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현질 전사
-1권 8화
어안이 벙벙해하는 그들 앞으로 또 다른 크와트들이 몰려왔다.
그러자 강민혁이 경고의 말을 외쳤다.
"또 온다, 정신 차려!"
근딜들이 태세를 가다듬고 크와트에게 돌격했다.
그때쯤엔 정대식도 좀 여유가 생겼다.
쓸 수 있는 마력량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그는 아까처럼 무작정 총을 갈겨 대지는 않았다.
침착하게 때를 기다렸다가 근딜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하거나, 그들을 무시하고 이쪽으로 달려드는 놈들만 골라서 쐈다.
그러다 보니 전열에 틈이 없었다.
파티원들은 제자리에 딱 버티고 서서 몰려오는 크와트들을 족족 쓰러트렸다.
그러고 났더니만 어느새 크와트가 다 사라졌다.
한바탕 일전이 끝난 것이다.
그러기가 무섭게 용대형이 정대식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크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정대식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이제 보니 실력이 대단한데? 크와트를 한 방에 쓰러트리다니!"
그 옆에서 기철민이 몹시 의심스런 표정을 하고 물었다.
"너, 진짜 초보 맞아? 사실은 아니지?"
그러는 말에 김준석이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도무지 8등급 헌터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그 정도 실력이면 7등급하고 맞먹는다고."
신금주와 강민혁도 질세라 말을 보탰다.
"크와트가 아무리 10등급 최저 수준의 몬스터라지만, 이렇게 쉽게 잡을 정도면 준석이 말이 맞아. 7등급 헌터라고 봐야지."
"솔직히 말해도 돼. 굳이 초보라고 말한 이유가 뭐야?"
정대식은 약간 당황해 서 있었다.
사실 그도 몹시 놀랐다.
강화 스킬 한 번 썼을 뿐인데 공격력이 대폭 상승했던 것이다.
정확히 모르긴 해도 보통의 수준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대로 7등급 수준은 되어야 이 정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므로, 그는 얼떨떨해하며 말했다.
"거짓말을 한 건 아냐. 정말로 사냥은 오늘이 처음이야."
"그럼 무기가 좋은 건가? 일반적인 자동 소총으로 보이는데."
기철민은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정대식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냥 어깨만 한 번 으쓱해 보이고 말았다.
그러자 용대형이 기철민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실력이 좋으면 다행한 일이지. 오늘 한 판 거하게 벌어 보자고!"
* * *
정대식은 파티원들과 함께 더 깊은 구역까지 들어가서 사냥을 했다.
기분이 좋아진 용대형이 마력 보충제까지 건네준 덕분에, 그걸 마시고 크와트 출몰지를 거의 휩쓸고 다녔다.
덕분에 짐꾼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엄청난 수의 크와트를 실어 나르느라 트럭 한 대와 사람 몇을 더 불러야 했다.
사냥 시간보다 처리 시간이 더 오래 걸렸으니 오죽하랴!
용대형은 크와트를 트럭째로 브로커에게 넘겼다.
직접 몬스터 부산물 처리소로 가서 처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럼 여러모로 수고가 든다.
별도로 처분을 해야 할 만큼 크와트에게서 가치 있는 아이템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차라리 약간의 수수료를 주고 던전 앞에 항시 대기 중인 브로커에게 넘기는 편이 더 나았다.
브로커가 용대형에게 크와트의 대가를 지불하고, 용대형은 그 돈에서 짐꾼 고용비나 트럭 대여비, 소모된 장비 등등 부대 비용을 제했다.
그리고 약속한 바대로 서로의 몫을 나누었다.
정대식에게 주어진 금액은 800만 원!
원래는 700 얼마였으나 용대형이 오늘 그의 활약을 감안해 800만 원으로 소액을 얹어 주었다.
정대식이 고맙다고 말을 하자 용대형이 징그럽게 윙크를 날리며 그의 등을 퍽퍽 때렸다.
"나야말로 고맙지. 덕분에 썰자팟치고는 괜찮게 벌었어.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같이 일하자고."
정대식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그들과 헤어져 던전을 돌아 나왔다.
시간이 몹시 늦어 지하철이나 버스는 이미 끊겼고, 길거리에는 택시가 전부였다.
그러나 정대식은 택시에 몸을 싣지는 않았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걸었다.
'하루 일당으로 800만 원을 벌다니...... 대단해.'
정대식은 흥분으로 벌렁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자꾸만 씰룩이는 입술을 내리누르고 그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았다.
'짐꾼보다 더 벌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단 하루 만에 짐꾼 시절의 한 달 벌이보다 300만 원 정도를 더 벌었어.'
이대로라면 건물주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니다.
아니, 생각보다 더 가까울지도 몰랐다.
'하루 800만 원이면, 주말 제하고 주 5일만 일해도 한 달 벌이가 1억 6천만 원이잖아! 1년이면 거의 20억에 가까운 연봉이다...... 그 정도면 건물 한 채 정도는 충분히 구할 수 있어.'
한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욕심이 났다.
'......강남에 돈벌이가 괜찮을 만한 주요 건물은 20억 갖곤 모자라지. 20억이면 겨우 아파트 한 채 가격 정도야. 적어도 한, 50억은 있어야 그럴싸한 부동산을 살 수 있어. 거기다 한강 조망 아파트, 외제차 한 대, 현금 자산도 두둑이 갖고 있어야 부자답다고 할 수 있지 않나?'
물론, 지금 정대식의 처지로선 20억도 엄청난 돈이다.
그래도 그 돈을 가지고 부자라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기껏해야 중산층 정도?
'한 100억 정도는 있어야 부자로 살 수 있겠지. 그럼 5년을 더 일해야 한다는 건데...... 헌터 세계에서 5년은 너무 길다고.'
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헌터에게는 긴 것이 확실했다.
헌터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직업이다.
그런 일을 5년이나 계속하다니.
억세게 운이 좋지 않고서는 사지 멀쩡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5년씩이나 오늘처럼 사냥하는 것은 무리야. 오늘은 생각 외로 내 스킬이 강해서 쉽게 사냥을 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이 없잖아? 잘못해서 강력한 몬스터라도 맞닥뜨리면 재수 옴 붙는 거지. 헌터는 한 번 다치면 돈이 엄청나게 깨진다고 들었어.'
헌터가 다친다는 말은 몬스터에게 부상을 입는다는 뜻이다.
그건 단순히 타박상이나 골절상을 입는 것과는 달랐다.
살갗이 찢기며 뼈가 으스러진다는 소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이나 질병에 감염된다는 소리였다.
그러한 부상에서 회복하기 위해선 단순히 병원에 드러누워 있는 것만으론 안 된다.
포션을 쓰거나 힐을 받아야 하는 관계로 거액이 필요했다.
그렇게라도 살아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잘못하다간 한 방에 골로 가는 수가 있었으므로 5년 동안 썰자팟을 돌며 돈을 번다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앞으로도 썰자팟을 돌며 돈을 모으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강해져야 해. 최저 등급 몬스터인 크와트 좀 잡았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란 말이야. 다행히 나는 강해지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
정대식이 강해지는 방법은 쉬웠다.
돈을 쓰면 된다.
다름 아닌 현질.
돈을 써서 강해진다!
그것은 그를 각성자로 선택한 신의 의도와도 일맥상통했다.
'다른 사람들은 수많은 경험과 수없는 고비를 넘겨 가며 조금씩 강해지지. 하지만 나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쉽고 빠르게, 앉은 자리에서 강해질 수 있어.'
그제야 조금씩,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의 대단함이 실감났다.
보통 게임에서도 현질을 하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치트키를 쓰는 것처럼 빠른 레벨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데 정대식은 현실에서 그걸 할 수가 있었다.
'단! 내 방법은 돈을 잡아먹는다...... 내 피 같은 돈을 필요로 한단 말이야.'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선 그 돈을 또 써야 한다.
참으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 고민 속에서 정대식은 한숨을 팍 쉬었다.
Chapter 3. 두 번째 사냥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어느새 걸어서 집에 도착해 버렸다.
정대식은 서둘러 집 근처의 ATM기로 가서 통장 정리를 했다.
그러고 나니까 850만 원이라는 잔액이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들여다보며 정대식은 고심했다.
'또다시 현질을 해서 능력치를 올릴 것인가?'
실제로 마력이 17이 되면서 적잖이 능력이 강해졌다.
강화 스킬을 쓰면 공격력이 대폭 상승하는 관계로, 공격력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았다.
더 수준 높은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정공에라도 들어간다면 또 모르지만, 이 정도면 초보자, 썰자팟 정도에서는 충분하다.
하지만 공격력이 강해지고 나니까 이번엔 방어력이 걱정되었다.
정대식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돈!
부자가 되는 것이었으므로 몸을 사려야 했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만큼이나 다치지 않는 것도 중요했으므로 방어력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정대식은 좁아터진 쪽방으로 돌아와 생각을 정리했다.
'좋아, 일단 마력을 20까지 올려놓자. 17은 뭔가 어정쩡하니까. 그 다음에 방어력을 올리자. 사람이 안전하고 봐야 하지 않겠어?'
뭐든 안전이 제일이라고 중얼거리며 그는 마력을 손바닥에 집중했다.
그리고 커서를 띠워 도우미, 즉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이봐."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방어력을 올리려면 어떤 스테이터스를 올려야 하지?"
말풍선 모양의 엔트로피는 신속하게 대답했다.
<체력입니다.>
"흠, 역시. 그럴 것 같았어."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린 정대식은 질문을 연이었다.
"체력을 올리면 정확히 어떤 부분이 좋아지는 거야?"
이번에도 엔트로피는 주저함이 없었다.
<몸의 내구력이 증가하고, 상처의 회복 속도 및 피로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더불어 각종 질병과 독에 대한 저항력이 향상되고, 속성 공격에의 내성도 생겨납니다.>
"전천후 몸빵이 올라간단 말이군?"
그러자 처음으로 엔트로피가 반문을 던져 왔다.
<몸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잘난 척은 있는 대로 다하더니. 겨우 몸빵이란 단어를 몰라?"
정대식이 픽 웃으며 하는 말에 엔트로피는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물론 그냥 말풍선 따위가 무슨 기분이 있겠느냐마는, 정대식이 보기에 그리 여겨졌다.
<제 시스템에 입력되어 있지 않은 단어입니다.>
"됐어, 별로 중요한 말은 아니니까. 그보다, 오늘 잡은 크와트 같은 몬스터의 공격에도 멀쩡하려면 체력이 얼마나 되어야 해?"
정대식은 엔트로피가 몸빵이라는 단어는 몰라도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쉬이 답할 거라고 생각했다.
엔트로피는 도우미이고 이건 사냥에 관련된 내용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엔트로피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정보가 부족하여 알 수 없습니다.>
"뭐? 모른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도우미가 뭐 이래? 너 아는 게 뭐야?"
정대식의 말에 엔트로피는 무감정하게 대꾸했다.
당연히, 정대식의 귀에는 화가 난 것처럼 들렸다.
<해당 정보를 원하신다면 기술을 구입하십시오.>
"기술을 구입하라고? 그거 돈 쓰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놈의 돈, 돈......."
정대식은 툭하면 나오는 돈타령에 투덜거렸다.
이제 겨우 800만 원 벌었는데, 그걸 또 냉큼 쓸 순 없는 일.
이미 마력과 체력을 올리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기에, 쉽게 새로운 기술을 구입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래도 그게 무슨 기술인지 정도는 알고 싶었으므로,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그 기술이란 건 뭔데?"
<해당 몬스터의 정보를 파악하여 수집하는 기술입니다.>
"허, 그거 참 편리하겠네."
짐꾼 생활을 한 덕분에 정대식은 던전 안에 매우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수많은 몬스터가 나오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던전에서 조금만 외진 곳으로 들어가면 별의별 희한한 놈들이 다 튀어나왔다.
그럴 경우,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몬스터가 출몰하기도 했다.
혹은 이름은 알아도 실제로 싸워 본 적은 없는 희귀한 녀석이 출현한다.
그렇게 정체 모를 몬스터와 대적한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