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현질 전사
-3권 6화
쩌엉!
굉음과 함께 몸을 움찔, 하고 떤 벤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텅 빈 동공을 얼굴 절반 가까이나 부릅뜬 채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대식은 관전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서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니 벤쉬의 코앞에 있는 헌터는 오죽하겠는가.
그는 몸서리를 치며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그는 곧 코피를 주르륵 흘리며 제자리에 쓰러져 기절했다.
곧 조명이 꺼졌다 켜지며 패배를 고하는 알림판이 떠올랐다.
정신을 잃은 헌터가 실려 나가고, 세 명이나 되는 헌터들이 모의 전투를 하는 동안 한 명도 이기질 못하자 관전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은데?"
"오크는 양반이네. 모르는 몬스터라도 나오면 게임 끝이야."
"3차 테스트까지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곧장 다음 테스트가 시작되었고, 정대식은 침묵 속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의 차례는 27번.
15번째에서 간신히 첫 번째 승리자가 나왔다.
그 기세를 이어 18번째 응시자도 이겼고, 19번째도 이겼다.
이후로는 또 줄줄이 지다가 마침내 정대식의 차례가 되었다.
"대기 순서 27번, 응시 번호 674번 정대식 씨, 대기실에서 준비해 주십시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에서 간단히 몸을 풀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들었다.
잠시 후, 홀로그램 구동이 끝나 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막상 룸 안에 서니 관전실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생각보다 룸이 넓었고 관전실이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꽂혀 드는 무수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무슨 콜로세움 안에라도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몬스터가 나올까?'
벤쉬의 경우와 같이 듣도 보도 못한 몬스터가 나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에게는 관측 스킬이 있었으나, 상대가 진짜 몬스터가 아닌 홀로그램이라서 그런지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공략법을 모른다면 방법은 결국 한 가지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깔아뭉개는 것뿐!'
벤쉬의 경우 뜻밖의 방어막에 가로막혀 공격에 실패하고 말았으나, 검기가 방어막조차 깨 버릴 정도로 충분히 강했더라면 문제 될 게 없었을 것이다.
정대식은 어떤 장애물이 생겨난다 하더라도 일격 필살로 끝장내리라 다짐하고 아다만트 너클을 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때 홀로그램 입자가 나타나며 어떤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마침내 눈앞에 드러난 몬스터를 보고 정대식은 입을 쩍 벌렸다.
'이건......?'
* * *
정대식은 자신의 앞에 떡하니 나타난 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크아------!"
기지개를 켜듯 입을 벌리며 기괴한 소리를 내뱉는 몬스터는 뜻밖에도 지옥용이었다.
얼마 전,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S23D에 갔다가 내친 김에 지옥용까지 잡을까 싶었었다.
한데 예상치 못한 불청객과 마주한데다가 아공간이 다 차 버려 포기하고 그냥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 홀로그램 룸에서 지옥용을 보게 될 줄이야!
우연에 놀랐던 맘도 잠시, 상대가 지옥용이라는 데 정대식은 기막혀했다.
'이거 무작위로 나오는 거 맞아? 갑자기 지옥용이라니, 너무 강하잖아!'
정대식이 보기에는 여태까지 등장했던 27마리 몬스터 중 가장 강한 것 같았다.
대부분은 7~8등급 몬스터였고 간혹 가다가 6등급 몬스터가 나왔는데, 그것도 대형종은 아니었다.
가장 강했던 게 나무 고렘으로, 촉수처럼 길이가 마구 늘어나는 팔다리로 공격하는 몬스터였다.
그건 6등급이었으나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비활동화에, 크기도 중형종이라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옥용은 육상형에 이동이 자유로운데다가 성격도 지극히 포악하고 크기도 매우 컸다.
건물 한 채 규모를 넘어서는 초대형종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머리가 셋이나 달린 케르베로스처럼 대형종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거기다 케르베로스처럼 근접 공격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용이라고 분류된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지옥용은 어설프게라도 브레스를 뿜을 수 있었다.
화염 방사기처럼 불꽃을 토해 낸다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대식을 발견한 지옥용이 우람한 앞다리로 바닥을 꽝, 치며 고개를 수그렸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동굴마냥 광활하게 벌어지는 주둥이 속으로 목구멍이 그대로 보였고, 그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염이 눈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얼굴이 뜨끈해지는 느낌에,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빙결탄!'
그는 자동 소총의 파란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마력을 주입했다.
타다다다당!
푸른 냉기를 뿌리며 쏘아져 나간 마력탄이 지옥용의 넘실거리는 혀를 타고 넘어오는 화염에 직격했다.
콰아아아아!
콰가가가각!
공기를 태우며 쏟아져 나오던 화염이 빙결탄에 주춤하는 사이, 정대식은 자동 소총을 등 뒤에 찔러 넣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강화 강력권!"
지옥용의 브레스를 언제까지 빙결탄으로 막아 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정대식의 작전은 말 그대로였다.
속전속결!
단번에 끝장낼 마음가짐으로 정대식은 그가 가진 최고의 일격을 꺼내 들었다.
부와아아아앙!
마력이 뭉쳐 들며 그의 주먹이 몇 곱절은 커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아다만트 너클이 선연한 빛을 발했다.
그 주먹을 앞장세우고 정대식은 앞으로 달려갔다.
"이야아아!"
기합성을 내뱉으며 허공으로 뛰어오른 그는, 지옥용이 크게 앞으로 내젓는 앞발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 그대로 지옥용의 미간에다 주먹을 찔러 넣었다.
"죽어라!"
콰-!
그의 주먹이 지옥용에게 가 닿는 순간.
아니, 정확히는 홀로그램에 가 닿는 순간.
가공이라 그런 것인지 무언가를 때렸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대신에 주먹이 어느 공간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강화 강력권에 맺혀 있던 마력이 소용돌이를 쳤다.
콰아아아!
"아니?"
동시에 홀로그램의 입자가 일그러졌다.
지옥용의 형상이 흐트러지면서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갈 곳 없어진 공격력이 애먼 곳을 향했다.
카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주먹이 홀로그램 룸의 바닥을 때렸다.
특수 제조한 강철이 비명을 지르며 쪼개지고, 굉음과 함께 먼지와 파편이 확 튀어 올랐다.
곧 모든 빛이 사라지며 시야가 깜깜해졌다.
정대식은 영문을 모르고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투두둑, 투두둑!
그런 정대식의 몸 위로 돌덩이와 자갈 같은 것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연이어 사람들의 당황한 외침과 신음이 들려왔다.
"뭐, 뭐야?"
"아무것도 안 보여!"
"어떻게 된 거야?"
웅성웅성.
잠시 후, 빛이 밝혀지자 일시에 소란이 잦아들었다.
정대식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영문 모를 적막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완전히 박살이 나 버린 홀로그램 룸의 바닥과, 쩍 갈라진 벽과 천장, 깨어져 나간 관람실의 유리 같은 게 보였다.
그가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던 응시자들은 모조리 제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건 감독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오로지 정대식만이 낭패해 미간을 찡그렸다.
'아차! 큰일 났다. 상대가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깜박하고 공격이 지나쳤어. 홀로그램 룸을 부숴 버리다니...... 이거 설마,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보다 이 시설 수리 비용을 모조리 내가 물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럼 돈이 엄청나게 깨질 텐데!'
난감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천천히 주변의 소음이 돌아왔다.
응시자들은 경악해 이런저런 말들을 떠들었고, 감독관들은 얼른 당황을 추스르고 파편을 치우며 정대식 쪽으로 다가왔다.
"다 망가졌잖아! 저 사람이 부순 거 맞지?"
"절대 안 망가진다고 하더니만......."
"이게 다 무슨 일이래? 도대체 공격력이 얼마나 강하면......."
구경꾼들이 수런거리는 사이, 가까이 다가온 감독관 한 명이 정대식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는 정대식을 위아래로 살피며 말을 걸었다.
"괜찮습니까?"
"아, 예. 저는 괜찮습니다만......."
정대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위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감독관이 박살 난 홀로그램 룸을 보고 기막힌 기색을 드러냈다.
"어지간한 공격은 다 흡수해 낼 수 있도록 특수하게 제련한 연강으로 벽과 바닥을 마감하고, 신소재로 만든 강화 유리로 제작했는데. 이렇게 맥없이 부서질 줄이야!"
"......죄송합니다."
정대식이 혹시 물어내라고 할까 봐 사색이 되어 답하자 감독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죠. 이런 일을 예상 못한 우리 탓입니다."
다행히 정대식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테스트를 치르다 일어나는 불상사를 타이탄 공격대가 책임지지 않듯이, 테스트 도중에 일어난 손괴에 대해서 응시자도 책임질 이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홀로그램 시설이 하나 망가져 버렸으니, 시험이 다소 길어지겠군요."
감독관은 그렇게 말하고 정대식을 놔주었다.
그리고 응시자들을 모아서 다른 쪽의 홀로그램 룸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이미 두 번째 그룹이 모여서 테스트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들과 합류해 관람실 자리가 안 남아날 정도로 빡빡하게 끼어 앉았다.
그러자 감독관이 마이크를 들고 짧게 안내 방송을 했다.
"불의의 사고로 A그룹이 테스트를 치르던 홀로그램 룸이 망가져서, 이곳 B그룹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양해 부탁드리고, 이미 시험을 치르신 분들 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안내를 받아 휴게실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기자 분들 중에 의자가 부족하신 분들도 말씀해 주시고요."
어수선하게 상황 정리가 되는 사이, B그룹에 끼어 시험을 기다리고 있던 기철민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된 거야? 홀로그램 룸이 부서졌다며? 그거 네가 그런 거야?"
정대식은 머쓱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니, 글쎄...... 지옥용이 나타나지 뭐야. 느닷없이 그런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그만."
"전력을 다했다, 이거군."
"안 부서진다기에 이럴 줄은 몰랐지."
정대식은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이 일로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정대식의 질문에 기철민이 몹시 짜증 난다는 듯 답했다.
"......3차 테스트까지 갈 필요 없이 그대로 붙는다면 모를까, 그렇지는 않을 걸?"
타이탄 공격대가 그런 일로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 거라는 말에 정대식은 적잖이 안심했다.
그때 마침 정리가 끝마쳐지고 기철민의 순서가 되었다.
"대기 순서 B팀 32번, 응시 번호 723번 기철민 씨, 준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