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94화 (94/297)

# 94

현질 전사

-4권 19화

* * *

김시온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정면 승부를 논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상대하려는 키클로페스는 무려 5등급의 초대형종 몬스터인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이라는 흰수염고래를 서너 마리쯤 갖다 붙인 크기인 놈을 죽이려면 보통의 공격력 가지고는 안 됐다.

그것은 정대식이 가진 공격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가 키클로페스의 몸뚱이에 구멍을 내고 심장을 박살 내려면 가진 전력을 다 쏟아부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키클로페스를 도발하고, 끌어내어 유인하는 일은 전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김시온은 일단 대원들이 가진 장비를 다 꺼내게 했다.

타이탄 공격대에서 지급받은 보급품뿐만이 아니라 개개인이 소지하고 있던 장비를 모조리 털어 보라고 명령했다.

평소, 보급품 정도만을 갖고 다니던 정대식은 그들이 꺼내는 이런저런 장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들은 의외로 많은 종류의 아이템을 들고 다녔다.

우선은 김시온부터가 이런저런 스크롤이 수십 장은 되었다.

스크롤이 많기는 허미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전투 능력이 딜러들에 비해 달리다 보니 그런 점을 보완하려고 온갖 종류의 공격용 스크롤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기철민에 비하자면 그들은 양반이었다.

기철민은 완전히 방물장수 뺨치는 수준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별반 짐도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에 그 많은 장비들을 다 쑤셔 넣어 놓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디멘션 포켓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끝도 없이 포션과 스크롤, 부스터, 폭탄, 함정 설치용 장비, 용도를 알 수 없는 온갖 가루 등등...... 아무튼 가짓수만 해도 엄청났다.

별다른 장비가 없는 것은 정대식과 소강두뿐인 듯했다.

정대식은 보급품 외에 무기 구입 시 서비스로 받았던 폭발 스크롤 몇 장과 지혈, 해독 포션 몇 병이 전부였다.

소강두는 다른 건 없고 마력 회복 포션과 부스터, 그리고 각성제만 잔뜩 갖고 있었다.

아마 변신 때 이성을 잃어버릴 경우를 대비해 갖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일전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별반 소용이 없어 보였다.

백날 각성제를 가지고 다녀 봤자, 정작 이성을 상실했을 땐 그걸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탓이다.

김시온은 그 모든 아이템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중에 보상을 약속하고 개중 몇 가지를 골라내었다.

그런 뒤 커맨드 모드를 발동시켜, 본인이 생각한 계획을 다른 대원들과 공유했다.

"이해했나?"

김시온의 질문에 대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김시온이 말했다.

"이 계획에 보태거나 뺄 것이 있다면 말해 봐라."

좌중은 침묵했고 김시온은 경고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다시피, 커맨드 모드로 전해 듣는 정보는 내 입장에서 해석된 바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니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 내 생각에 영향을 받기 쉬우니 다시 한 번 잘 따져 봐라."

그래도 이의를 표시하는 대원들은 없었다.

그만큼 그들이 생각이 없었다기보다는, 김시온의 계획에 트집 잡을 구석이 없다는 말이었다.

"좋아. 그럼 늪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키클로페스가 주둥이를 숨기고 있을 늪 주변을 둘러싸고 때를 기다렸다.

관측해 본 바에 따르자면, 키클로페스의 활동 시간은 그리 머지않았다.

먹잇감이 있다고 판단되면 조만간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를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놈을 유인하게 된 소강두가 휘파람을 불며 늪을 돌아다녔다.

그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발끝으로 돌멩이를 물속에 차 넣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정체불명의 이상한 노래를 고함치듯 부르는데 소음 공해가 따로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시온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커맨드 모드로 의식을 공유하는 중이었기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말이 아주 잘 들렸다.

당연히 소강두와도 의식이 이어져 있기에, 비단 허세가 아니라 정말로 별다른 두려움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대식은 조심스레 관측 스킬을 발동했다.

어느새 키클로페스의 생명력이 비활동성에서 활동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대식은 의식적으로 신호를 보냈고, 유성추를 고쳐 잡은 소강두가 물웅덩이에서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처럼 늪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 들어갔다.

"4단계 변신!"

꾸두두두둑!

순식간에 소강두의 몸이 세 배 가까이로 부풀어 오르며 그의 머리에 악마의 왕관 같이 거대한 뿔이 솟아올랐다.

그는 눈을 붉게 빛내며 늪 가운데로 달려가 피어를 내뱉었다.

"우어어어어어엉!"

소름이 짜릿짜릿 끼치며 고막이 우웅우웅 떨리는 소리였다.

거기에 반응하여 바닥이 우르르 떨린다 싶더니만 늪 한가운데를 가르며 거대한 살덩어리가 솟아올랐다.

쏴아아아아아!

물을 폭포처럼 쏟아 내며 솟구쳐 오른 그게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소강두는 미리 그 움직임을 예상했다는 듯이 허공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그런 소강두를 쫓아 그것의 주둥이가 위쪽으로 길게 모가지를 늘였다.

그러자 나머지 대원들이 일제히 앞으로 뛰쳐나가며 계획된 바를 일사불란하게 실천했다.

"쓰리 클로어!"

김시온이 블랙 스캘럽을 휘두르자 세 가닥으로 갈라진 채찍이 주둥이의 모가지를 걸어 잡아당겼다.

동시에 허미래가 자신의 검은 나비들을 공중으로 확 날려 보냈다.

"네팅!"

나비 형상을 한 허미래의 마력이 그것의 주둥이 주변으로 까맣게 내려앉자 그게 마치 그물처럼 주둥이를 옭아맸다.

어느새 꼼짝을 못하게 된 주둥이로 달려간 기철민이 화염 스크롤 수십 장을 때려 넣었고,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한 소강두가 마지막으로 폭탄 하나를 굴려 넣었다.

번-쩍!

폭탄이 터지며 화염 스크롤이 한꺼번에 불타올랐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가히 경천동지라고 할 만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폭발 지점 근처에 있던 소강두와 기철민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는 탓이었다.

그러나 폭발의 충격으로 잠시 흐려졌던 커맨드 모드의 의식 연결이 되돌아오면서 그들 두 사람이 안도의 기색이라는 게 느껴졌다.

눈으로도 저만치에 구르고 있는 소강두와 기철민이 보였다.

하지만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 것이다.

"됐나?"

김시온이 중얼거리는 가운데 불꽃과 연기, 그리고 증기 가운데 꿈틀거리고 있는 새카만 덩어리가 보였다.

화력을 단번에 때려 부은 만큼 늪 바닥이 드러나 있었고, 거기에 정체 모를 살덩어리가 구르고 있었다.

대원들은 꿈틀거리는 그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의 목적은 키클로페스를 끌어내는 데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놈이 나타나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이 난리를 치고도 겨우 키클로페스의 신체 일부를 없앴을 뿐이니, 그 전신이 드러난다면 어떤 끔찍한 광경일는지 몰랐다.

김시온은 바닥으로 기어 들어가는 살덩어리를 보았다.

그게 완전히 늪 속으로 기어 들어가 버리자 그녀는 침통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도발에 실패한 것인가......?"

키클로페스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면, 이 정도 고통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흰수염고래가 자갈 하나에 맞은 것을 아파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계획은 실패였으므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다음 순간.

쿠두두두두두두두두!

대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격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균형을 잃고 제자리에 모조리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로 김시온이 희열에 차 외쳤다.

"걸려들었어!"

* * *

굉음과 함께 그때까지 바닥이라 믿고 있었던 곳이 격심하게 흔들리며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허미래가 능력을 써서 대원들이 넘어지지 않게 붙들어 두고 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각자 어디로 굴러가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사방팔방에서 땅이 꺼지고 솟구치는 광경이 마치 지형이 재배치되는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밟고 서 있던 것은 거대한 키클로페스의 몸이었고, 늪 속에서 느닷없이 자라나는 기둥처럼 솟구쳐 오르는 것은 키클로페스의 촉수였다.

공중으로 치솟아 입을 쩍 벌리는 촉수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머리가 어떻게 되는 것만 같았다.

정말 놀랄 만한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대식은 쩌저저적, 하고 땅이 갈라진다고 느꼈다.

그와 대원들이 선 곳이 쪼개어지며 순식간에 동료들이 멀어져 갔다.

그리고 벌어진 땅바닥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솟구쳐 올랐다.

정대식은 거기에 나타나는 기이한 빛을 발견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건...... 이건 눈인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키클로페스의 눈꺼풀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차오른 건 다름 아닌 눈동자였다.

마그마를 품은 것처럼 시뻘겋게 일렁이는 눈은 눈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커 보였다.

키클로페스의 눈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간처럼 두 개도 아니었다.

땅 곳곳이 벌어지며 붉은 눈이 나타났고, 그것이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적, 먹잇감, 즉 탐사 팀을 찾고 있었다.

키클로페스에 비해 인간의 크기가 너무 작은 탓이었을까.

키클로페스는 눈만 굴릴 뿐 퍼뜩 탐사 팀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키클로페스의 납작한 안면 위에 서 있었으니 못 찾아낼 만도 했다.

그때 머릿속으로 김시온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정대식! 키클로페스의 심장을 찾았나?'

정대식은 관측 스킬을 발동한 채 두리번거렸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정대식은 관측 스킬을 더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것인가 불안감을 느끼며 말했다.

'아뇨, 아직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놈을 일으켜야겠군.'

키클로페스가 더 움직여야 정대식이 심장의 위치를 간파해 낼 수 있다 판단하고, 김시온이 명령을 내렸다.

'눈이다, 눈을 공격해!'

"우루루루룽!"

소강두가 길게 울부짖으며 펄쩍 뛰어올라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눈알 위로 내려앉았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유성추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이야아아아압!"

푸욱.

유성추가 젤라틴처럼 물렁해 보이는 눈동자의 표면에 가 박혔다.

그것은 유성추를 튕겨 낼 듯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소강두가 유성추를 뽑아내자 그 자리에서 퍼어억, 하고 체액이 솟구쳐 올랐다.

"끼아-아-!"

키클로페스에게도 입이란 게 있는 것인지, 어디서 괴상망측한 비명소리가 울리며 땅바닥이 다시 흔들렸다. 정확히는 키클로페스가 눈동자에 통증을 느끼고 도로 눈꺼풀을 감으려는 상황이었다.

그때 김시온이 외쳤다.

'눈꺼풀을 닫아 버리기 전에 공격해! 눈을 아예 터트려 버려!'

소강두가 무자비하게 유성추를 내리꽂는 가운데 기철민의 장검이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천랑비검!"

기철민의 장검이 지나간 자리가 X 자로 쩍 갈라지며 용암이 터지듯 붉은 피가 팍 터져 올랐다.

소강두와 기철민은 하마터면 닫히는 눈꺼풀 사이에 끼일 뻔하고 얼른 몸을 빼내었다.

그러자 별안간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끼르르르르르르!"

키클로페스가 그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