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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40화 (40/297)

# 40

현질 전사

-2권 15화

"A조 전진!"

일단 가장 공격력이 높은 대원들로 구성된 A조가 앞서 나갔다.

그들이 먼저 보스몹과 싸우다 부상 등을 이유로 전력이 약화되면 다시 뒤로 빠져서 힐을 받고, 그사이 B조와 C조가 연합해 몬스터를 상대할 계획이었다.

그런 식으로 세 개 조가 번갈아 가며 보스몹을 공략하는 게 이번 작전의 내용이었다.

정대식 또한 공격력이 강한 관계로 A조에 속해 있었다.

그는 박무식과 배웅일이 어그로를 끄는 사이, 다른 딜러들과 함께 집게발 뒤로 돌아갔다.

탱커들에게 정신이 팔린 가시전갈은 한 쌍의 집게발로 탱커들을 무차별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뒤로 돌아간 딜러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는 꼬리를 절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퍼부어!"

"무조건 잘라!"

원딜의 포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근딜들이 뛰어들었다.

한데 그놈의 독침이 문제였다.

가시전갈은 분명 어그로가 끌려 있었다.

탱커들을 공격하기에도 바쁠 터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침이 마치 별개의 자아라도 있는 것처럼 가까이 접근하는 딜러들을 공격하는 게 아닌가!

쐐애애액!

쾅!

"으악!"

"물러서!"

"늘어난다!"

게다가 더욱 낭패인 것은 그 독침이 달린 꼬리는 길이가 마음대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마치 채찍처럼 쑥 날아와 딜러들을 휩쓰는데, 그게 늘어나리라고 미처 예상치 못한 딜러들이 우르르 당했다.

꼬리에 맞고 쓰러지면서 사방에 뿌려지는 독액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으아아악!"

"크아아!"

여기저기 비명이 울리는 가운데 한 딜러가 독침에 가슴을 맞았다.

"커억!"

거의 창에 꿰뚫리다시피 독침에 맞은 채로 한동안 허공을 날았다.

부웅!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그는 식육 식물이 득시글거리는 덤불 속에 처박혔다.

"아악!"

그 광경을 보고 놀란 다른 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B조에서 즉시 식육 식물에 뜯기는 그 딜러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때 하필, 어그로가 흐트러졌다.

가시전갈의 집게발이 급작스레 움직이는 B조를 쾅, 후려쳤다.

"으아악!"

"어그로! 어그로!"

박무식이 악을 쓰자 다행히 금방 어그로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작전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결국 C조가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진입했고, 전투가 난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독액을 뿌리는 독침으로 인해 A조의 딜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안 되겠다.'

가급적 나서지 않으려고 했으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정대식은 강력권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가시전갈의 급소라고 판단되는 머리통까지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거였다.

그놈의 꼬리 때문에 가시전갈 가까이로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전신이 길이가 한 1미터는 되어 보이는 가시로 둘러싸여 있는 탓에 더 그랬다.

가시 밑의 가죽 또한 철갑처럼 단단하니, 한 번에 공략하지 않는 한 헛힘만 쓰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단번에 처치하겠답시고 달려가다가 저 독침에 찔리기라도 하면.......

제아무리 강화를 입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부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떡하지?

갈등하고 있던 그때.

옆에서 큰 그림자가 드리워져 정대식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 광필두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정대식이 어리둥절해하자 광필두가 허리춤에서 칼 손잡이를 빼 들며 말했다.

"내게 강화를 써라."

"어엉?"

"그러고 나면 저 독침을 잘라 버릴 테니까. 다음으로 일격을 먹여."

정대식은 광필두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달려가는 그에게 강화를 날렸다.

"강화!"

파아아아아!

정대식의 마력이 광필두에게로 내쏘아져, 그의 주변에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어른거렸다.

곧, 광필두가 팔을 휘둘러 불꽃의 날을 쏘아 냈다.

"하아압!"

콰르르르르르르!

강화를 먹은 덕분일까?

광필두의 검에서 불꽃이 솟구쳐 오르자 눈이 타 버릴 것 같았다.

눈부신 화광을 내뿜으며 광필두가 발을 찼다.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사뿐히 허공으로 뛰어오른 그가 곧장 불꽃 검을 휘둘렀다.

"화염 폭타!"

그 검이 가시전갈의 독침과 맞부딪친 순간 마치 폭발하듯 불꽃 검이 펑, 터져 오르며 사방팔방에 불꽃과 불똥이 튀었다.

거기에 넋을 놓을 뻔한 정대식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정대식은 독침이 잘렸는지, 아닌지를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만이 들어, 서둘러 주먹을 움켜쥐고 앞으로 달려 나가며 스킬을 외쳤다.

"신속!"

그의 다리가 놀랍도록 빨라졌다.

몸 또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가 가시전갈에게로 달려가는 동안, 놈은 정대식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박무식이 인물은 인물인지, 아직 어그로가 탱커 쪽으로 끌린 상태였던 것이다.

가시전갈의 집게발은 오로지 탱커들만 족치고 있었다.

독침 또한 광필두의 공격으로 움직임이 멎은 상태.

정대식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아래 훤히 내려다보이는 가시전갈의 정수리를 향해서 주먹을 질렀다.

"강화 강력권!"

파아아아아!

그의 주먹이 마력으로 둘러싸여 서너 배는 가까이 커졌다.

쐐애애애액!

마치 묵직한 쇳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듯, 정대식의 주먹이 가시전갈의 정수리에 가 꽂혔다.

쩌어어어억!

과연, 보스몹은 보스몹이었다.

가시전갈은 가시거미처럼 단번에 머리가 터져 죽지는 않았다.

대신에 정수리를 둘러싸고 있는 갑피가 잘 익은 수박처럼 두 쪽으로 쩍 갈라졌다.

그 금 사이로 뜨거운 증기가 확, 솟구쳐 올랐다.

"으악!"

독이 어린 증기를 얼굴에 쐬고 정대식은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는 가시전갈의 머리 위를 굴러 바로 그 주둥이 앞에 떨어졌다.

흡사 나 잡아 잡수쇼, 하고 자신을 갖다 바치는 꼴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가 잡아먹히도록 가만있지 않았다.

박무식은 아래로 굴러떨어진 정대식과 두 쪽으로 갈라진 가시전갈의 정수리를 보고 사태 파악을 끝냈다.

그는 몸을 날려 정대식을 덮쳐서 가로막았다.

그리고 동시에 고함을 쳤다.

"끝장내!"

그 외침을 듣고 최후의 카드로서 후방에 대기 중이었던 황미건과 설유란이 동시에 나섰다.

그들은 서로 간의 알력도 잊어버린 채 전심전력을 다했다.

"크리티컬 데미지 파워 업!"

설유란이 쏘아 낸 마력이 황미건을 뒤덮었고, 황미건은 여태껏 단 한 번도 휘두르지 않은 무기를 끄집어냈다.

등 쪽 고정대에서 풀어 낸 대검은 실로 컸다.

그걸 두 손으로 붙잡고 크게 젖혔다가, 몸을 둥글리다시피 하며 곧장 앞으로 휘둘렀다.

"일섬!"

콰과과과과과!

대검이 가시전갈의 갈라진 머리통 가운데를 파고들어 갔다.

그러더니 그 기세 그대로, 가시전갈의 머리통을 두 쪽으로 완전히 갈라놓았다.

촤아아악!

가시전갈의 갈라진 머리통에서 뇌수와 피를 비롯한 온갖 찌꺼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독액이 섞인 증기가 고스란히 그 아래 웅크린 박무식과 정대식을 덮쳤다.

그러나 설유란이 한 발 더 빨랐다.

"프로텍션!"

파아아아!

반투명한 방어막이 그들을 둘러쌌고, 독은 박무식과 정대식을 비껴 흘러 쏟아졌다.

곧, 대가리가 날아가 버린 가시전갈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박무식은 식겁해 정대식을 끌어냈고, 그러기가 무섭게 가시전갈이 굉음을 내면서 그들이 있던 자리로 쓰러졌다.

쿠우웅!

그때쯤엔 정대식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는 박무식과 함께 주저앉은 채로 엉금엉금 뒷걸음질을 쳤다.

"하아, 하아......."

넋이 반쯤 나간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노라니,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다.

"쓰러졌다!"

"죽었어!"

"해치웠다!"

그때.

죽어 자빠진 가시전갈의 몸 위로 이상한 현상이 일었다.

구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졌던 것이다.

곧, 거기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정대식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보자마자 그게 무언지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던전의 핵!

던전에서 나는 모든 자원을 통틀어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인.......

마정석이었다.

던전의 핵이라고도 불리고, 마정석, 마력석, 마광석 등등으로 불리는 그것은 일종의 거대한 보석처럼 생겼다.

색이나 종류가 다양한데, 보통 많은 에너지를 품고 있을수록 색이 투명하고 무게가 가볍다고 알려져 있었다.

"나왔다! 핵이야!"

"핵이다!"

대원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허공에 떠서 빛을 내뿜으며 빙글빙글 돌던 핵은 곧 움직임을 멈추었다.

오래지 않아 빛이 꺼지면서 아래로 툭 떨어져 내렸다.

말이 떨어져 내린 거지, 그 무게가 상당해 보였다.

짙은 흑청색의 마정석은 쿵, 소리를 내며 가시전갈의 시체 속에 파묻혔다.

"하필 떨어져도......."

박무식은 투덜거리며 정대식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까?"

"아, 예."

정대식은 약간 낯부끄러운 기분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박무식은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요. 감사는 내가 할 판국인데요. 정대식 씨가 아니었더라면 피해가 더 클 뻔했습니다."

상황이 끝나자 사방에서 죽는 소리가 났다.

부상을 입은 대원들이 꽤 많았고, 독침에 맞은 근딜은 정도가 심각해 보였다.

광필두가 그를 살피는 가운데 힐러가 그쪽으로 총총 다가갔다.

곧 힐러가 힐을 쓰기 시작했다.

힐러가 일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자못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쪽에 시선을 주시하고 있노라니, 광필두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꼭 시비라도 걸고 싶은 사람처럼 흉흉한 눈으로 정대식을 바라봤다.

정대식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조금 쫄아 있자, 광필두가 문득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켜 보였다.

거기에는 불타서 떨어져 나간 독침이 보였다.

광필두는 짧게 한마디만을 했다.

"네 덕분이다."

"아, 예......."

그게 고마움의 표시였는지 광필두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저쪽으로 가 버렸고, 연이어 설유란과 황미건이 달려들었다.

"정대식 씨! 대단했어요!"

"어머머, 멋있어! 정대식 씨가 아니었더라면 일이 이리 쉽게 끝나진 않았을 거예요!"

"진짜, 볼수록 탐나는 거 알아요? 스카우트 제의,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나랑 함께하자고요!"

설유란이 콧소리를 내며 하는 말에 당장 황미건이 눈을 부라렸다.

"누구 맘대로? 아까 정대식 씨 활약하는 거 못 봤어? 마땅히 딜러 팀에 있어야 할 사람이야!"

"딜러 팀에 힘쓰는 사람이라면 차고도 넘치잖아! 광필두 씨에게 버프 먹이는 거 봤을 텐데? 당연히 우리 팀에 들어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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