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54화 (54/297)

# 54

현질 전사

-3권 4화

돈이 모이는 곳에는 당연히 파리도 꼬이는 법.

공격대 창설에 투자를 한 사람들이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본전을 요구하면 그 돈을 갚기에 급급해 결국 공격대가 망하게 된다.

그게 아니더라도 공격대가 크는 과정에서 새로운 대원을 고용해 인원이 늘어나다 보면 이런저런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원들 한 명 한 명이 이능을 가진 헌터이다 보니, 보통의 인간관계에서 생길 법한 사소한 문제도 큰 문제로 발전하기 쉬웠다.

대원들 간의 다툼이나 알력으로 공격대가 쪼개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이런 수많은 문제점을 딛고 대형 공격대로 성장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가장 빠른 방법이 유명세를 떨쳐 여러 곳에서 투자를 받는 것이다.

자금이 있으면 물량 공세로 공격대를 단번에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그 나름대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세상에 문제없는 곳이 어디 있으랴?

투자받은 만큼의 리스크를 각오하고서라도 대부분은 공격대를 크게 키우고자 한다.

한데 타이탄 공격대는 그러한 일반적인 공격대의 생리에서 한 발짝쯤 벗어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조디악 공격대를 비롯한 여러 대형 공격대들이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정대식이 이런저런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면서 면밀히 살펴본 결과.

조만간 대형 공격대들은 성장의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 뻔했다.

잘하면 몇 년 안에 우후죽순처럼 자라난 대형 정공들이 우르르 해체될 수도 있었다.

그러면 내실 있는 중소 공격대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정대식이 배우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공격대 운영에의 노하우!

그렇다 보니 타이탄 공격대가 그가 찾고자 하는 공격대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문제는 오디션이다.'

다른 공격대의 일반적인 채용 모집이라면 걱정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트리플 능력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무사통과가 아니었을까?

와 주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굽실거리는 공격대가 수도 없었다.

그러나 타이탄 공격대는 그의 소문을 듣고도 그에게 어떤 제의도 해 오지 않았다.

제아무리 정대식이라 하더라도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오디션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뭐, 오디션이라고 해도 별거 있겠어? 능력을 위주로 보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단지 타이탄 공격대에서 찾고자 하는 인재상에 내가 들어맞는지는 모르겠다는 거지.'

지난번, 타이탄 공격대의 오디션에서 한 유명 헌터가 낙방한 일화는 유명했다.

몇몇 식견 있는 이들을 빼놓고는 모두가 그 헌터의 합격을 예상했었다.

무려 6등급에 지옥용쯤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때려잡을 수 있는 실력의 헌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헌터는 종합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최종 면접까지 가지도 못한 셈이다.

그 헌터는 몹시 분개해 낙방 이유를 알려 달라 요구했고, 타이탄 공격대에서 밝힌 연유는 이러했다.

'팀워크를 저해하는 독선적인 전투 방식이 타이탄 공격대에 걸맞지 않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해 버린 그 헌터는 해외로 떠나 버렸다.

잘하면 정대식도 그와 마찬가지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만약 타이탄 공격대에 응시했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틀림없이 동네방네 소문이 날 텐데, 심히 쪽팔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정대식은 자존심을 내세우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존심 상할 일을 자초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헌터가 떨어진 것은 자신의 실력만을 믿고 오만하게 군 탓이다. 타이탄 공격대는 시건방을 떠느라 다른 대원들을 위기에 빠트리는 멍청이를 고용할 생각이 없어. 본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협동심에 위기 대처 능력, 작전 수행과 지휘에의 소양까지 두루 보는 것이 틀림없다.'

이건 결코 만만한 시험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정대식이라 하더라도 전심전력을 다해야 했다.

'최선을 다해서...... 붙는다! 그렇담 쪽팔릴 일 따위도 없겠지.'

정대식은 눈에 불을 켜고 타이탄 공격대의 분석에 나섰다.

* * *

정대식은 타이탄 공격대의 입대 시험이 치러질 본사 건물에 도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와~! 사람 열라 많네.'

정대식은 혀를 내두르며 붐비는 인파를 뚫고 안내 데스크로 갔다.

그리고 미리 온라인으로 접수해 받은 번호를 내밀고 수험표를 받았다.

'음, 좀 떨리는데.'

학교를 졸업한 후로 이런 종류의 시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했다.

정대식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내리누르고 심호흡을 했다.

그런 뒤 접수가 마감되고 본격적인 오디션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누가 등 뒤에서 그를 툭 쳤다.

"야, 정대식!"

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정대식은 설마, 하는 기분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뜻밖의 표정을 한 기철민이 서 있었다.

"너도 설마 여기에 응시했어?"

기철민은 영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정대식은 그런 그를 보고 질문을 되돌렸다.

"그러는 너도?"

기철민은 인상을 찡그렸다.

"왜, 난 응시하면 안 되냐?"

"그건 아니지만."

"밑져야 본전이지. 떨어진다 하더라도 다 경험치가 된다고. 그러는 너야말로 여긴 웬일이야? 지금쯤이면 조디악 공격대를 비롯해서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장난 아닐 텐데? 설마, 그거 다 걷어차고 여기에 들어오려고?"

혼자서 떠들던 기철민은 곧 입술을 비틀었다.

"아니면, 남들이 다 응시하는 시험이라 어디 나도 한번 가 볼까 싶었냐? 너라면 당연히 붙을 테니까?"

정대식은 좀 짜증이 났다.

기철민은 아마도 예전에 타이탄 공격대의 입대 시험에 도전했다가 떨어진 그 오만한 헌터와 정대식을 겹쳐 보는 것 같았다.

애초부터 저렇게 삐딱하게 보는데 거기에다 대고 변명 따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대식은 "남이사." 하고 짧게 내뱉은 뒤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철민이 아차, 싶었던지 좀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의외라서 그러지. 너라면 어느 공격대든 골라 갈 수 있잖아. 그런데 왜 하필 타이탄 공격대야? 여긴 특별 전형 같은 거 없어. 무조건 오디션을 치러야만 한다고."

"그게 마음에 들어서 왔다면?"

정대식의 짧은 대답에 기철민은 실소를 뱉었다.

"뭐, 그렇다면야 할 말 없지만."

그다지 기철민과 말을 섞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디악 공격대의 정산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해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넌 조디악 공격대에서 돈 받았냐?"

기철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인데. 너는 받았나 보지?"

기철민은 정대식이 착용한 탈로스 방어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정대식이 전에 못 보던 무구를 갖고 있어서 조디악 공격대의 정산금으로 마련했나 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대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도 아직 못 받았어. 이건 다른 방법으로 구한 거야."

"보아하니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구했어?"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기철민은 정대식의 자르는 말에 빈정이 좀 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정대식에게는 한 수 접어주기로 작정한 사실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곧 순순히 말했다.

"조디악 공격대 정산은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왜?"

"저번 던전에서 얻은 몬스터 부산물 중에 제법 괜찮은 물건이 있는 모양이던데, 마정석까지 있으니 감정에 시간이 걸리는 거지. 뭐, 조바심이야 나지만 보통 정산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받는 금액이 커져. 잘하면 대박일 테니까 더 기다려 보라고. 정 안 되면 그냥 일당으로 쳐서 받겠다고 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래?"

"벌써 정산을 받았더라면 좋았겠지. 그럼 장비를 보강해서 올 수 있었을 테니까. 난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서 거의 맨몸이다시피 이곳에 왔어. 시험으로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경쟁자가 많은 것 같아서 2차까지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

기철민은 버글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정대식이 보기에도 제법 만만찮은 실력자들이 꽤 되는 것 같았다.

눈에 띄는 장비나 무구를 갖춘 이들도 보였고, 몇몇은 얼굴이 낯익은 걸 보아하니 유명한 헌터인 걸로 보였다.

정대식도 나름대로 S23던전에서는 이름을 날렸으나, 여기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별반 없었다.

다들 오디션을 앞두고 골몰해 있는데다가, 트리플리스트에 대한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있어도 정대식의 이름이나 얼굴까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은 탓이다.

"접수 마감되었습니다! 번호 따라서 나눠 서 주세요!"

안내인이 외치는 소리를 따라서 정대식은 자신의 번호를 확인했다.

그가 가진 번호는 241번.

기철민은 111번이었으므로 그와는 따로 움직이게 됐다.

"100번까지는 1번 창구로, 200번까지는 2번 창구로, 300번까지는 3번 창구로 들어가 주시고 나머지는 대기해 주세요!"

보아하니 거의 1,500명 가까이가 응시한 것 같았다.

이만한 중소 공격대의 응시자 수치고는 대단한 규모였다.

정대식은 2번 창구로 들어가 스태프의 인도로 스테이터스를 쟀다.

거기에서 기준점에 미달하는 자들은 다음 순서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최소한 8등급은 되어야지만 최소 오디션 응시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사항은 미리 고지가 되었으나 부득불 시험을 치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스테이터스 측정으로 그런 자들이 일부 걸러졌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시험의 시작이었다.

"제1차 시험을 곧 시작합니다! 응시자 분들께서는 다들 모든 장비와 무구를 벗어 주세요!"

스태프의 지시에 헌터들이 웅성거렸다.

시험이 치러지는 장소는 일종의 강당이었고, 딱히 능력을 측정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맨몸이 되라고 하니 다들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그러자 스태프가 다시 한 번 재촉을 했다.

"장비와 무구를 전부 벗고 옷가지만 착용해 주세요! 만약 기타 아이템을 동원할 경우에는 불합격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모든 장비와 무구를 해제해 주세요! 수거한 장비와 무구는 나중에 다시 돌려 드립니다!"

스태프들이 돌아다니며 큰 자루에다 아이템을 수거했다.

그리고는 그것들에 번호표 스티커를 붙이고는 강당 밖으로 내갔다.

남은 것은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의 헌터들뿐이었다.

그렇게 준비가 마쳐지자 마침내 감독관이 나왔다.

"자, 그럼 1차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자리에서 물구나무를 서 주세요!"

감독관이 하는 말에 여기저기서 황당해하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물구나무라고?"

"지금 장난해?"

"여기 무슨 체력장이야?"

"이게 뭐가 오디션이라는 거야?"

웅성거리는 소리를 누르고 감독관이 차분히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휘슬 소리가 들리면 물구나무를 서서 버텨 주십시오. 만약 물구나무를 못 서신다면 지금 바로 퇴장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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