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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103화 (103/297)

# 103

현질 전사

- 5권 3화

그는 혹시 진짜 40억에 달라고 할까 봐 불안했는지 먼저 45억에 팔겠다고 말했다.

기철민도 그 정도면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검과 검집, 벨트를 전부 다 해서 45억을 지불했다.

김 씨는 완전히 도둑놈 아니냐, 고 욕을 했으나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장간을 나왔다.

"덕분에 좋은 무기를 구입했어. 전부터 네겐 신세만 지는군."

"아니, 별일 아닌데, 뭐."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정대식을 보고 기철민이 말했다.

"인챈트 문제는 내게 맡겨 줘. 내가 최선에게 어디로 가면 되겠느냐고 물어볼 테니까."

"음, 아냐. 난 됐어."

"왜?"

"내가 지금 가진 무기에 인챈트 스크롤을 쓰긴 좀 아깝네."

"그거 A급 무기 아냐? 자가 수복 기능까지 넣으면 AA급이 되는 건데 뭐가 아까워?"

국가 기물 금고에서 빌린 거라 그렇다고 말은 못하고, 정대식은 좀 더 좋은 무구가 생기면 생각해 보겠다고 적당히 말했다.

기철민은 알아서 하라 했고 두 사람은 오래지 않아 헤어졌다.

정대식은 품속에 집어넣어 둔 스크롤을 의식해 걸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가진 무구 중에서 진짜 내 건 하나도 없네.'

국가 기물 금고에서 대여한 아이템은 정대식이 국적을 바꾸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그래도 정대식의 재산은 아니었다.

'나도 내 무기를 새로 하나 살까? 흐음...... 그건 좀 돈 아까운데.'

정대식은 국가 기물 금고에 들어 있는 SS급 아이템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질 하기에도 벅찬데 무기까지 살 돈은 없어. 50억이면 스킬을 다섯 번이나 강화할 수 있을 만한 금액이잖아. 그보다는 어떻게, 국가 기물 금고의 아이템을 내 것으로 만들 방법이 없나?'

정대식은 날강도 같은 궁리를 하며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 * *

집으로 향하던 정대식은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액정을 쳐다보니 최희였다.

'마침 잘됐군. 기철민의 추측이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겠어.'

정대식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정대식? 지금 어디야?

"집으로 가는 길인데요?"

-마침 잘됐군. 나도 그리로 가는 중이니까 거기서 보지.

전화가 뚝 끊기고 정대식은 황당해했다.

'아니, 내 집이 커피숍도 아니고 왜 거기서 보자는 거야?'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최희의 앙증맞은 미니카가 주차되어 있었다.

주택 단지 내 출입 허락을 내린 적이 없는데, 하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차를 주차했다.

그러자 현관 앞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던 최희가 자세를 바로하며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벗어 들었다.

"왔어?"

선글라스 하나 벗는 것도 무슨 화보 같았다.

확실히 그림이 되는 여자라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안으로 들어온 거죠?"

최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임시 출입증을 하나 발급받았어. 난 여기에 거주하는 건 아니지만 타이탄 공격대의 투자자니까. 타이탄 공격대의 사택에 드나드는 것이 이상하진 않지."

"그건 그렇지만."

정대식과 최희는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어제도 소홀했던 대접이 오늘이라고 거창할 리가 없었다.

덜렁 물 한 잔을 내미는 정대식을 보고 최희가 말했다.

"우리 집 정수기에서는 각얼음, 간 얼음, 커피, 탄산수 다 나와."

"그렇습니까? 성능이 좋네요."

"그러니까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게 어때? 이사 온다면 내가 갖고 있는 무구나 장비도 마음대로 빌려 쓸 수 있고, 좋잖아?"

최희가 갖고 있는 아이템이라면 그 수준이 상당할 테다.

순간 혹하는 기분이 들었으나 정대식은 가까스로 이성을 차리고 말했다.

"자꾸 이사 오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은인이니 하는 그런 거 말고요. 진짜 이유 말입니다."

정대식의 질문에 최희는 빙그르르 웃었다.

"이미 알고 있잖아?"

"역시, 올인원이 될 방법을 찾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까?"

정대식은 그렇게 물으면서 뭔지 모를 실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를 곧장 나무랐다.

'아니, 당연히 내 비밀을 캐내고 싶은 마음에 같이 살자고 한 거겠지! 뭔 생각을 한 거야?'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언감생심, 어찌 감히 최희를 상대로 그런 욕심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자다 말고 이불을 찰 일이라고 정대식은 내심 혀를 찼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기분을 전혀 내색지 않았다.

그런 정대식의 상태를 모르고 최희는 진지하게 말했다.

"네 신이 네게 올인원이 되는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결과인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립니까?"

"신은 널 처음부터 올인원으로 만들지는 않았다는 말이야. 넌 처음 각성했을 때는 강화계 한 가지 능력만을 갖고 있었어. 다른 두 가지 능력은 하나씩 개화를 했지."

"예에...... 그렇습니다만."

"그럼 거기에는 분명 어떤 방법이 있을 거야."

"예?"

"근본적으로 신이 각성자들에게 약속하는 것은 하나뿐이야.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라, 그리하면 강해지리니...... 몬스터를 처치한다는 방법을 통해서 힘을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너 역시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올인원이 되는 데는 과정이 필요하다?"

"맞아. 그게 아니고선 굳이 올인원을 약속했을 리가 없어. 그냥 처음부터 올인원으로 만들어 놓았겠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대식은 현질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하나씩 능력을 획득해 나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정대식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지 최희에겐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우회적으로나마 가르쳐 주고 싶어서 신의 선택을 받은 거라고 대답한 것이었는데, 그녀의 집념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정대식은 난감한 기분으로 말했다.

"굳이 신이 날 콕 집어서 선택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누구나 가능한 일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요."

"물론 나는 신에게 올인원에 대한 어떤 언급도 듣지 못했어. 그러니 넌 내가 올인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건 도전해 볼 만한 일이 될 거야. 그게 아니고서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방법을 찾지 못하겠으니까."

최희가 하는 말에 정대식은 전부터 의아하게 여겨 왔던 바를 물었다.

"이미 최희 씨는 차고도 넘칠 만큼 강하잖아요? 거기서 더 강해져서 뭘 하겠다는 겁니까?"

"뭘 하냐니......? 그야 당연히......."

최희는 좀 어물거렸다.

정대식이 보기에는 그녀 본인조차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최희는 지극히 간단명료한 답을 내놓았다.

"더 강해지고 싶으니까!"

정대식은 이마를 싸쥐었다.

기철민의 추측이 다 옳았다.

그녀가 정대식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진정한 목적도,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도, 전부 그가 한 말 그대로였다.

'기철민은 어떻게 최희가 생각하는 바를 그리 잘 알지? 같은 족속이라서 그런가?'

기철민은 강해지는 것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냥 강해지고 싶어서 올인원이 될 방법을 찾겠다는 최희야말로 그 경우에 해당이 되는 것 같았다.

'도대체가 말이야, 헌터라는 작자들은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본인도 헌터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정대식은 오만상을 쓰고 말했다.

"뭐, 좋습니다. 그거야 최희 씨의 취향이니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거기에 어울려 드릴 이유는 없잖아요?"

최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

"어째서라니...... 최희 씨야 올인원이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그걸 돕는 제게는 어떤 이점이 있습니까?"

정대식이 하는 말을 듣고 최희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내 사인을 고작 1억에 팔아 치울 정도로 나에 대해 별생각이 없나 본데? 나와 말 한마디 섞고 싶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남자들이 셀 수 없을 지경이라고. 좀 더 헌터답게 말해 볼까? 나와 사냥 한 번...... 아니, 내가 사냥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차고도 넘친단 말이야. 그런데 아무런 이점이 없다고?"

최희가 하는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것을 전부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부담감과, 결코 올인원이 되는 방법을 전수해 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조건 마다하기는 했다.

그러나 최희와 인맥을 맺는 것이 나쁠 것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득이었다.

정대식은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사는 안 되겠습니다."

"왜에?"

최희는 콧소리를 내며 몸을 흔들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녀는 그런 뻔한 애교로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여자였다.

정대식은 혼몽해지는 정신을 붙들어 매고 말했다.

"전 최희 씨와는 달리 상식적인 사람이라서요...... 최희 씨와 그런 사이가 아닌데 괜한 오해를 받기는 싫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이가 되면 되잖아? 사귀자! 아님 결혼해!"

역시 상식적인 구석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올인원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정대식은 최희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을 이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올인원이 되는 것이라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최희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무슨 수로? 엄밀히 말해 어떤 식으로 올인원이 되는지도 모르고 있잖아?"

정대식은 말문이 막혔다. 돈을 주고 능력을 사들이는 거라고 말을 할 수 없는 이상, 그는 올인원이 되는 방법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희는 그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도 그 방법을 모르는 이상 너를 곁에서 관찰하며 나 스스로 방법을 찾는 수밖에는 없잖아?"

"그래서 가까이 있으려고 이사 오라는 둥 그런 소릴 한 겁니까? 차라리 타이탄 공격대로 들어와 동료가 되는 편이 낫지 않아요? 이미 투자자니까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이는데."

최희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겐 안 돼."

"왜요?"

"사정이 좀 있어."

정대식은 설명을 기다렸으나 최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대식은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아무튼 제겐 최희 씨를 반드시 도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최희 씨도 이미 제게 신세를 진 마당에 그런 요구를 할 수는 없겠죠. 올인원이 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좋습니다. 거기에 도움을 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전 방법을 모르니까 그건 알아서 찾아보세요."

선을 긋는 정대식을 보고 최희는 혀를 찼다. 보아하니 그녀는 자신의 매력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귀자는 둥 결혼하자는 둥, 그런 식으로 농담 삼아 흘리면 정대식이 어영부영 넘어올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사적인 관계가 되는 편이 정대식을 요리해 그의 비밀을 캐내는 데 용이하다고 판단한 게 분명했다.

사실 최희가 작정하고 덤볐더라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누누이 말하지만 짧은 미소 한 번으로도 남자의 숨통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자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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