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현질 전사
-1권 9화
대중적인 몬스터의 경우 여러 정보가 공개되어 있었다.
약점이 뭐고, 어떡해야 공략할 수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드러난 정보가 거의 없거나, 전무한 몬스터 같은 경우에는 어떤 종류의 공격을 해 올지 모른다.
더불어 약점이 어딘지도 모르는 관계로 사냥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잘못하다간 어그로 관리도 안 되어 공격대가 몽땅 전멸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매우 중요했다.
값비싼 아이템 못지않은 가치를 지녀 현금으로 거래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비록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몬스터의 정보를 살 수 있다는 건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었다.
그 바람에 정대식은 혹해서 물었다.
"어디 그 기술 좀 자세히 보여 줘 봐."
그러자 엔트로피가 자비 없이 대꾸했다.
<새로운 기술을 확인하기 위해선 상점을 업그레이드하십시오.>
"망할! 또 돈이냐!"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주먹으로 퍽 쳤다.
물론, 홀로그램과 같이 실체가 없었으므로 소용없는 일이었다.
엔트로피의 모습이 잠깐 흐려졌을 뿐.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는 꼴이었다.
괜한 화풀이를 하며 정대식은 화를 냈다.
"정말 너무하네. 돈타령 좀 작작해라."
엔트로피는 대답이 없었다.
아마도 돈 없으면 관두란 뜻 같았다.
그러는 꼴이 꼭 배짱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줄이 길게 늘어선 식당의 주인이 '오늘 준비된 재료가 다 떨어져서 가게 닫습니다'하고 손님들을 쫓아내는 격이라고 해야 하나?
"됐다, 됐어. 어휴."
정대식은 손을 홰홰 저어 보이고는 애당초 목적한 일이나 하려고 했다.
그는 마력을 20으로 올리기 위해 상점 창을 열고 화면을 전환했다.
그리고 마력을 구입하려다 눈을 크게 떴다.
"어우 젠장! 마력 하나 올리는 데 뭔 돈이 이렇게나 들어?"
마력을 17에서 18로 올리는데 800만 원이 들었다.
18에서 19로 올리는 데는 또 900만 원이 필요했다.
1포인트를 구입할 때마다 가격이 계속 100만 원씩 뛰어오르니 답이 없었다.
정말이지.......
존나게 비쌌다!
'니미럴...... 이걸 안 살 수도 없고.......'
정대식은 속으로 욕설을 대판 구시렁거리며 일단은 마력을 18로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니까 잔고가 또 50만 원가량으로 떨어졌다.
'벌면 뭐 하냐, 쓰는 건 순식간이네.'
정대식은 눈 깜박할 사이에 줄어 버린 잔액을 바라보며 한숨 쉬었다.
'현질 능력으로 다른 헌터들보다 쉽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 기세라면 전혀 안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잘못하면 돈 버는 속도보다 쓰는 속도가 더 빠르게 생겼다.
'참 여러모로 대단하다, 대단해.'
정대식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상점 창을 닫고 엔트로피도 돌려보낸 뒤 잠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잠자리라고 해도 낡아 빠진 이불 한 장 깔아 놓았을 뿐이다.
주위엔 빨랫감과 쓰레기가 널려 있어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었다.
그 가운데 누워 정대식은 심란해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까,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사냥이다.
'그래, 빚 안 지고 적자 안 보는 게 어디냐. 최소한 본전치기는 한 거잖아.'
돈은 이미 썼고, 남은 건 포인트다.
그 포인트가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올려 조금쯤은 강해졌을 테니, 사냥을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또 돈을 번다.
수익이 남을 때까지.......
부자가 될 때까지!
벌고, 또 버는 거라고 다짐하며 정대식은 쉰내가 나는 이불을 여며 덮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썰자팟을 또 가야겠군.......'
* * *
다음 날.
정대식은 곧장 썰자팟을 구했다.
엄밀히 말해 이번에는 썰자팟이 아닌, 제대로 목표가 잡힌 막공이었다.
-'지옥개 레이드 파티원 구함'
한창 여기저기 게시판들을 둘러보며 참가할 만한 막공을 찾던 중.
위와 같은 제목으로 새 글이 올라왔다.
별생각 없이 그 글을 클릭해 본 정대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탱커에다 힐러까지 있다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번개와 같은 속도로 선점 댓글부터 달아 놓았다.
그러고 나서야 어느 포지션을 어떻게 구하고 있는지를 살폈다.
다행히도 원딜을 구하는 글이라 정대식은 자신의 댓글을 수정했다.
-7등급 원딜입니다. 지원 가능할까요?
곧 게시글 제목이 바뀌었다.
-'지옥개 레이드 파티원 구함-협의 중'
그러기가 무섭게 쪽지가 날아왔다.
-7등급이라고요?
정대식은 재빨리 손가락을 놀렸다.
-예. 사격수고요, 원딜입니다.
-좋아요, 지옥개는 사냥해 본 경험 있으세요?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만 사냥하는 걸 본 적은 있습니다.
-그럼 되겠네요. 내일 아침 9시까지 S23던전으로 오실 수 있죠? 차편 없으시면 8시에 서울역에서 픽업 가능합니다.
-픽업 부탁드릴게요.
-늦으시면 안 됩니다. 8시 넘어가면 서울역 앞에서 바로 다른 원딜 구해 갈 겁니다. 아시다시피 원딜은 구하기 어렵지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주의하죠.
서울역은 지방으로 나가는 헌터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
대부분 그곳에서 조인해서 던전까지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덕분에 딜러 정도는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었다.
막공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툭하면 펑크가 나곤 했다.
그럼 갈 곳 없어진 헌터들끼리 하루 공치느니, 푼돈이라도 벌자고 즉석에서 썰자팟을 꾸리기도 했다.
물론 정대식은 그런 헌터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뺏길 맘이 없었다.
짐꾼으로 일해 본 그는 힐러가 포함된 막공이란 게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대식이 꿰찬 자리에 줄줄이 댓글이 달렸다.
선착순에 늦어 버린 사람들부터, 이미 틀렸다는 사실을 알면서 괜히 아쉬워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정대식이 우연히 그 게시글을 제일 처음 보았기에 망정이지.
선점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탱커에 힐러까지 있는 막공이라면 죽을 일은 없겠군.'
내심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정대식은 한 박자 뒤늦게 걱정을 했다.
'그나저나, 지옥개면 꽤 강한 몬스터 아냐?'
예전에 한 번 지옥개를 잡으러 가는 파티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짐꾼이라서 그냥 사냥터 바깥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실력이 시원찮은 놈들이라 지옥개를 달고 도망쳐 나왔다.
거기에 다른 파티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무도 없었더라면 헌터들은 물론이거니와 정대식과 같은 짐꾼, 운전수까지 몽땅 죽을 뻔했다.
덕분에 지옥개에 대한 기억이 상당히 안 좋았다.
한동안은 길에 지나가는 큰 개만 봐도 움찔할 정도였다.
'힐러 있는 팀이라고 해서 다짜고짜 참가를 하기는 했는데.'
정대식은 괜한 불안감에 그냥 쉬운 썰자팟으로 옮길까 말까 고민했다.
딜러는 구하기가 쉬우니까 자신이 이제 와 관둔다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건 기회다.
위험 부담이 클수록 수입이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돈을 많이 벌어야지, 상점도 업데이트를 하고 새 기술을 살 수도 있다.
정대식은 입맛을 쩝쩝 다시다 결심을 굳혔다.
'그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헌터로 돈을 벌려면 마냥 안전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 어느 정도 위험은 각오해야 한다고. 그래도 힐러가 있는 파티잖아? 재수가 좋았어.'
정대식은 망설이던 맘을 접어 버리고 내일을 기다렸다.
* * *
"정대식 씨?"
"예, 제가 정대식입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8시에 서울역으로 간 정대식은 거기에서 파티와 조인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탱커이자 파티장인 곽이석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우리 파티원들이고요."
확실히 이번 파티에 낀 건 운이 좋았다.
구성원이 상당히 안정적이라 파티장을 포함해 탱커가 둘이나 됐다.
거기다 힐러 한 명에 나를 포함한 원딜이 세 명이었다.
'우와, 힐러다.'
정대식은 원딜들 소개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힐러를 뚫어지라 봤다.
힐러는 아직 어려 보이는 여자애였다.
사냥 경험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으로, 벌써부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덕분에 어젯밤 가라앉혔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제 몫을 제대로 해내는 힐러의 존재는 어떤 헌터와도 비교할 수 없다.
일단 힐러가 있으면 던전에서 비명횡사할 확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거기다 힐러의 능력 자체가 버퍼의 기능도 있어, 쉽게 지치거나 다치지 않는다.
당연히 사냥도 안정적이고 더 많은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관계로, 수입이 상승한다.
하지만 제 역할을 못하는 힐러는 상당히 성가셨다.
힐러들은 대부분이 전투 능력이 전무했다.
힐을 쓰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므로 몬스터에게 한 방만 맞아도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힐러를 신경 써 보호해야 한다.
그만큼 전력이 줄어든다는 말이었으므로 탱커나 딜러들의 부담이 늘어난다.
거기다 파티를 꾸릴 때 힐러가 껴 있으면 아무래도 거기에 의지를 하게 된다.
힐러의 능력을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짜게 되므로, 도중에 잘못해서 힐러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 피해가 엄청나게 커진다.
그래서 헌터들 사이에서는 무능한 힐러를 데리고 사냥을 가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들도 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막공에는 힐러가 없었다.
덕분에 힐러가 있다고 좋아했던 걸 취소하고픈 기분이었다.
'하긴, 초보가 아니면 힐러가 왜 이런 막공에 오겠어. 당연히 예상했어야 하는 일이지.'
정대식은 장보람이라는 힐러에게서 눈을 돌려 원딜 둘을 살펴보았다.
'다른 원딜 둘은 나랑 같은 사격수가 하나, 궁수가 하나인가. 으음, 마법사가 없다는 게 좀 걸리는데.'
마법사가 없다는 건 버퍼가 없다는 소리라 그 또한 염려스러웠다.
'그래도 탱커들은 노련해 뵈는군.'
파티장이라는 곽이석은 나이가 제법 되어 보였다.
30대 초반이라 경력이 상당할 것 같아서 신뢰가 갔고, 다른 탱커인 문유범은 체격이 대단했다. 누가 봐도 나 탱커요, 라고 써 붙여 놓은 정도라 안심이 됐다.
'나 역시 별 볼 일 없는 원딜이잖아. 이제 겨우 두 번째 사냥인데 남들 평가할 처지가 아니지.'
정대식은 자신의 주제를 자각하고 파티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곧장 문유범이 갖고 온 트럭에 올라타 S23던전으로 갔다.
S23던전은 서울 근교 양수리에 자리하고 있는 던전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지옥쥐, 지옥개, 지옥마견, 지옥마수 같은 비교적 대중적인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라 제법 유명했다.
사람에 따라서 곤충, 파충류계 몬스터가 나오는 걸 못 견뎌 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곤충이나 파충류는 그냥 봐도 징그러운데 그 크기까지 커지면 매우 혐오스러웠다.
그럼 사냥에까지 지장을 받는 관계로, 막공들은 기피하는 편이었다.
아무튼 간에, S23던전 앞에 도착해서 곽이석은 인력 사무소에서 짐꾼을 몇 명 고용했다.
그리고 장비를 점검하고 도시락을 사서 배를 든든히 채웠다.
식사를 하면서 수익 분배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번에 참여했던 썰자팟과 같았다.
파티장이 좀 더 가져가고 나머지는 공평하게 배분하기로 결정이 됐다.
힐러가 있으면 보통 파티장만큼이나 가져가는 편인데, 그런 말이 없었다.
그러는 걸로 봐서는 역시, 초보인 게 분명했다.
정대식은 새파랗게 질려서 음식도 제대로 못 넘기는 장보람을 염려스레 바라봤다.
다른 파티원들도 그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입 밖에 꺼내어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런 말이 장보람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까 봐 다들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