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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22화 (22/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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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

-1권 22화

Chapter 7. 현질의 맛

몬스터 브레이크로 인해 일어난 난리는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다.

비록 규모가 작기는 했어도 10년 만의 몬스터 브레이크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몬스터 브레이크는 새로운 던전의 출현을 뜻했다.

이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뉴스에서는 자칭, 타칭 전문가들이 출현해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해 이런저런 억측을 떠들어 대었다.

더불어 버스 승객을 구한 의인, 정대식에 대한 이야기도 알음알음 흘러나왔다.

정대식은 아무런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방송 매체와 접촉하지도 않았으나, 그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달랐다.

그때의 위기감을 생생히 전하며, 방송을 통해서라도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길 원했다.

-아이고, 그 젊은이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요. 이 늙은이 목숨 하나 살리자고 그 아이가 얼마나 애를 썼을지......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저희 어머니를 살려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 드리고 싶고.......

정대식은 그런 화면을 무심히 보아 넘겼다.

어차피 감사 인사를 듣자고 한 일도 아니고.

지금 당장은 온 신경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는 데에만 쏠려 있었다.

'그동안 건물 살 생각에 빠져 있느라 제대로 된 방어구 하나 갖추지 않고 있었지. 무기도 자동 소총 하나로 줄곧 우려먹고 말이야. 그동안은 강화 스킬로 그럭저럭 버텨 왔다지만...... 아무래도 업그레이드를 하는 편이 좋겠어.'

정대식은 헌터 관련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대강의 시장 조사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방어구나 무기가 상당히 비쌌다.

'헌터들이 쓰는 장비가 고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진짜 어마어마하군. 돈 10억은 돈도 아니잖아?'

가장 기본적인 장비.

강화 알루미늄으로 만든 가슴받이 하나가 몇억이 넘어갔다. 투구, 어깨받이, 팔 보호대, 허벅지 보호대, 장갑과 장화까지 풀 세트로 마련하려면 15억은 거뜬히 넘어갔다.

'젠장, 현질 가격이 합당하다 여겨질 정도인데. 뭐가 이래 비싸?'

제아무리 강화 알루미늄이라고 해도 알루미늄일 뿐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나 값비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좀 괜찮다 싶은 방어구 한 벌 장만하려면 몇십억은 거뜬히 깨지네. 어휴...... 그 돈이면 건물 한 채 사고도 남겠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강화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고 말지.'

정대식은 속으로 줄기차게 투덜거리며 이번엔 무기를 알아보았다.

'증폭기를 최대 세 대까지 장착할 수 있는 자동 소총의 가격이...... 1억이라. 무기는 그나마 가격이 싸네. 그런데 이것도 이런저런 옵션 붙이고 하면 몇억이고. 총의 위력을 끌어올려 주는 특수탄까지 장착하면 이것도 가격이 만만찮아. 무엇보다 특수탄은 소모품 아냐? 한 번 쓰면 끝인데 그게 가격이 몇백에서 몇천? 좀 심한 거 아냐?'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내던졌다.

그리고 좁아터진 방구석에 벌러덩 드러누워 생각에 잠겼다.

'스킬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죽겠는데 장비까지 갖추려면 허리가 휘겠네. 말이 강해지는 거지, 돈이 엄청나게 들잖아. 이런 식이라면 막공으로 자금을 충당하긴 무리야. 역시 솔플을 하는 편이.......'

그는 이번엔 몸을 뒤집어 엎드린 채로 머리를 굴렸다.

'금속 쇠똥구리 한 마리도 상대하지 못하는 처지에, 솔플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기껏 잡아 봐야 지옥마견 정도...... 아무리 해도 진짜 돈이 되는 놈을 잡기는 무리라고. 혼자서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갔다간 순식간에 개밥이 되고 말 걸?'

정대식은 최희가 등장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천둥과 번개를 몰고 나타나 일시에 몬스터를 떼죽음으로 몰아가던 그 모습.

말 그대로 일당백.

그런 능력이 있다면야 혼자서도 상관없겠지만, 정대식은 아니었다.

-......만약에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정대식 씨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헌터 한 분 한 분의 활약이 더 필요해질 겁니다.

정대식은 장한나가 한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그래, 혼자서 안 되면 여럿이라는 방법도 있지. 만약 내가 정공을 꾸린다면?'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아니, 상당히 그럴싸했다.

'난 이미 강화계와 정신계, 변화계의 세 가지 능력을 습득했다. 이미 딜러와 버퍼가 가능한 상태에서 힐러와 탱커의 능력까지 얻은 것과 마찬가지니까 공격대를 꾸릴 수도 있겠지.'

정대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엔트로피!"

손바닥에 집중한 마력을 허공에 띄우자 곧장 엔트로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어? 너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상점 업그레이드에 무슨 영향이라도 받는 것일까.

말풍선에 불과했던 엔트로피의 모습이 변했다.

말풍선에 눈 코 입이라 여겨지는 기호가 생긴 것이다.

얼굴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이모티콘 수준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간에 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보였다.

그러자 엔트로피가 짤막하게 설명했다.

<상점이 업그레이드됨에 따라 도우미인 제 모습 또한 변화합니다.>

"그랬군. 변했다고 해 봤자 동그라미 두 개에 세모 하나 더 생긴 것뿐이지만."

<무슨 볼일로 부르셨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용건이나 밝히라는 식의 태도에 정대식은 말했다.

"다른 게 아니고 상점 업그레이드로 정신계 스킬이 좀 늘었나 해서."

<늘어났습니다. 정신계 스킬 항목을 보시겠습니까?>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눈앞에 창이 나타났다.

현재 그가 획득할 수 있는 정신계 스킬은 총 세 개였다.

"관측은 이미 샀고...... 도발과 적의 집중?"

<그 두 가지가 새로 생성된 스킬입니다.>

"도발이랑 적의 집중이 뭐가 달라?"

<당연히 다릅니다.>

엔트로피는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기분 탓이 아니라, 확실했다.

얼굴이라고 여겨지는 말풍선 위의 이모티콘이 '-_-'로 변했기 때문이다.

<도발은 적의 화를 불러일으키는 스킬이고, 적의 집중은 그러한 화를 이쪽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탱커들이 쓰는 능력은 적의 집중에 가까운 거지?"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도발은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총 몇 발만 휘갈겨 주면......."

<총 몇 발로는 꿈쩍도 않는 몬스터도 있으니까요.>

"하긴, 이 스킬이 있으면 선제공격으로 낭비되는 전력을 아낄 수 있겠군."

어차피 스킬 하나의 가격은 천만 원이다.

싸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두 개를 다 샀다.

"그럼 도발과 적의 집중, 두 가지를 구입하겠어."

<도발과 적의 집중 스킬을 획득하고 2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남은 돈이 얼마야?"

<6억 8,915만 339원입니다.>

그동안 개같이 벌었기에 상점을 업그레이드하고, 이것저것 능력을 구입하고 나서도 제법 돈이 남았다.

그런데도 방어구 한 벌을 살 수가 없다니, 기가 막혔다.

'점점 금전 감각이 마비되는 게 느껴지는군. 이제 천만 원이라고 하면 싸다는 말이 먼저 나올 지경이야.'

스킬 두 가지를 획득했으니 이제 탱커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은 갖춘 셈이다.

'이제 남은 돈으로 방어구를 맞추고 막공에서 연습을 좀 해 봐야겠지.'

정대식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상가로 나가 보려 했다.

그러다가 멈칫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 전에 최희의 사인지를 팔아야지. 혹시 알아? 한몫 건질 수 있을지.'

그럼 방어구 사는 데 좀 보태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 글을 썼다.

-'팝니다. 슈퍼스타 최희의 사인. 따끈따끈한 신상.'

* * *

정대식은 최희의 사인을 무려 1억에 팔았다.

정대식으로서는 횡재한 셈이었다.

'최희의 인기가 대단하긴 하네. 죽은 사람도 아닌데 사인 가격이 이렇게나 값비싸다니.'

정대식은 콧노래를 부르며 방어구 상가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5억짜리 강화 알루미늄 방어구를 장만했다.

용케 중고 매물이 하나 있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세트로 마련할 수가 있었다.

그런 뒤 바로 길 건너의 무기 상가로 갔다.

지난 번 자동 소총을 구입했던 가게로 가서, 쓰던 물건을 넘기고 2억 8천을 보태어 3억짜리 새로운 자동 소총을 구입했다.

증폭기 세 개에 절감기 세 개가 붙어 훨씬 더 성능이 좋은 물건이었다.

거기서 현란한 말솜씨로 특수탄 세 대를 더 받아 냈다.

"지난번에도 느낀 거지만 정말이지 강도가 따로 없어. 이 특수탄이 하나에 얼마짜린 줄이나 압니까? 무려 300이에요, 300!"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특수탄을 케이스에서 꺼내는 주인에게 정대식은 능청을 떨었다.

"그 케이스는 안 끼워 줍니까?"

"나 원, 가져가요! 가져가!"

주인은 연신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말처럼 그리 질색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사실 방어구나 무기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초보 헌터에게 물건을 파는 걸 탐탁찮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첫 사냥에서 죽어 버리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인은 초보 헌터가 처음으로 무기를 사 가면 재수가 없다고 소금까지 뿌리곤 했다.

반대로 정대식과 같이 살아서 다시금 방문해 주는 헌터는 귀인 취급을 받았다.

초보 헌터가 첫 무기로 목숨을 건져 와, 그 무기를 되팔아 주면 행운이 온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그런지 주인은 상당히 친절하게 케이스까지 포함해 특수탄과 새 자동 소총을 챙겨 주며 말했다.

"부디 다음번에도 살아남아서 이 무기도 되팔러 와요."

"꼭 그럴 테니까 다음엔 저것도 좀 끼워 줘요."

정대식이 멋들어진 총집을 턱짓하며 하는 말에 주인은 정색을 했다.

"저건 안 돼! 내 개인 소장품이라고요!"

"안 됨 말고요."

그냥 한 번 해 본 말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정대식은 구입한 물건을 챙겨 상가를 나왔다.

그리고 배가 고파 밥이나 먹을까 어쩔까, 시장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쿠구구구구구-.

'제트기라도 떴나?'

정대식은 여상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식겁했다.

'아니?'

구름을 찢으며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게 곧 투포환처럼 제 앞으로 떨어졌다.

콰드드득!

보도블록이 박살 나며 먼지와 소음을 일으켰다.

그 가운데 안착한 이는 다름 아닌 최희였다.

정대식은 너무 놀라서 입술을 뻐끔거렸다.

"여, 여, 여긴 어떻게......?"

그러자 최희가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보아하니 어디서 급하게 달려왔는지, 추리닝 차림이었다.

보풀이 잔뜩 일어난 아디다스 트랙탑에 무릎이 다 튀어나온 트랙팬츠를 걸치고 그녀는 분노에 찬 눈으로 정대식을 바라보았다.

그 바람에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나한테 무슨...... 무슨 볼일이라도?"

어리둥절해하는 정대식 앞에 최희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건 어이없게도 사인지였다.

바로 아까 전, 정대식이 판매한 그녀의 사인이 틀림없었다.

분명히 이쪽으로 나오기 전에 지하철역 입구에서 구매자와 거래를 끝마쳤는데, 그게 왜 최희의 손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사인지를 펄럭거리며 최희가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말이죠."

"예에?"

"사인 안 해 주기로 유명한 내가 큰 맘 먹고 사인해 줬는데. 그걸 냉큼 갖다가 팔아먹어요?"

"그, 그건......."

변명할 말이 없었으므로 정대식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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