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현질 전사
-4권 15화
나동일은 흥분해 제자리에서 펄쩍거리며 말했다.
"지금 사람들, 완전 난리 났어요! 다들 당신 소식이 궁금했나 본데요? 우와, 장난 아니네! 여기 봐요!"
나동일은 그가 갖고 있는 휴대폰의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의 말마따나 읽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로 사람들이 무어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정대식은 그걸 힐끔 보고 나서 약간 뜨악해졌다.
자신이 트리플리스트인 것은 맞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나 싶었던 것이다.
그가 약간 당혹해하는 기색을 드러내자, 나동일이 씩 하니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헌터 인기 랭킹의 루키라고요. 100위권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어 순식간에 10위권에 진입을 했으니까요. 최근 소식이 뜸해지고 나서는 다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내 장담해요.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은 순위가 복귀되어 있을 걸요?"
정대식은 미간을 모으고 질문했다.
"헌터 인기 랭킹이라고요?"
"어라, 모르세요? 헌터 인기 랭킹이라고."
그냥 랭킹도 확인을 안 하는 판국에 인기 랭킹 같은 걸 알 리가 없었다.
나동일은 간단히 설명했다.
"말 그대로 인기에 따라서 순위가 오르내리는 거예요. 이건 능력치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사람들의 관심도에 따라 결정이 되죠. 최희가 당연히 1위고, 저도 무려 3위를 하고 있죠. 상위 5순위까지는 최근 1년 간 변화가 거의 없었어요. 10위권까지도 비슷했는데 당신이 나타나서 좀 들썩들썩했지요."
인기 랭킹이라니, 별게 다 있다.
정대식은 약간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헌터 인기 랭킹이라니...... 그런 건 누가 만드는 겁니까?"
"자연스럽게 생겨난 거죠! 요즘은 헌터들이 연예인보다 더 잘나가는 거 몰라요? 인기 랭킹 정도면 양호한 거죠. 외모 랭킹도 있는 걸요."
"그런 랭킹 상위권에 올라가면 뭐가 좋기는 해요?"
"당연히 좋죠. 상위권에 꾸준히 노출되어 있으면 여기저기서 후원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벌린다, 이 말입니다. 뭐, 당신은 타이탄 공격대에 가입해 있으니 사정이 다르기는 하죠. 공격대 소속이면 공격대를 통해서만 후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헌터에게는 이런 랭킹 순위도 상당히 중요해요."
나동일은 곧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잖아요? 유명세를 타는 거니까."
"그냥 랭킹이라면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죠. 자신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니까."
정대식이 하는 말에 나동일이 피식 웃었다.
"보통은 실력 순위와 인기 순위가 무관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랭킹 1위를 최희가 싹쓸이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뭐, 당신의 경우는 좀 다를 수 있겠네요."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어, 당신은 짐꾼 출신이었잖아요?"
"그런데요?"
"헌터들에게 천대받는 짐꾼 출신에다가 하루아침에 헌터로 각성해서 트리플리스트가 되었으니 스타성이 넘쳐 나죠. 당신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실력자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아니 세계에서 유일하게 올인원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인물이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인기 순위에 있어선 높을 수밖에 없어요."
정대식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올인원이 되리라는 사실을 주위에 떠들고 다닌 적은 없었다.
트리플리스트라는 것은 몇 번 말한 적이 있지만, 그것도 공공연하지는 않았다.
한데도 사람들이 벌써 자신이 세 가지 능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도 모조리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당신이 원래는 듀얼리스트였다가 트리플리스트가 되었다는 사실은 인터넷에서 꽤나 화제가 됐었어요. 헌터 커뮤니티에서 그 일로 설전이 몇 번이나 오갔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당신이 만약 쿼드러플이나 퀸터플, 더 나아가 헥사리스트가 된다고 하면 모든 능력을 획득해 올인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짐작이 나온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한테 관심이 많은 겁니다."
나동일의 설명을 듣자니 기분이 묘했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니, 좀 좋기도 하면서 부담스러웠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동일은 말을 계속했다.
"최근 몇 년 간은 최희의 세상이었죠. 부동의 랭킹 1위, 최고의 슈퍼스타, 유일무이한 SS급의 헌터. 물론 그녀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질릴 때도 됐잖아요? 사람들은 새로운 인물을 원하고 있어요. 바로 당신 같은 사람 말이에요."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되는데요?"
대중이 새로운 스타를 원하는지는 몰라도, 정대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러한 인물이 되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단순히 겸손해서라거나,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대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어디까지나 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올인원의 가능성을 노출한 것도 장한나와의 협상을 위해 꺼낸 이야기였을 뿐.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간 것도, 타이탄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아 자신의 공격대를 만들려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큰 부자가 되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최희와 같이 대중적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그러기가 힘들어진다.
유명세라는 것은 그만큼 높은 도덕적 기준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최희만 보더라도, 물론 그녀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돈이 부질없어 보이는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로 온갖 의무를 짊어진 채 동분서주하느라 바쁜 것이다.
솔직히 돈을 쓸 시간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기부나 하면 모를까?
그런 건 전혀 정대식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정대식은 속물이었고, 속물답게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다.
그때 마침 드론이 되돌아왔다.
기철민은 드론을 갈무리해 넣었고, 일행은 다시금 길을 나섰다.
뻘 사이에 가늘게 이어진 자갈길을 밟아 가며, 정대식은 생각에 잠겼다.
'어찌 되었든 유명세를 타면 후원이 있다니까 그거 하난 좋군. 벌써 강영후가 내 공격대에 투자를 해 주기로 했으니, 공격대를 만들 때 돈이 없어서 쩔쩔 매는 일은 없겠어. 자금 걱정 없이 좀 더 현질을 마음껏 할 수 있겠는데?'
현질에 막대한 돈이 드는 바람에, 공격대를 창설할 자금을 모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그 부분은 해결이 된 셈이다.
최희처럼 될 생각은 없지만, 당분간은 이 유명세를 이용해야겠다고 결심하며 정대식은 발길을 옮겼다.
* * *
한 번 더 맵핑을 한 답사 팀은 선두의 소강두가 보낸 정지 신호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갈수록 안개가 짙어지는데요? 앞에 보이는 게 거의 없습니다."
소강두가 하는 말에 김시온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군.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어."
"맵을 보면 길이 제법 큰 규모의 웅덩이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호수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외길이라 만약 호수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면 피할 길이 없어요. 시계도 안 좋으니 우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강두의 말에 김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원들은 몸을 돌려세웠고, 왔던 길을 돌아가게 된 소강두가 투덜거렸다.
"쳇, 안개가 껴서 답답하네. 꼭 몬스터 뱃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소강두가 무심코 중얼거린 그 말에 정대식은 우뚝 발길을 멈춰 세웠다.
하마터면 그에게 부딪칠 뻔한 기철민이 "뭐야?" 하고 짜증을 냈고, 정대식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몬스터 뱃속......."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궁!
별안간 바닥이 우르르르 떨렸다.
대원들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러자 김시온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쳤다.
"뛰어!"
미처 커맨드 모드를 발동하지도 못하고 외치는 말에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발을 박찼다.
그러나 발밑의 자갈이 푹 꺼지며 두 다리가 뻘이 가득 들어찬 물웅덩이에 철벅 빠졌다.
그 바람에 발밑의 땅이, 뒤쪽으로 휩쓸려 가는 게 느껴졌다.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쏴아아아아아!
그리고 자신이 몬스터를 감지해 내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미처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재앙이 덮쳐들었다.
쿠화아아아아악!
"으아악!"
별안간 덮쳐든 진흙탕과 세찬 물살에 휩쓸려 정대식은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꾸르르르륵!
'크윽!'
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탈로스 방어구는 매우 가벼웠으나 그래도 갑옷은 갑옷인 법.
옷 한 장도 물에 젖으면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대로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무엇보다 정대식은 헤엄을 칠 줄 몰랐다.
'큰일이다! 어, 어떻게든 살아 나갈 방법이.......'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쯤 되면 몸이 점점 가라앉아야 할 텐데, 희한하게 도로 떠오르고 있었다.
금방 수면이 가까워져 물 밖으로 머리가 나왔다.
"푸하!"
정대식은 흙탕물을 토해 내며 헐떡거렸다.
'그래! 부유 신체, 그게 있었지.'
최근에 구입한 스킬 덕분에 살았다.
몸무게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그 스킬 덕분에 풀로 장비를 장착하고도 마치 구명조끼를 입은 것처럼 몸이 수면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부유 신체가 패시브 스킬이기에 망정이지, 액티브 스킬이었으면 진짜 큰일 났을 것이다.
물속에서는 시동어를 외울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정대식은 어설프게 팔다리를 놀려 물가를 찾았다.
간신히 자갈밭에 기어오르자 급속도로 물이 빠지고 있는 게 보였다.
정대식은 물살에 휩쓸려 안개가 흩어진 것을 보고 자신의 짐작을 확인하기 위해 스킬을 썼다.
"관측."
역시나, 그의 짐작이 들어맞았다.
특정할 수 없는 위치에 정대식이 관측하고자 하는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정보라고는 해도 관측 레벨이 낮아 몬스터의 종류와 생명력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상황 판단에 큰 도움이 됐다.
'주의 확장으로도 몬스터를 감지해 내지 못한 이유가 있었어! 이런 상황이라면 못 느끼는 것도 당연하지!'
그때, 물이 빠진 자리에서 누군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철민!"
정대식은 근처에 널브러진 기철민을 발견하고 뛰어갔다.
그는 흠뻑 젖은 채로 쿨럭거리며 물을 토해 내다 말했다.
"콜록콜록! 이, 이게 웬 날벼락이야. 습격이었나?"
정대식은 쓴웃음을 지었다.
"습격이라면 습격이었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몬스터가 아니었다는 거야......? 하긴, 몬스터였더라면 네가 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겠지."
"아냐, 몬스터가 맞아."
"뭐?"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어. 사방이 바로 몬스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야."
"어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