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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55화 (55/297)

# 55

현질 전사

-3권 5화

헌터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져 갔다.

몇몇은 그깟 물구나무가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물구나무서기는 다름 아닌 기초 체력 테스트였다.

물구나무는 몸을 단련한 사람이라면 일반인도 어렵잖게 할 수 있는 동작이었다.

그러나 평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해내기 어려운 동작이기도 했다.

"그럼, 준비 자세를 취해 주십시오. 시작!"

휘익!

휘슬 소리가 울리고 다들 제자리에서 물구나무를 서기 시작했다.

정대식도 물구나무를 섰다.

그의 체력 수준은 40!

이깟 물구나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헌터들을 보아하니 결과가 놀라웠다.

이 정도쯤은 어렵잖게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의외로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물구나무를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헌터들이 낭패한 기색으로 물구나무 하나를 못 서서 쩔쩔 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군! 저런 헌터들은 평소 마력이나 아이템에 의존해서 사냥을 해 왔던 거야! 타고난 마력치가 높다거나, 뛰어난 무구를 갖추고 있다거나 하면 딱히 몸을 단련할 필요가 없었겠지.'

만만한 사냥감만 골라서 쫓아다닌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늘 썰자팟만 돌아다니고 자신의 한계나 목숨의 위협에 직면할 만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높은 수준의 체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짐꾼으로 몇 번이나 생사의 고비를 넘겨보았던 정대식은 기초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마력은 언젠가는 고갈되기 마련이고, 아이템 역시도 망가지기 마련이다.

극한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결국 믿을 것은 자신의 두 팔과 다리뿐!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정대식은 현질을 할 때도 체력을 우선적으로 향상시켜 왔다.

만약 그에게 현질 능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체력 단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을 테다.

실제로 짐꾼 시절에도 죽지 않으려고 몸 관리에 항상 신경 써 왔었다.

그렇기에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도 근력이나 체력이 보통 사람보다 더 좋은 상태였다.

'그래. 체력은 모든 능력의 근간이다! 정신력 또한 체력이 밑받침되어야 하는 법이지. 과연 타이탄 공격대다. 보통 헌터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파고드는군.'

물구나무를 서기 시작한 지 몇 분이 흘렀다.

처음 물구나무를 잘 서던 사람들도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하거나 균형을 잃고서 쓰러졌다.

5분이 경과했을 때 남은 숫자는 겨우 3분의 1.

30여 명의 사람만이 관문을 통과했다.

"자세를 바로 해 주십시오!"

다시 한 번 휘슬이 울리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졌다.

간신히 물구나무서기를 통과한 사람들이 신음을 내뱉으며 무너지자,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1차 테스트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감독관은 인정사정없는 말투로 말했다.

"잠시 후에 팔굽혀펴기를 하겠습니다. 가슴과 엉덩이가 일직선으로 내려가야 하고, 3분 동안 지속해 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또 사방에서 죽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5분 후에 휘슬이 다시 울렸다.

삐익!

* * *

1차 테스트의 내용은 실로 간결했다.

물구나무서기 5분, 팔굽혀펴기 3분, 턱걸이 30개였다.

5분 간격으로 그 세 가지 기초 체력 테스트를 연달아 했는데,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겨우 일곱 명에 불과했다.

특수한 능력과 값비싼 아이템을 벗겨 놓은 헌터들의 수준이란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부끄러운 노릇이군.'

정대식은 겨우 이 정도를 통과하지 못해 탈락한 헌터들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런 놈들이 밖에서는 헌터랍시고 우쭐대며 다닌다고 생각하자 우습기 짝이 없었다.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어.'

정대식은 투덜거리며 강당을 벗어났다.

그리고 소지품을 돌려받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아까와는 달리 대기실은 영 썰렁했다.

그러나 기철민은 살아남아 있었다.

그가 그다지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를 마주하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정대식은 씩 웃으며 기철민에게 말했다.

"1차 테스트는 통과했네."

그 말에 기철민은 모욕적이라는 듯이 답했다.

"그런 것도 통과 못할 거면 헌터 생활 접어야지."

정대식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2차 테스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간단한 간식거리가 제공되고 30분 뒤, 2차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2차 테스트는 모의 전투로 이루어질 겁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감독관의 인도로 간 곳은 홀로그램 룸이었다.

홀로그램 룸은 보통 초보 헌터들이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훈련 삼아 이용하는 곳이었다.

보통은 일정 금액을 내고 시간당 대여를 하는 편인데, 대형 정공에는 자체적으로 시설을 구비해 놓고 있기도 했다.

보아하니 타이탄 공격대에도 홀로그램 룸을 설치해 놓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형 정공도 아닌 중소 공격대가 이만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보기보다 자금력이 탄탄한 곳인가 보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홀로그램 룸 위층의 관전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테스트를 치르는 것을 지켜보며 순서를 기다리게 됐다.

첫 번째로 모의 전투를 치르게 된 사람은 상당히 긴장한 눈치였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시험을 치르게 된데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 앞에 서기까지 했으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다.

그를 향해서 감독관이 몇 가지 사항을 일러 주었다.

"이곳 홀로그램 룸에서는 가상의 몬스터와 모의 전투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어떤 몬스터를 상대하게 되느냐는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지어질 겁니다. 갖고 있는 능력, 장비, 무구를 전부 동원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홀로그램 룸은 대단히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망가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또한 전투 중에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유념해서 테스트에 임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약 1분 후에 시작토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관전실의 조명이 어두워지며 홀로그램 룸만이 환하게 떠올라 보였다.

그 가운데 선 헌터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이 상대할 몬스터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눈앞에 홀로그램 입자가 픽셀과 흡사한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곧 실사 몬스터와 매우 유사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크아아앙!"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한 것이, 제법 긴장감이 흘렀다.

첫 번째 헌터가 상대할 몬스터는 다름 아닌 오크!

이족 보행형에 지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로, 그리 강력한 적은 아니었으나 무구를 갖추고 있고 잔꾀를 쓰는 관계로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편이었다.

간혹 가다가 피어나 주술 따위를 쓰는 놈들이 있어 더 그랬다.

다행히 이 오크는 고급 기술을 구사할 줄은 모르는 것 같았다.

눈앞의 헌터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도끼를 빼 들고 앞으로 돌격해 들어왔다.

"크와아앙!"

테스트를 치르는 헌터는 침착하게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는 양손에 자동식 리볼버를 꺼내 들고 난사를 했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당!

리볼버가 불을 뿜으며 마력탄이 쏘아져 나가 오크를 두드렸다.

몇 발은 오크에게 맞았으나 대부분은 오크가 휘두른 도끼에 가로막혀 튕겨 나가 버렸다.

곧 오크가 헌터 앞에 당도해 괴력으로 사람 머리통 두 개가 붙은 정도 크기의 도끼를 휘둘렀다.

쌔애액!

바람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리며 도끼가 헌터의 귀밑머리를 지나쳤다.

밝은 조명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공중에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식겁한 헌터가 퍼뜩 몸을 숙이며 오크의 품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오크의 옆구리에 총구를 바싹 갖다 붙였다.

타아앙!

오크의 옆구리가 퍽 하고 뚫리며 녹색 피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헌터는 오크의 팔꿈치에 관자놀이를 얻어맞고 옆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오크는 옆구리 부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쓰러진 헌터의 배를 걷어찼다.

그리고 단번에 도끼를 휘둘러 헌터의 모가지를 내려쳤다.

"으아악!"

헌터가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었고, 갑자기 조명이 팍 꺼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쥔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대식은 끔쩍 놀랐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이게 현실이 아닌 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후우, 이거 꽤 실감나는데! 막상 저 홀로그램 룸에 들어가면 정신없겠어.'

불은 금세 다시 밝혀졌으나, 오크의 홀로그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바닥에 웅크린 헌터만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모의 전투의 결과를 알리는 알림판이 허공에 떠올랐다.

결과는 패배였다.

오크가 입은 데미지는 80%.

하지만 마지막에 헌터가 입은 데미지가 결정적이었다.

크리티컬 히트를 막아 내지 못해 순식간에 치명상을 입어 사망하게 된 것이다.

헌터는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몹시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서 다른 응시자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약간의 소란 속에 첫 번째 응시자가 홀로그램 룸을 나가고, 다음 헌터가 입장했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오크보다는 약한 몬스터였다.

그러나 약한 만큼 그 수가 많았다.

무려 세 마리나 되는 고블린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머릿수에 밀려 두 번째 순서의 헌터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고블린의 창에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며 데미지가 쌓여 결국 또 사망하고 말았다.

'홀로그램이라고 해도 몬스터의 능력치가 상당히 높게 설정되어 있는 것 같다. 방심해선 안 되겠어.'

그 다음으로 나타난 몬스터는 놀랍게도 앞서 나타난 흉악한 몬스터와는 전혀 달랐다.

머리채를 길게 늘어트린 정령형 몬스터인 벤쉬였다.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선 모습이 굉장히 으스스했다.

정대식으로선 난생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다른 헌터들 대부분이 그러한지, 공략법을 알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저건 벤쉬 아냐?"

"우는 소리가 끔찍스럽다는 그거 맞지?"

"그런데 벌써 울고 있잖아? 저걸 어떻게 처치해?"

"울기 전에 단번에 해치워야 하지 않나?"

벤쉬를 마주한 헌터도 몹시 난감한 기색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드러내다가 마음을 정한 듯 장검을 꼬나 쥐었다.

그리고 마력을 주입했다.

파아아아-!

장검이 파르라니 빛나는 것이 검기를 쓸 모양이었다.

헌터는 신중하게 자세를 취했고, 곧 단번에 벤쉬에게로 달려 들어갔다.

"하압!"

아마도 대부분 헌터들이 생각한 바대로, 벤쉬가 끔찍한 피어를 터트리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칠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검기가 벤쉬를 후려치기도 전에, 투명한 방어막이 공격을 튕겨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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