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9화 (29/297)

# 29

현질 전사

-2권 4화

기철민의 설명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대강 알 것 같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썰자팟을 돌거나 레이드를 뛰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단, 그만큼 위험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기철민이 제의를 받아 놓고 망설이는 것도 그 때문일 테다.

정대식은 짐꾼을 하면서 정공이 일하는 걸 몇 번인가 봤다.

그들이 외부에서 딜러를 고용하는 이유는 전력을 아끼기 위해서다.

잡몹을 잡는 수고를 덜고, 보스몹이 나왔을 때 피해를 줄이려는 것이다.

딱 까놓고 말해서 방패막이다.

높은 보수에 눈이 멀어 많은 딜러들이 따라가지만, 그들이 살아 나올 확률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진짜 쓰레기 같은 공격대의 경우에는 딜러들의 목숨을 거의 돌보지 않았다.

자신들을 위해 마땅히 희생해야 할 도구 정도로 취급해, 돈 벌러 들어갔다가 시체가 되어 나오기가 부지기수다.

시체라도 되어 나오면 다행이다.

사냥에 실패할 경우, 시체도 못 챙겨 나오는 게 대다수였다.

일부러 시체를 버리고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사망자가 아닌 실종자가 되면 약속한 보수의 지불 기한을 늦출 수 있는 탓이다.

아예 계약 자체를 무효화시켜 버리기도 했다.

애초에 그런 딜러와 같이 일한 적 없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아주 개 같은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격대가 이렇게 막가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공격대라는 것은 수많은 헌터들이 선망하는 곳으로, 대외적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했다.

확장 현실 세계가 된 이후, 몬스터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게 헌터들의 역할이 되다 보니, 경찰이나 군인 같은 공인이 된 탓이다.

또한 정부 기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법에 저촉되거나 사회적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역시, 국가 공인 집행 헌터의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공인 집행 헌터.

일명 '집행자'라고 불리는 이 인물들은 일종의 암행어사와도 같았다.

이들은 전부 5등급 이상의 헌터들로 구성되고, 임무가 주어지면 잠시 그 역할을 도맡았다가 임무가 완수되는 즉시 그 권한을 반납하게 되어 있었다.

이 권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거의 무적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일부나마 군인·경찰의 동원이 가능하고, 국가에 등록된 공격대의 장비와 인재를 마음대로 차출해 빌려 쓸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국가의 전폭적이다 못해 폭력적이다시피 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관계로, 집행자라는 이름은 불법을 저지르는 공격대나 헌터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지간한 일로 집행자가 출동하는 일은 없었지만, 출동했다 하면 끝장이라고 봐야 했다.

그만큼 집행자의 임무 완수율은 상당히 높았다.

정부가 각성자 범죄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강경한 탓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헌터들의 수준이 높았다.

당연히 그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점도 많았으므로, 다소 극단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했다.

물론 모든 각성자들의 불법과 범죄에 일일이 집행자가 출동하지는 않는다.

집행자 임명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그 과정이 지나치게 까다롭기도 하고, 집행자 선별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집행자의 존재로 인해 각성자 내부에서 자정 효과가 생긴 건 사실이었다.

국가에서 발 벗고 나서서 집행자를 보내기 전에, 알아서 조심하고 서로 견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최희의 역할이 컸다.

그녀 역시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에 집행자가 된 적이 있었다.

최희는 원래 대한민국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대형 공격대에 속해 있었다.

돌격대장 격으로 공대장의 신임을 받고 있었으나, 어느 날 동료가 공격대의 신물을 탈취해 달아난 일로 발칵 뒤집혔다.

이후, 뭐에 씌운 것처럼 그 동료는 던전 여기저기에 출몰하며 이름난 헌터들을 살해하고 장비를 빼앗았다.

그자를 처치하기 위해 집행자 선임회에서 세 명이나 되는 집행자를 보냈으나 다 실패했다.

뛰어난 아이템으로 무장한 살인마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강해진 탓이었다.

집행자 선임회의 무능함이 질타를 받고, 헌터 살인마의 출몰을 두려워한 공격대들이 몸을 사리면서, 이윽고는 던전이 터지는 사태까지 발발했다.

그러자 집행자 선임회가 마지막까지 아껴 두었던 카드를 뽑아 들었다.

그게 바로 최희였다.

모종의 과정을 통해 최희는 헌터 살인마를 처치하러 나섰고, 임무에 성공했다.

그자가 최희와 긴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은 차후에 알려진 이야기였다.

사실, 집행자 선임회는 그자를 쓰러트릴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최희라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에 흔들려 임무에 실패할까 봐 그녀를 집행자로 임명하는 것을 주저해 왔던 것이다.

결국 그것을 감안한 상태로 최희를 집행자로 만들어 내보내고 나서야 그 사태를 해결할 수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헌터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일반인들도 헌터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일명 '헌터 연쇄 살인 사건'이라고 불리며 널리 알려진 이 일로 인해 최희는 보다 강력한 능력을 얻었고, 헌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 후로는 SS등급으로까지 성장해 지금은 슈퍼스타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지나치게 멀리 왔다 싶어서 정대식은 상념을 거둬들였다.

때마침 기철민이 만나기로 했다는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 * *

"야, 기철민!"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그자의 이름은 송시건이라고 했다.

퍽, 소리가 나게 기철민의 등짝을 때린 송시건은 거들먹거리면서 말했다.

"꼭 안 나올 것처럼 굴더니, 그래도 나오긴 나왔네? 돈이 아쉽긴 한 모양이야?"

불쾌한 말투였으나 놀랍게도 기철민은 비위 좋게 웃어 보였다.

"내 처지 잘 알잖아. 나야 공격대에서 불러만 주면 땡큐지."

"그래, 잘 생각했어. 이런 기회 흔치 않아. 나니까 너 생각해서 불러 주는 거지. 딴 사람 같으면 어림없어."

"알고 있어. 고맙다, 야. 일 끝나고 나면 내가 술이라도 한 잔 살게."

기철민이 예의상 하는 말에 송시건은 손사래를 쳤다.

"어휴, 벼룩의 간을 빼먹지. 어떻게 너한테 술을 얻어 마시냐? 게다가 내 입은 고급이라고. 나 양주밖에 안 마셔~ 포장마차는 사양이다."

송시건은 이름같이 참 시건방졌다.

시종일관 속 긁어 대는 소리를 하는데 기철민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역시, 정대식처럼 이익을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다 빼놓을 수 있는 족속인 게 분명했다.

기철민은 그가 제의한 임시 대원 자리에 들어가기로 하고, 정대식을 소개했다.

"여긴 정대식이야."

송시건은 정대식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어봤다.

정대식에 대한 정보는 거기에서 끝이라는 식이었다.

아마 싸구려 강화 알루미늄 장비를 걸친 것을 보고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라 판단했을 테다.

정대식이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여 보여도 턱만 까닥이며 듣는 체 마는 체했다.

"아, 예. 반가워요."

그런 그의 태도가 사뭇 기분 나쁘기는 해도, 잘못되었다 생각지는 않았다.

누구든 처음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은 겉모습이다.

정대식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남다르지 않았다.

정대식이 잘나가는 공격대의 대원이었다 하더라도, 썰자팟이나 돌아다닐 법한 하급 헌터는 눈 아래로 봤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송시건의 태도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마음 한편에는 은근한 자신감 역시도 자리해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정대식의 실력은 이제 남부럽지 않았다.

이미 세 가지 계열의 능력을 지니고 있고,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 가능하다.

등급만 봐도 7등급 이상...... 아니, 6등급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기철민은 정대식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송시건을 보고 말을 이었다.

"아직 자리 남아 있으면 이 사람도 데려가는 게 어때?"

"흐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어차피 딜러 모자란 거 아냐? 평소라면 딜러가 넘쳐 났겠지만, 지금은 몬스터 브레이크로 다들 바쁘잖아. 이미 다른 공격대에서 쓸 만한 놈들은 다 쓸어 갔을 걸?"

"내 추천으로 들어가는 거잖아? 그런데 내가 실력을 몰라서야 곤란해."

"실력이라면 내가 보증하지. 어제 S23던전 이야기 못 들었어? 케르베로스를 세 마리나 잡았다고. 세 마리나."

송시건은 좀 놀란 눈치였으나 애써 그 기색을 지워 냈다.

그리고 "케르베로스 정도는 잡을 만하지"라고 허세를 떨어 댔다.

그러나 기철민이 적극 추천하는데다가 사람이 모자라는 게 사실이었는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일단 우리 팀장한테 말해 보고."

그는 잠시 자리를 떴다.

송시건이 없는 틈을 타 정대식은 기철민에게 말했다.

"난 딱히 추천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그 말에 기철민이 씩 웃었다.

그는 웃는 얼굴이 상당히 특이했다.

눈이 하회탈처럼 휘어지며 어딘지 모르게 악당 같아 보였다.

"공짜라곤 안 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다리를 놔줬으니 수수료를 받아야지. 네 수입의 10%는 어떠냐?"

정대식은 질색했다.

"말도 안 돼! 무슨 수수료를 10%나 받아먹겠다는 거냐?"

"어허라, 너 짐꾼 출신 아냐? 거기 알선 업체 수수료도 10% 아냐?"

"그거랑 이거랑 같냐?"

"싫음 말아라."

기철민은 배짱을 부렸다.

정대식은 갈등했다.

여기서 기철민의 제의를 걷어차고 다른 공격대를 찾아봐?

그러나 이미 다른 공격대들은 딜러 모집을 마치고 대체적으로 출발하는 분위기였다.

그 어떤 공격대와도 연줄이 없는 정대식이 기회를 잡기에는 늦어 보였다.

아직도 남아 있는 건 중소 공격대뿐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생긴 지 얼마 안 됐거나, 인원수가 부족하거나, 장비가 별 볼 일 없어 뵈는 공격대가 대다수였다.

그렇다 보니 아직까지 딜러들을 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공격대는 제시하는 조건도 별로일 터였다.

분명히 일당제이거나, 분배를 한다 하더라도 정산을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 기철민이 입술을 비틀며 얄밉게 말했다.

"참고로, 내가 가려는 공격대는 전국에서 30위 순위 안에 드는 공격대다. 조디악이라고, 너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걸?"

조디악이라면 정대식도 이름을 알 만큼 유명한 공격대였다.

열두 개의 팀을 거느리고 있는, 기업형의 거대 공격대다.

딜러를 잡아먹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냥을 다니고 숱한 업적을 이루었다.

특히 조디악의 공대장은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강력한 무구를 손에 넣은 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지금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무기는 아직까지 그의 소유였다.

그건 그만큼 그가 강하다는 소리기도 했다.

아무튼 간에, 조디악이라는 말에 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대식은 낯빛을 달리해 정색을 하고 말했다.

"5%다. 그 이상은 안 돼."

"......그래, 뭐. 좋아."

기철민은 정대식의 말을 받아들였고, 잠시 기다리자 송시건이 돌아왔다.

그리고 둘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이리 와, 우리 팀장님이 보자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