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07화 (107/297)

# 107

현질 전사

- 5권 7화

"이봐요! 우리가 먼저 제의를 했잖아요. 거기서 끼어드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아서요, 아가씨들. 정대식이 뭐하러 당신들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들과 사냥을 가겠습니까?"

"어머! 별 볼 일 없다니. 지금 말 다했어요?"

"사실이잖아요. 당신네들이 이 던전에서 얼빠진 헌터 꼬셔다가 부려 먹는 건 이미 소문이 다 났어요. 정대식은 그런데 휘둘릴 만한 인물이 아니니까 포기해요."

"당신들하고는 어울리고 싶겠어요?"

그들은 정대식을 놓고 옥신각신 다투었다.

그쯤 되자 정대식은 머리가 아파지려고 했다.

이게 웬 시간 낭비인가 싶어서 정대식은 목청을 높이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만들 해요!"

정대식의 외침에 다들 입을 다물었고 그는 넌더리를 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누구와도 함께 갈 마음이 없습니다. 혼자 갈 거니까 입구에서 좀 비켜 주시죠."

여자들과 덩치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마지못해 입구에서 비켜섰다.

정대식은 그들을 지나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게 웬 난리인지 모르겠군.......'

기묘한 위화감이 전신을 스치고, 던전 안에 들어와서야 정대식은 약간 아쉬워했다.

'여자들이 제법 예쁘던데. 같이 들어올 걸 그랬나?'

정대식은 곧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예쁘기는 무슨. 최희 발끝에도 못 미치던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오늘의 목적을 상기하자!'

정대식은 오토바이에 걸터앉은 채로 주위를 한 번 휘휘 둘러보았다.

워낙에 유명한 던전인지라 입구 주위는 다소 어수선했다.

정확히는 정리가 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여럿 드나든 흔적이 남아 있었고 멀리까지 바퀴 자국이 뻗어 있어 길이라고 할 만한 게 눈에 들어왔다.

정대식은 일단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정대식은 새삼스런 기분으로 엔트로피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파티를 구성하지 않은 것은 혼자가 효율적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엔트로피가 있다는 이유 역시 한몫을 했다.

"지금부터 네 모습을 실체화하고, 의식을 링크해."

<알겠습니다.>

홀로그램처럼 현실감 없게 둥둥 떠다니던 엔트로피의 모습이 질감을 가졌다.

그의 모습이 실체화되자 인형 같은 느낌이 더더욱 도드라졌다.

<링크되었습니다.>

정대식은 머릿속에 엔트로피의 시야가 들어오는 것을 깨닫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모든 상태 증진 스킬을 발동한다."

<알겠습니다.>

"근력 증진."

<마력 증진.>

"체력 증진."

<오감 증진.>

"민첩 증진."

<행운 증진.>

우우우웅-.

마력이 외부로 뻗어 나가는 대신, 정대식의 체내로 되돌아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로 인해 마력의 푸르스름한 빛이 그를 감쌌고, 그 빛은 곧 정대식에게 흡수되듯이 사라졌다.

"이 스킬의 발동 시간은 어떻게 되지?"

<한 시간입니다.>

"좋아. 스킬 발동 시간이 끝나면 네가 자동으로 모든 상태 증진 스킬을 알아서 발동해. 내가 그만하라고 하거나, 마력 총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해."

<알겠습니다.>

"그럼 네가 나보다 3km를 앞서간다."

<알겠습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정찰병 삼아 날려 보냈다.

그리고 엔트로피가 먼저 간 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몰았다.

* * *

던전에서의 실전 훈련은 실로 성공적이었다.

상태 증진 스킬이 예상보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보름 밤낮 던전에 머물면서 닥치는 대로 몬스터를 잡아들인 결과, 근력 수치가 22에서 23으로, 마력이 35에서 36으로, 오감이 16에서 18로, 민첩이 18에서 19로, 행운이 16에서 18로 상승했던 것이다.

체력은 이미 40이라 거기서 수치를 더 높이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도 몸이 단련되면 단련될수록, 신체 수준을 향상시키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비록 체력 수치에는 변동이 없었으나, 그 외 모든 상태 수치가 올라갔으니 만족스러운 결과를 뽑아낸 셈이었다.

가장 기쁜 것은 상태 포인트를 도합 7이나 올렸는데도 돈이 10원 한 장 안 들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상태 증진 스킬을 모조리 구입하느라고 7천만 원을 날렸지만, 그 정도 금액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던 현질을 대신해 상태를 개선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소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름 동안 정대식이 잡아들인 몬스터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에 가죽이나 뼈까지 다 쓰이는 대형종이 출몰하는 던전이었더라면, 레벨 5의 아공간이라 하더라도 여유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주로 언데드가 출몰하는 던전이라 돈이 될 만한 부분의 부피가 작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언데드는 기껏해야 뼈나, 눈 혹은 가슴에 박힌 와드 정도가 쓸모 있었다.

좀 급이 올라가는 언데드를 잡아야지만 장신구나 무기, 스크롤 같은 아이템을 획득할 수가 있었다.

덕분에 공간 부족을 염려하지 않고 놈들을 때려잡는 대로 마구 쓸어 담았다.

결과적으로 보름 만에 던전을 벗어나 변장수를 통해 그걸 몽땅 처분했을 때는 수중에 70억이라는 거금이 남았다.

변장수는 본디 부산물 전문이라 이런 아이템류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으나, 매입을 마다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값을 좀 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70억을 정산받은 것이다.

아쉬운 점은 다름 아닌 오토바이다.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지난번에 구입해 두었던 두카티를 몰고 던전으로 들어갔었는데, 역시 해당 사항이 되질 않았다.

이 던전은 일부 폐허로 이루어져 있어 도로 상태가 좋은 편이고, 철을 부식시키는 산을 쏘아 내거나 엔진을 망가트릴 수 있는 화염, 빙결을 쏴 대는 몬스터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전을 나올 때쯤엔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끌고 나와 봤자 회생이 불가능할 것 같아, 정대식은 그걸 그냥 버려두고 왔다.

'4천만 원을 그냥 날렸네. 더 비싼 걸 샀으면 어쩔 뻔했어?'

정대식이 오토바이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걸림돌이 됐다.

효용을 따져서 오토바이를 사기는 했으나 다루는 것이 신통치 않아 고생을 꽤나 했다.

보름 동안이나 울며 겨자 먹기로 끌고 다녔더니 그럭저럭 그럴싸하게 탈 수는 있게 됐다.

하지만 오토바이의 엔진 소음이 시끄러워 몬스터의 주의를 끄는데다 근력, 민첩 수치가 올라가다 보니 오토바이를 타는 것보다 두 다리로 달리는 게 더 편하게 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사냥을 다니겠다는 생각은 잊어버리는 게 좋겠어.'

오토바이를 내버리고 왔더니 집까지 타고 갈 게 없었다.

정대식은 택시를 탈까 하다가, 어차피 대중교통을 이용할 작정이라면 그냥 지하철을 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짐은 전부 아공간에 들어 있는데다가 언데드 썩은 내가 난다고 변장수가 코를 싸쥐어 그가 정산을 할 동안에 인근 목욕탕에 가서 씻고 나온 참이었던 것이다.

지하철을 타도 무리가 없겠다고 판단되어, 정대식은 오랜만에 역으로 내려갔다.

'아차, 이 방향이 아니지.'

하마터면 옛 여관방이 있는 방향으로 갈 뻔한 정대식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승강장을 옮겼다.

잠시 후, 전동차가 들어와 그는 별생각 없이 올라탔다.

빈자리가 있었으나 선 채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데, 문득 무언가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 엔트로피가 온라인에 접속이 가능했지? 이제는 링크도 되는 상태니까...... 어디 보자.'

정대식은 머릿속으로 가만히 엔트로피를 불렀다.

'엔트로피.'

엔트로피는 즉각 반응했다.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엔트로피는 정대식의 눈에는 보이는 상태였으나,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와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링크 상태를 유지하라고 해 두었기에,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소통이 가능했다.

정대식은 어린아이 크기의 인형 모습을 한 엔트로피를 바라보며 물었다.

'보름 사이에 이렇다 할 소식이 없었나?'

<어떤 소식을 찾으십니까?>

'그냥, 각 주요 포털 메인에 떠 있는 기사에 뭐, 뭐가 있나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제주도에서 또다시 몬스터 떼 습격 사태가 있었습니다. 제주시 한 동이 완전히 파괴되어 최희 씨가 직접 나섰습니다.>

'그래? 벌써 그렇게 이능을 써도 되는 건가?'

<최희 씨의 건강 상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으음...... 그것 말고는?'

<조디악 공격대의 공대장인 광필두 씨가 아마조네스 공격대의 공대장인 여진주 씨에게 무구를 내걸고 결투를 요청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진주 씨와 싸워서 이기는 쪽이 상대방의 무구를 다 갖기로 한 것입니다.>

'아마조네스의 여진주......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1세대에서 강철우와 함께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그래, 맞아. 여진주가 강철우와 마찬가지로 7성 무구를 갖고 있었지?'

<그렇습니다.>

'지금 강철우의 7성 무구는 광필두에게 가 있고.'

<그렇습니다.>

'그럼 광필두는 7성 무구를 모조리 모을 작정인가?'

<그것까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7성 무구라는 것은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각성자들을 선택한 신이 직접 하사한 무구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흔히 세븐 스타라고도 불리는데, 각기 검, 창, 활, 뢰, 방패, 갑옷, 마갑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이 중 네 개가 한국에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인 검을 강철우가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번 사건으로 광필두가 그 검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무구를 노리다니.

엔트로피는 확인할 수 없다 했지만 정대식의 짐작으로는 그가 7성 무구를 모으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걸 다 모아서 어디다 쓰려고?'

정대식은 의문을 품으며 물었다.

'7성 무구를 다 모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나?'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만, 온라인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그보다 높은 차원의 무기를 갖게 된다고 합니다.>

'7성 무구보다 높은 차원이면 얼마나 대단한 무기라는 거야?'

<7성 무구의 성능은 확인된 바로는 M급이라고 합니다.>

'M급이라면.......'

<마스터급이라는 겁니다.>

무구의 등급은 공식적으로 최고 수준이 SSS급이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SSS급 이상이 있었다.

그것을 각기 M, L, G라고 불렀다.

마스터, 레전드, 가드니스라는 뜻이다.

엄밀히 말해 이 등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SSS급이 넘어가면 그 성능을 수치로 확인할 수 없는 탓이다.

SSS급을 뛰어넘는다고 생각되어지는 무구는 몇몇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7성 무구뿐이었다.

이걸 몇 개만 한자리에 갖다 놓아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걸 다 모은다니 도대체 무슨 심산인지 알 수 없었다.

설령 그것들을 다 모아 G급의, 전무후무한 무구를 얻는다 치더라도...... 도대체 그걸 어디다 쓴다는 말인가?

SSS급 이상의 무구가 비공식적인 이유는 또 달리 있었다.

SSS급을 넘어가면 그 위험도를 핵무기 이상으로 여긴다.

즉, 대륙 하나를 결딴낼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식적으로 SSS급 이상의 무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G급 정도라면.......

별 하나를 날릴 수 있는 수준이다.

지구 멸망.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대식은 피식 웃음 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