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43화 (43/297)

# 43

현질 전사

-2권 18화

정대식이 딜러이기만 했다면 그 너클을 탐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는 탱커, 딜러, 버퍼,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것만 해도 세 가지 포지션을 소화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탱커의 무기를 갖는다 해서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강력권은 매우 위력적인 스킬이다.

강화 강력권 앞에서 6등급 몬스터이던 가시거미가 일격에 머리가 날아갔다.

만약 이 너클까지 갖춘다면 공격력은 더 올라갈 터.

단번에 처치할 수만 있다면 어그로가 흩어질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된다.

여러모로 좋은 무기라고 생각되어 정대식은 가격을 물었다.

"얼마죠?"

제일 중요한 건 금액이다.

제아무리 괜찮은 무구라고 하더라도 수지가 맞아야 할 게 아닌가?

얼토당토않게 조그만 쇳조각을 가지고 몇천만 원씩 내놓으라 하면 살 생각이 없었다.

한데 의외로 가격이 저렴했다.

"딱 500! 500만 원만 주십시오."

물론 정대식은 그런 기분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전매특허인 울상을 짓고서 우는 소릴 했다.

"500이라고요? 그만한 돈이 어딨어요? 자동 소총 바꾼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에헤이~ 이 손님, 또 이러신다. 그래도 어느 정도 예산이 있으니까 새 무기 사러 온 거 아니에요?"

"제가 어느 정도 예산이 있었으면 겨우 너클을 사러 왔겠어요? 제대로 된 글러브를 샀겠죠! 돈이 없으니까 최고로 싼 너클을 보여 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너클은 그만한 돈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니까요? 제가 뭐랬습니까? 최저한의 가격에 최대한의 효과! 가격은 500이라도 위력은 5,000만 원 정도 할 거라고요. 그러니까 여기서 더 깎으려 하지 마십시다. 그럴 바엔 안 팔아요, 안 팔아!"

"안 파실 거면 왜 보여 주신 거예요? 솔직히 저 아니면 누가 너클을 500이나 주고 사 간답니까? 이런 단순 타격 무기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그냥 임자 찾았다 생각하고 조금만 깎아서 넘겨주세요. 저도 이번엔 많이 안 깎겠습니다. 300 어떻습니까?"

"아니, 이 사람이! 말 같잖은 소리를......!"

주인은 얼굴이 벌게져 뒷목을 잡고 넘어가려고 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500이 정말 괜찮은 가격이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한 100만 원만 깎아도 되겠다고 작정한 정대식은 몇 번에 걸쳐 흥정을 했다.

결국, 아무런 덤 없이 400만 원에 그 너클을 넘겨받기로 했다.

"어휴...... 하여간에 손님이 오면 남는 게 없어요! 누군 땅 파서 장사하나...... 이럴 거면 앞으로 오지 마쇼!"

속상한지 몹시 투덜거리는 주인을 보고 정대식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이 가게에만 오잖아요. 앞으로도 종종 찾을 테니까 좀 봐주세요."

"에이! 그러다가 어디 가서 죽지나 말아요. 생존 신고 제때제때 하란 말입니다."

투덜거리면서도 주인은 너클을 전용 케이스에다 정성스레 포장해 주었다.

정대식은 그에게 감사하다 말하고 현금으로 400만 원을 즉시 지불했다.

'흠, 오늘의 볼일은 900만 원에서 끝났군. 제법 저렴하게 끝냈어.'

각오한 것보다는 적게 쓴 것이 기분 좋았던 정대식은 콧노래를 흥흥 부르며 무기 상가를 나왔다.

그리고 상가 입구에서 커피 한 잔을 샀다.

평소 커피와 같은 기호 식품은 즐기지 않았지만, 모처럼의 휴식에 조그마한 사치랄까?

물론 정대식의 성격상 유명 프랜차이즈의 커피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에겐 테이크아웃 전용의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의 커피조차도 비쌌다.

가능하다면 몇백 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셨겠지만, 이곳엔 자판기가 없었다.

대신 병에 담긴 인스턴트커피와 프림, 설탕을 싣고 다니며 즉석에서 커피를 타 주는 조그만 트레이가 보였다.

옛날 시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노점이었지만, 가격이 쌌다.

단돈 천 원!

정대식은 천 원을 지불하고 조금은 사치스런 기분으로 얼음이 동동 띄워진 다방 커피를 큰 컵에 받았다.

그리고 빨대를 쪽쪽 빨며 발길을 옮겼다.

그러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모르는 번호라 또 광고 전화인가 하고 다소 신물 나는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

한데 수화기 저편에서 깔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정대식 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누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정대식 씨. 저는 헌터 전문 스카우터로 활동하고 있는 박가람이라고 합니다.

'헌터 전문 스카우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조디악 공격대와 함께 일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자신이 갖춘 능력은 범상치 않다.

조디악 공격대의 각 팀장이 앞다투어 영입하려 할 정도의 능력인 것이다.

당연히 조디악 공격대뿐만 아니라, 다른 공격대에서도 제안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접촉을 해 올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연락이 올 줄이야.

정대식은 약간 흥분되는 기분으로 말했다.

"예,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슨 용건이신지?"

-실은, 정대식 씨 앞으로 여러 건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 건이라고요?"

-전화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 혹시 괜찮으신 시간에 잠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이라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어디 계신지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어디서, 어떤 제안이 여러 건이나 들어왔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정대식은 그와 약속을 잡았다.

그 바람에 방금 마신 커피를 또 마시게 생겼다.

무기 상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커피숍에서 기다린 지 오래지 않아, 스카우터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정대식 씨.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 올린, 전형적인 영업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코롱 냄새를 짙게 풍기며 남자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보이고 명함을 내밀었다.

"말씀드렸다시피, 헌터 전문 스카우터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에."

"그럼 앉으실까요? 점심 식사는 하셨는지요?"

"예, 뭐. 괜찮습니다."

"시장하시면 뭐라도 드시지요? 제가 사겠습니다."

저쪽에서 사겠다는 말에 정대식은 사양하지 않았다.

커피를 또 마시기도 물리던 참이라, 간단히 샌드위치를 부탁했다.

손수 계산을 하고 샌드위치를 받아 가지고 온 남자는 몇 마디 한담을 꺼냈다.

그렇게 정대식이 샌드위치를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본론을 꺼냈다.

"요사이, 정대식 님에 대한 소문이 여기저기서 자자하더군요."

정대식은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렇습니까?"

"매우 오래간만에 듀얼리스트가 등장했으니, 업계가 들썩이고 있었죠."

"업계라고요?"

"저 같은 스카우터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헌터 전문 스카우터는 대부분 프리랜서다.

여러 공격대에서 의뢰를 받아 적당한 인물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그쪽에서 원하는 인물을 섭외해 주기도 한다.

공격대 가입을 원하는 헌터의 부탁을 받아서 다리를 놔주기도 하는, 공격대와 헌터 사이의 오작교 역할을 하는 업종이라 하겠다.

"실은 이보다 더 빨리 연락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대식 님이 조디악 공격대와 함께 던전 공략을 떠나시기에, 이미 그쪽과 이야기가 된 줄 알았습니다."

"입대 권유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제의는 거절할 작정입니다."

"왜 그렇지요? 조디악 공격대라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형 정공이 아닙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으실 텐데요."

"사실 처음에는 공격대에 가입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만, 그래도 조디악 공격대는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조건은 둘째 치고, 제가 들어가서 활동하기에는 지나치게 규모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정대식이 하는 말에 놀랍게도 박가람이 정대식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아무래도 대형 정공에 가입하게 되면 자율성이 제한되지요. 팀장급으로 올라서지 않는 이상 어떤 영향력을 미치기도 어렵고요. 나중에 공격대를 창설할 마음을 먹고 계신다면, 좀 더 소규모 공격대에 들어가 활동하시는 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잠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셔서 목을 축이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제가 건의해 드리는 이 두 곳의 공격대가 제격일 겁니다."

"두 곳이라고요?"

정대식의 질문에 박가람이 씩 웃어 보였다.

"실은 이보다 더 많은 공격대에서 정대식 님을 영입하고 싶다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공격대에서 연락이 왔기에......."

"제게 온 것만 해도 다섯 군데입니다."

"다섯 군데라고요?"

박가람은 놀라는 정대식을 보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마 지금 대원을 모집하고 있는 거의 모든 공격대가 정대식 님을 노리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박가람이 그렇게 말을 하는데 좀 실감이 안 났다.

정대식은 얼떨떨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깜박거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낱 짐꾼으로 여기저기를 전전했던 그였다.

그 시절에도 공격대의 일을 받는 게 어려워, 어쩌다가 정공을 따라가게 되는 날은 대박 터졌다고 기뻐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공에서 다들 자신을 원한다고?

믿기지가 않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두 가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듀얼리스트.......

실은 세 가지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 트리플리스트라고 봐야 했다.

전무후무한 능력이다.

당연히 모두가 탐을 낼 만했다.

'으아...... 이거 기분 째지네!'

정대식은 짜릿짜릿한 쾌감 속에서 슬며시 웃음 지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시침을 뚝 떼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개중 두 군데의 공격대만 권유하는 이유가 뭡니까?"

"어차피 정대식 님은 한 분뿐이니 모든 공격대에 가입하실 순 없는 노릇이죠. 그중에 정대식 님께 가장 걸맞는 곳을 골라서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잘 매칭시키는 것이 또 제 일이고요. 여태껏 수십 건의 스카우트를 성공시켜 온 안목으로 따져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박가람은 자신 있게 말을 하더니 두 군데 공격대를 언급했다.

"제가 추천 드리고 싶은 공격대는 다크플레임 공격대와 천룡 공격대라는 곳입니다."

"다크플레임 공격대와 천룡 공격대라고요? 흐음...... 천룡 공격대는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다크플레임 공격대는 들어 본 적이 없군요."

"두 군데 다, 조디악 공격대에 비하면 규모가 소소하지요. 특히 다크플레임의 경우에는 지사를 서울 쪽으로 옮긴 게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원래는 경기 쪽에 본사를 두고 활동하다가, 공격대 규모가 커지면서 최근에 사옥을 새로 짓고 있습니다. 사옥이 바로 근처인데, 한 번 가서 보시겠습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아무튼 다크플레임은 창설된 지는 3년 정도밖에는 안 되었지만 성장세가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지난 3년 동안 탈공한 대원이 한 명도 없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대원들 사이가 매우 돈독한가 보군요."

"하하, 어디 헌터 세계라는 게 단순히 친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겠습니까? 그만큼 공대장의 통솔력과 공격대 운영에의 투명성, 공대원들의 실력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말이겠지요. 실제로 다크플레임의 공대원들 수는 꾸준히 늘어 왔고, 전부가 재계약을 했습니다."

"그 점은 참 인상적이네요."

"여기 제가 가져온 자료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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