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현질 전사
-4권 14화
나동일이 하는 일이 전에 없던 일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궁금증이 들었다.
정대식은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게 돈벌이가 제법 되나 보죠?"
단순히 재미만으로 이런 위험한 일을 할 리가 없었다.
혼자서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런 던전을 돌아다니는 것은 제아무리 실력자라 하더라도 목숨을 거는 일이다.
한데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만한 대가를 지불받을 터였다.
나동일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유튜브 조회 수 1,000만 뷰 정도면 광고비만도 짭짤하죠. 게다가 후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시청자 한 명 한 명이 쓰는 푼돈도 다 모이면 제법 크거든요."
그러고 보니 나동일이 착용한 무구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무기 상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그것만 봐도 그의 벌이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쉬이 짐작할 수가 있었다.
'저런 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있었군.'
정대식은 자신도 흉내 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궁리해 보았다.
하지만 그냥 사냥하는 것을 촬영한 장면은 유튜브에도 많이 돌아다녔다.
아마 나동일이 인기가 있는 건 실시간으로 사냥하는 광경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일 것이다.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정대식은 빠르게 관심을 접었다.
"그나저나, 여러분은 사냥을 하러 이 던전에 들어오신 겁니까?"
"그건 왜 묻는 거지?"
김시온이 인상을 찡그리며 질문하는 말에 나동일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게, 좀 이상해서요. 벌써 몇 시간을 돌아다녔지만 몬스터를 보지 못했거든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오늘 방송은 완전히 죽 쒔어요. 그러던 와중에 여러분을 마주쳤으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우릴 만난 게 왜 다행이란 거지? 딱히 위험에 처해 있던 것도 아니었으면서."
"아무래도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돌아다니는 게 재미있으니까요?"
"난 너와 돌아다니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김시온이 차가운 표정으로 하는 말에 나동일은 선뜻 제의했다.
"공짜로 다녀 주십사 부탁하는 게 아닙니다. 전 정식으로 의뢰를 하는 거예요."
"의뢰?"
"오늘 저와 함께 동행해 주신다면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지불하겠습니다. 딱히 절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그냥 따라만 다니게 해 주시면 됩니다."
"미안하지만 우린 그런 식으로 계약하진 않아. 오늘은 사냥을 목적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다른 계약 건으로 사전 답사를 왔으니 당신이 기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흥미로운 여정이 되지는 않을 거다."
"굳이 사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관없어요."
"말했다시피 다른 의뢰를 받아 임무를 실행하는 중이니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없어. 당신이 조난자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여기까지 혼자서 들어온 걸 보면 충분히 되돌아 나갈 수도 있겠지.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김시온의 완고한 태도에 나동일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흠, 그렇다면 정보를 드리는 건 어떻습니까?"
"무슨 정보냐에 따라 다르겠지."
"이 던전의 공략에 성공한 헌터에 대한 정보입니다."
김시온은 멈칫했다.
이 던전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이상, 나동일이 알고 있다는 헌터의 정보가 중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사전 답사를 들어왔으니 꼭 몰라도 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김시온은 잠시 고민했으나 곧 거절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 낌새를 읽고 나동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쪽을 위해 이야기하는 거지만 들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김시온은 침묵했다.
나동일은 그런 그녀를 보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당신들에게는 손해 볼 것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제 동행을 허락해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절대 방해가 되거나 도움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김시온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좋아. 무슨 정보인지 말해 봐."
나동일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고 말했다.
"그 헌터는 검은 손이라 불리는 양우택입니다."
"그래?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정보라고 할 수 없다는 식으로 김시온이 팔짱을 끼자, 나동일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양우택이 이 던전에 들어왔다 가고 나서 판매한 마정석은 푸른색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타이탄 공격대도 블루 스톤이 나왔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이곳에 들어온 거겠지요. 하지만 사실, 양우택이 그때 판매한 마정석은 이 던전에서 얻은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건 과거 다른 던전에서 얻어 두었던 마정석이었고, 여기서 얻은 것은 다른 색깔이었다고 하더군요."
"정확히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지? 얼른 본론을 말해."
김시온의 재촉에 나동일은 이야기꾼답게 한껏 뜸을 들였다.
"그것이...... 보라색이었다고 합니다."
"보라색?"
마정석의 색깔과 투명도는 거기에 담겨 있는 마력의 농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던전의 난이도, 즉 어떤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느냐가 결정했다.
옐로나 레드 등, 흔한 마정석이 나오는 던전은 제아무리 어려워도 7, 8등급 수준에 머무른다.
블루 스톤이 나오려면 6등급 이상의 몬스터가 있어야 한다.
퍼플 스톤은 당연히 5등급 이상이다.
말이 5등급이지, 5등급 수준의 몬스터라는 것은 5등급의 헌터가 세 명은 있어야 처치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이 인원은 최소한이고 보통은 다섯 명으로 계산한다.
다섯 명이 있어야지만 탱커, 근딜, 원딜, 버퍼, 힐러의 가장 기본적인 공격대의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5등급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다면 답사 팀으로서는 지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그들은 사전 답사를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5등급 헌터는 김시온 달랑 한 명뿐이고, 그녀의 능력은 전투보다는 지휘에 쏠려 있으니 실제로 응급 상황이 벌어지면 싸울 수 있는 인원은 세 명 뿐이었다.
정대식, 소강두, 그리고 기철민이다.
외눈박이부대의 최선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공격력이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와 나동일까지 포함시킨다면 비전투 인원이 절반을 넘어선다는 말이다.
5등급 몬스터가 나타나면 몰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한 점들을 고려하고 김시온은 고민에 빠졌다.
아마 답사를 포기하고 되돌아 나가야 하는 것인가, 갈등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태까지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만나지 않았다.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데다가, 몬스터를 감지하는 정대식의 능력이 있으니 여차하면 달아날 수도 있을 터였다.
김시온은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 목표는 사냥이 아니다. 설령 5등급 몬스터를 마주친다 하더라도 피해 가면 될 일이지. 어차피 5등급 몬스터라는 것은 이 던전의 보스몹일 가능성이 높다. 던전 공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은 만나지는 않을 거야. 실제로 본 임무 때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몬스터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게 우리 일이니까, 뭐라도 발견할 때까지는 답사를 계속 진행하도록 한다."
나동일을 포함한 답사 팀은 임무를 재개했다.
그들은 대형을 유지한 채 걷고 있었는데, 김시온과 나란히 후방에서 걷고 있는 나동일이 몹시 시끄러웠다.
그 역시도 방송을 재개한 탓이었다.
"여러분! 제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네, 네. 이분들과 동행하느라고 다소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정식으로 소개하도록 하지요. 이쪽은 타이탄 공격대의 외인부대를 책임지고 계시는 헌터! 김시온 씨입니다. 김시온 씨, 잠깐 여기 봐 주실래요?"
"......."
"네에, 네. 과묵하신 분이죠? 어렵사리 이분들과 합류한 만큼,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몇 마디 해 주시면 좋겠지만 과한 욕심인 것 같습니다. 제가 대신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 주세요. 예? 아, 예, 예. 미인이시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동일은 혼자서도 쉬지 않고 리액션을 하면서 방송을 계속 이어 갔다.
그가 떠드는 게 시끄러워 몬스터를 끌어들일지도 모르니 좀 닥치라고 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여전히 나오는 몬스터가 없었다.
정신을 집중해 봐도 주의 확장에 걸려드는 몬스터가 전무했다.
맵핑으로도 별 특징 없는 늪지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뿐.......
드론이 맵핑을 하는 동안 긴장이 다 풀린 대원들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열심인 건 나동일뿐이었다.
그는 대원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그들을 인터뷰하려고 애썼다.
김시온은 무시했고, 기철민은 바쁜 척했고, 허미래는 수줍어 피했으나, 소강두는 매우 적극적으로 응했다.
"와하하! 뭐 그렇게까지 신기한 능력은 아니야. 웨어울프나 웨어베어 같은 경우는 흔하니까. 웨어폭스? 그건 좀 드물지. 나도 딱 한 번 본 적 있는데 여자였어. 나 같은 웨어타우르스도 본 적 없고. 저쪽 미주 쪽에는 웨어리저드도 있다고 하는데 잘은 몰라."
"웨어리저드라. 그럼 도마뱀으로 변신하는 건가요?"
"악어로 변신한다고도 하던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변신하는 거군요, 신기한데요. 혹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어어, 전투 상황이 아니면 안 돼. 변신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마력을 쓰는 일이란 말이야. 물론 변신 자체로는 마력 소비가 그리 크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쓸데없는 낭비는 말아야지."
"그렇군요. 음......."
나동일은 또 무언가 방송할 거리가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홀로그램 탭을 든 채 제자리에 앉아 있던 최선에게 접근했다.
"여러분, 보이십니까? 홀로그램 맵이 더 커졌죠? 방금 날아간 드론이 일대의 지형지물을 관측해 그 정보를 보내오는 겁니다. 이 탭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3차원 맵을 만들어 내는 거고요. 지금 이 반짝거리는 불빛이 드론인 거지요?"
나동일이 최선에게 말을 붙이자, 그녀는 흠칫해 고개를 뒤로 물렸다.
"아, 죄송합니다."
까칠한 기철민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붙이던 나동일은 머쓱해하며 물러섰다.
최선은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드리우고 길게 자라난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음침한 인상인데 여태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주위 사람들을 밀어내는 분위기라, 나동일은 그녀에게 말하기를 포기하고 정대식에게 접근했다.
"이쪽 분은...... 자동 소총을 갖고 있는 것을 보니 원거리 딜러인가요? 아! 타이탄 공격대의 외인부대는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해 내기로 유명하죠. 그렇다면 원거리 딜러 말고 또 다른 포지션도 맡고 있는 거죠? 무슨 포지션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정대식은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그러자 나동일이 "근딜? 버퍼?" 되는 대로 떠들다가 갑자기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만! 혹시...... 예전에 S23D에서 활약하지 않았나요? 케르베로스를 여러 마리 잡은 적 있죠?"
그 이야기가 아직까지 떠돌아다니고 있었나 싶어서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요?"
그의 대답을 듣고 나동일이 박수를 짝 쳤다.
"당신이 바로 그 소문난 짐꾼 출신 헌터 아닌가요? 트리플리스트 정대식! 요즘 조용하다 싶더니만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와 있었군요! 이야,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