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현질 전사
-1권 18화
브로커에게 정산받은 돈을 나누어 입금했다는 말에 정대식은 즉시 계좌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는 사람은 오로지 정대식뿐으로 다른 파티원들은 계좌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석우원을 믿고 있고, 앞으로도 그와 함께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굳이 계좌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대식만이 꼬박꼬박, 돈이 입금되었는지 아닌지, 계산이 바르게 되었는지 아닌지 일일이 확인을 했다.
그런 정대식의 행동을 뻔히 보면서도 석우원은 기분 나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뒤풀이를 했다.
"오늘도 다들 열일 했고, 실력 또한 훌륭했다. 우리 파티가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군."
맥주잔을 들어 올리고 석우원이 하는 말에 다들 환호성을 올렸다.
"오오!"
"오늘도 살아남았으니 한잔하자고, 건배!"
"건배!"
짜랑짜랑, 잔을 부딪치고 맥주를 마시느라 잠시 조용해졌다.
그 틈을 타 잔을 내려놓은 석우원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조만간 케르베로스 사냥을 해 볼까 한다."
"우와, 그거 진심이야?"
"위험할 텐데."
"아무리 한 번 잡아 봤다지만 솔직히 겁난다고."
엄살이나 너스레를 떠는 파티원들을 둘러보며 석우원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겁날 게 뭐 있어. 케르베로스는 이미 한 번 사냥해 보지 않았나? 지금의 우리 실력이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
"이러다가 지옥용 사냥하러 가자고 하는 거 아냐?"
누군가 던진 말에 왁자하게 웃음이 터졌다.
그 말을 듣고 씩 웃은 석우원이 왜 아니겠느냐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우리가 케르베로스를 우습게 때려잡을 수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그게 그리 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곧 정대식을 힐끗 보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사냥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케르베로스는 식은 죽 먹기가 될 거고, 그럼 지옥용도 잡을 수 있겠지. 이렇게 조금씩 강해져 가는 거 아니겠어?"
정대식은 별 반응 없이 맥주를 홀짝였다.
내심으로는 지옥용 운운하는 말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케르베로스 정도만 잡아도 충분하잖아. 뭘 또 지옥용 타령이야. 어차피 날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런데 이제 와 내가 빠진다고 하면...... 맘들 상해하겠군.'
진즉에 발을 뺄 걸 그랬나, 조금쯤 후회하고 있는데 석우원이 마치 그런 정대식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말했다.
"어쩌면 이 자리의 누군가는 케르베로스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겠지. 굳이 목숨을 걸고 지옥용에 도전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야. 실제로 많은 헌터들이 그런 생각으로 썰자팟에 안주하고 말아 버린다. 하지만 난 말이야, 이왕에 각성자로 선택받은 거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 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신에게 선택받은 자들!"
다른 헌터들이 일제히 한목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정대식은 끔쩍 놀랐다.
당황해 눈만 깜박거리는 그를 놔두고 헌터들이 맥주잔으로 테이블을 부서져라 쾅쾅, 치며 소리를 쳤다.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라! 그리하면 힘을 얻게 될지니!"
각성자라면 누구나 신의 공간에 불려 가 듣게 되는 그 말을 외치며 눈을 번쩍였다.
정대식은 거기에 섣불리 끼일 수 없었다.
그건 그가 들은 말도 아닐뿐더러, 헌터들 사이에서 감도는 기이한 열기.
약간은 맛이 간 것처럼 도취되어 있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버린 탓이다.
그런 정대식을 남겨 두고 석우원은 외쳤다.
"그래, 우리는 헌터다!"
"헌터다!"
"우리는 사냥한다!"
"사냥한다!"
"고로 존재한다!"
"존재한다!"
"가자,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우우우우우!"
주점이 떠나가라 괴성을 지르는 헌터들.
그 모습을 보며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는 걸 정대식은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자신의 계획을 곱씹었다.
'......그래, 케르베로스까지는 괜찮아. 이미 한 번 잡아 본 거니까. 하지만 지옥용은 지나치게 위험해. 조만간 이 녀석들과 이별해야겠어. 어차피 그간의 사냥으로 돈을 제법 모았으니까.'
정대식은 그 돈으로 체력을 좀 더 올릴 작정이었다.
체력이 생명력과 방어력을 책임진다니까, 안전을 생각하면 그게 우선이었다.
이 파티를 떠나 솔플을 할 생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언제 한번 내 상태를 좀 확인해 봐야겠어.'
게다가 정대식은 기본적으로 강화계였다.
체력이 올라가면 강화의 바탕이 되는 신체가 강건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단순한 숫자로 표시되는 그 신체 상태가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지 감이 안 온다는 것이다.
그동안 파티와 함께 사냥하면서 직접적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받을 일이 별로 없어서 더 그랬다.
석우원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파티원들이 딴 사람은 몰라도 정대식의 안전만큼은 몹시 신경을 쓴 탓이었다.
제 몸을 상하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버퍼인 그를 지키려 한 탓에, 정대식은 자신의 방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다.
그렇다고 몬스터에게 맨몸을 던질 수도 없고.
차라리 다른 헌터를 고용하는 편이 나을까, 어쩔까.
정대식은 귀청이 박살 날 만큼 시끄러운 헌터들 사이에 앉아서 잠자코 그런 궁리를 했다.
Chapter 6. 욕망의 정체
회식을 끝마치고 정대식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만큼 돈을 벌었으면 택시를 잡아탈 법도 한데, 정대식은 그러지 않았다.
비록 푼돈이나마 괜한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버스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퇴근 시간이 지난 터라 버스는 한적했다.
정대식을 포함해 다섯 명의 승객만 앉아서 꾸벅꾸벅 졸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서 무심히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던 정대식은 몰려오는 졸음을 느꼈다.
내려야 할 정류장까지는 아직 한참이 남았으므로, 팔짱을 낀 채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했다.
눈꺼풀을 내리감기가 무섭게 잠이 들어 버렸고, 얼마를 그렇게 자고 있었을까.
"으아아아악!"
귀청을 때리는 비명 소리에 정대식은 찬물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서 깼다.
고개를 번쩍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버스가 평소 같지 않은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덜컹덜컹!
차체가 심하게 흔들려 승객들이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하나같이 공포에 질려 있는 이유가, 비단 버스가 난폭하게 내달리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뭐지?'
무슨 공포 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미친 듯이 내달리는 버스 안에서 정대식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어리둥절해 있기를 잠시간.
그때, 창밖으로 무언가 휙 지나갔다.
"음?"
커다란 덩치가 낯이 익어 정대식은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버스를 앞질러 간 게 무엇인지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연달아 무언가가 버스를 휙휙 지나쳐 갔다.
그 형체는 낯이 익었다.
"몬스터?"
놀라서 외마디 말을 내뱉은 정대식은 왕사마귀가 무리를 지어 달려가는 광경을 봤다.
그 뒤를 따라서 거인 풍뎅이가 굉음을 내뿜으며 날아갔다.
곧 거인 풍뎅이가 온몸을 왕사마귀에 부딪치며 내려앉았고, 거대한 뿔로 왕사마귀들을 연신 치받았다.
몬스터들끼리 싸움이 벌어진 가운데, 버스가 그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달려갔다.
끼기기기긱-! 부아아아앙!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가 크게 코너를 도는 버스가 금방이라도 옆으로 넘어질 듯했다.
그 난리통에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놓쳐 버렸다.
"아이구야!"
허공으로 몸이 붕, 뜨고 반대편으로 날아가 부딪치려는 할머니를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낚아챘다.
"아이고, 아이고!"
할머니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지 눈을 질끈 감은 채 연신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정대식은 허리춤에 걸어 둔 와이어를 꺼내어 그런 할머니를 의자에 칭칭 묶었다.
재빠른 솜씨로 매듭을 짓고 나니, 이번엔 운전기사가 난리였다.
그는 급하게 핸들을 꺾으며 욕설을 터트렸다.
"씨이바알!"
악이라도 쓰듯 욕을 내뱉은 그는 이번엔 반대편으로 핸들을 확 꺾었다.
그러자 버스 바로 옆으로 거대한 바위 같은 게 데굴데굴 굴러갔다.
한데 자세히 보아하니 도로의 난간과 아스팔트, 철제 구조물과 같은 걸 한데 뭉쳐 만든 커다란 공이었다.
보아하니 왕사마귀와 거인 풍뎅이뿐만 아니라 금속 쇠똥구리까지 출몰한 모양이다.
'던전에나 있어야 할 몬스터가 모조리 뛰쳐나오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황망해하던 정대식은 운전기사가 다시 소리를 지르는 걸 들었다.
"또, 또 온다아아아!"
퍼뜩,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금속 쇠똥구리가 만들어 낸 거대한 돌덩어리가 버스 정면으로 데굴데굴 굴러오고 있었다.
더욱이 양옆으로는 하천!
하필 다리 위라 피할 데가 없었다.
"으아아아아!"
운전기사가 죽어라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아 버리는 와중에, 정대식은 기지를 발휘했다.
"강화!"
파아아아아!
마력이 그의 손끝에서 빠져나가 버스 전체를 둘러쌌다.
반사적으로 버스를 강화시키기 무섭게 쇠와 아스팔트가 엉긴 돌덩어리가 버스에 와 부딪쳤다.
콰아앙!
"꺄아아아!"
"으아아악!"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낮추었고, 동시에 버스 앞 유리가 깨졌다.
와장창!
다음으로는 천장이 움푹 꺼졌다.
우지끈!
그러나 버스는 제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대식이 버스를 강화시킨 덕분에 금속 쇠똥구리가 만들어 낸 똥...... 아니, 무식한 돌덩어리를 버텨 내었던 것이다.
"아으으으으......."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버스가 달리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운전기사가 핸들을 붙잡은 채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겁에 질린 나머지 다 틀렸다 생각하고 넋을 놓은 모양이었다.
정대식은 황급히 운전석 쪽으로 달려가 운전기사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정신 차려요!"
"으으으......."
눈물범벅이 된 운전기사가 정대식의 일갈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겁에 질려 초점이 흐려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정대식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난 헌터입니다."
"허, 허, 헌터......?"
"내가 이 버스를 엄호할 테니까 겁먹지 말고 달려요!"
그렇게 말하고 정대식은 등짐에서 자동 소총을 꺼내 들었다.
검게 번들거리는 무기를 보자 운전기사는 정신을 차린 듯했다.
정대식이 헌터라는 말에 힘을 얻었는지 어쨌는지, 이를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정대식은 뚫린 버스 앞 유리 쪽으로 총부리를 겨누었다.
그리고 곧장 이쪽으로 달려오는 왕사마귀를 겨냥했다.
"강화!"
파아아아아!
자동 소총으로 마력이 흘러들어 가고, 정대식은 총을 내갈겼다.
투다다다다다!
빛나는 마력탄이 버스 밖으로 튀어나와 왕사마귀에 직격했다.
왕사마귀의 커다란 눈이 터지며 놈이 자빠졌다.
그런 왕사마귀를 치고 버스가 계속 내달렸다.
연이어 다른 왕사마귀가 달려들어 정대식은 놈들이 버스에 붙는 족족 총을 휘갈겼다.
그런데 그때.
"으아아아아악!"
버스가 크게 휘청인다 싶더니만 갑자기 앞쪽이 번쩍 들렸다.
"우와아아!"
"꺄아아아아!"
승객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터지고, 땅속에서 무언가 솟아오른 것처럼 버스가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
곧 히떡 뒤집어져 천장부터 바닥에 부딪쳤다.
꽈아아아앙!
삐이이이잉-.
충격과 함께 찾아든 이명.
이명의 끝에 짧은 암흑이 덮여 왔다.
그 장막을 억지로 걷어 내고 정대식은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