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현질 전사
-3권 21화
"캬아아아!"
와이번은 인간 냄새를 맡고 한참 동안 사냥 팀의 머리 위를 떠돌았다.
대원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잠자코 자리를 지켰다.
어차피 그들의 목표는 와이번의 알이다. 피할 수 있는 싸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이미 대원을 다섯이나 두고 왔으니 여기서 피해가 더 커지면 조사 팀을 보호하느라 와이번 둥지까지 못 갈 수도 있었다.
"캬아아아!"
와이번은 쉽사리 가지 않고 끈질기게 커다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사냥 팀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그러는 동안 정대식은 와이번의 모습을 상세히 살필 수 있었다.
몸길이만 대략 2m, 박쥐와 흡사해 보이는 날개까지 합치면 거의 10m 가까이 되는 엄청난 크기였다.
그런데도 와이번치고는 그리 큰 크기가 아닌 셈이니, 저런 놈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가야 한다 생각하니 절로 걱정이 찾아들었다.
그런데 그때.
"헉."
능력을 쓰느라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황유미가 신음을 삼켰다.
그제야 다른 대원들은 발밑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들이 은신하고 있는 구덩이가 잘못된 장소였는지, 딛고 선 흙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게 황유미의 정강이를 타고 기어오르고 있어, 피터 장이 재빨리 사냥칼로 그걸 떼어 냈다.
"그랜드 몰의 유충이다."
피터 장이 낭패한 말로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발밑에서 유충들이 버글버글 기어 나왔다. 흡사 찌그러진 말미잘처럼 생긴 모양새였는데 그랜드 몰의 하반신에 붙어 있는 발과 같은 촉수를 온 사방에 달고 있었다.
놈들이 발밑에 엉겨 붙는 것을 떼어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도 와이번의 삼엄한 눈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는 상황에서 조용히 유충을 처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바지 자락 속으로 파고드는 유충을 견디지 못하고 황유미의 집중력이 급격히 흐트러졌다.
파앙!
마력이 파훼되며 그들을 뒤덮었던 장막이 사라져 버렸다.
사냥 팀의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 보이면서, 와이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흉폭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끼아아아아악!"
실로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였다.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정대식은 벌써 허리께까지 기어 올라온 그랜드 몰의 유충을 잡아뗐다.
이미 들킨 이상 전투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피터 장이 구덩이 위쪽을 손짓하며 외쳤다.
"전원, 밖으로 나가! 탱커들이 먼저 달려 나가서 어그로를 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원딜들이 공격을 퍼부어! 근딜들은 우선적으로 조사 팀을 보호해!"
피터 장은 연거푸 김시온에게 말했다.
"외인부대가 거들어 줘야겠어!"
김시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커맨드 모드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디버퍼인 허미래와 버퍼인 정대식에게 지시했다.
"정대식, 가진 마력을 몽땅 허미래에서 쏟아부어! 일단 와이번을 아래로 끌어내려야 처치할 수 있다!"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허미래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강화!"
파아아아아!
정대식이 가진 상당량의 마력이 허미래에게 흘러들어 갔다.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마력의 흐름 속에서 허미래는 두 눈을 새파랗게 빛냈다.
그녀는 곧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와이번을 바라보다가 시동어를 내뱉었다.
"포스 오브 그래비티."
허미래는 몸에서 가느다란 실과 같은 마력을 자아냈다.
그러는 동안 탱커들이 와이번을 아래로 끌어내리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그로를 끌고 있었으나 놈은 여유롭게 공중을 선회하다가 병아리를 낚아채는 솔개처럼 일시에 지상으로 낙하해 탱커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탱커들은 그 공격을 피해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느라고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탱커를 노리고 와이번이 내려오는 사이, 원딜들이 와이번에게 공격을 퍼부었으나 대부분은 명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허미래는 와이번이 가까워지는 틈을 타 마크에 성공했다.
허미래가 만들어 낸 마력 실이 와이번의 날개 끄트머리에 가 붙은 것이다.
곧 그녀는 연이라도 당기듯이 손 안에 감긴 마력실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와이번이 제대로 날갯짓을 하지 못했다.
"키아아아!"
와이번은 허미래가 마크한 쪽의 날개를 쓰지 못해 몹시 당황해했다.
그쪽에 무거운 추라도 매달고 있는 것처럼 힘겹게 날개를 퍼득거리다, 결국 지상으로 추락했다.
쿠우웅!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바닥에 처박히는 와이번을 보고 피터 장이 외쳤다.
"전부 공격해!"
김시온이 커맨드 모드를 발동하고 있는 덕분에, 정대식은 허미래의 포스 오브 그래비티의 유효 시간이 단 3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놈을 끌어내리느라 1분 가까이가 소요되었으니 별로 시간이 없었다.
와이번이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오르면 승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관계로, 정대식은 앞뒤 안 가리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면서 주먹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강화 강력권!"
파아아아앗!
그의 주먹으로 마력이 집중되며 공격력이 모였다.
그러나 와이번이 떨어진 위치가 좀 멀었다.
달려가다가 나머지 2분, 아니 1분 30초 정도 남은 시간을 다 소진해 버릴 것 같았다.
정대식은 커맨드 모드를 통해 연결된 외인부대와의 커넥션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고, 반응이 즉각 돌아왔다.
"1단계 변신!"
웨어타우르스로 변모한 소강두가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빠른 속도로 정대식을 앞질러 달려가는가 싶더니, 별안간 몸을 휙 돌려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두 손을 포개 앞으로 내밀었다.
그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의식 공유를 통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정대식은 전력을 다해 뛰었고, 소강두의 손을 박찼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아마도 웨어타우르스 변신으로 인한 동물적인 감각으로 소강두는 정대식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그의 손을 밟고 위로 뛰어오른 정대식은 흡사 포탄처럼 와이번을 향해 날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추락했다.
'제기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번지 점프를 하는 기분이었다.
강철 신체 스킬이 없다면 엄두도 못 낼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
정수리로 피가 몰리는 기분에 눈앞이 아찔했으나, 정대식은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공중에서 자세를 가다듬고 주먹을 앞으로 쭉 뻗어 와이번의 머리통을 노렸다.
'죽어라!'
그때, 허미래의 마크가 해제됐다.
와이번은 무겁기 짝이 없던 날개가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머리 위로 날아드는 이상한 기척, 정대식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키하아아아!"
정대식은 기합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쭉 내지른 주먹이 와이번에게 직격했다.
콰아아아아앙!
거인이 주먹으로 지상을 때리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귀가 다 먹먹해지는 그 소리를 듣고 대원들이 질겁해 귀를 틀어막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음 순간, 그들이 본 것은 허공을 소용돌이처럼 비산하는 핏줄기와 터져 나온 안구에서 튀어나온 체액, 그리고 함몰되어 무너지는 성채처럼 꺼져 내리는 와이번의 안면부였다.
"키아-----아------!"
와이번은 기나긴 단말마를 내지르며 쓰러졌다.
와이번의 긴 목이 땅을 때렸을 땐 이미 놈의 머리 반쪽이 날아가고 없는 상태였다.
한 발짝 뒤늦게 허공을 비산하던 피와 체액, 살점과 뭔지 모를 것들이 비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 가운데서 바닥을 구른 정대식은 몇 바퀴를 더 굴러가다가 간신히 제자리에서 멈췄다.
그는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바닥에 비스듬히 앉았다.
그러자 자신이 이룬 업적이 보였다.
정대식은 제자리에서 일어서며 혹 주먹이 부서지지는 않았나 하고 손을 쥐었다 폈다.
저렇게 거대한 생명체를 자신이 주먹 한 방으로 쓰러트렸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어떻게든 와이번이 다시 날아오르기 전에 끝장을 보려고 전력을 다하려던 대원들은 약간 멍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한 박자 뒤늦게 정대식을 쳐다보며 천천히 감탄사를 터트렸다.
"히야......."
"한 방에......."
"한 방에 쓰러트렸어!"
"굉장하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저거 누구야? 외인부대에 저런 인물이 있었어?"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대원들을 보고 정대식은 약간 멋쩍은 기색으로 얼굴에 묻은 피와 찌꺼기를 닦아 냈다.
그러자 피터 장이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자네,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놀라운 실력이군. 정말이지 엄청난 공격력이야. 몇 등급이지? 5등급? 6등급?"
"이제 막 6등급이 되었습니다."
"6등급밖에는 안 된다고? 허어...... 타이탄 공격대에 이만한 인재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놀라는 피터 장을 보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김시온이 말했다.
"얼마 전에 영입한 대원입니다. 군침 흘리지 마십시오. 타이탄 공격대의 자산이니까."
정대식은 뻔뻔스레 말하는 김시온을 보고 좀 어처구니없어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얼간이, 애송이, 똥 기저귀도 못 뗀 취급을 하더니만.
그러거나 말거나 김시온은 정대식을 자랑했고, 피터 장은 부러운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그는 몇 번이나 놀라운 공격력이라는 말을 반복했고, 천군만마 공격대의 대원들은 약간 기가 죽어 외인부대를 힐끔거렸다.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김시온뿐만이 아니었다.
소강두는 정대식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우쭐거렸다.
"이 녀석을 날려 보낸 게 나란 거 아냐! 너희들도 봤지? 그렇지? 나의 정확한 어시스턴트가 환상적이지 않았냐?"
"어시스턴트는 무슨. 물론 정대식이 자신 있어서 그런 일을 벌인 거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 생각을 알았을 때 정신 나간 줄 알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온몸이 박살 날 일이라고. 아무리 탈로스 방어구를 걸치고 있다고 해도 조심했어야지."
유태훈은 뒤늦게 염려를 드러냈다.
사실 무모한 작전이긴 했다.
그러나 강철 신체를 획득한 정대식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도 했다.
물론 인간 포탄이 되어 허공을 날아갈 정도의 간담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유태훈에게 그러한 사실을 말하려던 정대식은 문득 그를 빤히 봤다. 그러자 유태훈이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뭘 그렇게 봐? 내가 아무리 잘생겨도 그렇지, 반하면 곤란해."
"우웨에에엑!"
소강두가 곧장 오바이트하는 시늉을 했고, 박무원이 아무 말 없이 유태훈의 뒤통수를 퍽 때렸다.
허미래는 뒷전에서 킥킥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정대식은 김시온을 호출했다.
"부대장님! 제게 생각이 있는데요?"
"무슨 생각이지?"
"커맨드 모드를 다시 발동해 주시겠습니까?"
커맨드 모드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 관계로, 전투 상황이 끝나자마자 커맨드 모드가 해제된 상태였다.
정대식의 요청으로 다시 능력을 발휘한 김시온은 순식간에 정대식의 계획을 읽어 내고 놀라움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우리 외인부대가?"
그것은 다른 외인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대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시온은 잠시 그 계획을 검토해 보느라 생각이 잠겼다.
잠시 후, 계획에 아무런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녀 피터 장을 턱짓했다.
"좋아, 천군만마 공격대와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