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11화 (111/297)

# 111

현질 전사

- 5권 11화

"뭐? 광필두가 153위밖에 안 돼? 7성 무구를 두 개나 갖고 있는데?"

얼마 전, 광필두는 여진주와 무구를 놓고 겨루어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여진주가 갖고 있던 활을 손에 넣었고, 이로써 세븐 스타를 두 개씩이나 보유한 인물이 되었다.

그런 것치고는 순위가 낮다는 생각에 반문을 하자 엔트로피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헌터 랭킹 선정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 참, 그럼 순전히 실력만 놓고 순위를 매기는 데는 없어?"

<있기는 합니다만 공식은 아닙니다.>

"그래? 아무튼 있기는 하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거기에선 몇 위인데?"

<15위입니다.>

"헉! 되게 높네."

정대식은 문득 궁금해 질문을 던졌다.

"난 몇 위야?"

<그 랭킹은 100위까지밖에 없습니다.>

"난 포함 안 되어 있다, 이거구만."

<그렇습니다.>

"쳇."

정대식은 투덜거리며 곧장 강영후의 사무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랭킹을 신경 안 쓸 때가 속이 편했는데, 한 번 들여다보고 나니 형편없는 순위에 자괴감이 들었다.

어떡하면 랭킹을 올릴 수 있을까, 저도 모르게 궁리하던 정대식은 헛, 하고 정신을 차렸다.

'지금 랭킹 같은 게 무슨 상관이야? 그건 내 목적이 아니라고!'

현재 정대식이 랭킹을 올리려면 보다 많은 대외 활동이 필요했다.

잡아들이는 모든 몬스터를 제대로 된 처리소에 가서 정산해야 했고, 무기도 국가 기물 금고에서 대여를 한 게 아닌, 제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을 장착해야 했다.

기부도 몇십 억쯤 팍팍 하고, 돈이 아닌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일도 해야 하는데.......

그럼 수입이 줄어들 것은 당연지사다.

'랭킹에 신경 쓰는 건 괜한 짓거리다. 겉멋이 들어 쓸데없는 일을 하고 돌아다닐 수는 없지.'

정대식은 랭킹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엔트로피를 해제하고 비서에게 인사했다.

비서는 즉시 그를 강영후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왔는가?"

강영후가 자리를 권해 정대식은 소파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러자 강영후가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아 깍지 낀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지난번 전투에서 활약이 대단했더군."

"아닙니다."

"그 이후 스테이터스 측정을 다시 했다고 알고 있는데?"

"예, 5등급이 되었습니다."

그랬다.

지난번 김시온의 권유로 정대식은 귀환하고 얼마 있지 않아 스테이터스를 재검하고 5등급으로 올라섰다.

스테이터스 측정을 한 직원의 말에 따르자면, 스테이터스 등급 기준으로 놓고 보니까 5등급이지 사실상 4등급이나 다름없다고 말을 했다.

순수 공격력만으로 보면 이미 4등급이라고 하면서 조금만 더하면 금방 4등급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강영후는 그 이야기를 꺼냈다.

"보고서를 보니 사실상 4등급으로 보는 게 맞는 수준이라고?"

"그렇다고 하더군요."

"거기다 조작계 능력까지 획득했고?"

"예."

"음, 그래서 말인데......."

강영후는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혹시 자네만의 부대를 꾸려 볼 생각이 없나?"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정대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 부대라고요?"

"그렇네."

"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게다가 저는 이미 외인부대 소속이지 않습니까? 부대장님의 의견이 어떠한지도 알아봐야......."

"솔직히 말을 하자면 이 제안은 김시온이 한 거야."

"부대장님이요?"

"아무래도 자신보다 더 높은 등급의 대원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정대식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이제야 비로소 외인부대에서 제대로 된 몫을 하고 있다고 느꼈고, 김시온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먼저 그를 방출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무어라 말을 못하고 있는 정대식을 보고 강영후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내 생각도 김시온과 동일해. 특정 대원이 다른 대원들과 실력 차가 많이 나는 것은 큰 문제야. 아무래도 자네가 있는 상태에서 임무를 계속해 나가다 보면, 자네에게 의지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설령 의지를 안 한다고 하더라도 불편해지기 쉽지. 네 쪽에서 다른 대원들을 의식하느라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게 될 것이 뻔해. 그러다 보면 성장할 여지가 없어지고 그것은 네 개인의 전력에도, 공격대 전체의 전력에도 큰 손해다."

"......."

"그럴 바엔 부대를 나오는 게 맞아. 다른 부대를 추천해 주고 싶어도 이미 자네만 한 실력자를 거느리고 있을 만한 데가 없어. 그럴 바에야 자네가 부대장이 되어 새로운 부대를 이끄는 편이 낫지."

정대식은 고민하다 말했다.

"부대장이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자질이 필요할 텐데요. 강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김시온 부대장님 같이 커맨더 능력도 없고, 다른 사람을 이끌어 본 경험도 없는데요. 아직 한 부대를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요?"

정대식의 주저함을 보고 강영후가 어깨를 으쓱했다.

"커맨더 능력은 김시온만의 특기다. 다른 부대장들은 그런 능력이 없어. 그게 부대장이 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는 말이지. 게다가 자네는 막공을 이끌어 본 경험이 몇 번인가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누구나 처음부터 부대장인 것은 아니니까. 다 직접 부딪쳐 가면서 부대장이 되어 가는 것이지. 무엇보다 이건 자네에게 좋은 제안이야. 언젠가 공격대를 창설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리더가 되어 보는 편이 낫지 않겠나?"

강영후는 정대식에게 곧장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정대식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한 번 고민해 보게. 대답이 정해지는 대로 연락 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과분한 제의 감사드립니다."

정대식은 강영후의 사무실을 나와 곧장 외인부대로 갔다.

공식 임무를 맡기 전이라 사무실에는 김시온과 박무원밖에 없었다.

정대식은 아는 체를 하는 김시온에게 다가가 말했다.

"잠깐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할 말이 있습니다."

정대식의 기세를 보고 팔짱을 낀 김시온이 대꾸했다.

"그냥 여기서 말해라. 무슨 일이지?"

정대식은 박무원을 힐끔 보았으나 말하기를 그치지는 않았다.

"방금 공대장을 뵙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저를 외인부대에서 내보내려 하신다고요?"

침착하게 말을 하려고 했으나 말 속에 감정이 섞여 나왔다.

정대식은 자신이 생각보다 더 섭섭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외인부대는 그가 처음으로 동료애를 느끼게 한 곳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다른 대원들과 가까워져, 재계약 때도 계속 이대로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는데 방출이라니?

김시온은 정대식이 말하는 것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너는 이미 일개 부대원으로 있을 만한 실력이 아니다. 4등급에 준하는 5등급 수준이면 다른 부대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당연히 우리 부대를 떠나서 너만의 부대를 이끄는 것이 옳다."

김시온이 하는 말에 박무원은 미미하게 놀라는 기색을 드러냈다.

보아하니 아직 다른 대원들은 모르는 일 같았다.

정대식은 그녀가 하는 말이 옳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뭔지 모르게 울컥해 반박했다.

"그래도 등급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김시온은 그렇게 말하는 정대식을 보고 냉엄하게 말했다.

"그래서, 계속 외인부대에 붙어 있겠다고 징징거리려 온 거냐?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냐? 널 어르고 달래며 바깥세상은 위험하니 이대로 있으라고 엉덩이라도 토닥여 줘야 하나? 마땅히 자신의 성장에 기뻐하고 더 강해질 생각을 해야지, 제자리에 머물러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겠다고? 그런 얼빠진 놈은 내 부대에 필요 없다!"

정대식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는 뺨이라도 맞은 기분으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왔다.

그런 그를 박무원이 쫓아왔다.

박무원은 말없이 정대식의 팔을 이끌어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텅 빈 로비 한편에 자리한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가지고 와서 내밀었다.

정대식은 그걸 받아 들고 한 모금 홀짝였다.

그제야 박무원이 무겁기 짝이 없는 입을 열었다.

"부대장님도 내켜서 한 일은 아닐 거다."

정대식은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었다.

김시온에게는 아무런 유감도 없었다.

방금 그녀에게 한 말은 정확히 어리광일 뿐이었다.

정대식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박무원은 과묵한 성격답게 그 말 이상으로 김시온을 편들거나 정대식을 위로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짧게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자신만의 부대를 갖는 것은 큰일이지."

희한하게 별거 아닌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박무원이 진중한 성격이라 그런가 그 말 한마디에 자신만의 부대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자 비로소 서운함이 사라지고 어떤 기대감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박무원은 정대식이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잘해 봐."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고, 종이컵을 재활용함에다 던져 넣었다.

그리고 곧장 강영후의 사무실로 다시 올라가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 * *

뚜르르르~ 뚜르르르~.

정대식은 무미건조한 신호음이 끊기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썩 반갑지 않은 기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대식 씨? 웬일이죠? 제게 전화를 다 걸고.

정대식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제가 무슨 용건인지는 장한나 씨가 더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정대식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그가 국내에 머무르게끔 노력을 기울이던 장한나는 정대식이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가고부터는 조용했다.

그가 타이탄 공격대에 몸담고 있는 동안에는 이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대식에게는 볼일이 남아 있었다.

장한나가 그걸 모를 여자가 아닌지라, 그녀는 짧게 말했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죠. 제가 그쪽으로 가겠어요.

정대식은 장한나와 타이탄 공격대 본사 로비에서 만났다.

따로 이동할 것 없이 휴게실 한자리를 빌려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이번에 제 등급이 올랐습니다."

장한나는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그렇더군요. 4등급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 같아 보이던데요? 게다가 조작계 능력까지 얻었고요."

"예, 보이시죠?"

정대식은 부러 엔트로피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마력으로 어떤 지성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모든 계열을 통틀어 고난이도로 평가받는 능력이었다.

장한나는 엔트로피를 보고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정대식 씨가 창조했다기에는 지나치게 깜찍하네요."

자신이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실체화한 엔트로피의 외양이 남녀노소에게 먹어 주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정대식은 본론을 꺼냈다.

"공대장께서는 제가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 이끌기를 원하시더군요. 더 이상 일반 부대원으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이에요."

"그럴 만도 하지요. 타이탄 공격대의 부대장들 중에서는 5등급 이상의 실력자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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