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현질 전사
-4권 23화
정대식은 즉시 스킬을 사용했다.
"특정 마력 탐지."
그는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최희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선의 마력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탐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대식은 입술을 꽉 물었다.
'아냐...... 안 돼.'
그는 최후의 방법을 사용했다.
"강화! 특정 마력 탐지 스킬!"
강화를 더해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자 아주 희미하게, 스스로도 의심스러울 만큼 미약한 마력의 기척이 느껴졌다.
정대식은 어둔 밤 깜박이는 단 하나의 반딧불을 쫓는 기분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저기다!'
다음 순간, 스킬은 그 효력이 끝나 버렸고 기척도 사라져 버렸다.
정대식은 다시금 강화 특정 마력 탐지 스킬을 사용해 보았으나, 이번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 바람에 정대식은 자신이 일을 바로 해낸 것인지 의구심을 느꼈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처음 강화 특정 마력 탐지 스킬을 사용했을 때 집어낸 장소에 최선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저기예요! 저기에 그들이 있을 겁니다!"
그의 외침을 따라 다른 대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정대식은 특정 지점에 멈춰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아다만트 너클을 벗었다.
그리고 맨주먹으로 조심스럽게 드러난 키클로페스의 몸뚱이에 주먹을 날렸다.
"무적권!"
주먹이 여러 차례 키클로페스의 몸뚱이를 때리자 피와 살점이 날아가며 그 자리가 푹 패었다.
정대식은 다시 한 번 무적권을 사용했고 그러자 키클로페스의 근육층이 드러나 보였다.
단단한 근육층을 보고 이번엔 다른 사람이 나섰다.
정대식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선 이는 기철민이었다.
"이번엔 내가 해 보겠어."
그는 조심스레 장검을 겨누었다.
"천래일섬!"
번쩍!
기철민의 장검이 찰나 빛을 내뿜었고, 그러자 근육층이 두 갈래로 쩍 하니 갈라졌다.
"됐어! 벌려!"
갈고리와 흡사한 무기를 가진 대원 두 사람이 근육 양쪽에 그걸 걸어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렇게 근육층을 잡아서 벌리자 또 근육층이 나타나, 기철민은 그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했고 그때마다 다른 대원들이 나서서 굳어 가는 근육층을 억지로 벌려 고정시켜 놓았다.
그러자 마침내 내장 기관이라고 할 만한 것이 드러나 보였다.
"위장인가?"
기철민이 땀을 닦으며 하는 말에 정대식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는 모르겠어."
기철민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들리나! 안에 누구라도 있으면 대답해 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철민과 정대식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만약 이게 위장이고 아무 반응이 없다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불길한 추측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그저 수술을 집도하듯 조심스럽게 위장을 갈라내려 했다.
기철민이 다시금 장검을 갖다 댄 것이다.
"천래일섬......! 어라?"
놀랍게도 그 억센 근육층도 갈라놓던 기철민의 검이 아무런 힘을 못 썼다.
그가 낭패한 표정을 짓자 다른 대원이 나섰다.
그는 기다란 방천극을 들고 있었는데, 그 끄트머리를 신중히 겨누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위장을 찔렀다.
파바밧!
그러나 위장은 고무처럼 무기의 날을 튕겨 냈다.
그 광경을 보고 기철민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뭐 이래 질긴 게 다 있어?"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과 같이 먹잇감을 통째로 삼키는 몬스터들은 위장이 매우 튼튼하다. 먹잇감이 위장을 찢고 탈출하거나 독한 위산이 내장을 상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지."
그는 강영후였다.
던전 밖으로 나가 최희의 마력을 차단하고 다시금 되돌아온 그는 드러난 위장을 한 발로 밟고 서서 말했다.
"물러나."
그리고 가슴에 한 손을 갖다 대고, 뽑았다.
정대식은 놀라운 광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강영후의 몸이 칼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몸속에서 솟구쳐 나온 것은 놀랍게도 한 자루의 검이었다.
그 검에 비하자면 기철민의 장검은 한낱 쇠붙이에 불과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하얀 기운으로 감싸여 일렁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스트......."
그게 그 검의 이름인가 보았다.
강영후는 하얗게 발광하는 검 끄트머리를 위장에 갖다 댔다.
놀랍게도 그것만으로도 그 자리가 쩌저적, 얼어붙으며 지독한 냉기가 솟구쳐 올랐다.
강영후는 입에서 입김을 내뱉으며 그 검을 가볍게 찔러 넣었다.
그러자 냉기가 폭발하면서 얼어붙은 자리가 터져 올랐다.
카창!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위장의 한 부분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얼었다가 터진 것 같은데 어떤 잔해도 없었다.
그저 차디찬 냉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냉기를 흩으며 강영후는 그 검을 도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흡사 자신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는 것처럼 섬뜩한 광경이었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위장 안을 들여다보며 안도의 기색으로 말했다.
"저기 있군."
그 말을 듣고 대원들이 "와!" 환호성을 질렀다.
정대식도 안도와 기쁨으로 긴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찾았어!"
"해냈다!"
"살아 있나?"
"살아 있어!"
"살아 있다!"
강영후는 즉시 대원들을 시켜 최선과 나동일을 안에서 꺼내게 했다.
그들은 이산화탄소 흡입으로 인해 정신이 흐릿했으나 완전히 의식이 나간 것은 아니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절을 하기는 했지만, 진이 빠져 그런 것이지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실려 나가는 그들을 보고 정대식이 천만다행이라 중얼거리는 말에 강영후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 덕분이야."
그는 어렴풋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최희가 기뻐하겠어."
그 말에 최희가 웃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정대식은 상상 속 그녀를 따라서 빙그레 웃음을 지었고, 마찬가지로 함박웃음을 지은 여러 대원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그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기 시작했다.
"정대식!"
"정대식!"
"정대식!"
그들의 커다란 고함 속에서 정대식은 껄껄 소리 내 웃었다.
보기 드물게 기분 좋은 날이었다.
Chapter 24. 스타 탄생
최선과 나동일은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탈진한 상태였으므로 신속히 던전 밖으로 이송되었다.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던전에 있었던 타이탄 공격대도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했다.
애초에 사전 답사를 왔을 뿐이니 던전 자체가 키클로페스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더욱이 키클로페스를 처치하고 던전 공략을 끝마쳐 마정석을 획득했으니 그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은 셈이었다.
몬스터 조사 팀을 위해 다시 이 던전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보스몹이 죽었으니 당분간은 비교적 안전할 터였다.
키클로페스가 없는 이상, 나타나는 몬스터라고 해 봤자 혼 배트나 켈피, 리저드맨 정도일 텐데, 보통 보스몹이 없으면 그런 잡몹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일단 한 번 공략이 되고 나면 개체 수 자체가 확 줄어들어 버리는 것이다.
정대식은 몰랐지만 구조 팀에는 몬스터 조사반의 이정연도 키클로페스를 구경하기 위해 따라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던전을 벗어나며 보스몹이 죽어 버렸으니 이 던전에서는 몬스터를 관찰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종알거렸다.
원래부터 몬스터의 출몰 횟수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 보스몹이 없으면 몬스터를 찾아서 헤매야 하는 판국이 될지도 몰랐다.
"지난번에 다른 헌터가 이 던전을 공략하고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진 않았어요. 새로운 보스몹이 나타나는 주기가 짧은 모양이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겁니다."
정대식의 말에 이정연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으음, 살아 있는 몬스터를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혼 배트나 켈피, 리저드맨...... 무엇보다 키클로페스의 사체를 획득했으니 굳이 이 던전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몬스터 조사반이 키클로페스를 해체해 운송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릴 테니까요. 그때까진 다른 살아 있는 몬스터가 있는 던전에 가는 게 낫죠."
몬스터 연구를 위한 조사반은 여러 팀으로 운영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정연이 말하는 것을 들어 봐도 그렇고, 지난번에 와이번의 알을 가져간 걸 봐도 그렇고, 그녀는 살아 있는 몬스터를 연구하는 것 같았다.
정대식은 이정연과 말을 섞은 김에 물었다.
"이정연 씨가 소속된 팀은 정확히 무슨 연구를 하는 겁니까?"
정대식의 질문에 그녀는 약간 음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속해 있는 몬스터 조사반 11과 1팀에서 하는 일은 국가 기밀에 속하는 내용이라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몬스터 조사는 몬스터 도감 작성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저희가 연구하는 내용이 몬스터 도감에 실리게 되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라는 거죠."
이정연은 정대식의 팔을 은근히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간에 저는 와이번의 알과 같이 보다 어리거나 살아 있는 몬스터를 더 많이 갖고 싶어요. 제법 많은 개체를 확보하긴 했지만 아직 부족하거든요."
정대식은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
"살아 있는 몬스터를 던전 밖으로 꺼내는 것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정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이미 많은 몬스터가 지구에 살고 있는 걸요? 울릉도나 제주도 등지를 봐도 그렇고."
"그건 미처 퇴치하지 못한 몬스터가 무리 지어 살고 있는 거잖아요? 조만간 놈들을 처치하고 되찾아야 할 곳이지요."
정대식의 지적에 이정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연구 목적으로 몬스터를 대량 사육하기 시작했어요. 아프리카 초원에는 동물 대신 몬스터가 뛰어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돈데요? 이미 수많은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나왔고 그들이 지구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어요. 거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몬스터의 생육을 연구하는 건 필수적이죠. 무조건 몬스터를 던전 밖으로 꺼내는 게 위험하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에요."
정대식은 더 이상 이정연의 말에 반박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자신과는 달리, 다른 헌터들은 이능을 내려 준 신에게서 사명을 부여받았다.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라.'
그런데 이계의 존재를 죽여 없애기는커녕 이용하는 게 옳은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정대식의 찜찜한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이정연이 그의 팔뚝을 꼬집으며 윙크를 날렸다.
"연구용 몬스터들은 철저히 관리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보다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 볼까요? 앞으로 몬스터 관련 사업은 크게 번창할 거예요. 돈벌이가 될 거라는 말이죠."
"이미 몬스터 사체가 여기저기 소비되기는 하지요."
"음, 제가 하는 말은 죽은 몬스터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살아 있는 몬스터를 말하는 거예요. 꼭 집어서 말을 하자면 몬스터의 가축화를 말하는 거죠."
정대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몬스터의 가축화라고요?"
이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 복지니 뭐니 하며 옛날보다 가축을 사육하는 일이 까다로워지고 있죠. 소나 돼지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도 큰일이고요. 하지만 몬스터를 사육해 그 고기를 섭취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몬스터가 인류의 새로운 식량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