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73화 (73/297)

# 73

현질 전사

-3권 23화

"키르르르르."

둥지에 도사리고 앉아 낮은 소리로 우는 것은 암컷 와이번이었다.

암컷 와이번은 가까이 있는 신채운과 정대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암컷 와이번의 주의는 온통 하늘에 돌려져 있었다.

언데드 와이번과 치열하게 싸우는 수컷 와이번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언데드 와이번이 수컷 와이번을 쓰러트리거나, 치명상을 입혀야지만이 암컷 와이번이 수컷 와이번을 지원하기 위해 둥지를 비울 것이다.

그러나 수컷 와이번을 상대하는 것이 만만찮은지 싸움이 길어지고 있었다.

암컷 와이번이 여전히 둥지에 버티고 있어 알을 빼낼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수컷 와이번이 언데드 와이번을 쓰러트리고 둥지로 돌아오면 알을 빼돌리는 일은 요원할 터였다.

김시온 역시도 그러한 상황을 읽어 냈을 테다.

그녀는 유태훈에게만 모든 일을 맡겨 둘 수 없다 판단하고 다음 작전을 실행했다.

신채운과 정대식을 놔둔 채로 그들은 둥지를 크게 돌아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런 다음, 소강두를 내보내 어그로를 끌었다.

암컷 와이번을 둥지 밖으로 유인하려는 것이다.

"3단계, 변신!"

그워어어엉, 하는 웨어타우르스의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소강두가 별안간 풀숲에서 솟구쳐 올랐다.

3단계로 변신한 그의 모습은 한층 거대하고 흉폭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키아아아아아!"

암컷 와이번은 소강두가 둥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날개를 크게 펼치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소강두는 둥지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의 뒷전에서 채찍이 날아들었다.

촤아아아악!

그건 단순히 채찍이라고 부르기에는 힘든 물건이었다.

김시온의 주 무기는 검은 철편이 촘촘히 맞물린 와이어와도 같았는데, 쓰는 방향에 따라 철편이 매끈하게 눕기도, 가시처럼 곤두서기도 했다.

덕분에 몬스터의 살갗을 찢어 내는 데는 아주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것이 소강두의 등장으로 놀라서 목을 빳빳하게 곧추세운 암컷 와이번에게로 날아갔다.

"캬으으으으!"

블랙 스캘럽이 암컷 와이번의 모가지를 휘어 감았고, 그것은 가죽을 발라내며 풀리는 대신에 암컷 와이번을 둥지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허미래의 디버프로 감각에 혼돈이 온 암컷 와이번은 버둥거리며 둥지 밖으로 끌려갔다.

그러자 암컷 와이번이 품고 있던 알이 보였다.

"저거다!"

크림색에 희미한 물결무늬가 있는 알은 피터 장이 걱정했던 것처럼 꽤 컸다.

지름이 1m쯤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케르베로스의 사체도 너끈히 집어넣는 아공간이 있으니 견인에는 문제가 없었다.

더욱이 상점 업그레이드로 공간이 확장되기까지 해서 정대식은 아무런 걱정 없이 둥지로 달려가 그 알을 손에 넣었다.

"됐다, 후퇴해!"

목적을 달성했으니 와이번에게 더 볼일은 없었다.

커맨드 모드로 성공 여부를 알았을 테니 암컷 와이번을 유인하던 김시온과 소강두 등도 어그로를 거둬들이고 몸을 빼낼 터였다.

하지만 약이 잔뜩 오른 암컷 와이번은 순순히 그들을 놓아 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블랙 스캘럽에 사로잡힌 채 힘을 못 쓰고 있던 암컷 와이번이 느닷없이 눈을 번뜩이며 피어를 썼다.

"캬앗-!"

머리를 울리는 굉음에 허미래의 디버프가 깨졌다.

동시에 김시온의 정신도 흐트러져 커맨드 모드도 해제됐다.

찰나의 틈을 타, 암컷 와이번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그쪽으로 펄쩍 뛰어들었다.

"아악!"

짧은 비명 소리가 울리며 소강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부대장!"

커맨드 모드가 완전히 사라져 정대식은 그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것만큼은 확실했기에 신채운과 당장에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풀숲에서 퍼득이고 있는 암컷 와이번의 꼬리를 잡아챘다.

"이리 나와!"

정대식은 고함을 치며 스킬을 썼다.

"도발, 적의 집중!"

한 번에 두 가지 스킬을 쓰자 암컷 와이번의 주의가 그에게로 돌아왔다.

꼬리를 붙잡히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대원들을 공격하던 암컷 와이번이 뒤를 홱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주둥이로 정대식의 머리를 정확히 내리찍으려 했다.

그때 신채운이 예의 그 우산을 펴 들고 앞으로 끼어들었다.

"디펜스 엄브렐러!"

쩌엉!

겨우 우산에 부딪쳤을 뿐인데 쇠가 깨지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실제로 암컷 와이번은 쇳덩이에 주둥이를 처박은 것처럼 움찔해 고개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공격을 대신해 피막이 붙은 앞다리를 세차게 휘둘렀다.

암컷 와이번의 날개가 흡사 바닥을 휩쓰는 빗자루처럼 상대적으로 가벼운 정대식과 신채운의 몸을 휙 날렸다.

"으악!"

추풍낙엽처럼 데굴데굴 날아간 정대식은 둥지 한쪽에 처박혔다.

신채운은 어디로 굴러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커맨드 모드가 제대로 발동되어 있었더라면 김시온이 사태 파악을 하고 허미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풀에 파묻힌 그쪽 대원들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정대식은 쿵쾅쿵쾅 다가오는 암컷 와이번을 정면에서 마주하게 됐다.

"오냐, 와라!"

정대식은 이를 갈며 아다만트 너클을 낀 주먹을 서로 부딪쳤다.

번-쩍!

꽈아-앙!

섬광과 굉음이 한꺼번에 터지며 암컷 와이번의 청력과 시력을 교란했다.

그 틈을 타 자리에서 일어난 정대식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거나 먹어라! 강화 강력권!"

파아아아아앗!

그는 한 발을 앞으로 크게 내딛으며 수십 배로 커진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은 멋들어지게 암컷 와이번의 턱밑을 직격했다.

퍼어어억!

살과 뼈가 터지고 깨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울렸다.

사방에 살점과 가죽이 비산하며 암컷 와이번의 턱과 목 일부가 한꺼번에 날아갔다.

"키아......!"

암컷 와이번은 발버둥을 치며 앞발로 정대식을 후려치려고 했다.

덩치에 비해서는 약소한 크기라고 해도, 갈고리와 같은 발톱이 붙어 있는 흉악한 무기였다.

정확히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그 발톱을 정대식은 팔 하나로 막아 냈다.

쩌엉!

탈로스 방어구는 물론이거니와 강철 신체가 백분 위력을 발휘해, 암컷 와이번의 발톱은 맥없이 튕겨 나갔다.

그러자 암컷 와이번이 분노하며 정대식의 어깨를 움켜잡으려고 했으나, 때마침 신채운이 나타나 공격을 가했다.

"오펜스 엄브렐러!"

파아아아앙!

신채운이 휘두른 우산에 암컷 와이번의 오른쪽 눈알이 깨져 나갔다.

암컷 와이번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닥치는 대로 앞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무익한 짓이었다.

정대식은 제2격을 준비했고, 쐈다.

"강화 강력권!"

퍼어어억!

정대식의 주먹이 미간에 작렬하자, 강철만큼이나 단단하다는 와이번의 두개골이 단숨에 깨졌다.

흡사 수박 터지는 소리와 비슷한 소음을 만들어 내며 암컷 와이번의 머리가 핏덩이로 변했다.

후두두둑!

온갖 부산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가장 뒤늦게 암컷 와이번의 육중한 몸뚱이가 쓰러졌다.

쿠웅!

"허억, 헉."

정대식은 거친 숨을 내뿜으며 암컷 와이번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야 다른 대원들이 있는 풀숲으로 달려갔다.

"이봐! 무슨 일이야!"

풀숲에서는 허미래가 김시온을 끌어안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황유미가 힐을 퍼붓고 있었다.

머리맡에서는 소강두가 포션을 김시온의 입 안에 억지로 흘려 넣는 중이었다.

보아하니 김시온의 옆구리가 완전히 뜯겨 나가 있었다.

암컷 와이번에게 물린 모양이었다.

"어흑, 어억."

쇼크가 오는 것인지 김시온은 별안간 몸을 들썩거리며 경련을 했다.

그러느라 김시온의 입에서 채 삼켜지지 못한 포션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허미래가 사색이 되어 새어 나오는 신음을 삼켰다.

"으흑!"

그때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던 황유미가 앞으로 털썩 엎어졌다.

"으윽!"

그러자 소강두가 언성을 높여 재촉했다.

"뭐하는 거야! 발작하잖아! 힐을 계속해!"

황유미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마력이 다 됐어. 더 이상 힐을 쓰는 것은 무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뭐라도 해 봐, 가만 있지 말란 말이야!"

소강두의 계속되는 재촉에 황유미가 화를 냈다.

"난 힐러이기보다는 버퍼에 더 가깝단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

"제기랄, 그럼 어쩌자고! 여기서 부대장 죽는 거 구경만 하자고?"

그때 허미래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무원 씨를 불러오면......."

"그 녀석이 도착하면 늦어!"

소강두의 말마따나 김시온의 목숨은 경각에 달해 보였다.

박무원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대식은 마구 역정을 내고 있는 소강두를 진정시켰다.

"조용히 해!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뭐?"

정대식은 발작하다 의식을 잃어버린 김시온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신채운을 쳐다보고 말했다.

"가서 박무원을 불러와."

그런 뒤 스스로에게 강화를 걸어 스킬을 썼다.

"치료."

파아아아아-.

은은한 빛이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가 김시온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의 치료 스킬은 레벨이 낮아 이만한 부상을 온전히 낫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힐러인 박무원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문제는 마력량이다.

'역시, 연이어 전투를 치른 직후라 마력이 그리 넉넉지 않아. 특히 치료는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다. 이러다간 마력이 바닥날지도.......'

정확히 마력량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걸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정대식은 온전히 정신을 집중해 김시온의 생명 줄을 붙들고 있었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 흘렀다.

정대식이 느끼기에는 아득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신채운이 박무원을 데리고 나타났다.

유태훈을 보호하고 있다가 별안간 불려온 박무원은 김시온을 보고 표정을 달리했다.

원체 무표정한 얼굴이라 별 차이가 없을 줄 알았더니, 안색이 파리해져 꿇어앉았다.

"이제부턴 내가 맡겠다."

그의 말을 듣고 정대식은 안심해 물러났다.

전에 느껴 본 적 없는 피로감이 찾아들어 정대식은 뒷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상황을 지켜보았다.

박무원은 침착하게 김시온의 상태를 살피고 그녀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 시동어를 읊었다.

"힐."

파아아아아!

생긴 것답지 않게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와 김시온을 감쌌다.

변화계 능력자답게 김시온의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뼈와 내장, 피부가 재생된다기보다는 상처가 봉합되는 느낌이 더 가까웠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상태가 나아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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