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현질 전사
-3권 19화
크레이지 버팔로가 와서 들이받을 때마다 신채운의 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더불어 그가 들고 있는 우산이 발하는 마력의 빛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가 든 우산 아이템이 망가질까 봐 신채운이 자신의 마력을 쏟아 부어 크레이지 버팔로 떼를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마력 회복!"
"지력 고정!"
버퍼들이 그에게 연달아 버프를 하기 시작해, 정대식도 그에게 버프를 가했다.
"강화!"
파아아아앗!
정대식의 마력이 그를 뒤덮으며, 신채운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갑자기 이를 악물더니, 놀랍게도 우산을 휘둘러 크레이지 버팔로를 한 번에 여러 마리를 확 쳐냈다.
예닐곱 마리의 크레이지 버팔로가 하늘로 솟구치고 다른 크레이지 버팔로들도 뒤로 밀려나며 찰나의 공간이 생겼다.
그 틈을 타 피터 장이 소리쳤다.
"탱커들! 공간을 확보한다. 원딜! 공격해!"
사냥 팀을 둘러싸고 있던 탱커들이 한 발씩 앞장을 섰다.
그 뒤쪽에 섰던 원딜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펼치지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장거리 공격이 전방으로 뻗쳐 나가며 놀랍게도 크레이지 버팔로 떼 사이에 일종의 길이 생겼다.
크레이지 버팔로 떼가 그들을 피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반격은 그때부터였다.
크레이지 버팔로 떼가 갈라지는 틈을 타, 여전히 그 말도 안 되는 우산을 들고 선 신채운이 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우산을 접은 것이다.
그리고, 도로 펼쳤다.
"오펜스 엄브렐러."
파아앙!
우산이 펼쳐지면서 아까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 벌어졌다.
여러 마리의 버팔로 떼가 우산이 펼쳐지면서 뻗어 나간 마력장에 튕겨 나가 허공을 날았다.
신채운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나갔고, 공격 대형도 넓어졌다.
근딜들까지 합세해 근처의 크레이지 버팔로들을 차례대로 쓰러트려 나갔다.
하지만 진짜 전투는 지금부터였다.
콰아아아아앗!
크레이지 버팔로 떼가 일으키는 진동에 간신히 익숙해지려 드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흙더미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거대한 형체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그랜드 몰이다!"
그랜드 몰이 미친 듯이 날뛰는 크레이지 버팔로 떼 사이를 누비며 솟구쳐 올랐다.
그랜드 몰에 비하면 크레이지 버팔로 떼는 중형종인 게 확실했다.
명백하게 대형종인 그랜드 몰은 포클레인 삽을 가장 흉악한 형태로 바꾼 것 같은 앞발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앞발을 써서 크레이지 버팔로를 잡아 올릴 정도였다.
"공격하지 마, 공격하지 마!"
느닷없는 그랜드 몰의 등장에 반사적으로 공격하려는 헌터들을 향해서 피터 장이 악다구니를 썼다.
크레이지 버팔로 떼야 피할 수 없어서 맞서 싸운다지만, 그랜드 몰과 그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번 레이드의 목표는 와이번의 알이었다.
쓸데없이 그랜드 몰과 싸워 전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것은 사냥 팀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그랜드 몰은 크레이지 버팔로 떼를 헤집으며 날뛰다가, 놀랍게도 사냥 팀이 있는 쪽으로 정확히 고개를 돌렸다.
그랜드 몰은 눈이 없었는데 대신에 후각이 매우 뛰어났다.
오리너구리와 같이 삐죽한 주둥이는 기능의 끝판왕인 두 앞발과 마찬가지로, 땅속을 파헤치는 데 아주 유용해 보였다.
더불어 그 주둥이 아래 쩍 벌어지는 둥근 구멍은 어떤 먹이든지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데 효율적일 것 같았다.
"캬우우우우!"
무슨 터널처럼 크고 둥글게 벌어지는 목구멍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토해져 나왔다.
피터 장이 쯧, 혀를 차며 외쳤다.
"대형을 좁혀! 조사 팀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외인부대, 그랜드 몰의 주의를 돌려 줘!"
천군만마 공격대만으로는 조사 팀을 지키고 크레이지 버팔로 떼 속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
그랜드 몰의 상대는 외인부대가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일을 처리하기 위해 파견을 나온 것이었다.
김시온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의식을 열었다.
"커맨드 모드."
찌리리릿!
정대식은 등골을 타고 올라와 뒤통수로 파고드는 미묘한 감각에 흠칫했다.
김시온의 정신계 능력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들은 바가 있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도 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투 상황에서 실제로 그녀의 의식이 제 의식에 접속해 오자 그 위화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대식은 곧 거부감을 억눌렀다.
그가 강하게 거부하면 김시온의 의식은 튕겨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작은 자갈 덩어리가 관자놀이를 굴러다니는 것 같던 기분 나쁜 감각이 사그라졌다.
대신에 김시온의 강력한 의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왔다.
명령 한마디 없이 외인부대는 한 몸처럼 앞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그러면서 정대식은 의식의 한구석을 다른 대원들과 공유하는 아주 희한한 경험을 했다.
마치 여러 개의 다중 화면을 한꺼번에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집중력에 있어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김시온의 명령 의지가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꽤나 복잡한 작전을 아무런 착오 없이 진행했다.
"2단계 변신!"
가장 먼저 소강두가 웨어타우르스로 변신해 보였다.
저번에 정대식이 목격한 모습은 1단계 변신체였는데, 이번에는 2단계 변신체라 그런지 덩치가 더 커지고 털이 길어진 모습이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랜드 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강두는 용감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워어어엉!"
그런 그의 뒤를 박무원과 정대식이 따라붙었다.
정대식이 소강두에게 강화를 쏟아 부었고, 동시에 허미래가 그랜드 몰에게 디버프를 썼다.
"해러싱 택틱스!"
나비 모양과 흡사한 허미래의 검은 마력이 그랜드 몰에게 가 닿았다.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랜드 몰이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흙과 자갈이 사방팔방으로 비산했다.
공격에 정통으로 맞았더라면 살점과 뼛조각이 날았겠지만 다행히도 그랜드 몰은 공격 대상을 특정하지 못했다.
소강두가 웨어타우르스의 울음소리로 어그로를 끌고 있었으나 디버프가 작용해 그랜드 몰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소강두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차르릉!
소강두가 쓰는 무기는 유성추였다.
쇳덩이로 만들어진 손잡이에 마찬가지로 쇳덩이로 보이는 사슬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 무식하기 짝이 없는 쇳덩이가 붙어 있었다.
그걸 허공에 붕붕 휘두르며 돌격한 소강두는 그것으로 그랜드 몰의 턱주가리라 짐작되는 곳을 후려쳤다.
퍼어억!
"캬하아앗!"
꽤 아팠는지 그랜드 몰이 신경질적인 울음소리를 터트리며 두 손을 쾅쾅 두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허미래의 교란 디버프가 작용하고 있었기에 공격은 죄다 빗나갔다.
소강두는 그랜드 몰의 포악한 짜증에도 겁먹지 않고 몇 번 더 공격을 가했다.
그가 허미래의 도움을 받아 어그로를 끄는 동안, 박무원과 정대식이 제 할 일을 했다.
그들은 소강두의 뒷전에서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박무원은 흉악하기 짝이 없는 왼쪽 앞발을, 정대식은 뒤쪽 앞발을 공격했다.
"배틀 엑스!"
박무원은 일전에 사용했던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그 무기를 또 쓰지는 않았다.
그가 마력을 흘려 넣자 어쩐 일인지 무기가 빛을 내뿜으며 그 형태가 변화했다.
이번에는 거대한 양날 도끼로 바뀌어, 박무원은 그것을 움켜쥐고 땅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콰악!
그의 배틀 엑스가 그랜드 몰의 왼쪽 앞발이 붙은 손모가지를 내리쳤다.
피가 뿌려지고 그랜드 몰이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 언저리를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정대식이 그러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는 단숨에 일을 처리할 생각으로 그가 가진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수를 썼다.
"강화 강력권!"
파아아아아!
그의 주먹이 마력의 빛에 휘감겨 몇십 배 가까이 커졌다.
정대식은 지체 없이 강화 강력권을 그랜드 몰의 오른 손모가지로 꽂아 넣었다.
쩌억!
살아 있는 생명체를 때렸는데 꼭 단단한 것을 때린 것마냥 물체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대식의 공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무시한 것인지 그랜드 몰은 그대로 오른손을 박무원을 향해 휘둘렀다.
때마침, 디버프의 효력이 끝났고 왼손을 벌목하듯 찍어 대던 박무원이 공격을 피하기에는 한 박자 늦었다.
곧장 그랜드 몰의 앞발에 치어 날아가게 생겼으나.......
"캬아아아아!"
그랜드 몰의 오른쪽 손은 이미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랜드 몰의 공격은 허공을 휘저었다.
그 바람에 박무원이 피를 한 바가지나 뒤집어썼다.
쿵!
뒤늦게 떨어져 내린 그랜드 몰의 오른손이 바닥을 구르고, 그것은 여전히 날뛰는 크레이지 버팔로 떼에 치어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흉기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을 보고 그랜드 몰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크아아아아!"
그랜드 몰 주변의 땅이 들썩거린다 싶더니만, 갑자기 밑에서 하반신이 솟구쳐 올랐다.
여태껏 그랜드 몰은 하반신을 땅속에 묻어 둔 상태로 상반신만으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랜드 몰의 흉측한 전신이 드러나 보였다.
"윽."
고약한 냄새와 함께 나타난 그랜드 몰의 하반신은 거대한 지렁이와 말미잘을 반반 섞은 것 같은 몰골이었다.
짧은 털이 촘촘히 박힌 통나무같이 길고 굵은 몸뚱이가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 발이 달렸는데 말미잘의 촉수처럼 수십 가닥이었다.
그랜드 몰은 그 발로 바닥을 딛고 서서 별안간 몸을 길게 늘였다.
마치 용수철처럼 위로 높이 솟구쳤다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김시온의 외침이 울렸다.
"피해!"
정대식은 재빨리 몸을 굴렸다.
그리고 땅을 후려치는 그랜드 몰의 공격을 피해 냈다.
콰아아아아앙!
바위가 쪼개지고 땅이 솟구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욱이 흙먼지가 일어나는 가운데, 김시온의 의식을 빌려 확장된 감각이 위험을 알려 왔다.
정대식은 퍼뜩 고개를 숙였고, 그러자 그 자리를 휙 지나가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고 나자 그 정체가 보였다.
다리가 촉수처럼 길게 늘어나 대원들을 움켜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촉수의 훼방 공작으로 박무원도 왼쪽 손목을 자르지 못하고 피해 있었다.
그러자 그랜드 몰이 덜렁거리는 왼손을 휘둘러 대원들을 파리처럼 쫓아냈다.
소강두가 촉수 하나를 붙잡아 가공할 만한 괴력으로 끊어 내었으나 그때뿐이었다.
촉수는 잘린 자리에서 곧장 새로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