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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51화 (51/297)

# 51

현질 전사

-3권 1화

Chapter 14. 날파리

"후우."

정대식은 이마에 솟아난 땀을 닦으며 자신이 일궈 낸 업적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발밑에 혀를 길게 빼물고 쓰러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케르베로스!

그것도 머리 세 개가 온전히 붙어 있는 상태였다.

"흐흐흐."

정대식은 과연 이게 돈이 얼마나 나올까 가늠해 보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웃음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정대식의 예상대로 지연탄의 위력이 훌륭했다.

지연탄이 케르베로스의 움직임을 늦춰 주다 보니, 가급적 손상을 입히지 않고 사냥이 가능했던 것이다.

더불어 지연탄의 한계 역시도 알게 되었다.

지연탄이 유효한 범위와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지연탄이 명중한 자리에서 대략 1m 정도 범위의 움직임이 늦춰졌다.

덕분에 케르베로스의 움직임을 한꺼번에 느리게 할 수는 없었지만, 케르베로스 머리 하나 정도가 느려지는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그 위력이 발휘되는 시간 또한 3초.

그리 길다고 할 수는 없는 시간이었으나,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는 짧다고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세 개나 붙은 케르베로스를 상대로도 여유 있을 만한 시간은 충분히 벌어 주는 것이다.

당연히, 부상은 조금도 입지 않았다.

탈로스 방어구 덕분이다.

정대식은 아공간을 불러내어 케르베로스 사체를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진짜 지옥용을 잡아 봐도 괜찮겠는데? 지옥용을 사냥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관측 스킬도 있는데다가 엄청나게 강해졌으니 무리가 없지 않을까?'

평소라면 도전이니 모험이니 따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그였다.

지금까지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돈!

그걸 위해서는 안전이 최우선이었으므로, 예전이었더라면 아무리 자신에 넘친다 하더라도 일단은 레이드를 먼저 생각해 봤을 테다.

하지만 케르베로스를 잡는 게 워낙에 식은 죽 먹기이다 보니, 굳이 파티를 꾸리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정대식은 서둘러 케르베로스 사체를 잡아넣고 지옥용을 찾으러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케르베로스 사체가 아공간에 들어가질 않았다.

"어라? 이거 왜 이래? 야, 엔트로피!"

정대식이 부르는 소리에 엔트로피는 즉각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아공간이 이상한데? 케르베로스 사체가 안 들어가잖아?"

정대식이 하는 말에 엔트로피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투로 말했다.

<아공간이 꽉 찼습니다.>

정대식은 기막혀했다.

"벌써? 말도 안 돼! 몇 마리 잡아넣지도 않았구먼. 고작 케르베로스 한 마리가 안 들어간단 말이야?"

<안 들어갑니다.>

엔트로피는 딱 잘라 말했고 정대식은 입맛을 쩝 다셨다.

지옥마수를 몇 마리나 꾸역꾸역 집어넣었고, 케르베로스의 크기도 상당하니 사실상 안 들어갈 만도 했다.

<아공간을 확장하고 싶으시다면 상점을 업그레이드하십시오.>

엔트로피가 하는 말에 정대식은 투덜거리며 답했다.

"상점 업그레이드하는 데 지금 10억 필요한 거 아냐? 내 잔고를 보라고, 그게 가능한지."

상점을 Lv4로 업그레이드하려면 지금 아공간에 꽉 들어차 있는 몬스터를 처분해야 했다.

그럼 10억은 족히 벌 테니까 그때 아공간을 넓힐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러려면 일단 던전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한창 사냥에 흥이 오르던 참인데 김이 팍 빠졌다.

"에이...... 다시 들어오긴 귀찮은데."

잡아놓은 지옥마수를 내다 버리고 케르베로스를 집어넣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지옥용까지 넣는 것은 무리였다.

지옥용을 아공간에 넣지 못하면 잡아도 의미가 없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해서 돌아가야 할 모양이라고, 정대식은 툴툴거렸다.

"아우...... 젠장......."

지옥용은 놔두고서라도, 일단 잡아놓은 케르베로스라도 넣으려면 정리가 필요했다.

정대식은 아공간에 집어넣었던 사냥감을 모조리 끄집어내 놓았다.

"음, 많긴 많네."

정대식은 산처럼 쌓인 몬스터 사체를 보고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아깝다 싶어서 지옥개부터 되는대로 막 집어넣었더니만 그 수가 엄청났다.

그렇다고 정대식의 성격상, 그것들의 일부라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아까울뿐더러, 여기다 몬스터 사체를 버리고 가면 누군가 얼씨구나 하고 주워 갈 게 아닌가!

실제로 던전에는 하이에나와 같이 다른 헌터들이 남겨 놓는 사냥감을 노리는 작자들이 있었다.

몇몇 뛰어난 헌터들의 경우, 쓸데없이 짐꾼을 대량으로 고용하지 않았다.

딱 한 팀만 데리고 들어가서 돈 될 만한 알짜배기만 건져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나머지 돈 안 되는 저급 몬스터나 부피만 차지하는 살, 내장, 잡뼈 같은 부분들은 내버리고 왔다.

그조차도 팔면 돈이 되는 고로, 실력 없는 헌터들이나 간담 큰 짐꾼들의 경우 그런 쓰레기를 주워 연명했다.

비열한 놈들은 노골적으로 대형 정공이나 연합 파티, 레이드 팀 뒤를 쫓아다니며 콩고물을 바라기도 했다.

그런 놈들에게 기껏 잡은 사냥감을 내주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는 관계로, 정대식은 사냥칼을 빼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직접 해체하는 수밖에. 다는 못 들고 간다 하더라도 최대한 돈 되는 건 챙겨 간다!'

전직 짐꾼으로서 몬스터 해체에는 이골이 난 관계로, 정대식은 빠른 손놀림으로 지옥개의 가죽을 벗겨 나가기 시작했다.

똥꼬에서부터 코끝까지, 반으로 잘 갈라서 단번에 가죽을 썩썩 벗겨 냈다.

'캬! 내 솜씨지만 참 군더더기 없어.'

순식간에 지옥개 가죽을 홀라당 벗겨 낸 정대식은 다음으로 지옥마수의 사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인기척이 들려왔다.

"우와! 저게 다 뭐야?"

"히야...... 몬스터가 산인데, 산?"

떠들썩하게 나타난 것은 한 무리의 헌터들이었다.

레이드인지 뭔지, 다섯 명의 헌터들이 정대식이 있는 구역으로 들어왔다.

정대식은 뺨에 튄 몬스터 체액을 손등으로 훔치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러자 헌터들이 그를 발견하고 한마디씩 말을 걸어왔다.

"이보쇼! 이거 다 당신이 잡은 거요?"

"이야, 굉장하네! 설마 혼자서 잡았어요?"

"말도 안 돼! 이만한 수를 혼자서 어떻게 잡아......."

수런거리던 그들은 바닥에 죽어 자빠진 케르베로스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이 케르베로스, 머리 세 개가 다 붙어 있잖아!"

"세상에, 눈까지 멀쩡하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잡았어요? 그것도 달랑 혼자서?"

"들고 가면 떼돈 벌겠구먼! 어라...... 그런데 어떻게 들고 나가려고? 짐꾼은 안 불렀어요?"

그들의 묻는 말에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특수 아이템이 있어서 짐꾼이 필요 없어요."

"엇! 설마 말로만 듣던 그 디멘션 포켓인가 하는?"

"아님 마법인가?"

이런저런 추측을 늘어놓으면서 그들은 케르베로스 주변을 얼쩡거렸다.

정대식은 왠지 예감이 안 좋아서 좀 긴장했다.

던전엔 좀 전에 언급한 하이에나 같은 얌체 말고도, 더 질이 나쁜 놈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헌터 사냥꾼.

몬스터를 사냥해야 할 던전에서 도리어 헌터를 사냥하는 최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놈들은 헌터들이 몬스터를 잡느라고 힘을 빼길 기다렸다가 기습했다.

그리고 몬스터는 물론이거니와 무구와 장비, 현찰 등등.

알몸뚱이만 빼고 싹 털어 갔다.

보통은 헌터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기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대식처럼 짐꾼도 없이 혼자라면?

헌터 사냥꾼들에게는 딱 좋은 먹잇감이다.

정대식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정체불명의 헌터들이 늘어놓는 입 발린 칭찬에 혹하지 않았다.

대신에 멋대로 케르베로스를 쿡쿡 찔러 보는 놈들을 향해서 간담이 서늘해질 법한 경고를 날렸다.

"그렇게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숨통이 다 끊어진 건지, 어쩐 건지 확인 안 해 봤으니까."

그 말에 케르베로스를 찝쩍이던 헌터가 식겁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정대식은 그들을 향해 턱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당신들은 이 구역엔 무슨 일입니까?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왔어요?"

정대식의 질문에 그 작자들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여기 케르베로스 잡으러 오지, 뭘 잡으러 오겠어요?"

"이런, 이거 어쩌죠? 케르베로스는 내가 잡아 버려서 이 구역에는 사냥감이 없을 텐데."

"아,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 케르베로스 레이드가 있다는 말은 못 들어서요. 알았으면 피해 갔을 텐데 말입니다."

"거 미안하게 됐네요. 아쉽겠지만 다른 구역으로 가 보세요."

정대식이 받아치는 말을 듣고 헌터들이 느물하게 웃었다.

"다른 구역에 가 보기에는 시간이 좀 늦었죠. 아무래도 오늘은 공치려나 봅니다. 신경 쓰지 마시죠. 그보다, 정말로 이걸 다 혼자서 옮길 수 있겠어요? 괜찮으면 우리 짐꾼이라도 불러 줄까요?"

"됐습니다."

"에이, 사양하지 말고. 어차피 우린 짐꾼이 남아요. 아무것도 못 잡았으니까."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정대식은 미간을 찡그렸다.

"여기까지 오면서 아무것도 못 잡았다고요?"

놈들의 수상쩍은 웃음이 짙어졌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우리 사냥감이 워낙에 대물이라."

정대식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게 케르베로스는 아닌가 봅니다."

"이거, 눈치채셨소?"

"눈치 못 채는 게 바보 아닙니까?"

정대식은 사냥칼을 집어넣고 자동 소총을 빼 들었다.

그러자 실실거리던 헌터들의 분위기가 일변하며 그들 역시도 각자의 무기를 꼬나들었다.

어느새 정대식을 에워싼 헌터들이 위협적인 기색으로 말했다.

"방심시켜 놓고 선수 치려 했는데, 댁 눈치가 빨라서 어렵게 됐어."

정대식은 태연자약하게 답했다.

"그러게 쓸데없이 말은 왜 시켜. 그냥 기습을 하지."

"작전 미스라고 해 두지."

"그럼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지 그래? 시작부터 틀려먹었는데."

"당신이야말로 순순히 갖고 있는 걸 다 내놓고 가지 그래? 그럼 목숨만은 살려 줄 테니까."

정대식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구태의연한 말을 진짜로 할 줄은 몰랐다.

무슨 소설에서 스쳐 지나가는 노상강도나 할 법한 대사였다.

정대식의 표정을 보고 본인도 그 생각을 떠올렸는지, 그는 약간 낯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곧 눈을 흉흉하게 부라리며 소리쳤다.

"농담이 아니야. 가진 거 다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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