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78화 (78/297)

# 78

현질 전사

-4권 3화

그는 걸음을 빨리하며 대원들을 독려했다.

"서둘러! 다 왔어요! 이제 살았다고!"

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목적한 세이브 포인트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오히려 지정된 길을 벗어나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게 헤매었으니 영영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 왔다니?

이제 살았다고 소리치는 말이 이해가 안 됐다.

그러나 정대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장서 갔다.

달음박질치다시피 하는 그 걸음을 대원들은 억지로 따라갔다.

그러면서 희망과 불안으로 흐려진 눈을 들어 정대식을 쳐다봤다.

사방에는 어둠.

하늘은 캄캄했고, 어디서부터가 땅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

주위엔 키 높은 풀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보이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정대식은 뭔가 보이는 사람처럼 거침없이 풀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심지어는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치기까지 했다.

"어어이! 어이이!"

그 모습을 보고 대원들은 식겁했다.

그렇게 큰 소릴 냈다간 사방의 몬스터가 다 모여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정대식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야, 여기라고!"

그는 서둘러 품속에서 야광봉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치켜들고 흔들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벌어졌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별안간 또 다른 야광봉이 나타난 것이다.

곧, 수풀을 헤치며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기다려 마지않던, 구조 팀이었다.

"세상에!"

가장 앞장서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피터 장이었다.

그를 보고 대원들은 긴장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거나 기쁨의 신음을 흘렸다.

"피터 장이다......!"

"살았어......!"

"구조 팀이야!"

피터 장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그쪽에서 오는 거죠?"

대답할 기운도 없는 김시온을 대신해 정대식이 입을 열었다.

"몬스터들을 회피하며 걷다 보니 경계를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정해진 길이 아닌 방향에서 오는 거고요."

피터 장은 탄식을 터트렸다.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싶었습니다. 결국 날이 어두워져 철수하던 참이었습니다. 사방에 몬스터가 득시글거려 구조 팀만으로 움직이기엔 무리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불도 켜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우릴 발견한 겁니까?"

피터 장은 정대식이 소리를 치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거라 말했다.

구조 팀은 몬스터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이동하고 있었다.

그건 정대식과 나머지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못했으면 지척에 서로를 두고도 비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정대식은 주의 확장으로 몬스터를 살필 뿐만 아니라, 구조 팀 또한 찾고 있었다.

신채운이 그들을 부르러 갔다 하니 근방에 그들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당장 치료가 시급한 부상자가 있었으므로 정대식은 말을 짧게 했다.

"요행이라고 해 두지요. 일단 치료 포션이 있습니까? 부상자가 두 명이나 있어서요. 나머지 대원들도 마력을 전부 소진한 상태입니다."

"물론이죠. 이쪽으로 오시죠."

그들은 풀숲에 몸을 숨긴 채 부상자를 처치했다.

황유미가 마력 회복 포션을 마시고 유태훈에게 힐을 썼다.

유태훈과 김시온은 치료 포션을 추가로 마셨다.

나머지 역시도 마력 회복 포션을 마셨다.

정대식은 마력이 생긴 즉시 소강두에게 각성을 썼다.

그는 5단계 변신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깊이 잠들어 있었으나, 각성 스킬을 사용하자 즉각 깨어났다.

"으아악!"

마치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 소강두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난 분명 와이번과......."

5단계 변신이라고 기억이 완전히 날아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소강두는 싸아악, 핏기가 가신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황망한 눈을 하고 말했다.

"5단계 변신으로...... 이성을 잃었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났지?"

중얼거리고 있는 그를 보고 허미래가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정대식 씨가 널 구해 왔어. 여기까지 줄곧 업고 왔고."

"어......?"

소강두는 정대식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다가 몹시 면구스런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뒤통수를 북북 긁으면서 말했다.

"얼굴을 볼 염치가 없군. 내, 내 딴에는...... 실수를 만회하려 한 것인데......."

침울한 표정이 된 그를 보고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그의 실수로 인해 작전이 어그러진 것도 맞고, 상황이 어려워진 것도 그가 무리한 변신으로 이성을 잃은 탓이었다.

그러나 죽을 뻔하다가 다 같이 살아난 상황에서 굳이 그런 잘잘못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었겠지. 아무튼 다들 무사했으니 됐어."

"......미안하다. 그리고 살려 줘서 고마워. 이 은혜는 내가 꼭 갚겠다."

"그럴 필요 없어. 같은 대원끼리 뭔 은혜야. 그냥 다음에는 그 변신에 좀 신중했으면 좋겠네."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정대식의 뒷전으로 김시온이 나타났다.

정대식은 그를 질책할 마음이 없었으나 부대장인 김시온의 생각은 또 다른 모양이었다.

그녀는 싸늘한 표정으로 소강두를 쳐다보고 말했다.

"오늘 네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너 스스로가 잘 알겠지?"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무조건 제 잘못입니다."

"징계가 있을 테니 각오해."

"물론입니다."

부상자 처치를 마치고 대원들은 세이브 포인트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그러나 갈 길을 나서는 피터 장을 정대식이 만류했다.

"잠깐만요! 지금 떠나면 안 됩니다. 잠시 기다리죠."

"기다린다고? 왜?"

"지금 12시 방향에서 몬스터가 오고 있습니다. 지나갈 때까지 여기 숨어 있는 게 좋겠어요."

피터 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다.

그런 그를 김시온이 나서서 만류했다.

"그의 말을 듣는 게 좋을 겁니다. 정대식의 능력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몬스터를 피해서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피터 장은 김시온의 말에 정대식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대원들은 수풀 속에 몸을 숙인 채 기다렸다.

그리고 곧, 정대식이 말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휘오오오오오----------------!!

세찬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것은 와이번이었다.

와이번치고도 유별나게 큰 놈이었다.

어두운 하늘을 더욱 까맣게 물들이며 와이번이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 날아갔다.

와이번이 낮게 날고 있었기에 수풀이 와스스 흔들렸고, 대원들은 정체가 탄로 날까 봐 기겁을 하고 몸을 숙였다.

만약 와이번이 잠깐이라도 눈을 내렸더라면 바닥에 엎드린 그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번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들을 지나쳐 갔다.

등 뒤로 아득하게 멀어지는 와이번을 보면서 피터 장은 돋아 오른 소름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동 중이었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

와이번이 낮게 날고 있었으니 수풀을 가로질러 움직이고 있었더라면 대번에 발각이 됐을 것이다.

제아무리 구조 팀과 합류를 했다지만 저만한 덩치의 와이번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였다.

안도한 피터 장은 곧 주의를 정대식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진지한 투로 말했다.

"자네, 타이탄 공격대엔 얼마나 있을 예정이지?"

그러자 김시온이 대놓고 성질을 냈다.

"피터 장!"

김시온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피터 장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지를 남겨 두었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하고, 일단은 세이브 포인트까지 이동하지. 그때까진 정대식, 자네가 앞장서 줘야겠어."

피터 장은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스스럼없이 그를 가장 앞세워 걷게 했다.

정대식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주의 확장 스킬을 이용해 몬스터들이 없는 방향으로 그들을 인도해 앞으로 나아갔다.

* * *

사냥조의 나머지 사람들이 구축한 세이브 포인트에서 대원들은 한숨을 돌렸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3조와 지원 팀이 대기하고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자 조사 팀의 이정연이 나서서 말했다.

"잠깐만요, 그럼 탐사는 어떻게 되는 거죠? 김시온, 당신 약속만 믿고 있었는데 계획이 다 어그러졌잖아요?"

김시온은 한숨이 나온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보급이 필요하니 어디를 가든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른 일정은 그다음입니다."

부상자가 속출해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조사 팀을 경호할 인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포션과 같은 보급품도 동이 난 상태라 베이스캠프로의 귀환은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이정연도 무작정 지금 당장 가야 한다고 우기지는 않았다.

조사 팀은 어디까지나 동행을 허락받았을 뿐이므로 일정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다.

베이스캠프로의 귀환 길은 왔을 때와는 정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되었다.

부상자인 김시온과 유태훈을 제외한 외인부대가 가장 앞장을 섰고, 무엇보다 정대식이 사냥조를 이끄는 모양이 되었다.

그들의 목적이 귀환에 있는 관계로, 가급적 몬스터를 피해 가기 위해 정대식의 능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도 전과는 달리 인원이 꽤 되었기에 모든 몬스터를 피해 가긴 무리였다.

두어 번, 몬스터와 마주치는 일이 있었으나 한 마리는 웜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크기가 좀 작은 그랜드 몰이었으므로 처치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마력을 회복한 정대식이 다른 대원들이 건드리기도 전에 놈들을 모두 처치해 버려,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반나절 만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크레이지 버팔로의 부속품을 바깥으로 실어 나르느라 몹시 분주했다.

크레이지 버팔로 떼가 나타나는 바람에 애를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많은 소득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소득은 다름 아닌 와이번의 알이었다.

정대식은 와이번의 알을 보관할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그것을 끄집어내었다.

"와이번의 알."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느닷없이 커다란 알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통은 디멘션 포켓 같은 걸 이용하니까 무어라도 꺼내는 시늉이 있어야 했다.

한데 말 한마디로 와이번의 알이 나타나자 놀라워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건 도대체 무슨 아이템입니까? 보통 디멘션 포켓이랑은 다른 것 같은데."

정대식은 어깨만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는 와이번의 알이 컨테이너 안 고정대에 자리 잡는 것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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