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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88화 (88/297)

# 88

현질 전사

-4권 13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먼저 입구 근처부터 맵핑을 하기로 했다.

기철민이 둥근 구체 모양의 드론을 허공으로 날리자, 그것이 반짝이는 불빛을 내뿜으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곧 탭 위에 홀로그램이 나타나 드론이 전송해 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맵을 구성했다.

그러나 짙은 안개와 던전 안에서 흔히 일어나는 정체불명의 전파 장애로 드론은 멀리 가지 못했다.

대략 반경 3km 정도만을 관찰하고 드론은 곧장 돌아왔다.

그것을 수거하고 최선이 머리에 쓴 헬멧에 장착한 소형 카메라로 녹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동한다!"

가장 선두에 소강두가 서고, 그 뒤를 정대식과 기철민이 나란히 뒤따랐다.

허미래와 최선이 중앙에 서고, 김시온이 후미를 맡았다.

대형을 짜기는 했으나 길이 좁아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사방이 뻘과 웅덩이인지라 걷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발밑만 신경 쓰지 말고 전후좌우를 살피면서 걷는다. 정대식, 몬스터를 감지할 수 있겠나?"

"예,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알다시피 오늘의 목적은 사냥이 아니다. 단지 사전 답사를 나왔을 뿐이니까 가능한 몬스터는 피해 간다."

김시온의 지시 아래 답사 팀은 조심스레 일을 진행했다.

3km 지점마다 멈춰서 드론을 날려 보내 조금씩 맵핑을 해 내갔다.

생각보다 던전이 넓어서 모든 구역을 다 살펴보기는 무리일 것 같았다.

네 번쯤 맵핑을 하고 나서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김시온은 비상식량을 담배처럼 질겅질겅 씹으며 중얼거렸다.

"어쩐지 기분 나쁜 곳이야. 정대식, 몬스터는 아직 관찰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몬스터가 느껴지지 않아요."

이상한 일이었다.

벌써 12km 지점을 이동했는데 아무것도 나타나는 게 없다니.

일반적인 던전 같지가 않았다.

"이 던전을 공략했다는 헌터를 찾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기철민이 하는 말에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그 헌터가 누구인지 모르나 보지?"

기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정체를 숨기고 은밀히 활동하는 헌터들이 있어. 이 던전이 공략되었다는 사실도 마정석이 발견되면서 알려진 사실이야."

"왜 굳이 남몰래 활동하는 거야?"

"나야 모르지."

별 뜻 없는 대화를 이어 가고 있던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멀리서 난데없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일동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시온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비명 소리 같았는데요."

허미래가 겁먹은 표정으로 하는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두 다 일어난 걸 보면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 것 같군."

"다른 누가 여기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요?"

"가능성이 있어."

김시온은 제자리에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익스팬션."

확장된 그녀의 의식이 일대로 뻗어 나갔다.

잠시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서 있던 김시온이 곧 눈을 뜨고 말했다.

"4시 방향, 헌터다. 혼자야."

그때 또다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뚜렷했다.

"으아악!"

곧이어 들려오는 폭음.

콰앙!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누군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았다.

김시온은 즉시 지시를 내렸다.

"4시 방향으로 대형 유지하며 이동한다! 무언갈 발견하는 즉시 제자리에 멈추도록!"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내달려 소란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가장 앞서 달리던 소강두가 정지 신호를 보내며 제자리에 멈춰 섰고, 정대식도 곧 누군가를 발견했다.

안개가 옅어져 연못 같이 드넓은 웅덩이가 드러나 보였다.

그곳에서 웬 헌터 한 명이 큰 소리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으와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말아 쥐고 있었으나, 커맨드 모드를 발동시킨 김시온은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는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정대식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 방방거리는 남자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몬스터가 안 보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남자는 혼잣말을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그만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네요. 안개 속에서 홀로 헤매니 헛것을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죠? 그나저나, 이 던전은 상당히 조용합니다. 몬스터도 나타나질 않고...... 으스스하군요."

손짓 발짓에 표정까지 다채롭게 바꾸는 모양새가, 일인극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미친 사람이거나.

아무튼 던전 안에서 볼 법한 광경은 아니었다.

기묘한 장면을 맞닥뜨리고 얼어붙어 있노라니, 기철민이 그 상황에 대한 가장 적절한 추측을 내놓았다.

"......인터넷 방송이라도 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허미래가 하는 말에 김시온은 커맨드 모드를 해제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수풀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이봐!"

"어?"

남자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키는 좀 작았지만, 얼굴만 본다면 유태훈 못지않게 잘생긴 남자였다.

게다가 뭔지 모를 위화감이...... 화장을 한 것 같았다.

던전 안에 들어오는 사람 같지 않게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었다.

그러자 기철민이 그 남자의 주위에 떠 있는 드론을 손짓했다.

그건 기철민이 가져온 맵핑용 드론보다 훨씬 더 크기가 작았다.

아마 촬영용인 것 같았다.

거기다 남자는 손등에 휴대폰 패드를 차고 있었다.

아마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그 휴대폰을 통해 저장을 하고 있거나, 어디론가 전송하는 듯했다.

기철민의 추측대로 남자는 방송 비슷한 걸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인터넷 망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외부와 통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데 남자는 마치 실시간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 실시간인 것처럼 촬영을 하고, 나중에 올리는 모양이었다.

느닷없이 김시온이 나타나자 남자는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아니, 당신은? 이런 던전에 별안간 나타난 매니악한 미인이라니! 여러분, 보이십니까? 제 착각인 거 아니죠? 설마, 몬스터는 아닌 거겠죠?"

김시온은 불쾌한 얼굴로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는 남자의 손을 쳐냈다.

"도대체 여기서 혼자 뭘 하는 거야? 당신 때문에 놀라서 여기까지 달려왔잖아! 몬스터의 습격을 받은 게 아니었나?"

김시온의 말에 남자는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그거 죄송하게 됐군요.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안개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여서, 바위를 몬스터로 착각했어요."

"멍청하긴. 바위를 몬스터로 착각하고 총질을 해 댈 정도면 그만 나가지 그래? 너 같은 놈이 얼쩡거릴 만한 곳이 아냐! 이 던전은 아직 어떤 곳인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이만 돌아가는 게......."

"어어, 말을 좀 조심해 주세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뭐? 그럴 리가 있냐?"

"정말이에요. 저 모르세요?"

김시온은 내가 네깟 걸 어떻게 알겠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남자가 몹시 실망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진짜 모르세요? 객기신이라고......."

"그게 뭐야?"

남자는 자신을 인터넷 방송 진행자인 객기의 신, 본명 나동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헌터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1,000만 뷰를 돌파한 유명 BJ라고 했다.

"제가 이래 봬도 헌터 인기 랭킹 순위 3위에 올라 있다고요. 그런데도 절 모르시다니......."

"모르는 건 모르는 거고, 위험한 건 위험한 거야."

나동일의 정체를 깨닫고도 김시온은 그를 얼간이 취급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던전에서 인터넷 방송이라니.

얼간이 취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닉네임이 객기의 신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김시온의 태도에도 나동일은 변죽 좋게 웃어 보였다.

"염려 마세요. 이래 보여도 전국 수많은 던전을 누비면서도 여태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아...... 근데 이제 보니, 타이탄 공격대세요?"

김시온은 단박에 그쪽에서 정체를 알아보자 약간 당황했다.

그녀의 타이탄 표식은 장갑에 감춰져 있었고, 겉으로는 타이탄 공격대라는 것을 알아볼 만한 어떤 증거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한데 놀랍게도 나동일은 김시온의 이름까지 단박에 맞추었다.

"외인부대의 부대장인 김시온 씨? 맞아요?"

김시온은 경계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거야, 사람들이 말해 주었으니까요."

"사람들이라니?"

"제 방송을 시청 중인 사람들이요. 그중에 누가 댓글로 김시온 씨라고 말해 주었네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지금 이게 실시간으로 방송이 되고 있다는 거야?"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요."

김시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의 못 믿어 하는 표정을 보고 나동일이 설명을 덧붙였다.

"참고로 제 능력은 전파(wave)예요. 저는 저를 웨이버라고 부르지요."

* * *

나동일은 무선 전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인물이었다.

그는 어디에 있든지 간에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전송하거나 전송받을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살려 헌터 BJ가 된 것이다.

그는 던전 안에서 직접 사냥하는 모습을 방송함으로써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의 방송을 보면 일반인들도 집 안에 편히 앉아서 던전 안의 이계와 몬스터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사냥하는 걸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사람이 있다고......."

허미래가 하는 말에 나동일은 큼지막하게 입을 벌리고 웃었다.

"맞아요. 그게 납니다."

남자의 정체가 밝혀졌으므로 부대원들은 전부 그의 앞에 나선 상태였다.

그들이 나타남에 따라 나동일은 잠시 방송을 중단한 상태였다.

기철민은 나동일을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그만한 능력이라면 어느 공격대에 가든 귀하게 쓰일 텐데, 왜 하필 인터넷 방송입니까?"

"음,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공격대에 들어가면 보조적인 역할밖에는 할 수 없겠더라고요.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이겁니다."

"위험하지 않아요? 등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사냥에 전력을 다해야 할 판국에 이렇게 혼자서 돌아다니며 방송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하하, 그러니까 객기의 신인 거죠. 뭐, 항상 혼자 다니는 건 아닙니다. 간혹 다른 공격대의 협조를 받아서 같이 방송을 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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