 Lv1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능력치 카테고리 좀 열어 봐. 마력으로다가."
화면이 변하고, 마력 탭이 열리며 능력치 구매창이 펼쳐졌다.
정대식은 재빨리 그걸 눈으로 훑어보았다.
'보자, 마력 1포인트......를 구입할 수 있군. 고작 1포인트만 구입할 수 있다니. 업그레이드해도 별게 없긴 하네.'
마력 1포인트의 가격은 100만 원이었다.
'그래, 100만 원 정도면.......'
정대식은 과감하게 마력 1포인트를 구입했다.
이로써 정대식의 마력 수치가 11이 되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어엉? 뭐야, 가격이 올랐잖아?'
잔액이 100만 원 또 사라지고 마력 수치가 올라가기 무섭게 상점 창의 마력 1포인트 가격이 바뀌었다.
이번엔 200만 원이었다.
'이거 포인트를 사면 살수록 비싸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