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8화 (28/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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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

-2권 3화

거짓말을 하고 큰돈을 벌어간 게 괘씸하기도 하고, 그걸 또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도 거북살스러웠다.

자신을 퇴짜 맞혔던 사람들이 닭 쫓던 개마냥 아쉬워하는 걸 구경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지나치게 말들이 많았다.

벌써 석우원의 파티를 따라다니며 얼굴이 제법 팔렸다.

듀얼리스트라는 사실까지 알려져 봉 취급당하는 건 사양이었다.

수신 거부를 해 둔 상태라 답 쪽지가 왔는지 안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시글은 즉각 지워졌다.

그 글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왜 지워졌느냐며 궁금해했다.

대부분이 주작이니까 지운 거라는 반응이었다.

그 밑에 달렸던 댓글들까지 모조리 지워졌으니 그게 진짠지, 아닌지는 알 수 없을 터였다.

게시글이 올라가 있던 시간 자체도 20분 남짓으로 짧았다.

아마 그냥 두면 없던 일처럼 잊힐 거라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파티 모집 작성 글을 관두었다.

또 글을 썼다간 백여 통이 넘는 쪽지를 날렸던 사람들이 달려들지도 모르고, 가만 생각해 보니 굳이 여기서 딜러를 모집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오늘처럼 서울역 앞에 나가 적당히 모아서 가는 게 편하겠다 싶었던 것이다.

노트북을 끄고 자리에 누운 정대식은 할 일이 없어 TV를 켰다.

시답잖은 오락 프로가 흘러나오는 채널을 여러 번 돌린 끝에, 뉴스가 나오는 채널에서 리모컨을 멈추었다.

거기엔 최희가 출연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근래에 있었던 몬스터 브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날 몬스터에 대항해 싸운 사람은 저뿐만이 아닙니다. 무명의 여러 헌터들이 애쓴 결과 희생을 대폭 줄일 수 있었던 거지요. 무엇보다 버스에서 여러 시민을 구한 한 헌터의 용기는 놀라웠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헌터와 같다면, 앞으로 어떤 사태가 일어나든지 간에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즉석 인터뷰인 상황으로 보였는데, 마치 외우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이 말끔했다.

슈퍼스타라 불리는 최희는 전부터 인터뷰에 능했다.

그 어떤 질문에도 청산유수로 대답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엔 팬서비스로 보이는 미소까지 카메라를 향해 어김없이 날리곤 했다.

누구라도 반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만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대식은 무의식적으로 감탄을 했다.

'저런 헌터는 돈도 엄청 벌고, 사람들 존경도 받고, 세상 살맛 나겠지? 저만한 실력이면 도대체 기분이 어떨까?'

어렴풋한 궁금증 속에서 그는 남 일 보듯 화면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스르르, 선잠이 들었다.

Chapter 9. 임시 대원

정대식은 다음 날 해가 뜨기도 전에 서울역 앞으로 향했다.

그곳엔 언제나 그렇듯이 헌터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른 출근길에 나선 시민들까지 뒤섞여 상당히 어수선했다.

그런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오늘 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평소에 보기 드문, 고가 장비를 걸친 무리가 모여 서 있거나, 누가 봐도 '나 헌터'라고 써 붙인 듯 요란한 차림을 한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정대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생각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영문을 몰라 하고 있는데 누가 등 뒤에서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놀랍게도 기철민이었다.

"어?"

그가 설마 자신에게 먼저 아는 체를 하리라곤 생각 못했기에, 정대식은 적잖이 놀랐다.

그게 표정으로 다 드러났는지 기철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뭘 그리 놀라?"

"아니...... 놀랄 수밖에."

정대식은 그를 쳐다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나랑은 말도 섞고 싶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설마, 어제 자신의 실력을 보고 엄한 마음이라도 먹었나 싶었다.

절로 경계하는 기분이 되는 와중에 기철민이 투덜거렸다.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내가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사과 한마디 정도는 해야겠다 싶어서."

"사과라고?"

"그래."

기철민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여태까지 널 얕잡아 보았던 건 내 판단 착오였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깎아내리는 소리만 해서 미안."

정말이지 의외였다.

정대식이 알고 있는 기철민은 같잖은 자존심만 벅벅 세우는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순순히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 오니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거기에는 아마도 어제의 일이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신의 실력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라는 걸 깨닫고 태도를 바꾼 거였다.

가까이 지내며 한몫 챙겨 보겠다는 수작일 수도 있겠지만, 정대식은 기철민처럼 고집 세고 자존심만 강한 인물이 이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딱히 누군가와 척을 져서 좋을 일이 없었으므로, 정대식은 강자다운 너그러움으로 기철민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그래, 알겠어."

일단 그러고 나니 서먹한 기운이 흘렀다.

정대식은 내친 김에 오늘 서울역 앞이 왁자지껄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지? 무슨 일이라도 있나?"

기철민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됐다.

"정말 몰라?"

"모르는데."

그의 태평한 대꾸에 기철민은 어김없이 푸념을 덧붙이며 말했다.

"이런 데서 초짜 티가 난다니까. 헌터한테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래서, 뭔 일인데?"

"얼마 전에 몬스터 브레이크가 있었잖아?"

"그랬지."

던전 밖에서 온갖 몬스터들이 날뛰던 그날을 떠올린 정대식은 기철민이 하는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새로운 던전이 여러 개 생겼으니 이제 슬슬 위험해질 시기라고."

"핵 파괴 말인가?"

"새로 생긴 던전들은 핵 재생 주기가 어느 정도인지 몰라. 소규모 던전 같은 경우에는 빠르면 보름에서 한 달 사이에 터지기도 하니까, 공략을 서둘러야 해. 그래서 국민안전처의 공문이 각 공격대에 뿌려졌나 보더라고."

기철민은 휴대폰을 꺼내어 캡처 하나를 보여주었다.

국민안전처의 공문이라고 여겨지는 문서를 촬영한 자료였다.

거기에는 새로이 파악된 던전의 위치와, 공략을 서둘러 달라는 당부가 쓰여 있었다.

"던전의 최초 공략에선 새로운 자원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 더불어 정부로부터 약간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으니까, 사전 조사를 하면서 때를 가늠하고 있던 공격대가 공략에 나선 거야."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공격대가 방패막이로 쓸 딜러를 구하러 나오는 바람에 이렇게들 소란스러운 거네."

기철민은 손가락을 딱 튕겼다.

"방패막이! 그 표현 절묘하네. 맞아. 새 던전에 들어가면 대박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안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위험 부담이 크지. 대원들을 희생시키는 건 손해가 막심하니까, 선금을 미끼로 우리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을 고용해 앞장세우려는 거야."

그렇게 말한 기철민은 곧 정대식의 눈치를 보고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 말이다."

그는 이미 정대식이 자신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대식은 피식 웃고 말했다.

"그럼 넌 저기에 따라가지 않을 거야?"

기철민은 몹시 고민스럽다는 듯 뒤통수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모르겠어. 용대형 파티에서도 쫓겨나 새 자리를 찾아보기는 해야 하는데, 저런 데 따라갔다가 잘못하면 본전도 못 찾고 큰일 나기 십상이니까."

기철민의 말에 정대식은 곧장 질문을 던졌다.

"용대형 파티에서 쫓겨나? 그게 무슨 말이야?"

기철민은 면구스런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어제 널 쫓아낸 일로 어마어마하게 원망을 들었거든. 신금주 그 계집애가 앞으로 나랑 같이는 못 있겠다고 난리를 쳐서. 결국 용대형이 날 쫓아냈지. 신금주 걔는 마법사잖아. 나같이 흔해 빠진 근딜보다야 가치가 있으니까."

"그래서 나한테 사과할 마음이 든 거냐?"

정대식의 노골적인 물음에 기철민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갈 곳 없는 처지에 너 같은 놈이랑 얼굴 붉혀 봤자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왕이면 친하게 지내는 편이 좋잖아?"

기철민의 대답은 솔직하고도 뻔뻔스러웠다.

정대식이 보기에 그는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인물일 뿐이었다.

처음에 정대식을 떨떠름해한 것도 그 때문일 터였다.

그러한 기철민의 성격은 정대식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의외로 잘 통하는 상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기철민이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도 여기서 누굴 좀 만나기로 한 참이야."

"정식 공격대 말이야?"

"그래. 내가 아는 사람이 다리를 놔주기로 해서. 들어보니까 조건이 꽤 쏠쏠하더라고."

"조건이 어떻게 되는데?"

기철민은 씩 웃었다.

"선금만 1억이다."

정대식은 적잖이 놀랐다.

"선금만 1억이라고?"

"맞아. 혹할 만하지?"

정공 스케일이 과연 다르긴 다르구나 싶어서 정대식은 감탄사를 흘렸다.

선금만 1억이면 딜러를 열 명만 모아서 가도 10억이라는 돈이 그냥 깨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선금은 공략의 성공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도중에 실패하고 던전을 돌아 나온다 하더라도 무조건 받는 돈이다.

만약, 공략에 성공해 핵을 파괴할 시에는 더 큰 보수를 받는다.

"거기에다 무사히 살아 나오기만 하면 크게 한몫 챙길 수가 있어. 원한다면 일당으로 쳐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던전에서 얻은 수익을 나눠받을 수도 있고, 또 다르게는 거기에서 획득한 자원을 제 몫으로 묶어 두고 투자를 할 수도 있지."

"그 셋 중에 뭐가 제일 나아?"

정대식의 질문에 기철민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지. 당장 현찰이 급하다면 일당을 쳐 받는 게 나아. 던전에 하루 있는 것만으로도 5천이니까, 일주일만 있어도 3억 5천이라고. 물론 중도 포기는 불가능하지만. 좀 여유가 있으면 두 번째 방법이 나아. 보통 최초 공략에서 건지는 자원은 일단 높은 가격을 쳐 받는 경우가 많거든. 단지 가격을 책정하고 정산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리지. 대신에 일당 쳐 받는 것보다 더 벌 가능성이 높아."

"마지막은?"

"마지막은 대박 아님 쪽박이야. 새로운 던전에서 획득한 자원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 연구 개발하는 데 투자하는 거니까. 만약에 신약 개발이나 신에너지, 신소재에 적합하다 싶으면 완전히...... 부자 되는 거고. 별 쓸모가 없거나 상용화가 불가능한 거면 돈만 허공에 날리는 거야. 당연히 실제 수익을 얻기까지 몇 년씩 시간도 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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