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46화 (46/297)

# 46

현질 전사

-2권 21화

정대식의 주장은 실로 신빙성이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듀얼 능력자가 아니었다.

차후에 변화계 능력을 얻었고, 정신계도 나중에 얻었다 치면, 또 다른 능력을 얻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여태껏 듀얼리스트들은 전부가 처음부터 두 가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정대식은 완전히 새로운 경우인 것이다.

게다가 그가 각성자가 된 지 불과 석 달!

이 기세대로라면 올인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장한나는 그 사실을 상기한 듯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정대식이 올인원이 될 유일무이한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라 치면, 그의 말이 옳았다.

겨우 세금 감면 혜택 정도로는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를 국내에 붙들어 둬야 했다.

만약 그를 붙잡는 데 실패해서 정대식이 해외로 나가 버릴 경우, 그 책임을 모조리 그녀가 지게 될 수도 있었다.

전 세계가 헌터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 판국에, 올인원이라는 존재는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카드였다.

장한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그녀는 양해를 구하고 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대식이 망중한을 보낼 동안 밖에서 누군가와 한참을 통화했다.

잠시 후.

제자리로 돌아온 장한나는 다소 피로한 기색으로 말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더 좋은 조건을 이끌어 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 당장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세금 면제 혜택 외, 하나뿐입니다."

"그게 뭡니까?"

장한나는 짧게 말했다.

"국가 기물 금고! 거기에 출입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정대식은 움찔했다.

국가 기물 금고라니.

그는 저도 모르게 반문을 던졌다.

"......그게 실재하는 거였습니까?"

장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기관과 마찬가지로......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창고지요. 그곳에는 국가에서 모아들인 A급 이상의 아이템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정대식은 소름이 쫙 끼치는 걸 느꼈다.

풍문으로만 들려오던 국가 기물 금고!

그곳에는 지난 몬스터 브레이크에서 발견된 여러 희귀한 아이템을 비롯해, 국가가 꾸준히 수집해 온 최고급 무구와 장비들이 즐비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이템이란 실제로 쓰여야 가치가 있는 것인데,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무익한 짓을 할 리가 없다고 말을 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실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여러 전설적인 무구들이 전부 그 창고에 들어가 있을 거라고들 유추했다.

어쨌든 세간에서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판가름할 수 없었고, 정대식으로서는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금고가 실재하고 있고,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준다 하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들어가기만 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말을 꺼낸 의미가 없다.

안에 있는 기물을 그저 구경만 하고 나오라는 소리는 아닐 테니까.

정대식은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장한나는 간단히 말했다.

"개중에서 정대식 씨가 원하는 아이템이 있다면 내어 드리겠습니다. 시중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물건이니만큼, 하나같이 엄청난 값어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겠지요."

"물론, 이것은 대여입니다. 정대식 씨가 약속을 어기고 해외로 나가신다거나 사망하실 경우에는 즉시 회수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단한 혜택이지요. 아시다시피 무구의 가격은 성능에 따라 천차만별...... 뛰어난 무구의 경우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자랑하지요. 그 대신 제값을 톡톡히 합니다. 무상으로 그러한 아이템을 빌려 드리겠다는 것이니, 이만하면 국내에 남을 생각이 있으십니까?"

정대식은 끝까지 배짱을 부렸다.

"흠, 막상 들어가 봤는데 별 게 없으면 어쩝니까? 제아무리 A급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제 성에 안 찰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닙니까?"

장한나는 정대식을 노려봤다.

그녀로선 그녀가 제안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를 꺼낸 셈인데 정대식이 끝까지 튕기니까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어떻게든 정대식을 붙잡아야 하는 을의 입장이었으므로, 금세 곤두세웠던 눈초리를 누그러트리고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직접 보고 결정하시지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걸 원하시는 게 아니었나요? 그곳으로 직접 가서 원하는 게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시고 선택하세요. 물론, 국가 기물 금고에 대한 모든 사항은 극비인 관계로 절대 외부에는 발설할 수 없습니다. 비밀 유지 서약에 동의해야지만 출입하실 수 있습니다만."

"만약 어길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장한나는 좀 섬뜩하게 웃었다.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모르긴 몰라도, 집행자가 출동하지 않을까요?"

"흠흠."

별로 거기에 대해 떠들고 다닐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정대식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장한나가 물었다.

"그럼 언제 가 보시겠습니까?"

"지금은 가능합니까?"

"출입 허가를 받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주저할 필요 있나요? 지금 가 보지요."

정대식은 솟구치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했다.

보통 헌터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특급 아이템이 즐비한 금고라니!

당장 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대식의 눈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고 장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 * *

정대식은 흥분을 억누른 채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낯익은 경치가 보인다 싶더니만, 공원을 끼고 있어 탁 트인 전망 저 너머로,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은......?"

정대식이 질문 삼아 던진 말에, 어디론가 바삐 전화를 하던 장한나가 검지를 세워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거의 다 왔어요...... 아뇨. 문제없죠. 네. 네."

곧 전화를 끊은 장한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국회 의사당을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 짐작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국가 기물 금고는 바로 저곳과 이어진 지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모를 수밖에요. 그 사실을 정대식 씨가 안다면, 국가 안보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뜻 아니겠어요?"

새침하게 대꾸한 장한나는 차가 도착하길 기다렸다가 내렸다.

정대식도 따라 내렸고, 두 사람은 다른 조사원을 남겨둔 채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는 지하 통로로 향했다.

거기에서 장한나는 관리자 외 출입 금지라 적혀 있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배관이 붙어 있는 긴 통로를 한참 동안이나 따라서 걸어가자, 끄트머리에 엘리베이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장한나가 신원을 밝혔다.

"국가특별관리원 3과 소속 7급 공무원 장한나입니다."

연이어 손바닥을 엘리베이터 문에 갖다 대자 문이 터치패드처럼 지문을 인식했다.

홍채 인식까지 완벽하게 마치고 나서야 <허가되었습니다>라는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마치 SF 영화 혹은 스파이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이라 정대식은 무심결에 감탄사를 흘렸다.

"우와."

정대식이 그러는 걸 보고 장한나가 눈을 흘겼다.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닌데요? 신기해서 그러죠."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게 신기한가요?"

엘리베이터에는 버튼이 몇 개 없었다.

한참을 내려가고 나서야 간신히 문이 열렸고, 입구에 보안 요원 두 명이 자리해 있었다.

아까 신원 확인을 다 했으면서 보안 요원은 구식 방법으로 방명록을 작성하라 말했다.

거기에서는 정대식도 신분증을 제시하고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해야 했다.

대강 훑어보니 아까 장한나가 말한 바와 같은 내용이었다.

"비밀 유지 서약 서류예요. 여기에 사인하고 나면 입을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염려 마시죠. 이래 봬도 제가 입 하나는 무겁거든요."

장한나는 별로 신뢰하는 눈치가 아니었으나, 정대식은 잠자코 사인을 했다.

보안 요원들이 물러서고 몇 겹이나 되는 차폐 장치를 지나쳤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금고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예요."

장한나는 왜인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큼, 발을 옮겼다.

금고 입구는 전통적인 스타일이었다.

둥근 형태의 묵직한 쇠문이 붙어 있었는데, 직경이 2m는 되어 보였다.

그 앞에 눈이 게슴츠레한 거한이 나와 있었다.

그는 손에 든 태블릿을 확인해 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7급 공무원 장한나 씨와, 장한나 씨가 보증하는 6급 헌터 정대식 씨가 맞습니까?"

"맞습니다."

"맞아요."

"이쪽으로 오시죠."

"저는 국가 기물 금고 담당자입니다. 잠깐만 손을 주시지요."

담당자는 가느다란 테이프를 장한나와 정대식의 손목에 감아 놓았다.

그게 임시 통행증 역할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도난 방지 장치인 것 같았다.

"이 테이프는 금고에서 나갈 때까지 절대 훼손하면 안 됩니다. 이 테이프가 없이 기물, 그러니까 아이템을 만질 경우에는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목숨에 위협이 있을 만큼 지극히 위험하므로 조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아이템의 반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출 등록이 되지 않은 아이템을 밖으로 가지고 나갈 경우, 금고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아이템에 적용되어 있는 도난 방지 장치가 작동됩니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이므로 자력으로는 결코 해제할 수 없습니다. 아이템을 타인에게 넘기거나 멀리 떨어트려 놓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 또한 저주에 감염될 것이며, 집행자의 추적을 받게 되므로 유의하십시오."

담당자는 태연자약한 태도로 말하고 있었으나 실로 살벌한 경고였다.

과연, 특급 기물만 모아 둔 금고답다고 해야 하나.

무시무시한 경고를 받고 나니 되레 기대가 되었다.

뭐, 얼마나 굉장한 아이템들이 있기에?

마치 그 옛날 『아라비안나이트』에나 나오는 보물 창고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럼, 열겠습니다."

담당자는 몸을 돌리고 금고 옆 터치패드에 마찬가지로 신원 인증을 했다.

그러고 난 후, 수동식의 금고의 암호를 일일이 맞춰서 풀었다.

마지막으로 담당자 역시 각성자인 것인지, 마력을 흘려 넣자 금고 문짝 자체가 파르라니 빛났다.

곧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금고의 잠금 장치가 해제되고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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