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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14화 (14/297)

# 14

현질 전사

-1권 14화

다들 불에 그슬리고 여기저기를 다친 상태였다.

하지만 케르베로스를 맞닥뜨리고도 살아남았다.

그 사실에 부상의 고통도 잊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냈지? 꼼짝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석우원이 중얼거리며 하는 말에 원딜이 정대식을 붙들었다.

"정대식, 이 사람이 해냈어! 그 상황에서 강화 스킬로 우리 모두를 도왔다고!"

그제야 석우원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격에 쓰러졌을 때 갑자기 힘이 솟구쳤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군...... 기분 탓인지 아까 버퍼를 받았을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어."

그거야 돈을 무려 1억 원 가까이 써서 현질을 한 덕분이다.

그러나 그걸 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위기 상황이 되니까 젖 먹던 힘까지 다 나오더라고. 그래서 강화 스킬이 잘 먹혔던 모양이야."

"하...... 하하하......."

석우원이 경이와 환희의 웃음을 터트리자 다른 파티원들도 다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야 뒤늦게 각자의 부상을 깨닫고 신음을 흘리거나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석우원이 응급용으로 보이는 포션을 꺼내 돌렸다.

포션이 달랑 한 병뿐이었기에 한 방울씩 마셔 봤자 통증을 덜어 주는 정도밖엔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몸을 추스르기에는 충분했다.

"또 어떤 놈이 나타날지 모르니 일단은 여길 나가자."

* * *

D섹션을 벗어나는 길에 누구라도 마주칠 줄 알았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케르베로스가 이쪽에 출몰했다는 사실을 아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던전 1층으로 올라가자 헌터들이 섣불리 지하로 들어가질 못하고 왁자하게 모여 있었다.

그들은 엉망이 되어 나타난 정대식과 그 파티원들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혹시 안에 케르베로스가 나타났습니까?"

"몇 층에 갔었습니까?"

석우원이 케르베로스와 지하 3층에서 마주쳤다 말을 하니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혀를 차며 말을 보태 왔다.

"아까 지하 5층으로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간 공격대가 된통 당했어요."

"세 명이 죽고 남은 사람들이 도망치다가 지하 3층까지 놈들을 끌고 올라왔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그 공격대는 전원 다 죽었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어찌 살아왔습니까?"

"케르베로스가 다른 데로 갔나요?"

다들 지하 3층으로 사냥 간 막공이 케르베로스를 쓰러트렸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용케 도망쳤다고 생각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석우원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케르베로스라면 죽었습니다. 우리가 쓰러트렸어요."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라고요? 설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케르베로스는 베테랑들이 와도 애 먹는 놈이란 말입니다. 당신들, 막공 아녜요?"

"척 보기에도 별 볼 일 없어 뵈는데......."

그들이 허세를 떤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이 안 믿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석우원이 발끈해 화를 내며 말했다.

"뭣하면 짐꾼들이 케르베로스 사체를 실어 나오는 걸 구경하시죠."

그러나 미리 섭외해 왔던 짐꾼들은 섣불리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안에 케르베로스가 날뛰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내킬 리가 없었다.

석우원이 몇 번이나 케르베로스가 확실히 죽었다고 말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 상황을 보다 못한 정대식이 나섰다.

"내가 직접 인솔하겠습니다. 대가는 세 배! 세 배 드리죠."

세 배라는 말에 일부 짐꾼들이 솔깃해했다.

반면, 고개를 가로젓고 가 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돈이 급한 젊은 짐꾼 서너 명은 남았으므로, 정대식이 그들을 데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 고대로 놓여 있는 케르베로스 사체를 보여 주었다.

"봐요, 확실히 죽었지 않습니까?"

"히야......."

"짐꾼 생활 몇 년에 케르베로스 시체는 첨 보는군."

"진짜 크다, 이걸 어떻게 옮기지?"

정대식은 그들을 진두지휘해 익숙하게 케르베로스 사체를 해체했다.

뼈와 살, 가죽을 분리하고 돈이 될 만한 것만 귀신같이 추려서 수레에 옮겨 실었다.

헌터인 그의 일솜씨를 보고 다른 짐꾼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들 어리둥절해하며 질문을 던져 왔다.

"아니, 헌터 아니십니까? 어찌 그리 짐을 잘 부리죠?"

"짐꾼 저리가라 일을 잘하네요."

그 말에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짐꾼이었으니까요."

"뭐라고요?"

놀라서 반문하는 짐꾼들 틈에서 누구 한 명이 아는 체를 했다.

"맞아! 전에 누가 어느 짐꾼이 각성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정대식이 예전에 짐꾼이었다는 말을 듣고 다들 그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질투와 선망, 동경, 부러움과 질시가 섞인 복잡한 눈길들.

그 시선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으므로 정대식은 더 말하지 않고 케르베로스 사체를 옮겨 나왔다.

사실 인벤토리, 즉 아공간을 쓰면 이 정도쯤은 혼자서도 간편하게 옮길 수 있었다.

굳이 세 배나 되는 돈을 주고 힘들게 짐꾼들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괜한 오해를 살 만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공간에 케르베로스 사체를 집어넣으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관계로, 정대식이 어떤 수작을 부려 수익을 독차지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차라리 다소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남들과 똑같이 짐꾼과 함께 움직이는 편이 낫다.

다른 파티원들이 전부 부상을 입어 헌터 전문 병원으로 옮겨졌으므로, 케르베로스 사체를 처분하는 일은 정대식에게 맡겨졌다.

그는 브로커에게 케르베로스 사체를 넘기고 가격을 꼼꼼하게 쳐 받았다.

이런 일에는 빠삭한 그였으므로 브로커의 수수료까지 깎아 가며 충분한 금액을 정산했다.

'보자, 이런저런 부대 비용을 제하고 각자 수익을 나누고 나면.......'

정대식은 양심껏 자신의 몫을 더 챙겼고, 그 결과.

'......오늘 하루 수입만 1억 5천만 원!'

과연, 지하 5층의 거물 몬스터 답달까.

케르베로스 한 마리를 잡아 올린 수익이 상당했으므로 그만치 정대식의 수입도 엄청났다.

'한 달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 하루 수입이 1억 5천만 원!'

정대식은 남은 금액을 파티장인 석우원에게 입금하고 던전을 벗어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찜질방에 들러 몸을 씻고, 거기에 있는 식당에서 미역국을 한 사발 시켜 먹었다.

그걸 후룩후룩, 들이켜고 있으려니 어쩐지 실감이 안 났다.

'1억 5천이라.'

아까 케르베로스가 나타났을 땐 어찌해야 되나 싶었다.

어렵게 모은 돈을 쓰기 싫어 우물쭈물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1억에 가까운 돈을 써 버리기는 했지만, 다시 1억 5천을 벌어들였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돈에 민감한 정대식은 의혹을 느꼈다.

'어째서 마력을 7포인트 올리는 데 그런 거금이 빠져나간 거지? 이거 뭔가 계산이 안 맞는데?'

그 생각을 떠올리고 정대식은 서둘러 미역국을 후루룩 들이켰다.

그리고 엔트로피와 대화하기 위해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Chapter 5. 딜레마

여관방에 도착하자마자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내가 질문이 있는데 말이야."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가능한 선에서 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성의껏 대답해 준다니 오판 없이 확실하게 말을 해야 할 거야. 아까 내가 구입한 능력치 말인데."

<마력 7포인트 말씀이십니까?>

"그래. 어째서 그 금액이 1억이나 다름없지? 아깐 상황이 급해서 그냥 넘어갔다만, 계산이 안 맞잖아!"

능력치는 1포인트를 구입할 때마다 100만 원씩 가격이 오른다.

종류에 상관없이 무조건, 1포인트 당 100만 원이었다.

그러니 마력이 18인 상태에서 7포인트를 더해 수치를 25까지 올리는 데 필요한 금액은 8,400만 원이어야 했다.

그런데 더 많은 돈이 소비되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혼란한 틈을 타 바가지를 씌우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정대식은 가자미눈을 하고서 엔트로피를 노려보며 그가 할 말을 기다렸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면 당장에 따질 작정이었는데 이게 웬 걸.

엔트로피는 지극히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계산은 맞습니다.>

"어째서? 내 계산으로는 그렇게까진 안 든다고!"

<정대식 님의 계산이 틀린 거겠지요.>

"이봐, 내가 좀 무식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돈이 몇천만 원씩이나 걸린 일에 있어서는 허술하지 않단 말이야. 속이려면 정도껏......."

<정대식 님의 계산이 틀렸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1포인트 당 무조건 100만 원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설, 설마......."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 정대식은 사색이 되어 말했다.

"가격이 더 오른 건 아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엔트로피는 담담히 말했다.

<맞습니다. 1포인트의 가격이 1,000만 원을 넘어갈 시에는 200만 원씩 가격이 상승합니다.>

"뭐?"

정대식은 기가 막혀 소리쳤다.

"그럼 마력 1포인트에 200만 원씩을 더 얹어서 계산을 한 거란 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또 뭔 소리야?"

<1포인트의 가격이 2,000만 원을 넘어갈 시에는 300만 원씩 상승합니다.>

"자, 잠깐만. 그럼 이제부터 2,300만 원, 2,600만 원, 2,900만 원...... 이런 식으로 오른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정대식의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차르르 돌아갔다.

900+1,000+1,200+1,400+1,600+1,800+2,000=9,900

그러고 나니까 엔트로피의 말이 맞았다.

물론 '아~ 그랬구나~!'와 같은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수긍이 되기는커녕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럼 3,000만 원부터는 400만 원씩 붙는다는 말......."

<정답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엔트로피가 어쩐지 고소해하는 것 같았다.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다고 하면 되지 굳이 정답입니다, 라고 대꾸하는 뉘앙스가 딱 그랬다.

비록 모양새야 말풍선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저 엔트로피라는 놈은 감정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정대식은 분노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뭐가 이렇게 비싸? 다단계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완전 사기꾼 아냐, 이거?"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정대식을 보고 엔트로피가 도도하게 말을 이었다.

<정대식 님은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 데모크리토스 님의 선택을 받으셨습니다.>

"그게 뭐? 그 신에게 선택받았으니 이렇게 바가지를 쓰는 것도 당연하다 이 말이야?"

<데모크리토스 님께서 각성자를 선택하신 것은 전무후무한 일. 그 덕분에 정대식 님께서는 전례 없던 능력을 획득하게 되셨습니다.>

"바로 그런 말이 사기꾼들이 하는 말이지! 당신은 선택받았다, 특별하다, 이번밖에 기회가 없다, 당신만을 위한 거다...... 이런 입 발린 소리를 늘어놓으며 사람을 현혹한다고! 그 데모 어쩌구 하는 신이 그런 사기꾼이랑 다른 게 뭐야?"

침을 튀기며 열을 내는 정대식과는 달리 엔트로피는 담담하게 말을 계속해 나갔다.

<정대식 님은 단순히 금전을 지불하는 것만으로도 아무런 제약 없이 무한한 능력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각성자들이 피와 살, 그리고 생명을 바쳐 가며 능력을 갈구해야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일이지요.>

"이봐, 난 내 목숨만큼이나 돈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버럭 소리를 쳤던 정대식은 곧 열변을 토했다.

"아니, 나뿐만이 아냐.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럴 걸? 돈 앞에서는 가족도 친구도 양심도 도덕도 다 필요 없어! 그런데 어떻게 목숨이 돈보다 더 중하다고 말할 수 있겠어?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라고! 그러니 나한테 입 닥치란 소리 하지 마. 나는 당연히 내 상황에 불만을 품고 항의할 수가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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