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현질 전사
-2권 25화
맘 같아서는 마력 변환 자동 소총과 아다만트 너클도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대식은 참았다.
견물생심이라고, 괜한 놈들을 끌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중하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
"그럼 난 바빠서 이만."
그러자 정대식의 정체를 알아차린 멸치가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잠깐만! 당신 지금 어디 가는 거죠? 사냥 가는 거죠? 그렇담 우리랑 같이 가면 안 되나요?"
호빵이 냉큼 숟가락을 얹었다.
"그래요. 우리가 이래 봬도 7등급은 된다고요. 오늘 레이드가 파토 나는 바람에 여기서 어쩌나 하고 있던 참이에요. 7등급 정도면 당신하고 같이 사냥할 만하지 않겠어요? 보아하니 별다른 약속도 없는 것 같은데."
정대식은 붙잡는 손을 가볍게 떨어냈다.
"약속이 없는 건 맞지만 다른 예정이 있어서."
그는 재빨리 발길을 옮겨 던전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케르베로스가 있는 구역으로 가기까지는 훼방꾼이 많았다.
지옥쥐, 지옥개, 지옥마수 들이 출몰하는 층을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정대식은 지옥쥐는 발치의 돌을 걷어차는 정도의 기분으로 지나쳤다.
지옥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력권을 쓸 필요도 없이, 한주먹 거리였다.
'이거 참 싱거운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던 와중에, 별안간 지옥개 수십 마리가 우르르 나타났다.
주의 없이 걷다 보니 몬스터 집중 구역에 발을 들인 것이다.
정대식은 수십 마리의 사나운 지옥개들이 크르릉거리는 광경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놈들을 향해 까닥까닥 손짓을 해 보였다.
"한꺼번에 덤벼! 그래야 방어구 성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테니까."
"컹컹컹컹!"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지옥개들이 번쩍거리는 이빨을 드러낸 채 와르르 덤벼들었다.
정대식은 놈들을 도발해 놓고도 두 팔을 늘어트린 상태로 편안히 서 있었다.
과연, 탈로스 방어구 세트가 얼마만한 위력을 발휘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아니?'
정대식은 지옥개 한 마리가 사납게 정강이를 물고 늘어지는 광경을 봤다.
곧 허벅지와 엉덩이, 옆구리와 팔뚝 등, 전신에 지옥개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주둥이가 들어갈 자리에는 남김없이 지옥개들이 그를 물고 늘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몸이 다소 휘청거리긴 해도, 지옥개들의 이빨은 갑옷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여겨지는 연결 부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지옥개들이 아무리 지랄 발광을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정대식은 지옥개들에게 둘러싸인 채 하하핫, 웃었다.
누가 보면 지옥개들에게 잡아먹히는 와중, 정신 나갔다 할 만한 광경이었다.
"굉장한데! 설명을 들은 것보다 실제로 더 대단하잖아?"
지옥개들은 바위라도 씹어 대는 듯 허무한 입질을 계속했다.
패시브 스킬로 획득한 강철 신체까지 적용된 상태이니, 탈로스 방어구를 걸치자 가히 금강불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체력까지 40으로 올려놓지 않았던가!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덕도 않는다고 봐야 했다.
정대식은 놈들을 적당히 떨궈 내며 여유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럼 이번엔 아다만트 너클을 한번 시험해 볼까?'
그는 지그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강화나 신속 등등, 어떤 스킬도 가하지 않은 맨주먹을 그대로 내질렀다.
후웅-!
그저 팔을 뻗었을 뿐인데도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났다.
흡사 잘 단련된 복싱 선수와 같은 동작이었다.
그건 짐꾼으로 살아온 정대식이 할 수 있을 만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우와! 이게 아다만트 너클의 능력......!'
아다만트 너클에는 몇 가지 특수 기능이 곁들여 있었는데, 개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킬 발휘였다.
너클 자체에 잽, 스트레이트, 훅과 같이 기술적인 펀치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즉, 너클을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수년 간 단련한 복싱 선수의 주먹과 같은 기술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찰나의 감탄이 지나가고, 곧게 뻗은 스트레이트가 정면에서 덤벼들던 지옥개의 안면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다만트 너클을 착용한 주먹이 지옥개와 맞부딪쳤다.
꽈아앙-!
"으억!"
정대식은 놀란 나머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건 그의 몸에 주렁주렁 붙어 있던 지옥개들도 마찬가지였다.
"깨갱!"
"깨개갱!"
아다만트 너클이 지옥개를 때리는 순간, 굉음이라 할 만한 고성이 울렸던 것이다.
마치 피어처럼 위협적인 파공음에 지옥개들이 식겁해 사방팔방으로 달아났다.
주먹을 내지른 장본인인 정대식조차 크게 놀라 소리를 질렀으니 오죽하랴.
"우와! 후우! 까, 깜짝 놀랐네......."
정대식은 꽁지를 말고 도망치는 지옥개들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게 아다만트 너클의 또 다른 성능이구나. 역시 A급 아이템이라고 할 만해. 무지개소뼈로 만든 너클은 미련을 버려야겠어.'
정대식이 워낙에 짠돌이다 보니, 국가 기물 금고에서 너클을 고른 것이 줄곧 마음에 걸렸었다.
물론 무기 상점에서 산 너클은 A급 아이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싸구려였으나, 아직까지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물건인 것이다.
나름대로 섬광을 내뿜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수수료를 물고 중고로 팔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다만트 너클의 훌륭한 성능이 그의 서운한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래 주었다.
'맘 같아선 아다만트 너클에도 섬광을 내뿜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배부른 투정이겠지.'
정대식은 발치에 죽어 자빠진 지옥개의 사체를 발로 툭 쳤다.
다들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건진 거라곤 직접 주먹으로 때린 한 마리뿐이었다.
사실 별 돈도 안 되는지라 짐이 된다고 버려두고 갈 수도 있겠지만, 정대식은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아공간이 있으니 상관없다고 중얼거리며, 지옥개 사체를 꾸역꾸역 챙겼다.
그리고 던전의 더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갔다.
* * *
정대식의 앞길을 막은 다음 타자는 다름 아닌 지옥마수였다.
지옥개와는 달리 지옥마수는 만만찮은 몬스터다.
그러나 케르베로스를 여러 번 잡아 본 탓일까?
아니면 그만큼 자신감이 붙은 덕분일까?
정대식의 눈에는 지옥개나 지옥마수나 그게 그거였다.
지옥마수의 값이 더 비싸니까 시체를 잘 챙겨야겠다는 점 정도나 다를 뿐.
지옥마수를 처치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아다만트 너클을 낀 주먹으로 몇 번 때려 주기만 해도, 지옥마수가 맥을 못 추고 침을 질질 흘리며 벌러덩 나자빠졌던 것이다.
그래도 꼴에 마수라고, 지옥개처럼 일격에 죽지는 않았다.
주먹에 아무런 강화를 더하지 않은 탓이다.
마력 변환 자동 소총의 위력을 시험해 볼 겸, 정대식은 지옥마수의 숨통을 끊는 것은 주먹이 아닌 방법을 택했다.
'어디 보자, 일단 빨간 버튼부터.'
정대식은 배를 뒤집은 채 다리를 벌벌 떨며 기절해 있는 지옥마수를 향해 자동 소총을 휘갈겼다.
자연스레 투다다당, 하는 마력탄의 소음을 기대했거늘.
"으허억!"
이번에도 정대식은 깜짝 놀랐다.
아니 글쎄, 자동 소총의 주둥이에서 화염 방사기 버금가는 불꽃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콰르르르!
불타는 화염이 지옥마수를 휘감았고, 지옥마수의 뻣뻣한 털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지옥마수는 괴로운 듯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잠잠해졌다.
덩달아 정대식도 괴로운 표정이 됐다.
새삼 전에 없던 동정이 일어난 탓은 아니었다.
"아우! 저거 털, 다 타 버리면 어떡해!"
마력탄을 화염탄으로 바꿔 준다기에, 지옥마수의 털이 일부 그을리는 것은 각오를 했다.
그런데 탄이 아닌 포와 같은 성능을 낼 줄이야!
마력의 성질이 변환되면서 그 공격력의 정도도 바뀐 모양이다.
아무 대비가 없던 정대식 역시도 눈썹을 태워 먹을 뻔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의 눈썹은 멀쩡했으나, 지옥마수의 털이 홀랑 다 타 버려 아깝기 그지없었다.
정대식은 혀를 쯧쯧 차며 빨간 버튼은 좀 신중하게 눌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대식은 다 타 버린 지옥마수의 시체를 아공간에 집어넣고 다시금 발길을 옮겼다.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지옥마수가 튀어나왔다.
"크아아앙!"
이번엔 처음부터 자동 소총이다!
정대식은 파란 버튼을 누른 채로 자동 소총을 쐈다.
아까와는 달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위력은 예상 밖이었다.
시퍼런 냉기가 쏟아져 나온다 싶더니만, 지옥마수를 꽁꽁 얼려 버렸던 것이다.
"얼렐레."
지옥마수가 얼어붙어 행동 불능 상태가 된 것은 좋은데, 너무 얼었다.
완전히 거대 얼음 조각상과 다름없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걸 어떡하지?'
정대식은 망설이다 아다만트 너클을 낀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그러자 지옥마수를 둘러싼 얼음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한 번 얼었던 지옥마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정대식은 강화를 주입한 주먹으로 지옥마수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좋아, 빙결탄은 화염탄보다 더 쓸모가 많겠어. 다음으론 지연탄이지?'
사실 정대식이 가장 기대를 하고 있는 게 이 지연탄이었다.
정대식은 다음 희생양을 찾아 같은 구역을 어슬렁거린 끝에 또 다른 지옥마수를 맞닥뜨렸다.
"와라!"
"크르르르!"
사납게 땅을 박차고 덤벼드는 지옥마수를 향해 검은 버튼을 누른 상태로 자동 소총을 갈겼다.
그러자 평범한 마력탄과 일견 똑같아 보이는 마력탄이 발사됐다.
그런데 그게 지옥마수에게 가 닿기가 무섭게, 별안간 지옥마수의 움직임이 늦춰졌다.
한달음에 정대식의 앞으로 달려와 그의 머리통을 깨물어야 하거늘.
지옥마수는 고약한 트랩에 갇힌 것처럼 꿈지럭거렸다.
몬스터에게 표정 따위가 있을 리 없건만.
지옥마수는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그 낯짝을 보며 크게 "하하하!" 웃은 정대식은 주먹을 치켜들었다.
"강화!"
연거푸 스킬을 먹인 주먹을 내지르자, 그 주먹이 지옥마수의 주둥이를 꿰뚫고 나왔다.
머리가 박살이 나며 피와 뇌수, 뼈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그냥 주먹으로 지옥마수를 결딴내긴 무리지만, 강화 한 번이면 지옥마수도 피떡이 될 뿐이었다.
"하핫! 이거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거야?"
정대식은 감개무량한 기분에 웃어 젖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옥마수 한 마리 잡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거늘!
다른 사람과 파티를 꾸린 상태로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암컷은 일부러 피해 갈 정도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혼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상태로 사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급 아이템의 성능이 이 정도면 S급...... SS급 아이템은 어느 정도란 말이야? 더 대단하겠지?'
정대식은 아다만티움 갑옷을 떠올리고는 입맛을 쩝, 다셨다.
'그냥 종신 계약을 할까? 막 없던 애국심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박살이 난 지옥마수의 사체를 수습해 아공간에 쑤셔 넣고는 발길을 옮겼다.
무구의 성능은 충분히 확인했다.
이제부턴 진짜 사냥이다!
기분 좋은 긴장과 떨림이 뱃속을 울려왔다.
그랬다, 기분이 좋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끝내줬다!
정대식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케르베로스 출몰 지역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다 덤벼! 케르베로스든 지옥용이든...... 모조리 텨 나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