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79화 (79/297)

# 79

현질 전사

-4권 4화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와이번의 알을 보고 조사 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확히는 이정연이 거대한 다이아몬드라도 보는 것처럼 두 눈을 빛냈다.

"이게 바로 와이번의 알이란 말이죠? 아이, 예쁘기도 해라!"

알에 착 달라붙은 이정연은 상기된 표정으로 떠들었다.

"세상에! 벌써 심장이 만들어졌나 봐요. 쿵쿵 박동 소리가 들려."

정대식은 이정연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무리 예쁘다 하더라도 저건 몬스터의 알입니다. 안에 든 건 식인을 하는 괴물이라고요! 조심하는 게 좋아요."

정대식의 경고에 이정연은 후후 웃었다.

"아직까지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몬스터들이 전부 인간 고기를 선호하는 건 아니에요.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인간을 잡아먹지 않는 것들도 있죠. 그들은 다만 인간이 보다 손쉬운 먹잇감이기에 공략하는 것뿐이에요. 헌터들이 무작정 몬스터를 사냥하려 드는 탓도 있고요."

마치 몬스터를 편드는 것 같은 말투에 정대식은 인상을 찡그렸다.

"각성자들이 세상에 나타난 이유가 뭐겠습니까? 신들이 인간에게 불가사의한 능력을 준 건 전부 다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기 위해서...... 즉,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서라고요! 몬스터는 야생 동물 같은 것과는 달라요."

"당연히 다르죠! 몬스터는 야생 동물과는 전혀 다른 쓸모가 있을 거예요."

무어라고 더 반박하고 싶었으나 정대식은 이런 식의 말싸움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참견해야 할 필요성도 모르겠고.

다만 이정연의 사고방식에 어렴풋이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와이번의 알을 가져다가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의문스러워졌다.

제아무리 알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저 안에 든 것은 살아 있는 몬스터다.

그걸 던전 밖으로 반출하다니!

목적 불문하고 위험해 보였다.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와이번의 알이 담긴 컨테이너는 단단히 밀봉되었다.

그것은 가장 먼저 던전 밖으로 운송될 터였다.

목표한 와이번의 알이 무사히 확보되었으니, 사실상 이번 파견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그러나 아직 보급품이 남아 있었고, 사냥한 몬스터를 해체해 부산물을 실어 내갈 시간도 필요했으므로 24시간 동안 더 머무르기로 했다.

그동안 몇몇 인원이 차출되어 조사 팀의 탐사를 돕기로 했다.

거리가 멀어서 와이번의 알이 있던 둥지까지 가 볼 수는 없었으나, 송기범과 이정연은 와이번의 영역을 둘러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들과 동행한 대원들은 부상자인 김시온과 유태훈을 제외하고, 와이번의 둥지에 들어갔다 나온 인원 전부였다.

정대식은 몬스터를 탐지해 피할 수 있었고, 박무원은 힐러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버퍼와 디버퍼인 황유미와 허미래는 동행에 필수적이었으며,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소강두와 강력한 탱커의 능력을 가진 신채운이 합류했다.

조사 팀을 인도해 와이번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정대식은 적잖이 아쉬움을 느꼈다.

이번 사냥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돈을 19억 가까이 써 버렸다.

잔고가 한자리대로 내려서고 나니 주머니가 텅 빈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텅 빈 상태였다. 고작 100만원 남짓한 돈을 돈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이번 사냥으로 얼마나 벌어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레이지 버팔로가 그렇게까지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아. 그랜드 몰은 겨우 한 마리만 잡았고 어느 부위가 돈이 되는지도 모르겠어. 기껏 사냥한 와이번은 영역 깊숙한 곳에 버려두고 왔으니.......'

정대식은 내심 혀를 쯧쯧 찼다.

이번 외인부대의 수입은 순전히 그들이 잡아 죽인 몬스터의 수에 비례했다.

사냥한 몬스터 정산금을 전부 갖는 게 계약 조건이었으니까 더 많은 몬스터를 잡을수록 좋았다.

하지만 정대식의 생각에 그리 만족스럽다 싶을 만치 몬스터를 사냥한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주의 확장 스킬을 획득하고 그 효과를 높이느라 쓴 돈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최소한 본전치기는 해야 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일었다.

'아직 24시간이 남았다. 와이번의 알을 빼냈으니 지금 아공간은 비어 있는 상태야. 이걸 꽉 채워야지만이 이번 사냥을 온 보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문제는 조사 팀이다.

조사 팀을 경호하며 데리고 다니는 이상에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정대식은 머릿속으로 모종의 계획을 세웠다.

* * *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죠."

정대식은 몬스터들의 눈에 잘 안 띄는, 에메랄드 바위 밑 구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녔기에 송기범과 이정연, 그리고 조수는 적잖이 지쳐 있었다.

그들은 쉬자는 말에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며 그곳으로 향했다.

쉬는 동안 잠시 식사를 하기로 하고, 박무원이 경계를 서는 동안 다들 비상식량을 꺼냈다.

이정연은 그걸 꺼내어 뜯어먹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보아하니 금세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정대식은 잘됐다 생각하고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으윽!"

깜짝 놀란 허미래가 말했다.

"왜 그래?"

"아, 아니...... 갑자기 배가 아프네."

정대식은 아무렇지 않다고 고개를 흔들다가 다시 배를 움켜잡고 아픈 척을 했다.

그러자 비스킷을 와삭거리며 베어 먹던 황유미가 입가를 훔쳐 가루를 털어 내고 말했다.

"뭐예요? 어디 아파요? 제가 좀 도와줄까요?"

"아뇨. 아무래도 볼일 좀 보고 와야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소강두가 킬킬거렸다.

"뭐야, 배탈이냐?"

"시끄러워."

정대식은 실감나게 엉덩이를 움켜쥔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위 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민망한 듯 뒤를 힐끔거리면서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

적당한 곳에 주저앉아 모습을 감춘 정대식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주의 확장 스킬로 그는 어디쯤에 몬스터가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젯밤 극심한 긴장 상태에서 주의 확장을 장시간 했더니 이제는 그것을 쓰는 게 팔다리를 놀리는 것처럼 익숙했다.

'좋아! 머지않은 곳에 뭐가 있군!'

정대식은 신속 스킬을 써서 그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보아하니 웜이었다.

어제 본 웜보다는 더 큰 놈이었으나.......

'마력을 회복한 이상 넌 내 상대가 안 돼!'

정대식은 주먹에 힘을 실었다.

"강화 강력권."

쐐애애애애액!

그는 달리던 기세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묵직한 소리가 울리며 아다만트 너클이 웜의 대갈통을 뒤에서부터 깨부쉈다.

놈은 단말마도 지르지 못했다.

자기가 죽는지도 모르고 일격에 나가떨어졌다.

철퍼덕.

정대식은 머리가 날아가 버린 채 바닥에 쓰러진 웜의 시체를 서둘러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신속을 써서 재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곧 볼일을 다 마친 척하며 수풀 속에서 일어나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시간은 채 10분도 되질 않았다.

정대식은 더 쉬고 싶어 하는 일행들에게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재촉했다.

"자, 그럼 다시 가 볼까?"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정대식은 일행들이 쉬는 틈을 타, 혹은 정찰을 핑계 삼아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를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와이번은 워낙에 사납고 강력해 금방 잡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와이번이 출몰하는 영역 깊숙이 들어갈 수도 없었으므로, 웜이나 그랜드 몰, 크레이지 버팔로와 유사한 종인 자이언트 바이슨 등을 사냥했다.

자이언트 바이슨은 머리만 잘라 넣었는데도 금세 아공간이 찼다.

탐사를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갈 때쯤에는 아공간에 더 집어넣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전혀 정대식이 무언갈 사냥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수입은 다른 대원들과 나눌 필요도 없었다.

오로지 정대식의 것이었으므로, 그는 배부른 미소를 지으며 던전에서 철수했다.

* * *

던전을 빠져나와 귀환한 뒤, 정대식은 집으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뻗어서 거의 하루 가까이 잠을 잤다.

던전 안의 낮밤 길이가 현실과는 달랐던데다가, 긴장 속에서 줄곧 주의 확장 스킬을 사용했기에 몹시 지쳐 있었던 것이다.

푹 자고 일어났을 땐 몸과 마음이 전부 상쾌했다.

해가 잘 드는 환하고 넓은 집에서 거주를 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았다.

창문도 없는 여관방에 머무를 땐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고 늘 몸이 무거웠다.

그런데 좀 사람 사는 집으로 왔다고 컨디션이 날아갈 듯했다.

'타워팰리스 부럽지 않구먼.'

기지개를 길게 켜며 그렇게 생각하던 정대식은 곧 머리를 부르르 흔들었다.

'뭐냐, 이 소시민적인 생각은?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되지!'

정대식은 자신을 채근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 룸에서 개운하게 씻고 나와 그는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 차를 한번 타 볼까.'

그는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오면서 받았던 가죽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카드 키로 집 문을 잠그고 차고로 나오자 번듯한 자가용이 눈에 띄었다.

'이게 오늘부터 내가 타고 다닐 차란 말이지!'

차량을 지급받아 줄곧 차고에 넣어 놓기만 했던지라 정대식은 입을 헤벌쭉 벌리고 그 차를 새삼스레 둘러보았다.

타이탄 공격대는 H 사로부터 차량 일체를 제공받고 있었다.

비록 중소 공격대라 해외 유명 기업으로부터 협찬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런 혜택이 아예 없는 공격대도 많았다.

국내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타이탄 공격대가 H 사로부터 무상으로 차량을 지급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헌터들은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되고 던전 시대가 개막됨으로써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세계 각 기업들은 그런 헌터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개중 가장 대표적인 게 자동차였다.

대부분의 던전이 차로 이동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지형인데다, 엔진 소리가 몬스터를 끌어들일 수 있었으므로 사냥 중에는 보행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몬스터 부산물을 실어 나를 때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보통 헌터들이 특정 구역에서 사냥을 하고 나면, 몬스터의 영역에 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그러므로 다른 몬스터가 그 영역을 차지할 때까지는 다소 안전했다.

그 틈을 이용해 세이브 포인트를 설정하거나 베이스캠프를 설치해 짐꾼들이 몬스터 부산물을 처리하여 운송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차량이 필요하게 되는데, 당연히 도로 위를 달리는 일반적인 차량은 별 쓸모가 없었다.

던전 안의 지형이 워낙에 험하기도 하고, 몬스터의 습격을 받으면 초고장력 강판 따위는 종잇장처럼 찢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불법 개조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