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현질 전사
-1권 25화
타다다다다당!
타-앙! 타-앙!
자동 소총과 장총이 마력탄을 뿜어냈다.
그러자 양쪽의 케르베로스 머리가 입을 쩍 벌렸다.
불을 토해 내려는 것이다.
"화염이다!"
"화염이다!"
다들 소리치며 미리 들고 있던 스크롤을 찢었다.
화염 내성이 깃들어 있는 스크롤이었다.
부우욱!
파아아앗!
케르베로스를 상대하기 위해 여태껏 아껴 두었던 것이다.
한꺼번에 스크롤이 찢어지며 빛이 솟구쳐 올랐다.
거의 동시에 케르베로스의 화염이 사방을 휩쓸었다.
콰르르르르르르!
다행히도 딱히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제때 화염 내성 스크롤을 썼고, 쏟아지는 불길을 제대로 피해 냈다.
마치 그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시간차를 두고 가운데 있는 케르베로스의 머리가 또 불을 토했다.
콰아아아아아!
"신속!"
케르베로스 정면에 서 있던 정대식은 스킬을 써서 불길을 피했다.
그리고 트림이라도 하듯 불덩어리를 꺽, 하고 토해 내는 케르베로스의 아구창을 향해 자동 소총을 휘갈겼다.
투다다다다다다!
돈을 3억이나 들여 업그레이드한 만큼, 그 위력이 전과는 사뭇 달랐다.
케르베로스의 두터운 혀에서 피가 파바바박 튀어 올랐다.
"꺄우웅!"
고통에 겨운 케르베로스의 중간 머리가 입을 다물고 낑낑댔다.
그러자 양옆의 다른 머리 둘이 한꺼번에 정대식을 노리고 입을 쩍 벌렸다.
그러면서 거대한 앞발로 정대식을 후려치려고 들었다.
신속의 효과가 남은 상태인지라, 정대식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그 앞발을 피해 냈다.
"하압!"
그사이, 근딜들이 마침내 옆구리를 뚫어 냈다.
퍼억!
"크아아아아앙!"
괴로움에 세 머리가 한 번에 울어 젖혔다.
어그로가 흐트러지려고 들어, 정대식은 다시 적의 집중 스킬을 썼다.
그러자 마력이 훅 딸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강화 하나만 쓰던 과거와는 달리, 여러 개 스킬을 쓰고 있으니 마력이 빨리 닳았다.
이러다가 케르베로스가 쓰러지는 것보다 자신의 마력이 바닥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관측!"
정대식은 스킬을 써서 울부짖는 케르베로스의 머리 위로 남아 있는 생명력을 살펴보았다.
<지옥 파수꾼 케르베로스 Lv11 생명력 2400/542>
'거의 다 됐다! 강화를 한 번만 더 써서 공격하면......!'
그때였다.
케르베로스가 무의식중에 찬 뒷발에 근딜 하나가 맞아서 나가떨어졌다.
"으억!"
비명 소리를 듣고 다른 근딜들의 집중력이 확 떨어졌다.
화염 내성의 효력이 다 된 탓도 있을 것이다.
케르베로스가 흘리는 뜨거운 피에 데어 다들 자잘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마력을 전부 쥐어 짜냈다.
"치료!"
화아아아아-.
밝은 빛이 번져 나가면서 근딜들을 감쌌다.
순식간에 상처가 낫는 것을 보고 다들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힐러......?"
"우리 중에 힐러가 있었나?"
의아해하는 그들을 보고 정대식이 고함을 쳤다.
"공격해! 쏟아부어! 강화!"
파아아아앗!
연이어 강화의 효과가 주어지자 딜러들이 언제 지쳤냐는 듯 일제히 케르베로스에게로 포화를 쏟아부었다.
정대식을 족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딜러들을 공격하지도 못한 채, 케르베로스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캬아아아아!"
단말마와 같은 소리를 내뱉은 케르베로스가 곧 전신에서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장검을 쓰는 근딜 하나가 다 찢어진 목을 타고 기어올라, 중앙에 있는 머리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퍼억!
신음조차 내뱉지 못한 채 가운데 머리가 절명하자, 다른 두 머리도 피거품을 씩씩거리고 내뱉다 죽어 버렸다.
곧 쿵쿵, 뛰던 거대한 심장이 멈추었고, 폭포처럼 흘러나와 바닥을 태우던 피의 유속도 느려졌다.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 냈다.
"푸하!"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허리를 숙이거나 제자리에 주저앉거나, 긴장이 다 풀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헉, 헉, 헉......."
잠시간이 흐른 후에야 정대식은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죽어 자빠진 케르베로스의 거대한 머리가 정면으로 보였다.
'쓰러트렸다.'
예상보다 힘든 싸움이었다.
처음으로 탱커를 도맡아서 어그로를 끌며 싸우다 보니 긴장이 됐던 것이다.
그래도 해냈다.
'잡았다, 잡았어.'
정대식은 이마에 솟아난 식은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마찬가지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른 파티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수런거렸다.
"마지막에 그거, 힐이었지?"
"누가 쓴 거야?"
"이 파티에 힐러 없는 거 아녔어?"
다들 의아해하는 가운데 정대식은 선뜻 입을 열었다.
"그거 내가 한 거야."
"뭐?"
파티원들의 시선이 몽땅 그에게 쏠렸다.
모두가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말들을 쏟아 냈다.
"그냥 강화계가 아니었단 말이야?"
"그럼, 설마 듀얼리스트?"
"듀얼 능력자라고?"
놀라워하는 지경을 떠나, 경악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자 실은 트리플이라는 말이 안 나왔다.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소리기도 했고, 그 사실을 알았다간 놀라 자빠질 기세였다.
그때, 누가 정대식의 능력에 대해 지적했다.
"잠깐만, 듀얼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한데......? 강화계와 변화계 능력자라면, 어그로는 어떻게 끈 거야?"
"그건 본인에게 강화를 최대로 걸어서 그런 거 아냐?"
"우리에게 퍼부어진 강화를 생각해 봐! 그것보다 더한 버프를 본인에게 씌웠다고? 거기에다 마력 잡아먹는 괴물인 힐을 우리 전부에게 썼는데? 그럼 마력량이 도대체 어느 정도나 된다는 거야?"
"그러게. 그럼 7등급일 수가 없잖아?"
"무슨 수로 어그로를 끌었지?"
자기네들끼리 의논을 하다가 정대식에게 질문이 돌아와, 그는 비로소 사실을 밝혔다.
"어그로는 단순히 강화로 한 게 아니야. 난 정신계 능력도 가지고 있다. 트리플 능력자지."
일순, 정적이 찾아들었다.
다들 입을 쩍 벌린 채 있어 괜히 멋쩍었다.
정대식이 무어라 딴 말을 꺼내려고 입술을 달싹일 때쯤에야, 경악 어린 침묵이 지나갔다.
"세상에......."
"트리플 능력자가 진짜로 있기는 했구나......."
"듀얼리스트도 실물을 본 적이 없는데......."
"이만한 능력자가 왜 막공에?"
"트리플리스트인데 겨우 7등급이라고?"
띄엄띄엄, 놀라워하는 말들이 튀어나오고, 정대식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사실 나도 변화계 능력을 얻은 건 얼마 안 돼. 세 가지 계열의 능력을 제대로 쓴다고 볼 수 없어. 그래서 아직까지는 7등급 정도인 거고, 막공에 다니고 있는 거야."
그 말에 누군가 신음처럼 물었다.
"왜 미리 말 안 한 거야......?"
정대식은 간단히 답했다.
"아무도 안 믿으니까."
그는 곧 씩 웃었다.
"이젠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까 다들 믿겠지? 내가 트리플리스트라는 사실을."
무언의 긍정을 확인하고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쨌든 사냥에 성공했으니 다행이잖아? 또 다른 놈이 나타나기 전에 우선 이 케르베로스를 처리하고, 그다음에 재정비를 하자고. 준비가 마쳐지면 2차 사냥에 나선다."
다들 설마, 케르베로스를 또 잡으러 갈 줄은 몰랐는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부상자도 없고, 힐에다가 버프까지 받아서 전부 컨디션이 좋았다.
아직 시간도, 장비도 충분했으므로 굳이 지상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애써 지하 5층까지 내려온 거, 본전을 뽑아 가자고 말하며 정대식은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박수를 짝짝, 치며 살짝 넋이 나간 파티원들을 독려했다.
"자자, 그럼 움직이자고!"
* * *
그날의 사냥은 대성공이었다.
정대식의 파티는 한나절 만에 케르베로스를 세 마리나 잡았다.
첫 사냥을 끝마치고 난 후, 두 마리를 더 잡았던 것이다.
거대한 몬스터인 케르베로스를 세 마리나 처치하느라 짐꾼들이 비명을 질렀다.
도무지 다 옮길 수 없겠다고 혀를 내둘러, 밖으로 나가 짐꾼들을 더 고용해야 했다.
헌터들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케르베로스 사체를 해체했다.
세 마리나 잡았으면 적당히 돈 되는 것만 추릴 법도 하건만.
정대식은 악착같이 케르베로스의 부산물을 챙겼다.
가죽 한 점, 발톱 하나까지 빠트리는 일 없도록 잔소리를 퍼부어 가며, 꼼꼼하게 짐을 실어 날랐다.
이윽고 지하를 빠져나가 지상으로 올라갔을 때는, 벌써 소문이 짜하게 퍼져 구경꾼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1톤 트럭 일곱 대가 줄줄이 나오는 광경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저거? 지금 저거 다 케르베로스야?"
"몇 마리나 잡은 거지? 우와...... 최소한 두 마리 이상으로 보이는데."
"머리 개수 세 보면 되잖아. 하나, 둘, 셋...... 아홉 개! 세 마리나 잡았나 봐!"
"도대체 저 파티, 뭐야? 어느 공격대인데?"
"정공이 아니라던데? 그냥 오늘 모인 막공이래."
"막공인데, 케르베로스를 세 마리나 잡았다고?"
폭발적인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파티원들은 한껏 우쭐한 채로 구경꾼들을 지나쳐 갔다.
반면 정대식은 지나친 관심이 불편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몰리다 보니 행여 부산물을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을까 봐 신경이 곤두섰던 것이다.
그렇게 던전을 빠져나가고 있는데 입구에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다들 바보같이 입을 쩍 벌리고 선 그들은, 다름 아닌 용대형 패거리였다.
그 작자들의 모습을 보자 제아무리 돈이 우선인 정대식도 입가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정대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용대형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사냥은 다 끝마쳤나?"
용대형은 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말했다.
"이, 이, 이게 대체...... 다...... 뭐야?"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긴 뭐야, 케르베로스지."
용대형은 곧 비명처럼 소리쳤다.
"이걸 다 네가 잡았다고?"
"이걸 어떻게 다 내가 잡아."
정대식이 선뜻 하는 말에 용대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렇지? 네가 잡은 거 아니지?"
그런 용대형을 보고 정대식은 얄밉게 웃어 보였다.
"나랑 내 파티가 잡은 거지."
"......."
"그러게, 내가 같이 가자고 할 때 갔으면 좋았잖아?"
대답 없는 용대형을 신금주가 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정대식에 대한 소문을 듣고 관심을 드러냈던 만큼, 오늘 기회를 놓친 것에 꽤나 속이 상했을 것이다.
그 원망을 용대형과 누구보다 정대식을 반대했던 기철민에게 돌리고 있었다.
기철민은 아예 등을 돌리고 서서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로선 파티원들에게 할 말도 없고, 정대식에게 부러운 기색을 드러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 등이 무척이나 초라해 보여, 정대식은 킬킬거리고 그들 앞을 스쳐 지나갔다.
'캬! 쾌변한 기분이네. 이게 현질의 맛이라는 거 아니겠어?'
사이다라도 한 잔 들이켠 기분 속에서 정대식은 S23D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몬스터 처리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