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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15화 (15/297)

# 15

현질 전사

-1권 15화

<.......>

엔트로피는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당황한 것처럼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곧 도우미로서 자신의 입장을 흩트리지 않은 채 다시금 입을 열었다.

<돈을 지불하고 능력을 구할지 말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정대식 님입니다. 가격이 불만이라면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정대식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럼 그 데모인지 데몬인지 하는 신의 의도와는 어긋나는 거 아니야?"

<그렇지요.>

"그렇담 그렇게 초연한 척 말할 순 없을 텐데. 날 잘 꼬드겨서 돈을 쓰게 만들어야지."

빈정이 확 상해 버린 정대식이 하는 말을 듣고 엔트로피는 마치 코웃음을 친 것 같았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어째서?"

<인간은 탐욕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 데모크리토스의 도우미가 하는 말이라서 그런가.

정대식은 의표를 찔린 기분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곧 머리가 차갑게 식고, 말풍선에 불과한 이 자식한테 열을 내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그래, 가격이 불만이라면 안 사면 그만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대식에게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소망.......

부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헌터 생활은 역시 위험하다. 더 이상 능력을 키우지 않고 돈을 모은다는 건 안이한 생각이었어. 언제 오늘과 같은 위기가 또 닥칠지 몰라. 그러니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당장은 투자가 필요해.'

돈이라면 맘먹기에 따라서 하루 몇억이라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오늘의 경우만 봐도 그러했다.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

그건 그만치 그가 강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록 엄청난 금전을 치러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눈앞의 몇 푼에 급급해할 때가 아니야. 돈만큼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안전이지......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쓰는 돈이 허투루 쓰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쓰는 만큼 강해지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니까.'

정대식은 잠자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피로한 음성으로 말했다.

"일단 체력을 30까지 올리겠어."

엔트로피는 평연하게 대꾸했다.

<체력을 4포인트 구입하고 1억 1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 * *

낮잠을 한숨 푸지게 자고 났더니 머릿속이 정리됐다.

정대식은 한결 차분해진 모습으로 상점을 들여다보았다.

'일단 체력을 높인 건 좋은 선택이었어.'

공격력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되는 건 보통 마력이다. 마찬가지로 생명력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되는 건 체력이었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되어야 뭘 해도 하지.'

원래 정대식의 체력 수치는 25였다. 워낙 고된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애당초 체력 수치가 제법 높았다. 그걸 30까지 올려놓았으니 어지간해서는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일이 없을 터였다.

'체력을 강화시켜서 더 이상 막공에 가지 않고 혼자서 사냥이 가능하도록 해 본다.'

그것이 정대식의 계획이었다.

다름 아닌 솔플!

'막공을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내 강화 스킬로 몬스터를 때려잡는 건데, 그런 것치고는 주어지는 수익이 너무 적어. 나 혼자서 몬스터를 잡으면 온전히 수입을 다 먹을 수가 있잖아? 그래야 돈을 하마처럼 집어삼키는 현질을 감당할 수 있겠지.'

정대식은 남은 자금을 확인해 보았다.

'현재 수중에 있는 돈은 약 7천만 원.'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원래는 능력치를 구입하고 나서 신속을 살 생각이었지만...... 계획을 바꿔야겠어.'

정대식이 살펴본 바로는 상점을 업그레이드한다고 해서 기존에 판매하던 스킬이 사라지거나 가격이 오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섣불리 신속 스킬을 구입하기보다는 상점을 업그레이드해서 선택의 폭을 넓혀 놓은 뒤, 스킬을 구입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 물었다.

"레벨 2로 상점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얼마가 들지?"

엔트로피는 즉각 답했다.

<1천만 원입니다.>

쌀 거라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했다.

능력치처럼 100만 원 다음에는 200만 원, 그다음에 300만 원...... 이런 식으로 오르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무려 열 배나 껑충 뛰는 가격에 정대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우라지게 비싸군. 빌어먹을!'

그는 욕설을 지껄이다 말했다.

"......상점을 업그레이드하겠어."

<상점을 Lv2로 업그레이드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그로 인해 이제 6,000만 원가량이 남았다.

그래도 케르베로스를 잡았다고 1억 5천을 벌어들인 덕분에 체력 수치를 올리고, 상점 업그레이드를 하고 나서도 제법 남은 셈이다.

그걸로 스킬 구입을 해야겠다 맘먹고 정대식은 Lv2가 된 상점의 스킬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어디 보자.......'

업그레이드를 했다 해도 업데이트된 스킬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각 능력계마다 하나씩.

새로운 스킬이 추가된 상태였다.

구현계 : 액토플라즘.

소환계 : 마력 비례 소환.

변화계 : 물질 변환.

강화계 : 내구성 강화.

방출계 : 폭발 마력탄.

정신계 : 관측.

조작계 : 염동력.

그러한 목록을 쭉 들여다본 정대식은 내심 혀를 쯧, 찼다.

'다른 계열의 스킬이 업데이트되어 봤자...... 어차피 난 강화계라 그림의 떡일 뿐이잖아.'

그러다 보니 문득 억울해졌다.

'나한테 필요한 건 강화계뿐인데 왜 다른 계열의 스킬까지 업데이트되는 거지? 그럼 나한텐 쓸모도 없는 능력까지 업데이트시키느라 돈을 몇 배로 쓰고 있는 셈이잖아?'

이 역시 바가지인 게 아닌가 싶어서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야, 엔트로피."

<말씀하십시오.>

"내가 암만 생각해도 이건 부당해."

<뭐가 말입니까?>

넌 뭐가 그리 불만이냐는 듯, 엔트로피가 반문을 던져 왔다.

그런 말풍선에다 대고 정대식은 삿대질을 했다.

"난 강화계 능력자잖아? 그러니까 강화계 스킬만 획득할 수 있다고. 근데 왜 다른 능력계의 스킬까지 업데이트가 되는 거지? 나한텐 필요 없는 건데! 차라리 상점 업그레이드의 가격을 내리고 강화계 스킬만 업데이트해 줘. 그럼 한 200만 원만 받아도 되겠네."

정대식의 말에 엔트로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흥정을 하시는 겁니까?>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못할 이유가 있나?"

<......정대식 님이 가진 능력은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내 능력인데 그런 것도 내 맘대로 못해?"

<......무엇보다 다른 능력계의 스킬이라 하더라도 정대식 님께 필요 없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째서? 어차피 난 강화계 능력자라......."

<다른 계열의 스킬을 획득하고 싶으시다면 그 계열의 능력을 개화하면 됩니다.>

정대식은 그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개화라고?"

<그렇습니다.>

"자, 잠깐만. 그 말인즉...... 내가 정신계나 구현계 같은 다른 계열의 능력까지 가질 수 있다는 말이야?"

<올바르게 이해하셨습니다.>

"진짜? 거짓말 아니고? 참말이야?"

<저 엔트로피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하는 목소리를 듣자 머리가 띵해 왔다.

정대식은 믿기지 않는다는 기분으로 멍해졌다.

"그럼 내, 내가...... 듀얼 능력자나 트리플 능력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

<그렇습니다.>

엔트로피는 지극히 무덤덤하게 말했으나, 이건 사실 엄청난 일이었다!

모든 각성자는 대부분 하나의 능력을 가진다.

강화계면 강화계, 정신계면 정신계라는 뜻이다.

아주 간혹 가다가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타고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매우 희귀한 확률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만큼 그 능력도 매우 뛰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한 종류의 능력밖에 쓰지 못하는데, 본인만 두 가지 능력을 쓴다라?

당연히 능력이 다채로워지고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실제로 정대식이 현장에서 지켜봐 온 바로는, 듀얼 능력자는 버퍼나 힐러 못지않은 대접을 받았다.

듀얼 능력자면 다양한 포지션의 소화가 가능해진다.

탱커면서도 버퍼가 될 수 있고, 힐러면서도 딜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가지 능력의 상성이 잘 맞으면 쓰는 스킬의 위력이 증폭되고, 똑같은 등급이라도 남들보다 몇 배는 되는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말 그대로 로또 중의 로또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돈으로 살 수 있다라?

이건 완전 대박이었다.

정대식은 쩍 벌린 입가로 침이 주르르 흐르는 걸 느끼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듀얼 능력자가 될 수 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야. 어차피 금액이 엄청나게 비싸겠지. 데모크리 어쩌구 하는 신과 그 수하인 엔트로피는 완전 사기꾼이라고! 날 등골까지 빨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놈들이니 보나 안 보나 엄두도 못 낼 가격일 거야.'

정대식은 기대를 갖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엔트로피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다른 능력을 개화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만데?"

엔트로피의 대답은 짧았다.

<1천만 원입니다.>

정대식은 자신이 뭘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1억이나, 혹은 10억인데 자신의 바람에 의해 1천만 원으로 생각한 거라 여기고 반문을 던졌다.

"얼마라고?"

<1천만 원입니다.>

"......거짓말. 그렇게 쌀 리가 없잖아!"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대식은 천천히 차오르는 기쁨에 입을 헤벌쭉 벌렸다.

"정, 정말이야? 천만 원밖에 안 한다고?"

<그렇습니다.>

"이야, 그거 참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잖아."

저렴한 가격에 기뻐하던 정대식은 헛기침을 흠흠, 하며 말했다.

"그...... 아까 사기꾼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은 잊어 달라고. 솔직히 능력치 포인트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긴 하잖아? 비난할 만했단 말이야."

<괘념치 마십시오.>

"하지만 다른 능력의 개화는 살 만하군. 솔직히 말해서 놀랐어. 감동했다고. 상점의 모든 가격이 이 정도 수준만 돼도 얼마나 좋아? 이게 바로 합리적인 소비자 가격이지!"

신이 나서 주절거리던 정대식은 별 반응이 없는 엔트로피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쉰 뒤 말을 이었다.

"다른 능력을 개화하겠어."

<어떤 능력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일단은......."

들떠서 이것저것 말해 보려던 정대식은 마음을 바꾸었다.

다른 계열의 능력을 오픈한다 하더라도 그 능력으로 쓸 수 있는 스킬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노릇.

자신이 가진 예산에 한계가 있으니 욕심을 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어차피 여러 능력을 오픈해 스킬을 이것저것 사 봤자 마력량에 한계가 있으니 다 쓰기는 어렵다. 내게 필요하다 여겨지는 딱 한 가지, 단 하나의 스킬만 골라 구입하자. 상점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 나머지는 천천히 구입하고.'

정대식은 자신의 상태를 곰곰이 돌이켜 보았다.

현재 그는 강화계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쓸 수 있는 스킬은 강화 딱 하나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력을 높여 둔 덕분에 원딜과 버퍼, 두 가지 포지션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고, 공격력도 7등급 헌터 수준은 되었다. 그러니 새 능력을 오픈할 때에는 10등급밖엔 안 된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안 될 터였다.

'이 몸이 듀얼 능력자가 된다는 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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