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현질 전사
-3권 16화
정대식은 느려 터진 노트북을 떠올리며 상점을 업그레이드할까 생각했다.
상점을 Lv4로 만드는 데 10억이나 들지만 그래도 19억 가량이 남는다.
'아공간도 좁으니까 일단은 상점을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스킬이 뭐가 있는지 살펴본 다음에 나머지 돈을 투자하는 게 좋겠다.'
정대식은 입을 열었다.
"엔트로피, 상점을 업그레이드하겠어."
<상점을 Lv4로 업그레이드하고 10억을 차감합니다.>
표시되는 잔고가 쑥 떨어지며 엔트로피가 갑자기 빛을 뿜었다.
다소 눈이 부셔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나자, 엔트로피의 모습이 변화했다.
여태까지는 그냥 말풍선에 기호로 된 얼굴 비슷한 게 떠 있는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는 형태가 보다 명확해졌다.
일단 몸통과 팔다리가 생겨서 전체적으로 곰 인형과 같은 형체였다.
그리고 얼굴도 좀 더 구체적이 되어서 눈, 코, 입이라고 할 만한 게 뚜렷해졌고 표정도 다채로워졌다.
"어떠냐, 엔트로피. 좀 더 똑똑해졌냐?"
물론 싸가지 없는 말투는 여전했다.
<상점이 Lv4로 업그레이드됨에 따라 저 역시 기능이 개선되었고 아공간 또한 확장되었습니다.>
"이제 온라인 접속이 가능해진 거지?"
<그렇습니다.>
"검색도 가능해?"
<가능합니다.>
"그럼 어디 시험해 볼까."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조디악 공격대의 공대장이 어떻게 교체된 거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약간의 시간의 흐르고 나서 엔트로피는 입을 열었다.
<조디악 공격대 황소좌의 딜러이던 광필두가 간부 집회에서 공대장의 음료에 독을 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야음을 틈타 공대장의 숙소에 침입한 광필두가 그의 무구를 탈취하여 강철우를 살해하고 조디악 공격대를 장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황소좌, 백양좌, 사수좌, 해좌의 팀장이 저항하였으나 두 명의 팀장이 중상을 입어 팀장 전원이 항복을 선언하고 광필두의 공대장 취임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정대식은 생각보다 상세한 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엔트로피의 검색 능력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잘해 봤자 자신이 찾아낸 사실에서 두세 가지 내용을 덧붙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한데 마치 그날 밤의 상황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자세했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엔트로피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정대식 님이 검색하라고 지시하셨지 않습니까?>
"이게 다 검색으로 찾아낸 거라고?"
<그렇습니다.>
"아니, 무슨 검색 엔진을 썼기에......."
<달리 검색 엔진을 선택해 쓰지는 않고 있습니다.>
"별도의 검색 엔진을 갖고 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모든 검색 엔진의 결과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보안 영역 내, 혹은 삭제된 데이터까지 전부 찾을 수 있습니다.>
"잠, 잠깐만. 그럼 일단 온라인에 올라온 자료는 모조리 찾아볼 수 있다, 그거야? 그건 거의 해킹 수준인 거 아냐?"
<그렇습니다. 단, 별도의 통신망에 저장되어 있거나 이능을 이용한 특수 보안 영역의 데이터는 찾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성자들의 이능은 다종다양해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전산이나 정보망에 관계하는 능력도 있었기에 그런 자들 앞에서 각종 보안 시스템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이능을 통한 방어 체계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곳에 저장된 데이터를 얻기란 제아무리 훌륭한 해커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Lv4밖에 되지 않는 엔트로피에게 요구할 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현재의 엔트로피가 갖고 있는 능력은 실로 놀랄 만했다.
극비로 취급되어지는 정보가 아닌 이상, 정대식이 원하는 내용은 대부분 찾아볼 수가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다 조각난 데이터를 취합하여 결과만을 말해 주니 매우 편리했다.
진위 여부에 있어서는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종합한 것이라 의심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 점이 엔트로피 검색의 편의성을 저해하지는 않았다.
"대단한데! 진짜 편하다. 기가 막혀."
정대식이 터트리는 칭찬에 엔트로피는 처음으로 떨떠름하거나 무표정하거나 깔보는 것 같은 표정 대신, 다른 표정을 드러냈다.
뭐, 표정이라 해 봤자 여전히 곰 인형 수준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간에 엔트로피는 좀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정대식은 킬킬거리며 말했다.
"온라인 접속 외 다른 능력은 없어?"
<통신망 접속이 가능해진 관계로, 별다른 전자 기기 없이도 통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휴대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이거군. 또 다르게는?"
<타인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거뿐이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정대식은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저런 둥실둥실한 곰 인형 따위가 다른 사람 눈에 보여서 어디다 쓴다는 말인가?
참 의미 없는 기능이라고 생각하며 중얼대는 말에 엔트로피가 도로 무표정이 되었다.
<더 많은 기능을 원하신다면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상점을 Lv5로 업그레이드하십시오.>
"그건 얼만데?"
정대식은 금액이 뻔히 짐작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맘에 질문을 던졌다.
<100억입니다.>
역시나, 정대식은 피시식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100억이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만한 돈을 상점 업그레이드하는 데 쓸 일이 있을까?
정대식은 의문하며 새로이 오픈된 스킬 항목을 살펴보았다.
강화계와 정신계, 변화계 계열 스킬이 대폭 늘었으나 기본적인 능력은 이미 보유한 상태다.
솔플을 한다면 다양한 스킬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공격대에 가입이 된 상태다.
굳이 스킬을 더하지 않아도 다른 대원들이 그런 부분을 보충해 줄 테니 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스킬 오픈에 필요한 금액은 1천만 원.
내키면 언제든지 열 수 있는지라 일단은 미뤄 두기로 했다.
대신에 다른 방향을 궁리해 보았다.
'차라리 있는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 편이 낫겠어. 아직 스킬 업그레이드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으니까,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무조건 10억이었다.
새 스킬 획득에 드는 돈이 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스킬 업그레이드도 계속 10억일 가능성이 높았다.
정대식은 이 점을 엔트로피에게 확인해 보았고, 그의 짐작이 맞았다.
<스킬 업그레이드는 레벨 수준에 상관없이 10억입니다.>
"그래......? 그럼 해 볼만 하겠네."
정대식은 강력권을 업그레이드할 것인지, 강철 신체를 업그레이드할 것인지 고민했다.
다른 스킬도 여럿 있었지만 아무래도 보조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 두 가지 스킬에 우선권을 둔 것이다.
'강력권은 강화를 더하면 이미 공격력이 상당하다. 차라리 강철 신체를 업그레이드하는 편이 낫겠어. 뭐니 뭐니 해도 안전이 제일이니까. 제아무리 다른 대원들이 나를 돕는다 하더라도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지.'
생각을 정리하고 정대식은 입을 열었다.
"강철 신체를 업그레이드하겠어."
<강철 신체를 Lv2로 업그레이드하고 10억을 차감합니다.>
파아아아!
별안간 은은한 빛이 정대식에게서 솟구쳐 올랐다.살갗을 뚫고 튀어나오는 것 같은 빛이 도로 흡수되듯 사라지고 났을 땐, 어쩐지 목욕탕에서 한 세 시간쯤 있다가 나온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30억 가까이나 되는 돈이 다시금 한 자리로 떨어진 걸 보니까 속이 쓰렸다.
'앉은 자리에서 20억이나 해치우다니. 전대미문의 사치구만.'
정대식은 입을 쩝 다시고 남은 9억 5천만 원은 그냥 남겨 두기로 했다.
10억을 넘기고 나면 그때 다시 다른 현질을 하든지 말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엔트로피를 돌려보냈다.
'좋아, 당장 오늘 훈련에서 업그레이드된 강철 신체를 시험해 보겠어!'
Chapter 18. 첫 번째 파견
사실 훈련에서 업그레이드된 강철 신체를 시험해 볼 수는 없었다.
약 일주일 정도, 김시온은 부대의 합을 맞추기 위하여 혹독한 훈련을 시키기는 하였으나 전부 홀로그램 룸을 이용한 모의 전투였다.
실질적인 타격을 입지 않은 탓에 강철 신체의 정도가 얼마나 강화되었는지를 파악하기는 무리였다.
다행히 기회는 그리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일주일 간의 훈련을 끝내고 김시온이 사냥 일정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번 요청은 천군만마 공격대에서 들어왔다. 와이번의 둥지를 털러 갈 거라는데 지원이 필요하다는군. 레이드 팀 예상 규모는 30여 명 정도. 보상은 와이번의 알을 제외한 전부다."
그 말을 듣고 소강두는 휘파람을 불었다.
와이번의 알을 빼놓고는 잡는 대로 전부 외인부대의 몫이라고 하니 상당한 수입이 될 터였다.
김시온은 소강두의 경박한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굳이 입을 열어 경고를 하지는 않았다.
소강두가 지레 찔끔해 입을 다문 덕분이다.
대신에 김시온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임무는 천군만마 공격대가 와이번 알을 안전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팀원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정부에서 파견 나온 몬스터 조사 팀을 보호해야 한다."
정대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몬스터 조사 팀이라고요?"
김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군만마 공격대는 정부 관계자의 요청으로 와이번의 알을 채집하러 가는 거다. 몬스터 조사 팀은 레이드 팀과 동행해 던전 탐사와 몬스터 연구 등의 활동을 할 예정이다. 우리가 거기에 손을 거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지."
그 말을 듣고 허미래가 무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대원들의 시선이 몽땅 쏠리자 얼굴을 발갛게 붉히며 말했다.
"그...... 정부에서 몬스터 도감 사업을 벌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허미래의 말이 맞았다.
김시온은 그렇다고 대답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따라서 이번 작전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에는 천군만마 공격대에 파견을 나가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만약 일을 잘 해낸다면 다음에는 정부 의뢰가 우리 쪽으로 바로 들어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지.
몬스터 도감 사업은 1, 2년으로 끝날 사업이 아냐.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장기간의 국가 주도 사업이다. 그 일을 우리가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지.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남은 이틀 동안 단단히 준비해서 작전에 임할 수 있도록. 알겠나?"
레이드 팀과 함께 들어가게 될 던전은 강원도에 있는 GW19던전이었다.
"이 던전은 필드형으로 환경이 상당히 거칠기로 유명하다. 면적이 넓은데다가 수시로 폭풍이 몰아치고 날씨가 급격하게 바뀐다. 몬스터 없이 그냥 조난을 당해도 죽어 자빠지기 쉬운 곳이다, 이 말이다."
김시온은 자료 화면을 넘기며 브리핑을 계속했다.
"또한 이 던전은 지하와 지상, 하늘에서 전부 몬스터가 출몰하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땅굴을 파고 돌아다니는 그랜드 몰, 떼를 지어 모여 다니는 크레이지 버팔로, 대단히 사나운 와이번 등이 튀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