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현질 전사
-1권 13화
지옥마견이 석우원에게 분노를 불태우며 불을 내쏘았다.
콰아아아아!
놈의 입 속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고 정대식은 이번엔 석우원을 강화시켜 주었다.
"강화!"
그러자 놀랍게도 석우원이 지옥마견의 입에서 튀어나온 불덩이를 두 손으로 쳐냈다.
그리고는 지옥마견의 혓바닥을 낚아채 길게 늘어뜨렸다.
혀를 붙잡힌 지옥마견은 혀가 끊어질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놈이 우물쭈물하는 새 근딜들의 공세가 강해졌다.
결국엔 지옥마견의 약점인 옆구리가 뚫리고 말았다.
벌겋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내장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근딜 한 명이 용감하게도 상반신을 놈의 몸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런 뒤 지옥마견의 심장을 찾아내어 아예 터트려 버렸다.
"크아아앗!"
지옥마견은 단말마를 내뱉고 죽어 버렸다.
연이은 환호.
"워후!"
"굉장했어!"
"지옥마견쯤은 이제 껌인데?"
"이러다 우리 케르베로스라도 잡으러 가야 하는 거 아냐?"
그때였다.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것일까.
다들 들떠 하는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어딘가에서 긴 울음소리가 들렸다.
워우우우우우우우---------------------.
심장을 섬뜩하게 하는 소리.
소름이 쭉 끼치는 기분에 수선을 피우던 파티원들이 일제히 동작을 그치고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정적.
얼어붙은 것 같은 침묵 끝에 누군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뭐야?"
곧 석우원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근처에 지옥마견이 한 마리 더 있나?"
석우원은 그리 말했으나 이 던전에 짐꾼으로 자주 와 봤던 정대식의 의견은 달랐다.
지옥마견이라기에는 울음소리가 지나치게 컸다.
흡사 수십 마리 늑대가 한꺼번에 우는 것 같은 하울링이었다.
정대식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불길한 공기가 순식간에 번져 나가고.......
석우원이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일단 경계 태세로 전환한다...... 정대식이 날 따라와. 주변을 돌아보고 오겠어. 나머지는 여기에서 만에 하나를 대비해 전투 모드로 있으라고."
정대식은 자동 소총을 곧추세우고 그를 따라가게 됐다.
정대식은 조심스레 탱커와 함께 발길을 옮겼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S23D의 C3층 D섹션이었다.
던전은 보통 통로와 동공과 같은 너른 방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층수에 따라 몬스터의 종류가 나뉘는 편이었는데, 구역에 따라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에게는 영역이란 게 있어서, 다른 구역으로 넘어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한 구역의 몬스터를 일소하고 나면 다른 구역의 몬스터가 나타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곳은 던전이다.
인간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었으므로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
지옥마견을 잡았다고 해서 다른 몬스터가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었으므로, 석우원은 주의 깊게 통로로 나아갔다.
그리고 D섹션 주변으로 뻗어 있는 통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별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그러나 정대식은 여전히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뒤통수를 잡아끌었다.
그렇다고 근거도 없이 D섹션을 벗어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만 돌아가자고 말하는 석우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르르르르르르.......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공기의 진동이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전달했다.
곧, 팔뚝에 소름이 돋아 오르고 정대식은 고함을 질렀다.
"피해!"
그러기가 무섭게 모퉁이에서 갑자기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콰르르르르르!
"우와아악!"
석우원과 정대식이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고, 덕분에 불길은 두 사람을 빗나갔다.
하지만 좋아할 수가 없는 게, 모퉁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씩, 커다랗고 시커먼 머리통이 뻗어 나오며 큼지막한 앞발이 '쿵!' 하고 땅을 짚었다.
서서히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몬스터를 발견하고 석우원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케, 케르베로스......?"
머리가 셋이 달리고 덩치가 범상치 않은 걸로 봐서는 석우원의 짐작이 맞는 것 같았다.
정대식이 알기로 지옥개, 지옥마견의 진화 끝판왕인 머리 셋 달린 괴수, 케르베로스는 이 던전의 지하 5층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런 놈이 왜 지하 3층인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그걸 궁금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후...... 후퇴! 일단 후퇴해야 해!"
혼자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고 판단한 석우원이 냅다 뛰기 시작했다.
정대식도 마찬가지 의견이었기에 따라서 달렸다.
그러나 파티원들에게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상대는 5급 헌터들도 상대하기 벅차다고 말해지는 몬스터인 것이다!
"크아아아아앙!"
케르베로스가 세 개의 머리로 한꺼번에 울부짖으며 달아나는 두 사람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놈의 덩치가 어찌나 큰지 좁은 통로가 꽉 찰 지경이었다.
그게 뜻밖에도 호재로 작용했다.
D섹션 입구에서 통로가 좁아지자 놈의 몸이 딱 껴 버렸던 것이다.
거기에서 케르베로스가 세 개나 되는 입을 쩍 벌리며 아우성을 쳤다.
"크르르르르르르!"
쿠르릉!
놈이 몸을 비틀자 통로가 부서지는 게 보였다.
케르베로스가 거기에 꼈다 하더라도 금세 통로를 부수고 뛰어올 게 뻔해 보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오히려 헌터들이 섹션에 갇혀 밖으로 못 나가는 수가 있었으므로,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데?"
마침 안에서 난리를 감지하고 파티원들이 달려 나왔다.
그들을 보고 석우원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케르베로스가 나왔다! 지금은 통로에 꼈지만 곧 이쪽으로 올 거야!"
그러자 다른 파티원들의 얼굴이 백짓장으로 변했다.
"뭐? 케르베로스라고?"
"말도 안 돼!"
"그건 지하 5층에나 있는 거 아냐?"
"그게 왜 여기 있는 건데!"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가운데 통로가 우르르, 울렸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후두두, 떨어지고 정신을 차린 석우원이 황급히 전열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살아 나가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각자 침착하고 포지션을 지켜!"
그러나 암만 침착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석우원의 포지션인 탱커 하나에 근딜이 둘, 정대식을 포함한 원딜이 셋인 전형적인 막공.
힐러가 없는 관계로 부상이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누군가는 비상용 포션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빈약한 파티 구성으로는 누구 하나가 죽거나 크게 다쳐 제 역할을 못하게 될 경우, 공격대로서의 기능을 못하게 된다.
전열이 무너져 결국 각자가 케르베로스를 상대하는 꼴이 되어 버릴 게 뻔했다.
그럼 고만고만한 실력의 헌터들로선 곧 죽을 목숨이었다.
정대식이라고 예외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버퍼에 원딜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케르베로스를 쓰러트릴 정도는 아니었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지금 즉시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가 있었다.
그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정대식의 능력은 강화!
만약 마력을 더 높여 강화 스킬의 효력이 높아진다면 다른 파티원들의 능력까지도 향상시킬 수가 있었다.
그리 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지만 돈이다.
'빌어먹을! 이제야 돈을 좀 모아 보나 싶었더니만...... 또 현질을 해야 하는 거야?'
겨우 1억 3천이라는 돈을 벌어 두었는데, 그걸 쓰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속이 쓰렸다.
덕분에 위기가 턱 끝까지 닥친 지금 상황에서도 몹시 주저가 됐다.
'제기랄!'
그러다가 그만 케르베로스가 내쏜 불덩이에 맞아 죽을 뻔했다.
"뭘 하는 거야!"
옆에서 다른 원딜이 자신을 후려쳐 정대식은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그 자리로 파이어볼 같은 커다란 불덩이가 굴러갔다.
하마터면 숯덩이가 될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여기서 돈을 쓰지 않으면 죽는다!
더는 꾸물거릴 수 없다는 생각에 정대식은 소리쳤다.
"엔트로피! 마력을 구입하겠어!"
<얼마나 구입하시겠습니까?>
"어, 얼마나......라고?"
전 같으면 1포인트 1포인트를 신중하게 올렸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했다.
1포인트 찔끔 올린다고 저 괴물을 쳐 죽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 여럿 걸린 상태였다.
어설프게 돈을 아낀답시고 재다간 때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럼 돈을 써 봤자 아무 소용없는 사달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정대식은 위기감에 되는 대로 소리쳤다.
"25...... 마력 수치를 25까지 올리겠어!"
<총 7포인트를 구입하고 9,900만 원을 차감합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정대식은 계산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엔트로피를 붙잡고 산수 놀음을 할 때가 아니었다.
정대식은 케르베로스가 쏟아 낸 불덩이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석우원에게 곧장 강화 스킬을 넣었다.
"강화!"
현재 그의 마력 수치는 25!
공격력으로 따져 보면 250이나 되었다.
막공에서는 보기 힘든, 실로 대단한 마력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 틀렸다는 표정으로 뻗어 있던 석우원이 갑자기 눈에서 불을 뿜었다.
그는 기합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케르베로스의 콧잔등으로 뛰어올랐다.
"으랏차차!"
각반을 두른 주먹으로 콧잔등을 후려치자 케르베로스의 머리 중 하나가 "캥!" 하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다른 머리들의 주의가 몽땅 석우원에게 돌려졌다.
그 틈을 타 정대식은 케르베로스의 불덩이를 피해 몸을 굽히고 있던 근딜과 원딜에게 강화를 뿌렸다.
우우우우웅!
그의 마력이 그들에게 흘러들어 가고, 공포심을 이겨 낸 근딜과 원딜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정대식도 자신의 자동 소총을 강화시켜 마력탄을 쏟아 냈다.
투다다다다다!
"이놈들의 약점은 입이다! 아구창을 집중적으로 노려!"
석우원의 외침에 불길이 넘실거리는 시뻘건 혓바닥으로 공격이 쏟아졌다.
이윽고 한 머리의 혀가 피를 뿌리며 툭 끊어졌다.
혀가 잘리자 몹시 고통스러운지 왼쪽에 붙은 그 머리가 피를 질질 흘리며 축 쳐졌다.
그러자 케르베로스의 몸통이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치우쳤다.
중간에 낀 머리는 석우원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남은 머리 하나로 공격을 집중했다.
투다다다다다!
파아아아아앗!
파바바밧!
투콰아아앙!
온갖 공격이 쏟아져 결국 다른 머리 하나도 두 눈이 몽땅 깨져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남은 건 중앙의 머리 하나뿐!
"다 됐다!"
"공격, 공격해!"
다들 사력을 다해 남은 머리로 공격을 쏟아부었다.
석우원까지 온몸을 날려 불을 내쏘지 못하도록 주둥이를 껴안고 늘어졌다.
그러는 사이 미간으로 공격이 집중되어 마침내 케르베로스의 대가리가 깨졌다.
퍽!
하얗게 드러나 보이는 뇌로 남은 공격을 짜 넣자 이윽고 케르베로스가 쓰러져 버렸다.
처참하게 난도질된 케르베로스가 자빠지자 그제야 전력을 다해 놈을 가로막고 있던 석우원이 바닥에 뻗었다.
그는 케르베로스에게 물리고, 불에 데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부상이 제법 심각했으나 그 와중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헉! 헉! 노, 놈이 쓰러졌나?"
"끝났어, 우리가 해냈다고!"
"죽은 사람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