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91화 (91/297)

# 91

현질 전사

-4권 16화

기철민은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황당하다는 표정이 됐다.

하지만 정대식은 분명히 보았다.

"아까 늪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지 못했어?"

"뭔가 물밑에서 솟아 올라왔다는 것밖에는......."

"맞아, 바닥에 있던 몬스터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늪의 물이 밀려 나와 우리가 휩쓸렸던 거야."

그것은 거대한 입처럼 보였다.

입이라기보다는 동굴에 가까워 보이는 모양새였다.

그게 늪 바닥에 도사리고 앉아 먹잇감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답사 팀이 발길을 돌리자 성질을 못 참고 솟구쳐 오른 것이다.

"이 던전은 거대한 몬스터 한 마리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야. 굳이 분류를 하자면 초대형종에 속하는 녀석이겠지. 그래서 우리가 다른 몬스터를 마주치지 못했던 거라고."

정대식의 설명을 듣고 기철민의 얼굴이 해쓱하게 질렸다.

"뭐야? 그럼 이 던전 자체가......."

"맞아, 놈의 영역이자, 둥지이고, 함정이라는 것이지."

"이게 다?"

기철민은 아연한 표정으로 끝도 없이 넓은 던전을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크기가 도대체 얼마 만하다는 거야?"

"글쎄, 최소한 몇km 정도 되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괴물이네."

기철민은 제자리에서 일어나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관측은 불가능해. 몬스터 조사 팀을 데리고 이런 곳에 들어올 수는 없어. 당장 이곳을 나가야 한다."

정대식과 기철민은 일대를 수색해 다른 대원들을 찾았다.

김시온과 허미래, 소강두는 머지않은 곳에 있었으나 최선과 나동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익스팬션."

김시온은 의식을 집중해 몇 번이나 그들을 찾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허미래가 서치 능력을 써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쯤 되니 불길한 예감이 절로 찾아들었다.

"설마 몬스터의 뱃속으로 끌려 들어간 건......?"

"잡아먹혔다는 말이야?"

소강두의 조심스러운 추측에 허미래가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김시온은 날선 표정으로 그 말을 일축했다.

"아직 무어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설령 그들이 잡아먹혔다고 하더라도 죽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오히려 더더욱 서둘러야 해. 그들이 소화되기 전에 위장을 가르고 끄집어내야 한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때.

정대식은 별안간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쳤다.

"옵니다! 몬스터들이 옵니다!"

"뭐?"

대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그에게로 돌아가고, 정대식은 말했다.

"수가 엄청나요...... 한두 마리가 아니에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허공에서부터 습격이 들이닥쳤다.

"혼 배트다!"

파다다다다다다!

수십만 마리의 날갯짓 소리와 함께 시커먼 박쥐 떼가 들이닥쳤다.

허공을 거꾸로 날아다니는 그놈들은 머리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뿔이 달려 있었다.

거기에 베이면 단도에 베이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므로, 앞뒤 가릴 것 없이 전투가 시작됐다.

"커맨드 모드!"

"포스 오브 그래비티!"

커맨드 모드가 발동되기 무섭게 허미래가 자신의 마력을 표창처럼 사방팔방으로 날려 보냈다.

나비 형상을 한 그 검은 마력 덩어리가 박쥐 떼에게 달라붙었고, 그러자 마치 돌덩이처럼 놈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기철민과 소강두는 닥치는 대로 그걸 짓밟아 죽이는가 하면, 검과 유성추로 날아다니는 박쥐들을 야구공 때리듯이 쳐냈다.

김시온도 블랙 스캘럽을 꺼내어 공중을 마구 유린했다.

거기에 휘감긴 박쥐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정대식도 떨어지는 빗방울을 때리듯 쉬지 않고 주먹질을 했다.

퍽퍽퍽!

박쥐 떼들은 격렬한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졌으나, 싸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늪지 위를 가르며 켈피 여러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쿠히이이이잉!"

"쿠헤에엥!"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뿜으며 달려온 켈피들이 날카로운 물줄기를 토해 냈다.

정대식이 지연탄으로 놈들의 공격을 느리게 만들었고, 그 틈을 타 소강두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2단계 변신!"

꾸드드득! 꾸드득!

뼈와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뛰쳐나간 소강두는 돋아난 뿔로 켈피 한 마리를 걷어 내 공중으로 날려 버리고, 곧이어 달려오는 다른 한 마리를 이마로 들이받았다.

꽈앙!

"키헤에엥!"

그리고 연거푸 뒤따라오던 두 마리를 팔로 걸어 넘어트렸다.

그렇게 쓰러진 켈피를 정대식이 차례대로 화염탄과 강력권을 써서 죽였다.

"조심해! 또 뭔가 온다!"

두두두두두!

첨벙첨벙!

자갈을 박차고 물을 튀기며 달려오는 것은 일견 켈피인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켈피의 등에 무언가 타고 있었다.

"리저드맨이다!"

퓽퓽!

놈들이 쏜 화살이 예고 없이 날아들었다.

리저드맨의 화살에는 독이 묻어 있었으므로 스치기만 해도 수포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김시온의 신속한 지휘 아래 허미래가 재빨리 대응을 했다.

"리플렉션!"

리저드맨이 쏜 화살이 도로 되돌아 날아갔다.

켈피 한 마리가 거기에 눈을 직격당해 쓰러졌다.

덩달아 거기 올라타고 있던 리저드맨이 늪지로 추락했다.

그 바람에 리저드맨 부대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그 틈을 타 소강두가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어어어엉!"

그는 육중한 몸을 통째로 켈피에게 들이받았다.

쿠웅!

켈피가 넘어지며 뒤의 켈피를 덮쳤고, 리저드맨 두 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키아아악!"

소강두는 곧장 무시무시한 유성추를 날려 리저드맨 하나의 머리를 박살 내고, 나머지 하나는 발로 짓밟아 내장을 터트려 척추를 부숴 놓았다.

그런 뒤 늪 속에서 솟구쳐 올라 칼을 휘두르는 리저드맨의 공격을 피해 늪지를 굴렀다.

'정대식, 소강두를 지원해!'

정대식은 김시온의 지휘로 스킬을 썼다.

"강화!"

소강두에게 힘을 실어 준 다음 자동 소총을 빼들고 연달아 켈피를 타고 달려오는 리저드맨 부대에게로 달려갔다.

그들에게 마력탄을 휘갈기고 정대식은 새로 획득한 스킬을 시험해 보았다.

"무적권!"

콰콰콰콰광!

아다만트 너클을 낀 그의 주먹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갔다.

정대식의 팔이 마치 채찍처럼 여러 방향으로 휘어지며, 1초에 불과한 시간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되는 공격이 작렬했다.

"쿠히이이잉!"

"캬아아악!"

목을 얻어맞은 켈피들이 우르르 쓰러지며 기세 좋게 달려오던 리저드맨 부대 하나가 몽땅 물속에 처박혔다.

콰르르 일어나는 물살 속에 서서 정대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 쓸 만한데?'

강력권이 강력한 한 방, 크리티컬 히트와 같은 일격이라면, 무적권은 여러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위력은 강력권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공격 범위가 넓고 횟수도 많았다.

만약 강화를 더한다면 공격력 또한 배가 될 터......!

"강화 무적권!"

콰콰콰콰광!

그의 주먹이 번쩍, 불을 뿜고 나자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리저드맨이 머리가 터져 버렸다.

주인 잃은 몸들이 첨벙첨벙, 물속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나자 일순 침묵이 감돌았다.

"끝났나......?"

정대식은 얼굴에 튄 구정물을 훑어 내리며 의식을 집중했다.

확실히 더 이상 다른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거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솟아나, 정대식은 급히 뒤로 몸을 돌려 켈피 한 마리를 곤죽 내고 있는 소강두를 낚아챘다.

"피해!"

"뭐?"

커맨드 모드로 인해 의식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소강두는 정대식의 우려를 단번에 간파해 냈다.

그들은 재빨리 물 밖으로 물러났고, 부대원들이 전부 멀찍이 몸을 피했다.

그러자 늪지 속에서 또다시 그놈의 거대한 입이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

이번에는 미리 그 움직임을 예상했기에, 끔찍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동산만 한 살덩어리가 위로 솟구치며 늪지의 물을 일시에 밀어냈다.

곧 그 살덩어리가 쩌억 벌어지며 늪지 위에 둥둥 떠다니던 켈피와 리저드맨, 박쥐의 시체 같은 것을 몽땅 삼켰다.

쏴아아아아!

순식간에 그것은 다시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시체가 몽땅 사라진 것을 보고 허미래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으윽."

이로써 정대식의 말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거짓말같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늪지를 보면서 김시온이 중얼거렸다.

"정대식의 짐작이 맞는 것 같군. 이 던전은 저 초대형 몬스터의 둥지이고, 다른 몬스터들은 저놈이 활동하지 않는 때에만 움직이는 것 같다."

김시온의 말에 소강두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다른 몬스터들은 저놈이 움직이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죠?"

기철민이 가장 보편적인 짐작을 꺼내 말했다.

"방금 전 사람 두 명을 꿀꺽했잖아. 그러니 당분간은 조용할 거라 판단한 거겠지. 그래서 이번엔 자기네들 차례라고 생각해 뛰쳐나온 거야."

그 말을 듣고 허미래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결국 최선과 나동일은 초대형 몬스터에게 잡아먹혔다는 말인가요?"

김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그럼 초대형 몬스터가 또다시 입을 벌린 건?"

"우리가 몬스터와 싸웠잖아. 피 냄새가 났으니까."

소강두와 기철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결정의 기로에 서 있었다.

김시온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인원으로 초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목적이 구조에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단 그들을 수색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상황이고,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최선과 나동일을 포기하고 나가자는 말처럼 들렸기에, 대원들의 분위기가 몹시 침울해졌다.

그들을 보며 잠시 입을 다문 그녀는 곧 단호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나는 지난번 와이번의 둥지 때처럼 또다시 동료를 두고 가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은 한 번만으로도 족해. 최소한 그들의 생사 여부와 위치만이라도 확인하고 싶다. 그래야 본진에 구조 팀을 요청할 수도 있을 테니까."

"역시!"

소강두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기철민도 안도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허미래도 기뻐했으나, 정대식은 아무런 반응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가운데 김시온의 말이 계속됐다.

"단, 이것은 부대장으로서의 결정이 아닌 나 개인으로서의 결정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기에 불복할 권리가 있다. 개개인의 뜻에 따라 이곳에 남을지, 말지 결정해도 좋다. 만약 먼저 돌아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타이탄 공격대에 이곳의 상황을 전하고 구조 팀을 요청하는 것도 또 다른 방안이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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