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현질 전사
-1권 10화
원래 초보일수록 긴장은 독이 된다.
잔뜩 굳어 있으면 잘할 일도 못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 의미에서 정대식은 진정한 초보라 할 수 없었다.
겨우 두 번째 사냥이라고 생각키 어려울 만큼 태연했다.
'헌터가 되어 짐꾼 생활이 도움 될 줄이야.'
사람 일은 참,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도시락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과 함께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이번엔 트럭을 타고 들어가지 않았다.
규모가 작아서 입구에서부터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지옥개가 출몰하는 구역은 지하 2층이다. 가는 도중에 지옥쥐나 지옥두더쥐가 튀어나오니까 준비해."
곽이석의 손짓에 따라서 지하로 이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곽이석의 말대로 지하 1층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지옥쥐가 우르르 튀어나왔다.
"찍찍찍찍!"
"찌이익! 찌직!"
놈들은 고양이만 한 크기로 보통의 몬스터보다는 작은 크기였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일반적인 쥐보다는 크다.
물리면 부상이 장난이 아닌 관계로 다들 일제히 지옥쥐를 소탕했다.
놈들을 죽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자꾸만 진로 방해가 되어 상당히 성가셨다.
그러자 힐러인 장보람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잠시만 주의를 끌어 주시면......."
그 말에 곽이석이 물었다.
"무슨 계획이 있나?"
장보람이 고개를 끄덕여, 잠시 원딜들이 공격을 중단했다.
그동안 탱커들이 어그로를 끌어 지옥쥐들이 그들에게로 우르르 몰렸다.
그 광경을 보고 장보람이 두 손을 펼치고 소리쳤다.
"라이프 써킹!"
화아아아악!
지옥쥐들에게서 어떤 기운이 장보람에게로 흘러들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지옥쥐들이 기운을 잃고 우르르 쓰러졌다.
죽은 놈들이 태반이고 그나마 살아 있는 놈들도 도망가지 못하고 버르적거렸다.
아마도 생명력을 떨어트리는 능력인 것 같았다.
단순한 힐러를 넘어선, 실로 대단한 스킬이라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문제는.......
"으윽!"
"뭐야, 기운 빠져!"
그놈의 스킬이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지옥쥐뿐만 아니라 파티원들의 생명력까지 빨려 나와 다들 휘청거렸다.
생명력이 약한 지옥쥐가 상대라, 놈들이 대부분 죽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생명력이 보다 강한 몬스터였더라면 오히려 파티원들이 더 타격을 입었을 터였다.
"이봐, 우리들한테까지 이럼 어떡해?"
곽이석의 나무람에 장보람이 눈물을 글썽했다.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제가 아직 범위 지정이 잘 안 돼서......."
"대단한 능력이긴 한데, 아직 미숙해서 실전에 쓰기엔 좀 그러네. 지옥개와 상대할 땐 자제해 줘."
"예에, 알겠습니다."
장보람은 애써 힐을 써서 파티원들의 상태를 회복시켜 놓았다.
파티원들의 생명력은 원래대로 돌아왔을지언정, 괜히 마력만 낭비한 꼴이 되어 버렸다.
이러니 무능한 힐러가 없느니만 못하다는 말을 듣는 거라고 정대식은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지옥쥐들이 거의 다 죽어 버린 덕분에 쉽게 통로를 지나칠 수가 있었다.
다음 길목에서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그도 오래지 않았다.
마침내 지옥개가 있는 지하 2층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모퉁이를 돌아가기 바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르르르!"
"지옥개다!"
곽이석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그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지옥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와아앙!"
전신이 암흑에서 기어 올라온 것처럼 새카만 지옥개는 보통 진돗개보다 한 세 배쯤 덩치가 컸다.
말이 세 배지 어지간한 사람보다 더 크다는 말이 된다.
거기에 머리에 마치 악마와도 같은 뿔을 달고 있었다.
지옥개라는 명칭에 걸맞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빨은 톱날처럼 날카롭고 개 주제에 용처럼 불을 내뿜는다.
이놈 역시도 나타나기 무섭게 불부터 토해 냈다.
콰르르르르르!
"피해!"
곽이석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모두가 일제히 양옆으로 흩어졌다.
원딜들이 힐러를 챙겨 뒤로 빠질 동안 탱커 둘이 불을 쏟아 내면서 트림을 하는 지옥개 앞으로 나섰다.
"망할 자식아, 여기다!"
탱커만의 특별한 능력!
몬스터의 주의를 끄는 능력, 바로 어그로다.
몬스터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건만.
지옥개의 고개가 곽이석 쪽으로 홱 돌아갔다.
모르긴 몰라도 곽이석의 목소리에 마치 피어와 같이 특별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모양이다.
보아하니 파티장인 곽이석이 다른 탱커인 문유범보다 능력이 더 강했다.
문유범도 어엿한 탱커인데 지옥개의 적의가 몽땅 곽이석에게로 쏠렸다.
"크아아아앙!"
지옥개가 울부짖으며 곽이석에게 달려 들어갔다.
곽이석이 등에 찬 원방패를 꺼내 들어 지옥개의 이빨을 막아 냈다.
그 방패를 지옥개가 사정없이 물어뜯는 사이 원딜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했다.
퓨부부부붓!
마력살이 날아가고 마력탄이 작렬했다.
투다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당!
정대식도 공격에 가세했다.
그는 일찌감치 자동 소총에 강화 기능을 걸어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가 내쏜 마력탄이 번쩍번쩍 빛을 뿜으며 날아가 지옥개의 옆구리에 구멍을 내놓았다.
"캐앵!"
아픈지 비명을 내뱉은 지옥개가 벌건 눈을 이쪽으로 휙 돌렸다.
그 시선에 정대식이 잡히고, 곽이석이 소리를 질렀다.
"어딜 보는 거야!"
곽이석이 필사적으로 어그로를 끌려고 했으나, 왜인지 먹히질 않았다.
문유범까지 가세해 지옥개의 주의를 끌어 보려는 데도 놈이 펄쩍 뛰어 정대식 쪽으로 달려왔다.
덩달아 정대식 주변에 있던 원딜들이 식겁했다.
"으, 으아아악!"
"이쪽으로 온다!"
곽이석과 문유범이 그 광경을 보고 사색이 됐다.
"아, 안 돼!"
"어그로 잡아야 해!"
"빌어먹을, 왜 안 되는 거야!"
순식간에 전열이 흩어지고, 지옥개가 정대식을 향해 불을 토해 냈다.
콰르르르르르!
"우와아아아!"
정대식은 황급히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깨달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내 공격력이 지나치게 강해서 어그로가 안 잡히는 거로구나. 강화 스킬 때문이야!'
동시에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도 떠올랐다.
'강화 스킬은 어디에나 사용할 수 있는 거잖아? 다른 사람...... 탱커에게 이 스킬을 사용한다면!'
그러나 정대식을 쫓아온 지옥개가 아귀와도 같은 주둥이를 쩍 벌리고 있었다.
그 주둥이에 박힌 무시무시한 이빨 사이로 불똥이 질질 흘렀다.
한 번 물렸다간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입을 터!
'에라, 이판사판이다!'
정대식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발목을 접질릴 뻔하며 몸을 앞으로 굴렸다.
언뜻 보기엔 완전히 지옥개의 주둥아리로 뛰어드는 판국이었다.
그러나 정대식은 놈의 턱을 지나쳐 발 사이로 몸을 굴려 재빨리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탱커 곽이석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강화!"
정대식의 마력이 곽이석에게 흘러들어 가고, 그가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휙!
지옥개의 고개가 그에게로 돌아갔다.
어그로가 끌린 것이다.
"됐어!"
정대식은 곽이석을 뒤따라온 문유범에게도 강화를 썼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지옥개를 붙들고 있을 동안, 지옥개에게 다시금 공격을 가했다.
투다다다다다!
어그로가 제대로 잡혀 지옥개는 정대식의 공격에도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쉽사리 쓰러질 기세도 아니었다.
근딜이 없다 보니 공격력이 부족해 끝장이 나질 않았다.
결국 정대식은 어그로가 흩어질 것을 각오하고 원딜들에게도 강화를 썼다.
그러자 원딜들의 공격력이 배가 되었다.
파바바바바밧!
마력이 빗발치며 지옥개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거기가 퍽, 하고 터져 오르며 지옥개의 내장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걸 보고 원딜들이 끔쩍 놀랐다.
"우왓!"
"와아!"
본인들의 공격력이라 믿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다.
정대식도 마찬가지로 쉬지 않고 자동 소총을 후려갈겼고, 마침내 지옥개가 입에 피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크르르르륵!"
쿠웅!
지옥개가 검은 혀를 빼물고 축 쓰러지자 환호성이 울렸다.
"해냈다!"
"죽었어!"
다들 승리를 자축하다가 일제히 정대식에게로 모여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방금 그거, 버퍼 아니었나?"
"당신, 원딜이라더니 버퍼 능력도 있었어? 굉장한데?"
"왜 진즉 말 안 했어? 깜짝 놀랐잖아!"
사람들의 반응에 정대식은 좀 얼떨떨했다.
그 가운데 곽이석이 이제야 어그로가 흩어졌던 이유를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지옥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고 했어."
"미안합니다. 아직 제가 서툴러서요."
"괜찮아, 결과적으로는 잘됐으니까. 우리 탱커한테 버퍼를 걸어 줘서 어그로가 제대로 끌렸잖아."
곽이석은 태연하게 말했으나 정대식의 실수가 맞았다.
진즉에 강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어야 그것까지 고려해 작전을 짰을 테다.
정대식이 짐꾼으로의 경력이 있어 지옥개의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빨리 대처를 했기에 망정이지, 허술하게 굴었으면 큰일이 났을지도 모른다.
내심 식은땀이 흘렀으나 정대식을 책망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 정도 돌발 상황쯤은 다들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힐러에, 버퍼까지 있으니 오늘 사냥을 이걸로 끝마치긴 아쉬운 걸? 한 두세 마리쯤은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어때?"
곽이석의 말에 문유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장보람이나 다른 원딜들도 긍정의 기색을 드러냈다.
탱커 둘에 힐러, 버퍼까지 있으니 구성이 안정적이라 한몫 크게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였다.
"좋아! 그럼 사냥을 계속한다!"
* * *
기세가 오른 막공은 그 후로 지옥개를 두 마리나 더 잡았다.
이렇다 할 사고도 없었고 장보람을 포함해 모든 구성원이 제 역할을 잘 해냈다.
결국, 모든 일이 끝마치고 났을 때는 상당한 수입이 남았다.
곽이석이 예상치 못하게 버퍼 역할을 해 준 정대식에게 수익을 더 얹어 준 덕분이기도 했다.
'무려 1,500만 원! 이게 내 하루 수입이라니!'
정대식은 입이 귀에 걸리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많이 벌어도 700~800 수준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두 배를 더 번 것이다.
'역시 썰자팟보다 레이드가 더 돈이 되기는 하는구나.'
내심 감탄하고 있던 정대식은 곽이석이 어깨를 두드리며 하는 말에 씩 웃어 보였다.
"오늘 원딜에 버퍼 역할까지 하느라 수고했어. 괜찮으면 다음에 또 같이 일하자고, 응?"
그런데 그때 장보람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왜 그러지?"
곽이석이 돌아보자 장보람이 쭈뼛거리고 눈치를 보면서도 불만을 꺼냈다.
"저는 힐러인데, 왜 1,200이고 저분은 1,500인가요?"
곽이석은 그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알다시피 이 사람이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했으니까 그렇지. 그나마 넌 힐러라 내가 100 더 얹어 준건데?"
"그...... 그래도 전 힐러라고요. 당연히 제 수입이 더 많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이봐, 너 오늘이 첫 사냥이잖아? 첫 사냥이 이렇게 매끄럽긴 어려워. 다 이 사람 덕분이라고. 그럼 좋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해야지.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돈이 전부예요."
"응?"
곽이석의 반문에 장보람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돈이 전부라고요. 전 사냥 오래할 마음 없어요. 억을 모으는 대로 헌터 일은 관둘 거예요. 그래서 작은 치료소나 개원할 작정이라고요."
그녀는 몹시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돈이 아니라면 힐러가 뭐 하러 이런 막공엘 나와요? 정공으로 가지......."
곽이석은 뭐라 할 말이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장보람도 길게 말하기 싫은지 그냥 고개를 꾸벅해 보이고 사라졌다.
그러자 곽이석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저럼 안 되는데."
"......뭐가 말입니까?"
어떻게 보면 정대식도 돈을 목적으로 사냥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렇기에 곽이석이 뭐가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