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95화 (95/297)

# 95

현질 전사

-4권 20화

바닥이 급속도로 경사지며 허미래의 능력도 소용이 없이 대원들이 아래로 미끄러져 갔다.

정대식은 급히 비수를 꽂아 그것을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소강두는 괴력으로 두 손과 발을 살아 있는 생명체인 벽에다가 꽂아 넣었다.

정대식과 소강두가 하는 양을 보고 기철민도 자신의 장검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

그러자 김시온이 블랙 스캘럽을 날려 거기에 칭칭 감아 매달렸고, 아래로 떨어지는 허미래의 허리를 낚아채 붙잡았다.

"꺄아악!"

허미래는 김시온의 옆구리에 매달린 채 비명을 지르다가, 김시온의 일갈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능력을 구사했다.

"리버티!"

기철민과 김시온의 몸이 둥실 떠오르며 그들의 행동거지가 자유로워졌다.

그들이 안전해진 것을 보고 정대식은 그쪽에서 관심을 거두고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바닥을 보았다.

이제 그들 앞에는 하늘을 온통 가리는 거대한 절벽이 자리해 있었다.

그 절벽에는 수십 개의 커다란 눈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곧 수십 가닥의 촉수가 주둥이를 쩍 벌렸다.

아까는 동굴같이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면, 지금은 빨판과 같이 더 자잘한 촉수가 입 주변으로 촘촘하게 붙어 있었다.

키클로페스는 그걸로 얼굴이라고 여겨지는 절벽 여기저기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말이 더듬거리는 거지, 인간 입장에선 빨판에 압사당할 지경이었다.

흡사 사람 얼굴에 달라붙은 하루살이와 같은 꼴이다.

"으아악!"

소강두가 날아오는 빨판에 괴성을 지르는 것을 보고 정대식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관측!"

이만큼이나 열 받게 해 놓았으니 얼른 심장을 찾아 터트리지 않으면 그들이 다 죽을지도 몰랐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 관측 레벨을 업그레이드할 각오를 하고 눈이 벌게진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기랄! 이게 겨우 얼굴이면 심장이 있는 몸통은 아직도 저 깊은 지하에 파묻혀 있는 거 아니야?'

한낱 벌레가 된 기분에 시달리며 아래쪽을 쳐다보던 정대식은 마침내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했다.

'저건......!'

쿠궁......!

쿠궁......!

느릿하면서도 둔중한 박동 소리가 어렴풋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키클로페스의 몸통이 파묻힌 지하 깊숙한 곳이었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그곳에서 빛이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푸른 그림자가 얼룩진 가운데 붉은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 푸른빛이 몬스터의 강점이고, 붉은빛이 약점인 거겠구나!'

보아하니 키클로페스의 약점인 심장은 무언가 단단한 골격으로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는 듯했다.

그게 푸른색으로 표시되는 것을 보아하니 깨트리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았다.

게다가 정대식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관측 스킬이 표시해 주는 정보다.

실제로는 심장도, 심장을 둘러싼 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키클로페스의 두터운 살과 가죽에 가린 채였다.

그나마도 무저갱처럼 시커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지하 쪽에 자리해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자신의 공격력에 자신이 없어졌다.

'제아무리 스킬을 업그레이드했다 해도 일격에 모든 일을 끝마칠 수가 있을까?'

캄캄한 지하로 내려가 키클로페스의 가슴을 파헤치고 뼈를 깨부숴 심장을 박살 낸다!

이토록 거대한 몬스터라면 심장의 크기만도 정대식보다 더 클 터.

그것을 주먹 한 번에 끝장내려는 것이다.

'무모해, 이건 무모한 짓이다.'

짧은 순간,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온갖 것들이 후회가 되며 해낼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목구멍을 옥죄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이미 키클로페스를 일으켜 놈의 약점을 노출시킨 상태였다.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해야만 했다.

'에라이, 빌어먹을!'

정대식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비수를 뽑아 들었다.

그의 몸이 아래로 추락하며 순식간에 빨판을 피해서 이리저리 몸을 날리고 있는 동료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 정대식의 몸이 갈라진 땅 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시야가 암흑에 휩싸였다 생각한 것도 잠시.

"관측!"

정대식은 발동 시간이 짧은 관측 스킬을 연거푸 썼다.

그러자 떨어지는 와중에도 눈앞에 푸른색으로 둘러싸여 붉은빛으로 명확히 표시되는 키클로페스의 약점 부위가 정확히 보였다.

추락하고 있었기에 망설임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정대식은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덩달아 떨어지는 바위를 박찼다.

그렇게 방향을 잡고 주먹을 앞으로 내지르며 외쳤다.

"강화 강력권!"

강화도, 강력권도, 각자 레벨을 2단계로 올린 상태.

그것을 결합하여 주먹을 내뻗자, 몸속의 마력이 몽땅 다 그곳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마치 생명과 영혼까지 다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엄청난 흡입력!

그러자 마력이 응집된 주먹이 유성처럼 새파랗게 불타올랐다.

그것이 정대식의 뼈와 근육, 얇은 지방층과 살갗까지도 활활 불태우는 듯했다.

"으아아아아!"

정대식은 주먹이 폭발하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그의 주먹이 키클로페스의 몸뚱이에 가 닿으며, 그의 마력이 터져 올랐다.

콰아-!

작렬하는 마력의 광휘에 지하의 어둠이 찢어발겨지고, 키클로페스의 질기고 창백한 가죽이 수십 개의 칼날로 쪼개듯 쩍 벌어졌다.

그것이 곧 피와 살점을 내뿜으며 폭발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갈라졌고, 그 안에 드러난 뼈까지도 산산히 분쇄해 놓았다.

콰아아아앗!

유리가 부서지듯 수십 조각으로 깨어져 나간 자리에는 붉은 핏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로, 키클로페스의 심장이었다.

그것을 보호하고 있던 골격이 깨어져 나가고 드러난 기관은 무력했다.

정대식의 강력권이 제대로 그곳에 가 닿았다.

키클로페스의 거대한 몸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던 심장을 그의 주먹이 꿰뚫은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

폭음과 함께 심장이 터지고 아다만트 너클이 그 충격으로 날카로운 섬광을 발했다.

번-쩍!

그 여파에 떠밀려 정대식은 공중을 날았다.

몸이 추풍낙엽처럼 허공을 데굴데굴 굴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어디든 제 몸을 갖다 붙여 바로 서야겠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강화 강력권을 쓰면서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했는지 전신에 진이 쭉 빠졌다.

눈앞이 캄캄하게 어두워지며 정대식은 '이래선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며 정신을 잃었다.

Chapter 23. 구조

"으음......."

정대식은 나직이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보아하니 너른 텐트 안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헌터들이 사냥을 떠날 때 베이스캠프에다 치곤 했던 막사처럼 보였다.

미묘한 위화감에 시선을 옆으로 들어 올리자, 링거 줄이 보였다.

그제야 정대식은 팔을 들어 올렸고, 주삿바늘이 손등에 꽂힌 것을 보았다.

웬 링거인가 싶어 그걸 뽑아내려 하자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안 남았어요. 마저 맞지 그래요?"

정대식은 고개를 돌렸고 뒤늦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사 안, 침상 옆 간이 의자에는 놀랍게도 최희가 앉아 있었다.

정대식은 놀라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니, 여긴 어떻게......?"

최희는 가만있으라는 식으로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녀는 정대식이 침상 맡에 기대어 앉는 것을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소식을 듣고 구조 팀과 함께 막 들어온 상태예요."

그녀는 정대식을 보고 다시금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그에게 올인원이냐고 시비조로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정대식도 그에 맞춰 예의를 차려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얼마나 잠이 들어 있었죠?"

정대식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기억을 회복해 나갔다.

분명, 키클로페스의 심장에 일격을 먹이고 별안간 기력이 다해 정신을 잃었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이 상황이라, 자신이 꽤나 오랫동안 의식이 없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여기가 병원이 아니고 막사인 걸 보면, 아직 던전 안일 가능성이 높았고, 그렇다는 건 답사 팀의 누군가가 밖으로 나가 구조 팀을 불러왔다는 소리였다.

그들이 오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을 테니, 적어도 만 하루 정도는 뻗어 있었던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최희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갔다.

"한나절 정도? 제법 오래 기절해 있었어요."

"아니...... 그 정도면 금방 일어난 것 아닌가요? 난 당신이 여기 있는 걸 보고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는 움직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요."

"답사 팀이 먼저 구조 요청을 보내기 전에 우리가 여기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았어요. 그래서 예상보다 빨리 들어올 수 있었던 거예요."

"여기에서 벌어진 상황이라면, 실종 말입니까?"

"그래요."

정대식은 의아해 고개를 기울였다.

"그걸 무슨 수로 알았죠?"

최희는 무어라 말할 듯 입술을 달싹였다.

"......직접 보는 편이 낫겠죠."

그녀는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무언가를 보여 주려 했다.

그러다가 "앗!" 하는 소리를 내뱉고 본인의 멍청함을 탓했다.

"그렇지, 여긴 인터넷이 안 되지......."

최희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도로 품속에 집어넣고 말했다.

"스트리밍으로 알았어요. 나동일이라고 했던가요?"

정대식은 눈을 번쩍 떴다.

"아!"

"그래, 맞아요. 그는 전파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웨이버죠. 키클로페스의 뱃속에 삼켜진 그 사람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었어요. 그 바람에 내가 여기에서 벌어진 일을 알 수 있었던 거지요."

그들을 찾고 있던 답사 팀은 던전 안에 있어서 온라인에 무슨 영상이 올라가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타이탄 공격대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던 모양이다.

그들은 타이탄 공격대의 대원과 유명 BJ인 나동일이 몬스터에게 잡아먹혀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최희를 포함한 구조 팀을 신속히 꾸려 보냈던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땐 놀랍게도 이미 키클로페스가 처치된 후더군요. 김시온 씨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어요. 당신이 말도 안 되는 공격력으로 케클로페스의 심장을 터트렸다고 하던데요?"

"덕분에 의식을 잃고 나가떨어지고 말았죠."

정대식은 눈앞이 캄캄해지던 그 상황을 반추했다.

추락하던 자신을 동료들이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없었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강화 강력권을 수없이 써 왔으나 이런 적은 처음이었어. 역시, 레벨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한 탓인가?'

위력이 상향된 강화 강력권을 시전하기에는 정대식의 상태가 따라 주지 못하는 게 틀림없었다.

상태 포인트의 가격이 너무 올라서 줄곧 근력 22, 마력 35인 상태에서 버텨 왔는데, 그 정도로는 이만한 공격력을 짜내기가 무리인 듯했다.

'조만간 상태 포인트를 구입해야겠어. 그렇지만 갈수록 가격이 오르고 있으니 이를 어떡하지?'

일단 그 생각은 뒤로 미뤄 놓고 정대식은 물었다.

"키클로페스가 처치되었으니 실종자들은 구조되었겠죠?"

그 질문을 듣고 최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 구조는커녕 위치 파악도 못하고 있어요."

정대식은 깜짝 놀랐다.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하고 있다고요?"

"키클로페스가 지나치게 거대해요. 게다가 그 몸뚱이 대부분이 지하에 파묻혀 있으니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어요."

"당신이 있는데도 그걸 모른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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