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72화 (72/297)

# 72

현질 전사

-3권 22화

Chapter 19. 둥지 습격

피터 장은 계획에 대해 듣자마자 난색을 드러냈다.

"외인부대만 와이번의 둥지로 간다는 말입니까?"

김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 부대원의 능력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하면 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뿐더러, 조사 팀을 굳이 위험한 장소까지 데려갈 필요도 없습니다. 천군만마 공격대는 세이브 포인트를 찾아 그곳에 머물면서 조사 팀을 지원할 수 있겠지요."

"저는 외인부대원들의 능력에 대해 다 알지 못하니, 설명이 필요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외인부대 팀만 와이번의 구역으로 들어가서 알을 가져온다는 말입니까?"

회의적인 기색을 드러내는 피터 장에게 김시온은 빠르게 설명했다.

"일단, 네크로맨서인 유태훈이 죽은 와이번을 도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머리 반쪽이 날아가 버리기는 했지만 언데드를 만드는 데 있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법이죠. 두 날개가 멀쩡한 상태이니 충분히 저희를 태우고 와이번의 둥지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지상과 지하에 있는 몬스터의 공격을 전부 피해 낼 수 있을 것이고, 빠른 속도로 와이번의 서식지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둥지 근처로 가면 알을 낳은 와이번들이 공격할 텐데요?"

"둥지 가까이에 가기 전에 언데드 와이번에서 내릴 겁니다. 그리고 유태훈이 언데드 와이번으로 부모 와이번을 유인해 내는 거지요. 그사이에 저희가 둥지 안으로 들어가 알을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와이번의 알은 제법 큽니다. 사람 두 명이 있어야 운반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걸 가지고 탈출한단 말입니까?"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정대식 대원이 디멘션 포켓과 흡사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 넣어 가지고 오면 됩니다."

"디멘션 포켓라고요?"

피터 장은 깜짝 놀라는 기색을 드러냈다.

디멘션 포켓은 엄청나게 값비싼 금액으로 거래되는 아이템이다.

와이번의 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라면 그 가격은 SS급 아이템 뺨치는 수준일 터였다.

그런 것을 다른 대원도 아니고 정대식이 보유하고 있다니!

그는 탐나는 눈으로 정대식을 곁눈질했다.

김시온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와이번의 알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으니 이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운이 좋으면 언데드 와이번이 부모 와이번을 상대하는 동안 탈출할 수 있겠죠."

"도중에 발각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달랑 다섯 명의 인원으로 와이번을 두 마리씩이나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천군만마 공격대에서 쓸 만한 대원을 두 명 내주셨으면 합니다. 언데드 와이번에 일정 인원 이상은 탈 수 없고, 일이 제대로 진척되는지 확인하고 싶으실 테니까요."

피터 장은 미간을 모았으나 김시온의 말에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꼬투리 잡을 만한 부분이 있었더라면 애당초 김시온이 이 이야기를 피터 장에게 하지도 않았을 테다.

이 작전은 처음부터 정대식이 제안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피터 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신속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겠지요. 대원 두 명은 누구를 원하십니까?"

김시온은 정확히 이름을 거론했다.

"신채운과 황유미, 이 두 사람을 데려가고 싶습니다."

신채운은 우산과 비슷한 아이템을 쓰는 탱커였고, 황유미는 은신 스킬이 있는 버퍼였다.

피터 장은 어쩜 그렇게 실력자만 딱 골라 가느냐는 눈초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신채운과 황유미가 남고, 나머지 인원은 세이브 포인트를 찾아 이동하기로 했다.

한데 조사 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정연이 자신도 와이번의 둥지로 가고 싶다고 항변했던 것이다.

"애초에 조사 팀의 목적은 이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을 관측하는 거예요. 이 던전의 주요 몬스터가 와이번인데, 정작 와이번의 둥지에 저를 놓고 가겠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항의를 받은 김시온은 딱딱하게 말했다.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천군만마 공격대는 정부의 요청으로 조사 팀의 동행을 허락한 것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저희 외인부대와는 아무런 계약도 체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지요. 저희가 계약한 대상은 천군만마 공격대로, 조사 팀의 요구에는 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 대상자인 천군만마 공격대에서 요청을 한다면 또 모를까......."

그렇게 말을 하며 김시온은 그런 소릴 하면 반 죽여 놓겠다는 듯이 피터 장을 서늘하게 노려봤다.

"무엇보다 천군만마 공격대의 제1 순위도 와이번의 알을 획득하는 것이지요. 조사 팀에게 제공할 용역은 신변 보호가 전부입니다."

이정연은 지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조사 팀이 와이번의 둥지로 들어가겠다면 당연히 천군만마 공격대도 동행해야 된다는 소리군요?"

김시온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정말 그러고 싶으십니까? 만약 무리하게 와이번의 둥지로 가겠다고 주장하신다면, 우리 외인부대는 이 작전을 포기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외인부대만으로 조사 팀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다 함께 육상으로 이동해서 목적지까지 가야겠지요.

당연히 온갖 몬스터를 상대하며 가야 할 테고 상당한 부상자, 혹은 사망자가 발생할 겁니다. 어찌어찌 와이번의 알을 무사히 가져 나오고 조사 팀을 지켜 낸다 하더라도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말이지요. 그로 인한 손실 비용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정연은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이 되었으나 끝까지 억지를 부리지는 못했다.

자신의 주장으로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 있다 하니 제정신이 박힌 이상 그리 우기지는 못하는 것이다.

입을 다무는 이정연을 보고 김시온은 짐짓 친절하게 말했다.

"굳이 와이번의 둥지까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사 팀이 할 일은 많을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 외인부대가 신속히 와이번의 알을 채취해 온다면, 조사 팀은 그만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그렇담 약속해 주세요."

금세 기세를 회복한 이정연은 당돌하게 말했다.

"빠른 시간 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조사 팀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요."

김시온은 약간 난색을 드러냈다.

"요구라고요?"

이정연은 생긋 웃었다.

"무리한 요청은 아닐 거예요. 단지 죽은 몬스터 말고 살아 있는 몬스터를 관찰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러니 임무를 마치고 나서 남는 시간 동안 저를 도와주세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김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연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고 피터 장과 함께 떠났다.

제자리에 남은 외인부대와 두 사람의 천군만마 공격대원들은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신속히 작전을 시작했다.

"조금 뒤로 물러나 주세요."

유태훈의 요구에 따라 멀찍이 물러선 대원들은 그가 일으키는 이적을 보았다.

죽은 생명체를 되살린다니, 이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심지어 현질 능력을 가진 정대식의 눈에도 그 광경은 경이로워 보였다.

유태훈의 마력이 흘러들어 가자 머리가 다 깨진 와이번이 뇌수를 후둑후둑 흘리며 제자리에서 일어섰던 것이다.

'굉장하다! 현질을 통해서 저런 능력도 획득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면 엔트로피에게 한번 물어봐야 되겠군.'

유태훈은 약간 멍하게 보이는 언데드 와이번을 보면서 걱정스러워했다.

"머리가 온전히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부상 정도가 심각해서 말을 잘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거기에 대비를 해야겠어요."

유태훈의 말에 김시온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디버퍼와 버퍼인 허미래와 황유미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수고 좀 해 줘야겠어."

둘은 고개를 끄덕였고, 대원들이 와이번의 등에 올라타기를 기다렸다가 허미래가 그들에게 디버프를 걸었다.

아까 와이번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것과 같이, 중력을 이용해 그들을 와이번의 등에 고정한 것이다.

단, 이렇게 되면 와이번이 날기가 힘들어지는 관계로 황유미가 와이번에게 버프를 걸어 몸을 가볍게 했다.

"키아아......!"

언데드 와이번이 반밖에 남지 않은 주둥이로 긴 울음을 토해 내며 유태훈의 지시에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승차감이 썩 좋지는 않아서 와이번이 하늘로 도약할 때까지는 골이 마구 흔들렸다.

그러나 일단 날아오르고 나니 제법 기분이 상쾌했다.

"유후~!"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강두가 환호성을 올리다 김시온에게 한소릴 들었다.

와이번은 눈 뜨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날아서 곧장 와이번이 서식하는 구역으로 날아갔다.

천군만마 공격대가 사전 답사를 통해 파악한 바에 의하자면, 알이 있는 와이번의 둥지로 접근하려면 와이번들이 모인 구역, 즉 서식지를 지나가야 했다.

다행히 몬스터의 특성상, 영역과 영역의 경계 지점을 따라가면 몬스터와 마주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보통 세이브 포인트도 이런 곳에 설정되며, 사냥 중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거나 낙오가 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전투 불능 상황에 빠지면 이 경계를 따라 이동하며 몬스터를 피했다.

짐꾼들이 몬스터 부산물을 실어 나르거나 지원 팀이 움직일 때도 이 경계를 따라갔다.

유태훈은 언데드 와이번을 이 경계를 따라 날아가게 했다.

그런 식으로 목표 지점에 근접해 하강했다.

"이곳에서부터는 도보로 움직인다. 유태훈은 언데드 와이번을 조종해야 하니까 버프들과 함께 뒤로 빠진다. 신채운과 소강두가 가장 전방에 서고, 정대식과 박무원이 따라붙는다. 허미래와 황유미, 유태훈이 그다음, 마지막으로 내가 후방을 경계하며 이동한다."

김시온의 신속한 지시에 따라서 외인부대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거의 달리다시피 하는 속도로 알을 가진 와이번의 영역 내로 진입했다.

그렇게 이동하는 외인부대의 머리 위로 언데드 와이번이 날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지라, 오래지 않아 영역의 주인인 와이번이 나타났다.

"키아아아아아아!"

뻔뻔스레 남의 영역에 나타난 언데드 와이번을 보고 새로 등장한 와이번이 경계의 울음소리를 내뿜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하며, 뒤쪽으로 우뚝 솟은 뿔이 수컷임이 틀림없었다.

아마 암놈은 둥지를 지키고 있을 터였다.

수컷 와이번은 상공을 크게 선회하며 언데드 와이번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나 유태훈이 조종하고 있는 언데드 와이번이 순순히 떠나갈 리 없었다.

언데드 와이번을 쫓아내려고 애를 쓰던 수컷 와이번은 언데드 와이번이 둥지 쪽으로 향하자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달리던 유태훈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계속 이동하면서 언데드 와이번을 조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것이다.

유태훈은 말했다.

"안 되겠습니다! 전 이곳에서 수컷을 상대하겠습니다! 암컷까지 끌어내려면 저놈을 쓰러트리는 수밖에 없어요!"

김시온은 망설이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박무원!"

"예."

박무원이 유태훈을 엄호하기 위해 남고, 나머지 인원은 계속 둥지를 향해 달려갔다.

거의 가슴께까지 자라난 풀을 헤치며 이동하다 김시온이 정지 신호를 내렸다.

모두가 일시에 달리기를 그치고 몸을 낮추었다.

김시온은 커맨드 모드를 발동시켜 머릿속으로, 즉 소리 없이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신채운이 앞서 나가고 그 뒤를 정대식이 따랐다.

두 사람은 가급적 기척을 죽인 채로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뒤에서 황유미가 은신술을 걸어 주었다.

그들은 소리 없이 풀 더미를 벗어났다.

별안간 풀이 사라지고 바닥이 드러난 자리에 와이번의 둥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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