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현질 전사
-3권 17화
무시무시한 몬스터의 사진이 몇 장 넘어가고 와이번 화면이 펼져지자 김시온이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와이번의 둥지를 터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일이다. 와이번은 알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므로 둥지를 습격하는 자는 결코 살려 두지 않는다. 설령 도망을 쳐도 끝까지 쫓아와 죽이니까 와이번 둥지에 발을 들인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와이번을 죽일 마음을 먹어야 한다. 와이번 둥지는 수컷과 암컷, 두 마리가 공동으로 지키는데, 합동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공격대 하나쯤은 작살이 난다고 봐야 하지. 레이드 팀이 따라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몬스터 조사 팀을 지키고 알을 수거하기에도 급급할 터. 사실상 와이번을 상대하는 건 우리라고 봐야 된다."
김시온은 잠시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이놈들은 덩치도 크고 목이 긴데다 부리처럼 돌출된 주둥이가 강철만큼이나 단단하다. 위에서 내리 쪼면 정수리가 터지기 십상이지. 게다가 주둥이 안에는 이빨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어 물리는 즉시 몸이 갈린다.
날개와 피막이 붙은 앞다리는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여도 갈고리와 같은 발톱이 있어 우습게 볼 게 못 된다. 이건 아주 잘 드는 낫과 같아서 손모가지나 발모가지쯤은 숭덩숭덩 베어 버려. 우람한 뒷다리는 말할 것도 없지. 보다시피 엄청난 크기인데다가 굉장한 악력을 자랑한다. 발톱에 한 번 쥐였다 하면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진다고 봐야 해."
약간 기가 죽어 조용해진 부대원을 보고 김시온은 화면을 껐다.
"와이번은 매우 사나운데다가 영리하므로 손상 없이 잡기가 쉽지 않다. 가급적 온전하게 사냥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다가 와이번에게 죽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인 일도 달리 없겠지. 어차피 다른 사냥감도 많으니까 와이반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는 신경 쓰지 마라. 아무리 우리가 잡는 사냥감을 전부 우리가 갖는다고는 하지만, 목표는 레이드 팀의 보조와 조사 팀의 보호다! 그 점을 명심하도록!"
"알겠습니다!"
천군만마 공격대에서 넘겨준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숙지 사항을 검토하던 중, 행정 직원이 찾아왔다.
그는 외인부대원들에게 천군만마에서 넘어온 임시 계약서를 돌렸다.
임시 계약서를 통해 협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작전을 입안하여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정대식은 이런 형태의 공격대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쓸데없이 덩치를 불리기보다는, 아예 레이드만 목적으로 하는 소규모 공격대를 창설하는 것도 괜찮겠어. 외부에서의 요청을 받아서 레이드를 지원하기도 하고, 혹은 임시 대원을 고용해 레이드를 하는 식으로 운용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여러 형태의 작전을 펼칠 수가 있겠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일 뿐이지만, 조금씩 자신이 구상하는 공격대의 방향이 구체화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임시 계약서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계약서를 수정키로 하고, 김시온은 천군만마 공격대에서 넘겨준 맵핑 자료를 바탕으로 던전 안의 지형과 지물을 익히게 했다.
그리고 홀로그램 룸으로 데려가 GW19D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모의 전투를 치르게 하는 것으로 준비를 시켰다.
* * *
사흘 후, 외인부대는 서울역 앞에서 레이드 팀, 그리고 몬스터 조사 팀과 조인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시온은 천군만마의 공대장을 만나서 몬스터 조사 팀의 소개를 받았다.
"이쪽은 레이드 팀과 동행하게 될 몬스터 조사 팀의 팀장이자 총 책임자인 송기범 씨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송기범이라는 남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40대 중반의 공무원이었다.
공대장의 말로는 그 역시도 능력자라고 하는데, 있으나마나한 능력일 가능성이 높았다.
몬스터 조사 팀은 송기범 외, 모 유명 대학 교수이자 몬스터 박사라고 불리는 젊은 여자와 연구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젊은 여자는 이정연이라는 이름으로, 정대식도 TV에서 몇 번인가 본 인물이었다.
민간인이었지만 해외 명문대를 조기 졸업한 재원인데다가 몬스터 연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몬스터 조사 팀은 이 세 사람이 전부입니까?"
김시온이 묻는 말에 송기범이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서 몬스터 박사 이정연이 끼어들었다.
"비전투 인원이 많아 봤자 방해만 될 테니까요."
김시온은 웃는 낯으로 독설을 날렸다.
"그 사실을 아신다면 지원 팀을 따라오시는 게 좋을 텐데요."
이정연은 살벌한 그녀의 미소에도 굴하지 않았다.
"전투 상황에서 보이는 몬스터의 반응 또한 제 연구에는 중요한 요소라서요. 아니, 그거야말로 헌터 분들께 필요한 자료지요. 정형화된 몬스터 공략법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보다 효율적인 사냥이 가능해질 겁니다."
"몬스터라는 존재 자체가 정형화되어 있지 못한데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섣부르게 공략법만을 믿고 덤비다가 희생되는 헌터들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은데요?"
빠지지직.
어디서 번개 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
흡사 용과 호랑이, 뱀과 몽구스를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천군만마 공대장은 곧 레이드 팀의 팀장 역시도 소개를 해 주었다.
"저를 대신하여 이번 작전을 이끌어갈 피터 장입니다."
피터 장은 느끼한 이름과는 달리 그리 말 많은 인물이 아니었다.
간략히 인사가 끝나고 우선 던전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공대장의 배웅 속에서 차가 출발해, 대략 세 시간 만에 일행은 GW19D앞에 이르렀다.
지원 팀은 신속히 천막을 펴고 짐꾼을 수배하고 보급품을 확인했다.
그동안 피터 장과 김시온, 송기범이 미리 협의된 사항을 확인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후, 준비된 작전을 검토했다.
그러는 사이 외인부대 팀은 개인 무구와 장비를 점검하고 간단히 식사를 했다.
지급되는 도시락을 받아 들고 배를 채우고 있노라니, 정대식이 첫 출전이라는 사실을 의식한 대원들이 이런저런 말을 건네 왔다.
"너무 긴장하지 마. 훈련대로만 하면 돼."
"와이번이라 해도 별것 없어. 쫄지 말라고."
"쫀 적 없으니까 밥이나 좀 먹자."
소강두가 하는 말에 정대식이 눈을 부라리자 그가 크하핫 웃었다.
"그래, 많이 먹어 둬라.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맘 놓고 식사하기는 힘들 테니까. 사흘 동안이나 찬 이슬 맞아 가며 비상식으로 때우다 보면 이깟 도시락도 그리워질 거다."
"설마 부대장님과 함께한 악몽 같은 연수만 하려고."
정대식은 혀를 쯧, 찼다.
사실 조디악 공격대에 임시 대원으로 참가한 던전 공략 외에는 장시간 사냥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훈련으로라면 딱 한 번, 김시온에게 연수를 받으면서 일주일이나 던전에 처박혀 있어 보기는 했다.
그때의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하는 말에 유태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부대장님 연수가 끔찍하기로 소문났지.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번 작전은 규모가 작은 편이라서 그리 편치는 않을 거야."
조디악 공격대가 던전 공략을 나갈 때에는, 덩치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곳답게 그 규모가 굉장했다.
정찰 팀을 따로 보내어 세이브 포인트를 설정할 정도였고, 뒤따르는 지원 팀에도 화력이 충분하여 몬스터를 신경 쓰지 않고 베이스캠프를 계속 옮길 수가 있었다.
덕분에 휴식하는 동안에는 위험을 신경 쓰지 않았으며 이런저런 편의도 누릴 수 있었으나, 이런 중소 규모 레이드 팀은 사정이 달랐다.
물론, 그만큼의 장점도 있을 테다.
"대신에 수입도 상당할 테니까, 고생하는 보람이 있을 걸?"
지원 팀 규모가 작다는 것은 그만큼 제반 비용이 적게 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순수익으로 따지자면 중소 규모 레이드 팀의 수입이 더 높았다.
식사를 끝마치고 났을 땐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전 사항을 협의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돌아온 김시온은 외인부대의 장비 상태를 한 번 더 점검하고 말했다.
"곧 던전으로 들어간다. 준비해!"
던전 돌입을 위해 입구에 지프차가 늘어섰다.
피터 장이 탄 레이드 팀 1조의 차량이 가장 앞장서고, 그 뒤로 경호가 붙은 조사 팀이, 세 번째로 외인부대의 차량이 서서 대기했다.
그다음 2조가 붙었고, 짐꾼들과 지원 팀과 3조는 간격을 두고 출발하기로 했다.
잠시 후.
신호가 떨어졌다.
"진입!"
부르르릉!
차들이 요란한 엔진음을 뿜으며 던전으로 들어갔다.
* * *
"와우!"
던전 안으로 진입하기가 무섭게 이정연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탄성을 올렸다.
던전 안의 풍광은 일견 드넓은 초지와 같아 보였다.
완만한 구릉이 파도치다 끝도 없는 지평선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구릉의 사이사이에 돋아난 것은 커다란 보석 덩어리였다.
마치 에메랄드처럼 녹색의 신기한 돌들이 무슨 자갈 덩어리처럼 곳곳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늘에 박힌 선명한 광원을 통해 그것들은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머리 집어넣어요!"
조사 팀과 함께 탄 헌터들이 외치는 말에 이정연은 시무룩해져서 창을 닫았다.
사전 답사를 통해 세이브 포인트를 설정해 두었기에, 차들은 쉴 새 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약 한 시간가량을 더 간 후에야 차들이 멈춰 섰다.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치고, 짐꾼들과 지원 팀, 그리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 3조가 남아 있을 예정이었다. 조사팀의 송기범 역시도 샘플 채집을 핑계로 남게 되었다. 던전의 환경을 관찰하기 위해서라는데, 그냥 베이스캠프를 떠나는 게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정연과 조수 두 사람만 동행하게 됐다.
그외 1조와 2조가 조사 팀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사냥을 떠날 채비를 했다.
당연히 외인부대도 그들과 같이 갈 작정이었다.
준비가 마쳐지길 기다리며 지프에 걸터앉아 소강두가 얼굴에 손부채를 대고 펄럭거렸다.
"아, 덥다."
더위를 느끼는 건 그뿐만이 아닌 듯했다.
유태훈의 잘생긴 얼굴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박무원도 콧잔등이 축축해 보였다.
체구가 작고 마른 허미래를 제외하고는 정대식만이 멀쩡했다.
"으아, 탈로스 가죽 갑옷 덕분이지? A급 아이템으로 도배하고 있는 누구는 좋겠어~."
소강두는 혀를 길게 빼물고 체온 조절 기능이 있는 정대식의 방어구를 부러워했다.
유태훈이 어떻게 그리 레어한 아이템을 마련했느냐고 물어왔지만,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국가 기물 금고에 대해서는 발설할 수 없었으므로, 정대식은 어깨만 한 번 으쓱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