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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6화 (6/297)

# 6

현질 전사

-1권 6화

정대식은 짜증을 냈다.

'10포인트마다 오르는 것도 아니고, 1포인트마다 오른다고? 이거 완전 사기 아냐? 뭐가 이렇게 비싸? 포인트 몇십 올리면 억은 잡아먹겠구먼!'

그러나 암만 투덜거려 봐도 소용없었다.

사람이 상대라면 흥정이라도 시도해 보겠지만 이건 그런 것도 아니고. 달라는 대로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

'망할!'

마음 같아선 능력치에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짐꾼 노릇을 몇 년 간 해 왔던 정대식은 그간 보고 들어온 바가 많았다.

개중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헌터들의 사망 시점이었다. 헌터들이 가장 많이 죽는 때가 바로 첫 사냥이었다.

멋도 모르고 각성자가 되었답시고 신나서 던전에 들어갔다가 그냥 바로 죽는 것이다. 그런 경우를 실제로도 봐 왔고, 통계 자료로도 나와 있는 사실이었기에 아무 준비 없이 맨몸뚱이로 던전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한 목숨을 보전해야 했으므로 마력 수치를 올리는 일은 아주 중요하게 여겨졌다.

'난 힐러도 아니고 탱커도 아닌 딜러다. 딜러는 일단 공격력이 중요해. 어설프게 방어력에 분산 투자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단 말이야. 그러니 원거리 딜러를 선택해 무기를 산 이상, 이 무기를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마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어.'

결론은 마력 수치를 올려야 했다.

정대식은 피눈물을 머금고 돈을 투자했다.

상점에서 2,700만 원을 지불하고 마력 포인트를 샀다.

'일단 마력 수치를 17까지 올려놓았다. 통장은 텅 비었지만 일단 써 버린 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중요한 건 공격력이 얼마나 올랐느냐야.'

정대식은 다시 총을 겨누고 과녁을 쐈다.

타앙!

'오!'

아까와는 다르게 마력탄이 발사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귀가 멍할 정도의 소음이 울리며 과녁이 '퍽!' 하고 터졌다.

동시에 표시되는 공격력이 대폭 상승되었다.

'공격력이 340으로 올랐다! 과녁이 부서지는 걸로 봐선 이만하면 괜찮은데?'

남은 시간 동안 연습을 더 해 보고 정대식은 무기를 갈무리했다.

그러고 나오니까 그의 실력을 평가한 자료가 자동으로 프린트되어 나왔다.

총점을 보아하니 8등급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8등급 원딜이면 초보 수준치고는 상당했다.

보통 초보가 10등급이니까 어디 가서 초보 티 난다는 소리는 안 들을 정도였다.

'생각지 않은 돈을 쓴 셈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어. 대신 다른 장비는 최대한 싸게 사야겠지만.'

정대식은 무기 상가 뒷골목에 자리해 있는 벼룩시장으로 향했다.

거긴 던전에서 흘러나온 온갖 구제품을 파는 거리가 자리해 있었다.

다 낡아 빠진 방어구에서 피 묻은 옷가지, 닳아빠진 부싯돌, 군화, 장갑, 가슴받이, 배낭 등등.

없는 게 없었다.

거기에서 정대식은 고르고 골라 가능한 저렴하게 나머지 장비를 구입했다.

방어구까지 장만할 돈은 없어서 낡은 가죽 재킷과 바지, 그리고 장갑과 워커를 샀다.

그 외 강화용 유리가 끼워진 고글과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모자형 헬멧, 정화 기능이 있는 수통과 다용도 고리가 붙은 벨트,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30m짜리 와이어 로프, 은신 침낭을 장만했다.

그걸로 통장 잔고가 완전히 바닥이 나 버렸다.

몇십 얼마밖에는 남지 않아, 기분이 다 침울해지려고 들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탕진해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장비만 마련했는데도 엄청나게 돈이 드는군.'

정대식은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모바일 뱅킹에서 로그아웃했다.

그러고는 근처 시장에서 4,000원짜리 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며 곧장 사냥할 궁리를 했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던전은 S7이다. 거기라면 썰자팟 구하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정대식은 막공을 모집하는 공개 게시판을 찾았다.

던전별로 나뉘어져 있는 카테고리에서 S7을 골라 들어갔다.

그러자 여러 게시물이 주르륵 떠올랐다.

'어디 보자.......'

거기에서 적당한 글을 고른 정대식은 게시글 작성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원딜입니다, 사격수인데요. 오늘 사냥 참가 가능할까요?

답장은 곧장 왔다.

-가능합니다. 지금 바로 시간 되십니까?

-예, 30분이면 갑니다.

-그럼 거기 1층에서 뵙도록 하죠.

정대식은 조금 망설이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런데 제가 초보라서요. 그래도 짐꾼 경력이 있어 사냥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이 잠시 말이 없었다.

초짜배기인 정대식을 데리고 가도 될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서 대답을 해 왔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초보 시절이 있는 법이죠. 짐꾼 일을 해 보셨다면 대충은 아실 테고요.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죠.

초고속으로 약속을 잡고 정대식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식은 국밥을 후루룩 들이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건 또 기분이 새로운데!'

S7던전.

서울에서 일곱 번째로 생긴 던전이라는 뜻이다.

S7은 이 근방에서 가장 대중적인 던전 중 하나였다.

서울 내에 자리해 있어 지하철로 이동이 가능한데다 도심지에 있는 던전치고는 규모가 상당했다.

몬스터의 종류도 다양해 늘 사람들로 들끓었다.

덕분에 정대식도 몇 번이나 이곳에 발길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매번 짐꾼으로 왔던 곳이었다.

거기에 짐꾼이 아닌, 헌터가 되어 오자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헌터로 여길 오다니.'

정대식은 마치 처음 던전에 오는 사람처럼 쉴 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그때 갑자기 누가 등을 탁 쳤다.

"어이!"

뒤를 돌아보자 아는 얼굴이 서 있었다.

"어, 한철민. 오랜만이다."

한철민은 정대식과 마찬가지로 짐꾼으로 일하는 녀석이었다.

정대식과 동갑내기로 종종 이 부근에서 마주쳐 함께 일했다.

간혹 일거리를 물어다 주기도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보았다.

"너 지금 일하러 가는 거지? 나 아는 형님이 오늘 여기 사냥 간다고 불러 줬거든. 그래서 말인데, 같이 가자. 수수료 10만 원만 떼 줘!"

인력 사무소는 보통 소개비를 그날 일당의 10%를 떼었다.

그 돈을 아끼려면 헌터에게 직접 일을 받으면 된다.

간혹 헌터와 친분 있는 짐꾼들이 이렇게 일거리를 물어 와 직접 사람을 모집하곤 했다.

그리고 인력 사무소보다 싼값을 받고 일을 나눠 주었다.

당연히 기꺼운 일이었으므로,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그러마' 하고 대답할 뻔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짐꾼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헌터로 온 것이었으므로,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냐, 난 됐어."

"으잉? 네가 웬일이냐?"

"그냥 그럴 일이 좀 있어서."

그때 저만치서 누가 손을 흔들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어제 정대식과 함께 일했던 홍만기였다.

아마도 한철민에게 일거리를 소개받았는지, 반가운 얼굴을 하고서 한철민에게 아는 체를 해 보였다.

"여어, 한철민! 연락 줘서 고맙다! 그렇잖아도 오늘 인력 사무소 앞에 줄 완전 길더라고. 오늘 공치는가 싶었는데......."

그러다 한 박자 뒤늦게 정대식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 정대식...... 네가 여긴 웬일로?"

한철민은 홍만기가 정대식을 보고 놀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가 각성자가 되었다고는 생각 못하고, 되레 홍만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인원 모자란데 마침 대식이 이 녀석도 마주쳐서. 우리 셋이서 같이 가면 되겠다."

그러자 홍만기가 한철민의 어깨를 퍽 때렸다.

"정대식 이 녀석이, 왜 우리랑 같이 일하냐?"

"아니, 왜?"

"정대식이 어제 각성했잖아!"

"뭐어?"

깜짝 놀라 반문하는 한철민에게 홍만기가 기다렸다는 듯 주절거렸다.

"글쎄 슬라임을 쓸어 담고 있는데 갑자기 저 녀석 몸에서 빛이 쏘아져 나오지 뭐냐. 난 말로만 들었지, 진짜 그렇게 번쩍거리는 줄은 몰랐지. 눈 뜨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과장스레 한참을 떠든 홍만기는 간신히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되어서 정대식이가 완전 로또를 맞았다 이거 아냐. 이제 우리랑은 다른 사람이라고. 지금은 헌터야."

그러자 한철민이 입을 쩍 벌렸다.

"진짜야? 헌터라고? 정대식이 네가?"

한철민의 질문에 정대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세상에!"

통 못 믿어 하던 한철민은 새삼스레 정대식을 훑어보았다.

"어쩐지 오늘 너 옷차림이 평소랑 다르다 했다. 너 같은 노랑이가 이상하게 근사하게 입었다 싶었더니만...... 이야, 완전 그럴싸하네. 진짜 헌터 같아 보여."

한철민과 홍만기가 호들갑 떠는 걸 보고 정대식은 머쓱해 뒤통수를 긁었다.

지나치게 감탄하는 모습이 부담스럽기는 했으나 그러한 반응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실 놀랄 만도 했다.

짐꾼이던 정대식이 하루아침에 헌터가 되었으니.......

"야, 아무튼 좋겠다. 앞으로 일거리 있으면 우리 좀 찾아 주라."

"그래, 오늘은 딴 일 있어서 무리지만 말이야."

축하의 말을 건네던 두 녀석은 뒤늦게 자신들의 일거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고 인사를 건네 왔다.

"우리 늦겠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돈 잘 벌면 술이나 한잔 사라!"

정대식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조만간 연락하라는 한마디를 남겨 놓고 발길을 옮겼다.

전이었더라면 정대식도 그들과 함께 가야 했겠지만, 오늘은 방향이 달랐다.

그는 줄이 길게 늘어선 인력 사무소를 지나쳐, 곧장 던전 입구로 향했다.

* * *

던전 입구에는 마치 지하철역이나 관광지처럼 커다랗게 'S7D'라고 안내 표지판이 서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외에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던전이라는 건 엄밀히 말해 '입구'였다.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문과 같은 것이다. 입구를 통과하면 지구 환경과는 적잖이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지상, 혹은 지하로 이어져 있는 복잡한 길과 수많은 방들. 영락없이 게임 속 던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게임과는 달리,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현실감이 넘쳤다.

S7던전 1층은 완전히 시장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S7던전이 워낙 유명한 곳인 탓에, 어떤 신비감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여기저기 게시판이 잔뜩 늘어서 있었고, 이런저런 용건이 있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던전에 들어가는 헌터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꾼에서부터, 직거래를 위해 나온 헌터들, 간단히 무기를 손봐 주거나 보호 마법을 걸어 주려는 대장장이나 마법사에 이르기까지.

그 인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 헌터들이었다.

대부분은 막공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막공이란 정공이라 불리는 정식 공격대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말 그대로 필요나 목적에 의해 그때그때 팀을 꾸리는 걸 뜻한다. 보통 이런 막공은 구성이 엉망이었다.

힐러나 버퍼의 경우는 막공에 낄 이유가 없었다. 정공에서 모셔 가는 관계로 이런 데선 구경하기가 힘들다.

그런고로, 막공은 대부분 딜러였다. 직종은 조금씩 달라도 다 원딜 아니면 근딜이었다.

그들은 보통 정공에서의 모집을 노린다. 간혹 정공에서 목표로 한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 힘을 아끼느라 방패막이, 혹은 잔챙이 처리용으로 딜러를 왕창 데려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끼면 위험 부담은 다소 있을지언정 보수를 따로 쳐 받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좋은 경험을 쌓을 수도 있는 관계로 다들 그 자리를 원했다. 재수가 좋아서 대박이 터지는 경우, 뜻하지 않은 부수입을 얻을 수도 있었다.

실력 발휘를 잘하면 정공에 스카우트 기회도 얻는다.

그러나 그런 자리는 흔치 않았다. 설령 그런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정대식과 같은 초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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