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현질 전사
-4권 22화
나동일은 눈물이 솟아난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어, 음. 예,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겠지요. 그래도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있어 위안이 됩니다. 으음...... 산소를 아끼려면 말을 많이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만의 하나의 상황을 위해서 마력도 아껴 두어야 할 테니 방송은 이만하겠습니다. 한 시간 뒤, 상황 보고를 위해 다시 돌아오도록 하지요.
그때 나동일이 누가 무어라 하는 댓글을 읽었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아...... 유언 말입니까? 글쎄요. 음, 전 가족이 없어서요. 다들 아시다시피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동생과도 생이별해 생사를 모릅니다. 그래도 음...... 예,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제 재산은 전액 사회로 환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만들어 주신 거니까요. 그러는 게 옳겠죠, 어차피 주고 싶은 사람도 없고. 어...... 최선 씨? 한마디 하시겠어요?
나동일이 최선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나동일이 재촉했다.
-최선 씨! 그래도 한마디 남기세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유언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나동일의 말을 듣고 최선은 간신히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지저분해진 얼굴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고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입술을 꼭 깨물었다 놓으며 말했다.
-어, 언니.
언니라고 부르는 말에 일동이 침묵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최선이 최희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내가 잘못되더라도 자책하지 마. 그동안 말하지는 못했지만, 언니는 충분히 잘해 주었어. 그러니까 내가 없어도 행복해야...... 해.
최선이 담담하게 하는 말을 듣고 어디서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윽!"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는 사람은 바로 최희였다.
최선의 말을 끝으로 화면은 끝이 났다.
화면이 흘러나오던 탭을 접은 사람은 다름 아닌 강영후였다.
'공대장이 직접 왔구나!'
투자자이자 친우며 동료인 최희의 여동생이 실종되었다 보니, 그가 직접 발 벗고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는 최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말했다.
"이게 마지막으로 송출된 동영상이다. 보아하니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어. 지금 온 대원들이 최선을 다해서 이들을 찾고 있으니까 금방 좋은 소식이 올 거야."
강영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최희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녀가 울다 못해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강영후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최희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 탭을 내려놓던 강영후는 뒤늦게 정대식을 발견했다.
그는 정대식에게로 다가와 그를 끌어당겨 말했다.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무사해서 다행이야. 자네 덕분에 실종자들이 시간을 벌 수가 있었다. 초대형종에 5급이나 되는 몬스터를 처치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아닙니다. 그냥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최희는 자네가 최선을 찾아낼 방법이 있을 거라 그랬는데, 그게 사실인가?"
강영후의 질문에 정대식은 조심스레 말했다.
"찾아낼 수 있다고 장담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키클로페스를 처치한 것처럼 최선을 다할 수는 있겠지요."
강영후는 답지 않게 조바심을 냈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일단 시도는 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좋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속하게 해 줬으면 좋겠군."
정대식은 몸을 돌려 어느새 사람들을 물리고 혼자 앉은 최희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저와 함께 현장으로 가시죠."
* * *
정대식은 최희, 강영후와 함께 한창 수색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나갔다.
그곳은 최선과 나동일이 사라진 늪 주변이었다.
키클로페스의 난동으로 늪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나, 맵이 있어 그들이 실종된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키클로페스와 같은 초대형종은 입이 여러 개인만큼 위장도 여러 개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심장에 가까운 곳보다 입에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 판단하고 일대를 뒤집어엎고 있는 중이지."
강영후의 설명대로 그 부근은 대원들이 닥치는 대로 파헤치고 있어 엉망진창이었다.
키클로페스의 거대한 몸이 군데군데 드러나 보였으나, 위장이 몸 안에 들어 있는 이상은 무의미한 짓이었다.
"키클로페스를 날려 버리고 싶어도 자칫 잘못하다간 위장까지 터트려 실종자들을 죽이는 꼴이 될 수 있으니 불가능해. 방금 보았다시피 나동일의 능력으로 인해 그 안의 상황이 계속해서 중계되고 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여기에 다 몰려 있는 상태지. 모든 언론 매체들이 앞다투어 이 상황을 보도하고 있어. 만약 그들이 그 안에서 죽었다가는...... 타이탄 공격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강영후는 반드시 그 두 사람을 구해 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말했다.
그가 그러는 데는 비단 타이탄 공격대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강영후는 입을 꽉 다문 채 창백한 얼굴로 허공을 노려보는 최희를 곁눈질했다.
여동생과의 관계가 매우 각별해 보였으니, 만약 그녀가 죽고 나면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인 최희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다른 수색자를 찾지 못하는 이상, 정대식 자네만이 우리의 희망이야."
강영후가 그리 말을 해 와 마음에 적잖은 부담이 얹혔다.
정대식은 체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최희에게 손을 내밀고 말했다.
"제 손을 잠깐 잡아 봐요."
최희는 말없이 정대식의 손에 손을 포개었다.
그 손을 가볍게 쥐고 정대식은 정신을 집중하며 말했다.
"손에 마력을 조금만 흘려보내요."
최희는 질문 한마디 없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
정대식은 손바닥으로 스며드는 그녀의 마력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과연, 대한민국 슈퍼스타답다. 굉장히 맑고, 밝고, 강대한 마력이야.'
마치 최고급 마정석과도 같은 마력이었다.
다이아몬드를 깊숙이 들여다볼 때 그 반짝임에 넋이 나가는 것처럼, 눈이 부시도록 정명한 기운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력과 결코 헷갈릴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여동생과 당신의 마력이 조금이라도 비슷합니까?"
최희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나보다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력일 거예요."
정대식은 최선의 마력이 그녀의 것보다는 미약할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최선 역시도 최희만큼이나 강했더라면 마찬가지로 유명세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정대식이 최선의 존재조차 몰랐던 것을 보면 능력이 그리 뛰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정대식은 앞으로 한 발짝 나서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특정 마력 탐지."
화아아아앗-!
정대식은 별안간 자신의 머리에 거대한 더듬이 같은 게 생겨난 기분이었다.
관자놀이에서부터 마력이 부채꼴처럼 확장되어 가며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정대식은 스킬이 발동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정신을 집중해 최희의 마력을 느껴 보려 애썼다.
최대한 그녀의 마력과 엇비슷한 마력을 찾을 수 있다면.......
'이런, 멍청한!'
정대식은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희가 바로 옆에 있으니 자연히 그의 탐지 능력은 그녀에게로 향했다.
정대식은 마력을 해제해 버리고는 말했다.
"당신의 마력을 바탕으로 여동생의 마력을 추적해 보려는데, 바로 옆에 서 있으니까 그게 안 돼요. 좀 멀리 가 줘야 할 것 같은데요."
최희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박찼다.
정대식은 어느새 허공 저 멀리로 뛰어올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최희를 보고 놀라서 멍해졌다.
'앗, 이럴 때가 아니지. 다시 시도해 보자.'
"특정 마력 탐지."
정대식은 재차 스킬을 써 보았으나, 놀라운 일이었다.
이번에도 전혀, 그의 스킬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희는 멀리 갔을 텐데? 그녀의 마력이 지나치게 강대해서 안 되잖아?'
아예 최희가 던전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말을 하기에는 최희가 이미 멀리 가 버려, 정대식은 강영후의 휴대폰을 빌려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다.
던전 밖으로 나가 줘야겠다는 말에 최희는 흔쾌히 알겠다고 대꾸했다.
금방 나갈 수 있다는 말에 정대식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다시 스킬을 발동시켰다.
'허허...... 이것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큰일이라고 해야 할지.'
기본적으로 던전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계다.
각성자를 선택하는 신들이 던전 안에 우글거리는 몬스터를 이계의 존재라고 칭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던전 안과 밖은 전혀 통신이 되질 않았고, 가끔 지구에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최희가 던전 밖으로 나가면 그녀의 마력도 감지할 수 없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전히 그녀의 존재가 느껴지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연결된 것처럼 아주 희미하게나마...... 막연하게 그녀의 마력이 탐지되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최선을 찾을 수가 없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동일도 던전 외부인 지구의 전파에 접촉해 스트리밍을 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차원이 나뉜다 하더라도 그걸 뛰어넘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마 최희가 평범한 마력의 소유자였더라면 던전을 나가는 즉시 탐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워낙에 강대한 마력을 소유하고 있어 다른 차원인 지구로 돌아가 있어도 감지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간에 그녀의 마력을 완전히 차단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내 스킬은 소용이 없어.'
정대식은 급히 강영후를 돌아보고 말했다.
"안 되겠습니다. 지금 즉시 나가서 어떤 수를 써서든지 최희의 마력을 감지할 수 없게끔 만들어 주세요."
"마력을 감지할 수 없게 하라고?"
"그녀의 마력이 철저하게 차단되어야 합니다. 아예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려야지만이...... 최선의 마력을 탐지할 수가 있어요."
강영후는 난색을 표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녀의 마력은 국가 최고 등급의 이능 보안 시스템으로도 막을 수 없어. 본인도 자신의 마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르는 판국에, 어떻게 그 마력을 차단하라는 거야?"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야만 합니다."
정대식이 하는 말에 강영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일단은 시도해 보지. 잠시만 기다려 주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강영후는 즉시 몸을 돌려 던전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겨진 정대식은 초조함에 입술을 뜯었다.
대략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잠시간이 흐른 후, 정대식에게 소식이 도착했다.
보급품인 휴대폰 겸 통신기가 울려 받고 보니 강영후였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도 몹시 침울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희의 마력이 차단되었다. 다시 시도해 봐.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