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85화 (85/297)

# 85

현질 전사

-4권 10화

"자자, 이것도 해 봐!"

정대식은 순순히 소강두가 내미는 물담배를 받아 들었다.

그걸 한 모금 피우자 별안간 웃음이 치밀어 올랐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아하하! 우, 웃음이...... 아하하하하!"

정대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소하는 자신이 미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성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었다.

"이건 폭소 담배라는 거야."

"아하하...... 하하! 희한하네. 뭔지는 몰라도 되게 웃겨!"

"하하하! 우리가 보기엔 네가 더 웃기다! 이건 마력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강하게 반응해. 보통은 몇 번 웃고 말지 너처럼 죽자고 웃지는 않는다고!"

"아하하하! 배, 배 아파! 와하하하하!"

곧 소강두와 유태훈도 그 담배를 피우고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박무원은 거절했으나 허미래는 담배보단 술이 더 고프다며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술기운이 오르는지 허미래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배꼽 밑에 두 손을 갖다 대고 주위에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외쳤다.

"허미래~ 쇼! 쇼! 쇼!"

허미래가 그렇게 외치기 무섭게 그녀의 등 뒤에서 검은 나비 떼가 화라라라락 피어올랐다.

정대식이 놀라서 "우와아아!" 소리를 치며 뒤로 벌렁 넘어지자 허미래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본디 검은색이던 나비가 총천연 색깔로 변했다.

"허미래, 너 벌써 취했잖아!"

유일하게 제정신인 박무원이 그녀를 억지로 끌어다 앉혔다.

그런데 자꾸만 도로 일어나 그놈의 나비 쇼를 하려고 난리였다.

그 모습을 보며 정대식은 쉴 새 없이 웃었다.

폭소 담배가 지나치게 잘 받는지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소강두와 유태훈도 줄기차게 웃고.

아무튼 간에 난장판이었다.

그때였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바깥이 시끌벅적해져 부대원들은 활짝 열린 창문의 난간에 달라붙었다.

간신히 폭소 담배의 효과가 가시려는지 웃음기가 사그라지고, 소강두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평 최고 이벤트야. 기가 막힌 볼거리지. 여기에 팬텀이 살고 있거든. 이곳은 그 사람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팬텀은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환영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솜씨로 수많은 사람을 구조한 전적이 있는 각성자였다.

그는 헌터로 활약하지는 않았으나 1세대 각성자들 중에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곳에 있었구나 생각하는 와중, 안내 방송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가평 나이트의 하이라이트! 팬텀 페스티벌을 시작합니다!」

와아아아아!

박수 소리와 함성이 울려 퍼지고 안내 방송이 계속 이어졌다.

「이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환영입니다. 환영술사 팬텀이 만들어 내는 기가 막힌 하룻밤의 꿈일 뿐이니,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환영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기지는 마십시오. 잠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라져 버릴 신기루에 불과하니까. 자, 그럼 시작됩니다!」

그리 신선할 것 없는 소개가 끝나자, 별안간 사방이 깜깜해졌다.

야광석이 단번에 빛을 잃어버려 눈이 멀어 버린 기분이었다.

정대식은 당황해서 엉거주춤하게 있었다.

정대식처럼 몇몇 놀란 헌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대식은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둔 밤하늘을 보았다.

야광석이 환할 때는 깜깜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별이 굉장했다.

"우와."

여기에 별이 이렇게나 밝았었나?

감탄하며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던 정대식은 곧 그 별빛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눈송이처럼, 혹은 반딧불처럼 내려앉은 별빛은 곧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그게 요정이라는 걸 알았다.

어릴 적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모습을 한 요정들이 춤을 추었다.

무리를 지어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완벽한 솔로를 추기도 했다.

그러다가 별안간 커다랗게 자라났다.

"어억!"

정대식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요정을 보고 놀라서 몸을 뒤로 물렸다.

순식간에 사람 같은 크기가 된 요정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 요정은 신비한 웃음을 흘리며 정대식과 부대원들 사이를 맴돌았다.

어느새 그 요정은 인어의 모습으로 변했다.

비늘이 반짝이는 긴 꼬리로 부대원들을 한 번 휘감고 창밖으로 나가 마찬가지로 인어로 변한 요정들과 마주했다.

그러자 은은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바깥은 바다 속의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돌고래와 열대어가 헤엄치고 인어들이 큰 거북이를 타고 노닐며 하프를 튕기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머리 위에 어둠이 드리운다 싶더니, 거대한 고래가 나타났다.

우우우-!

고래가 기묘한 소리로 울며 그들을 스쳐 지나가고, 곧 더 거대한 게 나타났다.

그것은 정대식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물체였다.

해룡이었다.

수많은 지느러미를 노 젓듯이 움직이며 유유하게 헤엄쳐 가는 광경이 경이로웠다.

여태껏 다른 몬스터를 보면서는 느껴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그것을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보는데 곧 눈을 의심케 할 만한 게 나타났다.

"크라켄!"

정대식은 경악해 소리를 쳤다.

일본 열도를 바다 밑에 가라앉힐 뻔한 몬스터가 해룡을 쫓아서 나타났다.

해룡과 크라켄은 허공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 광경이 위협적이지는 못했다.

해룡과 크라켄이 부딪칠 때마다 사방팔방으로 별사탕이 쏟아졌다.

그들은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가 몇 번이나 다른 몬스터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윽고 그 두 마리는 거대한 드래곤과 만티코어가 되었다.

드래곤이 불을 토하자 그 불길이 계곡을 불태웠다.

만티코어가 그 목을 물어뜯었고 독이 쏟아져 불길을 꺼트렸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불길이 점점 더 커졌다.

이윽고는 드래곤과 만티코어마저 그 불길에 삼켜졌다.

모든 것이 다 불타고 있었다.

정대식은 불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동료들을 쳐다보니 그들도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그 불 속에서 불사조가 나타났다.

피닉스가 울부짖으며 날갯짓을 했다.

그리고 그 불길을 몽땅 이끌고 하늘 위, 까마득한 곳으로 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다시 암흑.

곧 야광석이 불을 밝히고 현실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후아, 오늘도 굉장했어!"

허미래가 짝짝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얼떨떨해 있던 정대식은 정신을 차렸다.

유태훈이 휘파람을 불었고, 소강두도 어딘가에 있을 팬텀을 향해 환호성을 보냈다.

박무원? 그는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대식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굉장했어."

"멋지지? 오늘 밤 이벤트는 이게 끝이 아냐. 재미있는 행사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기대하라고!"

소강두는 평생 기억에 남을 밤이 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리고 진짜 그 말대로 됐다.

정대식은 '용트림'이라고 불리는 칵테일을 마음껏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부대원들과 함께 변신술사끼리 맞붙는 씨름판에 나가 구경을 했다.

소강두는 직접 출전해 꽤 많은 사람들을 쓰러트렸다.

끝내 거대한 웨어베어에게 지고 말았지만 승부 자체는 볼만한 경기였다.

거기에서 받은 상금을 가지고 또 다른 가게로 마시러 갔고, 다른 헌터들과 합석했다.

다들 큰 소리로 던전에서의 무용담을 떠드는 가운데 두 번째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가드너라고 불리는 능력자가 나와 가평의 숲을 노래하게 했다.

놀라운 속도로 자라난 풀과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바람에 흔들리며 경이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두 번째 이벤트가 끝났을 땐 '이상한 경매 시장'이 열렸다.

던전에서 나온 온갖 괴상하고 우습고 요상한 것들을 파는 경매였다.

진짜 값어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들은 재미 삼아 입찰을 했다.

그 밤은 길고도 길었다.

정대식은 줄기차게 용트림을 마시고 폭소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취하는 한편으로는 정신이 이상하게 말짱했다.

아무리 마시며 떠들어도 조금도 피곤하거나 졸리지 않았으며, 전에 없이 몸과 마음에 활력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결국, 그들은 아침 해를 보고서야 자리를 파할 수가 있었다.

* * *

"드르렁! 드르렁! 음냐, 음냐......."

정대식은 누군가 코를 요란하게 고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번쩍, 눈을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바닥에 대자로 누운 소강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팬티 한 장만 덜렁 걸친 채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정대식 또한 별로 입은 게 없었다.

그는 새집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아, 맞다. 어제 유태훈네 집에서 잤었지.'

유태훈이 살고 있는 곳은 사택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만의 아파트를 따로 가지고 있었다.

정대식이 그렇게나 노래를 부르던 강남 한복판의 타워팰리스였다.

'으아, 집 좋다.......'

정대식은 감탄하며 거실로 나갔다.

"일어났어?"

유태훈은 벌써 잠에서 깨어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박무원과 허미래는 자리에 없었다.

그들은 새벽에 헤어질 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박무원은 유태훈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집이 따로 있었고, 허미래는 아직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사택에 살고 있는 정대식과 소강두만이 유태훈의 집으로 온 것이다.

정대식은 자신도 한 잔 달라고 말을 하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빨리 일어났네. 안 피곤해?"

"피곤할 리가 없지."

유태훈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정대식은 퍼뜩 깨달았다.

어제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 미친 듯이 놀았는데 숙취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세 시간밖에 못 잤는데 숙면한 것처럼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어리둥절해하는 정대식을 보고 유태훈이 커피를 건네주며 설명했다.

"이게 바로 용트림이 비싼 이유야. 숙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몸을 상쾌하게 해 주거든. 피로회복제 삼아 어떤 헌터들은 가지고 다니며 마시기도 해."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정말 좋은데!"

숙취 없는 술이라니, 최고였다.

문제라면 가격이다.

정대식은 용트림 한 잔의 값이 30만 원에 육박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미간을 찡그렸다.

어제 술값을 그가 다 내다시피 해서 하룻밤 만에 1000만 원 가까이를 탕진했다.

여자를 끼고 놀거나 양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상당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즐겁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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