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36화 (36/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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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

-2권 11화

정대식은 뒷덜미를 북북 긁고 말했다.

"전 그냥 아는 사람을 따라 온 것뿐입니다. 몬스터 브레이크는 처음이라 한몫 크게 벌어 볼까 하고 말이죠. 조디악 공격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임시 대원 같은 건 파리 목숨 따위로 여기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조디악 공격대가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해도 마음이 끌리진 않았을 테지만, 비호감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굳이 자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공격대가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곳이든 간에 일단 입대하고 나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었다.

계약에 묶이는 탓이다.

제아무리 사냥을 잘해도 일정 비율 이상은 정산을 받을 수 없다.

물론 해마다, 혹은 몇 년 단위로 갱신되는 고용 계약을 통해 조건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조디악 공격대에 속한 이 수많은 대원들과 수입을 나누어야만 했다.

사냥의 목표가 오로지 돈에만 있는 정대식으로선 마뜩잖은 일이었다.

더욱이 그는 적당한 부를 이루고 나면 헌터를 때려치울 작정이었다.

한데 공격대와의 고용 계약 따위에 매여 있어서야 곤란하다.

그만큼 장점도 있겠지만 정대식에게는 단점도 만만찮은 관계로, 당장은 입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 사실에 배웅일과 이계원은 뭔지 모를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조디악 공격대의 복지와 연봉, 보너스와 인센티브가 얼마나 빵빵한지 열렬히 어필했다.

"일단 계약하면 조디악 공격대 본사 건물이 있는 신도시의 100평형대 고급 아파트가 공짜예요! 차도 원하는 기종으로 얼마든지 골라 탈 수 있다고요. 거기다가 온갖 곳에서 협찬이 들어오죠. 내 돈 쓸 일이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도 지원해 주고, 그때마다 전용기를 쓸 수도 있는데 거기 탑승하는 승무원이 얼마나 예쁜지 알아요? 조디악 공격대라면 못 만날 연예인도 없을 정도라고요. 그런데 입대 생각이 없다니. 말도 안 돼."

배웅일과 이계원은 열변을 토했지만, 그래 봤자 헌터는 헌터다.

헌터의 삶은 사냥터에 묶여 있었고, 그들의 목숨은 몬스터 앞에선 한낱 지푸라기와도 같았다.

정대식은 날고 긴다던 헌터들이 던전에서 죽는 광경을 수차례 봐 왔다.

정대식은 그런 식으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디악 공격대에 들어가 온갖 혜택을 받으면 뭘 하나?

계약이 해지되면 사라질 물거품 같은 것들이다.

막상 계약에 묶이면 던전에 쫓아다니느라 그런 걸 제대로 즐길 여유도 없을 것이다.

가족들이나 있으면 그들이라도 호강하겠지만 정대식은 혈혈단신이었다.

아무튼 간에, 정대식은 조디악 공격대가 가져다줄 편의보다는 계약으로 인한 책임으로 부자유해질 것이 더 걱정되었다.

그런 연유로 정대식에게 있어 대형 공격대는 그다지 매력적이지가 못했다.

정대식은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붓는 배웅일과 이계원의 설득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냥 좀 쉬어야겠다는 말로 그들에게서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쉴 곳을 옮기고 보니, 우연히도 기철민이 앉은 자리 근처였다.

그는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아주 복이 터졌네. 나 같으면 앞뒤 물불 안 가리고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행여 맘이 변할까 벌써 가계약서를 썼을 걸? 아마 네가 먼저 쓰자고 하면 누구라도 공대장을 대신해서 계약서를 써 줄 거다."

조언인지 뭔지, 그런 소릴 하는 기철민에게 정대식은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까 저쪽에서도 말했지만, 난 이런 공격대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어째서? 설마 너도 남 밑에선 일 못하겠다, 이런 거야? 만약 공격대를 만들 작정이라면, 아서라. 공대장 노릇 해 봤자 득보다 실이 더 많아. 강해지고 싶으면 대형 공격대의 지원을 받는 게 최고라고."

기철민이 하는 말에 정대식은 잠자코 답했다.

"난 엄밀히 말해서 강해지고 싶은 게 아냐."

"허헛?"

기철민은 정대식이 하는 말이 말인지 방귀인지 의문이라는 식으로 콧방귀를 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대식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난 돈을 벌고 싶은 거야. 부자가 되고 싶은 거라고!"

그는 곧 고개를 돌려 기철민을 바라보았다.

"너도 그런 거 아녔어?"

정대식이 보기에 기철민은 자신과 같은 부류였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은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시니컬하면서도 득실에 따라 태도나 입장이 휙휙 바뀌는 게 영락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철민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소릴 했다.

"아냐. 난...... 강해지고 싶다. 강해지는 것만이 내 목표다!"

주먹까지 불끈 쥐며 하는 말에 정대식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는 일견 정대식과 비슷한 성격일지는 모르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그는 돈을 강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정대식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냐......."

정대식은 어쩐지 기운 빠지는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아무튼 난 그런 건 상관없어."

정대식이 하는 말에 기철민이 빈정거렸다.

"아, 예~ 그러시겠죠. 이미 충분히 강하니까요."

아니다.

정대식은 강해지는 방법은 잘 알았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었다!

그걸 위해 그의 목적인 돈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모순이 존재하지만, 아무튼 간에 하나만은 분명했다.

대형 정공의 지원 따위는 그에게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다.

Chapter 10. 던전 공략

"자! 이제 출발한다!"

어딘지 모르게 화난 기색이 역력한 황미건의 명령으로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났다.

선발대는 다시 정글 속으로 발을 들였다.

던전이기에 하늘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온 사방이 흉악해 보이는 식물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숨이 막혔다.

그러는 가운데 몬스터가 계속해서 튀어나오니 모두의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대형종 투구벌레다! 배웅일, 이계원. 어그로 끌어!"

"버퍼는 방어막 가동해!"

"딜러들, 따라간다!"

각자 팀이 물 흐르듯 움직이는 가운데 탱커 두 명이 앞서 뛰쳐나갔다.

그들이 현란한 솜씨와 박력 있는 몸짓으로 집채만 한 투구벌레의 시선을 끌었다.

그사이 황미건이 여태껏 그래 왔듯이 임시 대원들을 앞서 내몰았다.

그런데 나가서 싸워야 할 딜러들이 힐끔힐끔, 정대식의 눈치만 보았다.

정대식은 그들이 뭘 요구하는지 알았다.

어차피 나가서 싸워 봤자 그들에겐 손해일 뿐이다.

대신에 정대식이 아까처럼 뛰쳐나가 모든 일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마도 대형종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을 했을 테다.

그들은 투구벌레가 배웅일을 들이받아 저 멀리 날려 버리는 광경을 보고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으아아!"

그의 비명 소리가 멀어지자 나머지 탱커들이 우르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사수좌에서 화살과 마력탄이 쏟아지는데도 투구벌레는 두꺼운 갑피로 그것들을 다 튕겨 내고 있었다.

직접적인 근거리 딜러들의 타격만이 효과가 있을 상황.

그러나 임시 대원들은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정대식을 무언의 눈빛으로 떠밀고 있었다.

'네가 가서 싸워.'

'우리야 어차피 아무런 능력도 없다고.'

'정식 대원 제의까지 받았다며.'

'당연히 네가 앞장서서 싸워야지!'

'넌 강하잖아!'

그들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고 정대식은 혀를 찼다.

물론 실력 모자란 근딜에게 강화를 먹이느니 자신이 앞장서 싸우는 게 더 나았다.

그러나 본분을 잊고 남의 등에 업혀 가려고만 하다니, 괘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황미건이 먼저 그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당장 나가서 싸우지 못해? 목숨을 담보로 계약했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겠지?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엔, 그 어떤 보급이나 지원도 약속해 줄 수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라면 지금 당장 계약서를 찢어 버리고 혼자서 돌아가! 싸우지 않는다면 식량도, 치료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그녀의 고함에 임시 대원들은 마지못해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의지도 의기도 없는 맥 빠진 상태로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으아악!"

"제기랄!"

순식간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어그로가 끌린 탱커들이 투구벌레의 뿔에 받혀 여기저기 날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딜러들이 공격을 퍼붓고는 있으나, 투구벌레가 연신 속날개와 겉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어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가가려 했다가는 날카로운 날개 겉면에 여기저기 베이기 일쑤였다.

결국 자신이 나서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시 한 번 강력권에 강화를 입힌 공격으로 투구벌레를 상대해 보려는데, 갑자기 누가 그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그는 줄곧 딜러 팀 뒤쪽에서 뚱한 얼굴로 서 있던 거한이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턱이 서양인처럼 두 쪽으로 갈라진 남자로, 정대식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그는 살벌한 눈길로 정대식을 노려보고 말했다.

"언제까지 이런 하찮은 놈들에게 맡겨 둘 순 없지."

그 광경을 보고 황미건이 고함을 쳤다.

"야! 광필두!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러거나 말거나, 광필두라고 불린 남자는 정대식을 밀쳐 버리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덩치에 걸맞지 않는 유연한 몸동작으로 투구벌레에게 접근하더니,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그건 일견 짧은 스틱처럼 보였다.

한데 광필두가 "흡!" 하는 기합성과 함께 마력을 불어넣자, 거기서부터 콰르르르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하아아압!"

그는 그것을 휘두르며 높이 뛰어올랐다.

눈부신 번쩍임과 함께 불의 검이 휘둘러지고, 그게 투구벌레를 등에서부터 배까지 쫙 갈라놓았다.

퍼어어어억!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나면서 일격에 투구벌레가 반으로 쪼개졌다.

쩌억!

동시에 안에서 무수히 많은 애벌레가 기어 나왔다.

투구벌레의 새끼인 것인지, 팔뚝만 한데다가 콩 벌레처럼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사방팔방으로 굴러 나와 대원들에게 달라붙었다.

"으아아악!"

"이, 이 자식들! 저리 가!"

"끄악! 물렸어!"

애벌레들은 애벌레가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날카로운 이빨로 대원들을 마구잡이로 물어뜯었다.

살덩이를 한 움큼씩 뜯어 씹어 먹으며 순식간에 대출혈을 일으켰다.

"으아아악! 살려 줘!"

"끄아아아아!"

임시 대원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침내 정식 대원인 딜러들이 나섰다.

그들은 황미건의 지시로 흩어져 임시 대원들을 공격하고 있는 애벌레들을 한 마리씩, 혹은 한꺼번에 여러 마리씩 차례대로 처치해 나갔다.

"끄으으으!"

"우와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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